'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민간인 피학살 거제유족회 창립 한국전쟁을 전후해 전국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높은 가운데 20일 경남 거제에서 유족회가 창립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민간학살문제해결을 위한 경남모임(대표 서봉석 산청군의원)과 유족 등 50여명은 이날 오후 거제박물관 강당에서 거제유족회 창립대회를 열어 서철안씨(70 일운면 지세포리)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한편 보도연맹 등과 관련 거제에서 군경, 우익단체 등에 의해 800여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했다며 이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 거제시와 시의회에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민간인 희생자 신고처 개설과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는 한편 전국유족회와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번국민위와 함께 특별법제정을 촉구키로 했다. 이날 열린 증언대회에서 서철안씨는“50년 7월 경 거제도 앞 바다에 수장당한 주검들이 15-20명씩 철사줄에 묶여 지세포만과 학동해안에 떠밀려왔다”며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하는 등 유족들은 연좌제로 인한 고통과 지난 세월에 대한 통한을 호소했다. 이날 거제유족회 창립식에 참석한 범국민위 김동춘 사무처장(성공회대교수)은 국회의원 서명을 받아 오는 9월 초 정기국회에 특별법을 상정키로 했으며 이때에 맞춰 인권단체 및 시민단체와 연대해 공동대책위를 발족키로 했다고 밝혔다. 거제 원종태기자jtwon@naeil.com 2001-08-21
- <내일시론>정치일정 투명하게 밝혀야(왕길남 2001.08.09) 정치일정 투명하게 밝혀야(왕길남 2001.08.09) 왕길남 정치담당 편집위원 민주당의 대선후보 조기경선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청와대의 ‘시기상조론’에 눌려 눈치만 보던 대선후보주자들이 드러내 놓고 ‘후보 조기 가시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대선후보를 ‘지방선거 이전’에 결정하자고 밝힌 데 이어 노무현 상임고문도 동의하고 나섰다. 김중권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도 조기경선론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여권내부에서 후보조기가시화를 가장 먼저 거론했던 사람이 바로 김 대표였다. 지난 5월 대선주자들이 후보가 아닌 상태에서 뛰어봐야 먹히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후보가 뛰어야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이상수 총무와 송훈석 부총무는 사견임을 전제로 내년 3-4월 대선후보와 광역단체장후보를 경선해 지방선거에 바람을 일으켜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한화갑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와 김근태 최고위원은 ‘7월 후보경선’을 선호하고 있다. 정권말기 레임덕과 후보경선 탈락자의 이반현상을 우려한 동교동계는 지방선거 이후 전당대회 개최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자는 이른바 2단계 전당대회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공식입장은 ‘아직 대선후보경선 시기를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당의 공식입장과는 달리 상당수의 후보주자와 원내총무단이 조기경선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정치일정의 불투명성이 앞으로 예전의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절정에 다다른 국민의 정치불신과 염증 노무현 상임고문은 8일 CBS 라디오 ‘뉴스레이더’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내 경쟁과정이 너무 길게 되면 각 후보 진영의 체력이 많이 소모되고 상처가 날 가능성이 있어 지방선거전에 대선후보를 선출해야만 당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바른정치모임의 소장파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이인제 최고위원은 7일 충남 부여에서 “늦어도 내년 4월에 대선후보 및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 대선후보 책임아래 내년 지방선거를 치른 뒤, 대선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이르면 4월 늦으면 7월’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조기경선론에는 ‘개혁연대’와 같은 ‘반 이인제’ 전선형성에 쐐기를 박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여당내 주자 중 지지도 1위에 대한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민주당내에서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정권재창출 위기론이 넓게 퍼져있어 조기경선론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조기경선론이 내세우고 있는 ‘지방선거 승리’와 대항마를 길러 ‘이회창 대세론 차단’에 상당수의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대선후보 타령이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금은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하기 때문에 대선논의는 내년 중반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금년 하반기 경제회복의 기대가 무너지면서 여당 대선후보 논의가 대통령병자들의 한가한 놀음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을 위험이 크다.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 진보와 수구, 색깔론과 탄핵론 등으로 정쟁만 일삼던 정치판이 대권에 눈이 멀어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난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염증은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본지와 한길리서치의 정기여론조사 결과(본지 8월8일자)는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무당층이 35%로 나타나 2000년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투명한 정치일정은 사회혼란의 근원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무관심, 정치냉소주의, 정치불신이 극한상황에 이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정치권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된 폐해라는 지적이 많다. 정권재창출에 불안감을 느끼는 여당은 야당과 공존하는 방식과 과실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소모적 정쟁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감정싸움 속에서 정책대결은 이미 실종되고 만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불투명한 정치일정은 정쟁과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대선후보주자들이 ‘김심’을 잡았다고 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들이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김심잡기에 열중한 나머지 정책과 비전 없는 튀는 발언으로 인기몰이한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 후보와 정책대결을 통해 대선경쟁을 벌이고 이전투구식 정쟁을 줄인다면 내치도 원만해질 것이 아닌가. 정권말기의 레임덕이나 대선후보 경선 탈락자의 이탈 때문에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결코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하수가 될 것이다. 왕길남 정치담당 편집위원 2001-08-18
- <신문로 칼럼>환경산업은 21세기 4차산업(김명자 2001.08.02) 환경산업은 21세기 4차산업(김명자 2001.08.02) 김명자 환경부 장관 2001년 7월, 우리 환경부는 동과 서의 두 나라와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하나는 중국 땅에 외국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환경산업·기술전시관」을 설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대륙의 베를린에서 첫 번째 한독 환경장관회의를 갖고 ‘환경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었다. 중국 베이징 시에 한중 환경관계자가 모여 「한국환보기술전시청」이란 현판을 내걸면서, 우리는 이 작은 행사가 우리나라 환경산업기술을 중국에 진입시키는 데 효자노릇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개관식과 함께 열린 설명회에서도 중국의 민관 관계자들의 관심은 뜨거웠고, 특히 오폐수처리기술, 전기집진기술, 환경계측기술 등이 주목을 끌었다. 이들 기술은 가격면에서는 선진국보다 20% 싸면서 아시아 실정에 잘 맞는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관 개설에 참여한 16개 업체들은 전시관을 거점으로 비즈니스 상담을 하면서 중국 각처에서 오는 고객들을 맞았다. 개관 다음날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의 오수처리시설사업에 대한 계약이 성사된 것은 전시관의 앞날을 밝게 하는 서기(瑞氣)인 듯 해서 반가웠다. 특히 중국의 환경보호총국(환경부)의 시에젠화 장관을 비롯해서 정부측이 적극 협조해준 것은 고마운 기억으로 남는다. 앞으로도 양국의 협력과 교류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독일과 양해각서체결 환경산업 교류 계기 마침 전시관 개관에 바로 이어 확정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결정은 대륙을 ‘차이나 붐’(China Boom)에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고, 아시아의 이웃나라로서도 축하하는 마음 크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그린 올림픽(Green Olympic)’ 특수(特需)는 환경산업기술의 수요를 급증시키면서, 기술혁신과 보급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중국은 이미 2005년까지 약 112조의 예산을 환경개선에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 몇 년 동안의 환경개선 실적은 실로 놀랄 만하다. 두 번째 독일과의 양해각서 체결로 얘기를 돌리면, 녹색당의 이미지가 말해주듯 위르겐 트리틴 장관은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태도도 단호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는 오랜 세월의 국제협력의 결실이므로 미국의 반대입장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은 세계 환경시장의 20%를 차지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큰 환경산업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폐기물 소각기술과 폐수처리 등 사후처리기술은 물론 청정생산, 유해화학물질관리 등 선진기술에서 앞서가고 있다. 우리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도 이번에 성사된 환경협력 양해각서 체결이 양국간의 교류 활성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환경산업은 다른 분야와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자동차·반도체 산업 등의 경우 최종생산물이 손으로 잡혀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환경산업의 경우는 최종생산물이 무언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특정형태의 생산품보다는 환경적 편익을 창출하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격상 전통적 산업분류상 1차, 2차, 3차 산업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어 4차산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환경산업은 그 기능과 효용면에서도 특이하다. 예컨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 그 편익은 거의 그 사람에게 국한된다. 반면 자동차가 굴러다니려면 도로를 차지해야 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하기 마련이다. 즉 그 편익효과는 사회적 오염부하를 증대시키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꽃집에서 장미나 라일락 나무를 사들여 아파트 마당에 심고 베란다에 장식한다면, 그것은 내 가족을 비롯하여 아파트를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게 된다. 환경산업은 이렇듯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나타낸다. 경제성장 위주의 산업화가 반드시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GDP 중심의 복지적 세계관을 신앙처럼 믿으며 살고 있다. 환경자원은 마치 자유재인 듯 낭비하고 대량생산·대량소비에 탐닉하여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편익에 대한 오염비용은 지불하려 하지 않는 무임승차가 만연돼 있다. 21세기 환경의 질 향유가 중요한 시대 이제 클수록 좋다, 많을수록 좋다는 식의 20세기 방식의 발전논리는 종식돼야 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쾌적한 환경의 질을 누릴 수 있겠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기존 기간사업의 중요성이 소멸될 리는 없고, 또한 새로운 산업은 계속 출현할 것이나, 그것만으로는 미래세계를 열어갈 수 없을 것이다. 환경산업의 주요 축으로 자리잡아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튤립’은 계속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하수처리 폐수를 멤브레인 기술과 자외선 살균기술로 중수도로 만든 다음, 다시 정수처리하여 병에 담아 파는 하와이의 물처리 기술도 전 세계로 퍼져나갈 날이 올 것이다. 놀랍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현재 영세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환경산업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맞고 있으며 반드시 도전에 성공하여 크게 발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명자 환경부 장관 2001-08-18
- 다시 쓰는 사랑의 편지 포천 일동중학교에서 근무하다 이곳 일산공고 국어교사로 부임한 문 단 교사는 담임을 맡고 있는 전자과 2학년 2반 학생들과 함께 한 지난 학기를 생각하며 반성에 젖는다. 지금도 포천 제자들은 스승의 날이면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로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고, 반창회도 일산에서 한다. 미니올림픽 야영 캠프파이어 등을 해가며 정을 쌓았던 포천 제자들과의 아름다운 추억. 그러나 그는 추억속에 빠져 무뚝뚝한 지금의 학생들과 비교한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하던 자신이 정작 달라진 환경에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을 뒤돌아 보며 다음학기에는 더 많은 사랑을 쏟아 부으리라 다짐도 해본다. 매년 방학이면 띄었던 편지도 올해는 꽉 짜여진 연수 때문에 보낼 수 없어 더 미안하다는 문 교사. 그가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보고싶은 우리 2반에게' 어느덧 방학도 다 지나가고 있다. 이제 1주만 있으면 너희들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로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네.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해 하며 쳐다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선생님은 요즘 연수를 받느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매일 서울로 오고 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단다. 연수가 아니었다면 늦잠 자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 하하. 너희들이 나 대신 혹시 매일 같이 늦잠 자느라 정신없이 방학을 보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처음에 새벽에 나가보고서는 깜짝 놀랬다. 왜냐구? 새벽 6시에도 일어나 뭔가를 향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거든. 그 동안 난 참 나태하고 편하게 살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중략)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항상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고민이 있었어. '과연 5년, 10년, 20년 후의 나의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 그 땐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물론 지금도 그런 불안을 떨치고 살고 있다고 볼 순 없겠지? 아마 우리 모두의 영원한 숙제겠지... 너희들 눈을 가만히 보다 보면, 그 때의 내 모습을 보곤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며 지켜 볼 수밖에. 너희들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를 소원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너희 자신이거든. 그 어떤 훌륭한 학자도 하나의 씨앗을 보고, 어떤 나무로 자랄지 장담할 수 없겠지. 물을 빨아들이고, 땡볕을 견디고, 흙을 움켜지는 튼튼한 나무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씨앗을 품고 있는 너희만이 알겠지. 부디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그런 나무가 되길 바란다. 이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따가운 모기들도 영 힘이 없어 보인다. 개학해서 우리가 만나면, 우린 매일매일 싸우고 아끼면서 세월을 만들어 가겠지. 우리만 아는 이야기들 말이다. 나중에 서로 학교 밖에서 만나 웃으면서 인사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지금 서로 많이 웃어주자. 그 때 어색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웃는 얼굴로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주에 만나자. 너희들 모두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전미정 리포터 flnari@naeil.com 2001-08-14
- <한의사 김은진의 아주 쉬운 한방강좌> 욕치기질(慾治其疾), 욕치기심(慾治其心) 욕치기질(慾治其疾)하려면 욕치기심(慾治其心)하라는 이 구절은 제 평소의 좌우명이며 저의 진료실에 걸려있는 유일한 액자의 구절이기도 합니다. 즉 는 뜻이니 반대로 모든 병인(病因)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는 불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맥일 것이며 청정심즉시불(淸淨心卽是佛)이나 심정무질(心靜無疾=마음이 고요하면 병이 없다)이라는 말 등이 모두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을 100 이라고 할 때 식욕본능과 성욕본능을 위한 육체적인 활동으로 70% 이상의 열량을 소비하며 살던 동물 이였습니다. 그 결과 사지(四肢)의 근육과 골격은 쓰면 쓸수록 크고 굵게 튼튼해지는 것으로 그렇게 몇 억년인지를 모를 긴 세월 동안 진화 되여 온 오늘의 신체 구조인데 반하여, 요즘의 일상생활권은 그 반대 현상으로 잘 살기 위한 욕심으로 머리와 마음의 소비로 70% 이상을 쓰고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지나치게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쓰지 않으려 하며 살아감을 부정하실 분은 안계실 것입니다 만병의 근원인 ‘열’ 따라서 머리도 쓰면 쓸수록 커져야 되는데 두개골 때문에 커질 수가 없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의 고통을 호소 하는 것이며, 마음 역시 마찬가지로 늑골의 울타리에 갇혀있어 커질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는 표현으로 고통이나 불편을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 모두 쓰면 쓸수록 동(動)하는 기운에서 발생하는 열(熱)로 인한 팽창의 물리적 현상입니다. 이는 상열하냉(上熱下冷)의 상대성으로 주객이 전도된 결과, 만병의 근본이 되는 열의 시작입니다. 또한 우리가 소위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욕구불만이나 짜증의 근본 배경을 생각 해보면 모든 사람은 제각기 그 동안 살아 오면서 만들어진 상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각자 잣대의 고유 눈금을 만들어 가지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소우주라는 독립체로서 내 자(尺)가 가장 정확하고 옳다고 생각하며 주위에서 만나고 일어나는 모든 만물과 만사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하며, 이 잣대의 치수(置數)에 맞지 않으면 불만과 불평을 만들어 냅니다. 즉 내가 옳고 너는 틀린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상대적으로 불평불만이 생기며 쌓일 것이니 이것이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열 받는다, 혈압이 오른다, 속이 상한다, 섭섭하다 등등, 모든 용심(用心)의 울기(鬱氣)로 인하여 생기는 울화 입니다. 모든 병은 마음가짐에 달려 여기에는 한두 건의 돌발적인 강한 사건으로 오는 단기의 증과 긴 세월동안 모르는 가운데 만들어 지는 만성의 증후군이 있을 수 있는데 이 후자에는 약석(藥石)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실화입니다. 50 대 초반의 여성인데 여유 있는 환경에 바쁜 일이 없이 한가한 분으로 머리칼만 빼고는 전신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병원엘 찾으면 병명은 나오지 않음으로 신경성이니 걱정하시지 말고 맛있는 것이나 실컷 먹으며 여행이나 즐기시라는 말을 듣고 나옵니다. 이 부인은 생각하기를 아! 이 의원은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과 아는 사람임으로 직접 말을 못하고 병명을 숨긴 채 내가 죽을 병이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전제로 그러한 위로의 말을 하는구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고로 모르는 의원을 찾아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았으나 비슷한 말을 듣고 더 부정적인 감정의 확신을 갖게 되여 나중에는 불면증에다 조울증으로 정신과를 다니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비유를 들면 장독대에 놓여 있는 독은 어떤 물(物)을 담기 위한 용도로 존재 하는 것인데 그러한 독의 용도에 따른 기능을 무시한 체 독 자체를 들고 아무리 아래 위로 옆으로 검사를 해보아도 색이나 형태에서 독 자체는 아무 결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독이 장독대에 거꾸로 뒤집혀 놓여 있는 상(象)을 연상하시면 그 독은 으로 용도에 있어 전혀 쓸모가 없는 독입니다마는 그 독을 뒤집어 바로 놓으면 원상대로의 기능을 다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원리는 간단한고 쉬운데 봉사 코끼리 만져보듯 부분적 병명에 집착하여 미로를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화로부터 간을 지켜야 즉 만병의 근본이 화로 인한 상열하냉(上熱下冷)에 의한 것이라면 뒤집어 상냉하열(上冷下熱)의 상(象)으로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없습니다. 다만 방편상 이해를 돕기 위한 뜻으로 상대성 반대의 용어를 표현해 본 것 뿐이며, 실은 두량족온(頭凉足溫=머리쪽은 서늘해야 하며 다리의 아래쪽은 따뜻해야 된다는 뜻)이나 청심양간(淸心凉肝=5회분 참조)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 또한 심장은 맑고 간은 서늘해야 된다는 한자의 의역보다는 평소에 심장은 소모성 열이나 마모열 등의 무리한 과로 또는 과음으로 덥게 하지 말 것이며 과노상간(過怒傷肝=노기의 화가 지나치면 간을 상하게 함)이니 울화로 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동서한의원 김은진 원장 dshanbang@hananet.net 한방강좌는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myhome hananet.net/~dshanbang/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본지에 실린 김은진 원장의 한방 강좌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2001-07-26
- 풍류가객 농암 이현보<마지막 편> - 화산양로연으로 본 효의 본질 효도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효도를 당연시 하고 있지만 효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를 묻는다면 주저할 것이다. 효란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이지만 그것에 대한 자세는 결국 가족이라는 틀보다는 인간에 대한 존중함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농암의 삶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농암은 문학사상보다 더욱 진지하게 접근한 것이 효이다. 농암의 대표적인 유적인 애일당은 이점을 잘 드러내 준다. 농암은 애일당 건립 과 관련하여 “1508년…가을 영천으로 부임하여…일상공무로 왕래하면서 어버이를 뵙기가 달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향마을이 협소하여 어버이를 즐겁게 할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1512년 드디어 바위위에 집을 짓기로 하고…명절때마다 부모님 을 모시고 동생들과 더불어 색동옷을 입고 술잔을 올려 기쁘게 해 드리기를 반드시 이집에 서 했다”고 농암집에 적고 있다. 1512년이면 농암의 나이 46세때이다. 당시 평균연령이 30 세를 겨우 넘긴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46세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양친을 모셔다가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농암의 치기어 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살펴보게 한다. 그는 1519년에 안동부사로 재직하였는데 이때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배푼다. 그는 이전 1511년에 영천에서 ‘쌍청양로연’을 열었으니 그의 부사시절에는 지속적으로 어른들을 위 한 양로연을 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때 초청된 사람들은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남녀 80 세 이상되는 안동부내의 어른분을 모두 모셨으니 당시로 보아서는 파격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말하자면 격식과 신분이라는 사회적 제약을 무시하고 한 인간으로서 먼저 살아간 사 람들에게 예를 다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고을원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색동옷 을 입고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이 양로연을 ‘화산양로연(花山養老燕)’이라하며 화산은 안동의 옛지명이니 가히 안동의 정신과 내용을 담은 노인잔치라 할 것이다. 농암은 그의 문집에서 화산양로연에 대하여 “대개 관리나 장수, 재상이 되어 크게 봉친하 는 사람은 많지만 고을원의 신분으로 향중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자리를 마련함은 흔하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 이런 모임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세월이 지나감 에 한편은 기쁘고 판현은 두려움의 가점이 저절로 일어 좌중에 화답을 구하고 후일에도 잊 지 않을 자료로 삼고자”한다며 양로연이 끝나도 계속하여 어버이를 섬김에 늦추지 않을 것 을 소망한다. 이때 그가 지은 시를 보면 /풍년 9월 하늘아래/노인들을 청내로 모셨네/서리서 리 백발들이 손잡은 주변에/단풍 국화가 가득하네/나누어 수작하는 자리/내 외청에 음악이 이어지네/색동옷 입고 술잔앞에 춤추는 사람(농암) 괴이하다 하지 마라/ 태수 양친이 또한 계심이다. 다시 묻는다. 효란 무엇인가. 농암은 최소한 훌륭한 자동차, 큰집을 부모님께 사주는 사람이 효를 다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효에 대한 많은 논의보다 때때옷을 입고 부모님에게 한 판 춤사위를 통해서 효의 본질에 대한 답을 추구할 수 있다. 효란 사회적 관계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해와 먼저 살아갈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농암은 사후 효절공(孝節公)이란 시호를 받는다. 시호로 효절을 받은 분은 조선시대를 통털 어 유일하다. 그가 부모를 위해 지은 건물 이름이 애일당(愛日堂)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심이 오래지 않으니 날을 사랑하며 보필하라는 뜻이다. 농암의 이러한 사상이 알려지자 많은 사 람들이 애일을 다짐하는, 농암의 효에 대한 의미를 새기는 그런 다짐의 글을 보낸다. 권두현(민예총 안동지부 사무국장) 2001-08-14
- 기획연재 - 피서지 이보다 좋을순 없다<3> 만휴정 참으로 요상하고도 기괴한 날씨가 연일 변색을 하면서 속세를 희롱했다. ‘90년만의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증명해주듯 수개월을 가뭄의 고통과 나락으로 몰아넣는가 싶더니 어느새 돌변해 수개월치 비를 한날 한시에 쏟아부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기묘한 변화에 세인들은 속절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긴 한숨으로 씁슬한 마음을 달랬다.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에서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한풀 꺽이는가 싶더니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지난 7일 한바탕 소나기와 함께 훌쩍 지나갔다. 또 여름이 지나 더위가 가신다 는 처서(處暑)가 다음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절기상 처서는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깍고, 날씨가 선선해져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우리 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세 번째 피서지로 만휴정을 택했다. 어디를 가야할지 선뜻 정하지 못하던차에 그래도 ‘구 관이 명관’인지라 비교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만휴정으로 향했다. 마음 한구석에‘못해도 본전’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만휴정을 접근해보고 싶은 객기도 있었다. 만휴정 방문을 예정한 지난 1일.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여름나기를 위해 산과 물을 찾아 나서는 피서객들로 좁은 도로는 거짓말 조금 보태 개미한마리 지나기 힘들정도였다. 기자는 땟꺼리(대개 기사를 두고 기자들은 이렇게 표현함)를 핑계삼아 떠나는 나들이반 취재반 길이었지만 이왕지사 떠날바에야 조금의 여유 를 찾기로 했다. 마침 길안으로 접어드는 길은 찾는 이들이 적었든지 원할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로변으로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벼들이 왕성한 생육으로 키자람을 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수확을 기약하는 듯 했다. ‘물’이 있어 찾는 곳 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피서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입소문을 통해 한참 주가를 올 리고 있는 길안다리밑에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로 붐볐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수영실력을 뽐내는 어른들 가족의 심심한 먹거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로 길안다리밑은 북새통이었다. 바쁜 걸음이라 차마 발벗고 내려갈 수 없는 일행은 보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애 마(?)는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던 길을 더욱 재촉했다.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났을 까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쪽은 만휴정 왼쪽은 묵계서원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정표라 자칫 지나칠뻔 하기도 했지만 애마는 놓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해주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물길을 찾아 피서객들이 들어서있었다. 자그마한 돌다리를 지나니 오 랜 세월 마을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나무 한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일행을 맞아주 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두갈래로 나뉘었다. 옆자리에 앉아 길을 안내해주던 동행자도 찾은지 가 오래돼 길을 물어야겠다고 했다. 그늘밑에 앉아 피서객 구경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에게 길을 묻자 곧장 앞으로 가라고 했다. 기자는 그리 성능이 좋지 않은 애마를 끌고 한 대만 겨우 지날 수 있도록 나있는 길을 좇아 올랐다. 5분여를 이리비틀 저리비틀거리는 새 만휴 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뿔사 만휴정 가까이 올랐을쯤 때아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애마를 되돌려 세우기가 적당치 않았다. 한참의 궁리 끝에 올라온 형세 그대로 차 를 내려놓기로 했다. 간신히 올라온 좁은 비탈길을 그것도 꽁무니를 뒤로 하고 내려갈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숙력된 운전솜씨로 별탈없이 애마를 안전하게 내려놓았 다. 일행은 차를 놓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간간히 내리던 가랑비도 그쳐 등뒤로는 연신 땀 방울이 흘렀다. 손바닥으로 훔치고 옷깃으로 닦아내도 얼굴은 비를 맞은 듯 흠씬 젖어있었 다. 그렇게 오른지 10여분.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늘과 맛닿은 계곡물 유명지가 그러하듯 만휴정 역시 산과 계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에 터를 잡았다. 한술 더 떠 만휴정은 시원한 물줄기가 쉴새없이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운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만이었다. 통나무 두 개로 엮인 나무다리를 건너 대문을 들어서자 홀로 독서 를 즐기기에는 안성마춤인 정자하나가 떡하니 서있었다. 모진 세월을 만나 비바람에 부대끼 며 살아온 터라 정자곳곳은 생채기를 안고 있었다. 인적의 왕래가 드물었던지 마루에는 쥐 똥이 이리저리 뒹둘고 있었다. 방은 두칸. 요즘으로 치면 아이들 공간으로 이용하기에 적합 할 듯 싶었다. 마루에서 난간을 딛고 내려다본 계곡과 산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했다. 본당을 이리저리 두르던 일행은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웃통을 벗고 아래 계곡으로 향 했다. 물을 양손에 담아 옷 적는줄 모르고 연신 퍼부어댔다.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 로 나왔다. 한참을 계곡물에서 노닐던 일행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리고 시야를 돌려 이곳 저곳을 살폈다. 파아란 하늘과 맛닿은 맑은 계곡물이며 하늘거리는 연분홍 꽃에 수줍게 자 리잡은 만휴정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보백당이 느즈막히 벼슬을 무르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알만했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 는줄 모른다’고 만휴정이 꼭 그러했다. 그 옛날 선조들이 길을 찾아 떠나고 물을 찾아 모 여든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열마디 발린말로 없는재주 부려봐야 사진한컷 그림한장에 못미치 듯, 한손에 읽을꺼리 한움큼 쥐고 수박한덩이 싸서 만휴정에 올라 지나는 세월이랑 벗하며 한때를 보내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2001-08-14
- <특별기고> OECD가 본 한국의 재벌정책 최근 OECD는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경제의 거시경제 상황과 구조조정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상의 경제력집중억제시책 소위 재벌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정부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가 재벌정책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여 각각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서 선진경제정책에 대해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OECD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재벌정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OECD는 장기적으로 재벌정책은 완화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재벌정책이 완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지배구조가 보다 투명해져야 하며, 금융분야가 더욱 개선되어야 하고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기업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Further progress in these areas should allow an easing of regulations applied to the cheabol.) OECD는 한국정부의 구조개혁이 바람직한 방향이며 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성공하면 재벌규제의 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구조개혁분야에 있어서의 진척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OECD는 그동안의 꾸준하고 광범위한 구조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들에 있어서 선진기업지배구조가 정착되기에는 아직 이르며 기존의 기업관행과 뿌리깊은 재벌총수의 권력을 완전히 극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OECD는 보고서에서 경영상의 결정을 감시하고 통제할 사외이사들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주의 권익에 반하는 재벌계열사에 대한 주주대표소송건수가 극히 적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주주의 권익에 반하는 기업행위에 대해 주주가 아닌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통하여 적발하고 있는 현실을 적시하고 있다. 선진국간 경제운용시스템·경제정책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 논의를 벌이고 있는 OECD가 한국 재벌의 행태와 지배구조에 대해 이러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우리의 기업지배구조나 금융분야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선진 외국기업의 경우 소수 가족에 의한 기업집단의 소유·지배집중이나 계열사간 채무보증 등 선단식 경영관행이 없다. 또한 기업내부 통제장치인 주주소송, 이사회, 감사제도가 활성화되어 있고, 외부통제장치인 기관투자가와 M&A시장 등을 통해 합리적인 경영이 확보되고 있다. 경영투명성 및 감시장치가 오랜 세월을 거쳐 확립되어 시장매커니즘이 기업의 행태를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기업에 만연한 부당한 내부거래가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먼저 회사의 모든 중요한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다. 만일 최고 경영자가 자의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부당한 거래를 지시한 경우 경영자의 민형사책임문제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불합리한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의 주식은 주식시장에서 가치가 폭락하게 될 것이다. 미 하버드대 Khanna와 Palepu 교수는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제도를 만드는데에는 적어도 10년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간 우리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구조조정이 활발히 진행되어 왔으며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분야 개혁도 많은 진척이 있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시장·경영자·기업지배구조 등 소프트 인프라에 대한 우리의 개혁이 실제 기업들의 관행으로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재벌정책은 기업내외부의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실패를 보정해주는 차선의 정책(Second Best Policy)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향후 금융 및 자본시장이 원활히 작동하고 기업내부의 감시장치가 완벽히 작동하게 된다면 OECD가 지적한바와 같이 현행 재벌정책의 완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으로 본다. / 허선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2001-08-12
- 피서지 이보다 좋을순 없다 - 2. 병산서원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여행이었다. ‘사서 고생한다’는 표현이 어쩜 잘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었다. 병산서원이라는 푯말을 쫓아 험난한 자갈길을 오르고 내리던 20여분간의 순간은 그러했다. 잘못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 짧지 않은 십여리길을 달리면서 ‘그래도 가보자’와 ‘이쯤에서 돌아서자’라는 마음이 수십번이나 교차했다. 명색이 안동을 대표한다는 서원이 들어선 곳인데 가꾸지는 못할 망정 곳곳에 널부러진 암초만은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질책마저 들었다. 다행히도 초행길의 설레임과 명승고적을 방문한다는 흥분이 쉽지 않은 산행길을 재촉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시야에 들어오는 고즈넉한 풍경이 땀방울 흘리며 숨차게 올라온 우 리를 다소곳이 맞아주었다. 푸른빛 고운 자태를 뽐내는 청산을 돌아 조용히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하며 동해안 어느 해변가와도 맞장떠 물러설 것 같지 않을 넓은 백사장. 한껏 물오른 이름모를 꽃들속에 수줍게 자리잡은 병산서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에 일행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간의 짜증과 고생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나절 뙤약빛을 피해 달려간 서너시간의 길지않은 병산서원 여행은 서투른 필자의 감성에 적지않은 쓸거리를 제공했다. 계명산에 이어 두 번째로 달려간 병산서원 방문기에 양념을 듬뿍발라 별미 간식으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쉽지만은 병산서원 가는길 병산서원의 명성이야 익히 잘 알려진터라 그간의 사정을 이러쿵 저러쿵하며 옮겨 적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싶다. 필자또한 병산서원의 전신이 풍악서당이었으며 1572년 선조 5년에 서애 류성룡 선생이 옮겨 왔다는 것, 1863년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 으로 승격됐다는 것, 1868년 고종 5년 서슬퍼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때도 훼철되 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 하나라는 것 외에는 아는바가 없다. 방문목적또한 서원이 주 (主)라기 보다는 태고의 숨결이 베여있는 자연미나 맛보기 위함이었다. 여행이란 자고로 생 활에 찌든 때를 한아름 안고가 훌훌 털어 버리고 오는 재미가 솔솔한지라 가뜩이나 아픈 머 리에 애써 가식적인 지식을 구겨넣을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34번국도를 타고 안동시내에서 병산서원을 향해 달린지 30여분. 지리적으로 하회마을과 인 접해 있던 터라 굳이 ‘병산서원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없어도 길은 손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하회마을에 막 다다른 초입길목에서 좌측으로 병산서원 가는길이라는 이정표 하나 를 발견했다. 하회길과는 달리 포장도 되어있지 않고 넓지도 않았다. 마주오는 차라도 발견 하면 낭패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아니나다를까 승용차 한 대가 쿨렁쿨렁거리며 우리차를 향해 돌진해오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대로에서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비상등을 켜고 길을 비켜주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병산서원 4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길도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이 길을 10여리나 더 가야된다고 하니 가슴이 탁 막혔다. 과연 이 길 을 달려 병산서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10여분쯤 지나 마주오는 차 한 대를 또 하나 발견했다. 비켜주는 번거러움보다는 동지를 만난 기분이 앞섰다. 끝도없 는 자갈길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3km, 1,5km …. 좀체 보일 것 같지 않았던 병산서원이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컨도 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달리 던 터라 땀방울은 등줄기를 타고 연신 흘러내렸지만 고지를 향해 돌진하는 군인들처럼 오기 로 달렸다. 산마루에 이를 무렵 속내를 감추고 꼭꼭 숨어있던 자연이 하나둘씩 우리를 반기 기 시작했다. 꼬박 30여분을 달린 결과였다. 병산에 기대어 굽이치는 낙동강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은 겹겹히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병산을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강 줄기와 금모래빛 백사장이었다. 백사장은 그 넓이가 얼마나 넓었던지 순간 동해안 어느 해 수욕장에 온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올라오는 길 내내 무수히 쏟아밷은 푸념과 짜증이 일순간에 자취를 감쳐버리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병산서원의 고운 자태가 울긋불긋 한 꽃들과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쉽지않은 길 덕분인지 병산서원과 주변의 자연은 손때가 별로 묻어있지 않았다. 일행중 한명인 오는길 왜그리도 험하고 험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것 같다는 말로 맞장구를 쳤다. 주차장 한켠에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니 파아란 잔디밭 구석 그늘에서 일가족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거른 일행은 거저 입맛만 다셨다. 발길을 돌려 곧장 경내로 들어갔다. 때이른 더위를 피해 타지에서 온 듯한 대학생들이 야영 을 하고 있었다. 부러운 마음에 몇마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다정한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입교당으로 향했다. 그옛날 선비들이 서책을 들고 맹자왈 공자왈 했을 것 같은 입교당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글 몇자 말 몇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처마 끝에 걸린 백사장과 강줄기는 한층 더 멋스러움이 들었으며 옆으로 수백년은 됬음 직한 청송의 단아한 자태가 들어오자 그야말로 한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기록을 남기 기위해 사진기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지만 마음에 쏙드는 그림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슴속에 그모습 그대로 담았다. 흐르는 강물에 발담그고 세월을 낚다. 경내 한편에서는 또다른 대학생들이 만대루의 마루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어내리며 말나눔을 하고 있었다. 서원의 이미지와 너무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서원 이곳저곳을 살폈다. 여름나기에 교육적 효과를 더한다면 병산서원이 안성마춤일 듯 했다. 물 론 사전에 부모들이 서원의 내력을 살펴 한자락 보탠다면 금상첨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속에서 ‘조선최고의 똥통’이라고 지칭했던 변소는 세월의 때를 벗고 현대식 재료에다 때깔나는 기와장을 얹어 옛자취는 남아있지 않았 다. 유교수가 맡았음직한 향기나는 구린내는 맡지못하는 불만아닌 불만이 들었다. 다만 변소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조각난 대형거울이 찾는 이들의 이상야릇한 표정만을 전해줄 뿐 이었다. 서원을 둘러보고 자연에 취하면서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내 돈 꽤나 권력쬐끔 쥐고 있는 선비들의 풍수지리술은 여간해선 따라잡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어쩌 면 이렇게도 절묘한 곳을 찾아 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고 기왓장을 올렸는지 감탄에 감탄만 이 나올 뿐이었다. 그 옛날 선비들은 가부좌를 틀고 책상머리에 앉아 세월을 낚으며 때론 체통도 잊고 뒤쳐나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멱을 감았을 것이 아닌가. 감탄과 아울러 부러움 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서원을 빠져나오는 길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잠시나마 한적한 곳을 찾아 여유를 찾았음에 위로를 받았다. 2001-07-23
- <국회의원 열전> 민주당 박양수 의원 박양수 의원은 올해 1월 29일 의원직을 승계했다. 한명숙 전의원의 여성부 장관 취임에 따른 것이다. 63세에 처음으로 배지를 달았지만 박 의원은 거의 평생을 국회와 당에서 살아왔다. 보좌관 생활만 15년8개월을 했고, 당에서는 조직과 선거 전문가로 재·보선만 12번 치뤘다. 이렇게 남의 선거만 치루다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에 배지를 단 것이다. 때문에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감회는 남달랐다고 한다. 그렇게 긴 세월을 국회에 있었지만 본회의장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직점 참여자로 바뀌었지만 관람석에서 느꼈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보다 한참 늦은 초선이지만 박 의원은 누구보다 바쁘다. 국회와 당, 그리고 권노갑 고문의 마포사무실이 주요활동공간이다. 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조직담당 총재특보로서 당무와, 오랜 인연의 권 고문을 뒷받침하고 있다. 의정활동에서 그는 환경문제 특히 물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오랜 정치활동을 해왔지만 다양한 경험과 소양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전문성을 가진 보좌진을 구성했다. 지난 수돗물오염 파동에서는 야당의원 못지않은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의원은 당내에서 조직·선거전문가로 꼽힌다. 조직위원장 등의 당직을 거쳤고, 지금도 선거가 있으면 지금도 현장에 직접 나선다. 총재 특보중 특정분야를 맡고있는 것도 그의 전문성을 높이 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외곽조직 확대에 주력하는 한편, 새로운 선거운동방식 개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예전의 바람몰이나 깃발만 내세우는 선거운동시대는 지났다”며 “정보통신발달에 걸맞는 선거운동방식을 개발 연구하고있다”고 소개했다. 오는 10월 재·보선, 내년의 지방선거, 대선에서 새로운 운동방식을 선보이겠다는 의욕을 사르고 있다. 박 의원은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의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몸을 담았다. 지금도 한 실장에 대한 존경에 변함이 없는 한 실장 ‘맨’이다. 동시에 현재 권노갑 고문의 마포사무실을 관리하고 있어 거리상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범동교동계의 핵심’과 ‘동교동계의 핵심’인 두사람의 메신저로서 실세간 단합을 유지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리고 개혁을 지속할 대통령을 다시 만드는 일로 정치를 마무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