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건강찻집 ‘솔따배기’ ‘솔따배기’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도 아니고 솔따배기란 다소 어색하고 생소한 이름의 건강찻집이 문을 열었다.'솔따배기' 대부 지역에서도 소나무 숲으로 옛부터 유명한 대부동 동3통 인근을 가리키는 동네 이름이다.마을뒤에 소나무가 빽빽히 들어섰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실제로 찻집 '솔따배기'를 가려면 아직도 우거진 소나무 숲을 예 돌아가야만 한다.소나무 숲을 막 돌아와 나무간판 '솔따배기'와 마주한 곳에 야한 주황색의 지붕을 한 찻집과 만난다.소나무 계단을 돌아 내려가면 산죽대를 빙둘러 담으로 멋을 내고 두어평 텃 밭에는 아직 싱싱한 열무잎을한 채소밭도 대할 수 있다.째즈와 건강차. 간판에는 사뭇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분명 그렇게 적혀 있다.의구심을 가지며, 안으로 들어서면 소나무 방석에 짚으로 또아리를 한 튼튼한 의자가 있는 내부가 준비돼 있다.옛 아궁이를 본떠만든 벽난로에는 한기를 가셔줄 소나무 장작불이 타고 있다.소나무 타는 향내가 그윽하게 퍼지는 사이 집 주인이 엽차로 마련한 인진쑥차나 현미차가 나온다.건강찻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종류도 일반 찻집에서는 메뉴로 보기도 힘든 것들 뿐이다.안동에서 생마를 직접 사서 마련한 안동 생마차와 산도라지차, 매실차, 고구마차 등이 주된 메뉴며, 술을 원하는 손님을 위한 약주와 몇가지 안주를 준비하고 있다.(차 종류는 모두 5천원)편하게 고향집 사랑방에 앉아 있는 느낌에 감상에 젖어들면, 주인의 째즈 피아노 연주가 이어진다.이 집 주인 이창희씨는 사실 3년전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뒤 대부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하지만 암 수술후 항암제를 끊고 이제는 식이요법 등 먹을 거리를 조절하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가 자신이 즐겨 마시던 차가 건강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확신을 가지고 찻집을 열게 된 것이다.이창희씨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분이나 가족들에게 말벗이 되었으면 하고 찻집을 열게 됐다”며 “차 한잔을 마시더라도 건강을 생각하고 마시게 하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혹시라도 운수 좋게 비라도 오는 날에 이곳에 들르게 된다면 양철지붕에 빗방울 듯는 소리와 째즈 피아노 소리의 절묘한 만남을 기대해도 좋다. 찻집 분위기와 그날그날 기분에 맞게 들려주는 묘미가 있어 맛을 더한다.구옥인 옛날 집을 살려내 멋진 추녀가 그대로 드러나는 앞 마당채를 활용한 공간과 세월의 두께를 말해주는 소나무 기둥이 ‘솔따배기’라는 이곳 지명을 실감나게 한다.우거진 솔밭앞으로는 넓게 트인 논밭이 보여서 시골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문의:032-886-6815) 박공주 리포터 pgj0326@catholic.or.kr 2000-10-27
- <소박스>일주일이 50여 년 기다림으로 변할 줄이야 “일주일이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서 50년이 지나 버렸어.”경북 구미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가족 50여명이 25일 민주평통구미시협의회의 주선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이번 행사는 8월15일에 이어 오는 11월로 예정된 이산가족상봉 기회를 모두 놓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같은 고향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날 간담회에서 모처럼 자리를 같이 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각자의 사연을 부여잡고 이야기꽃을 피웠다.이날 간담회에서 최고령은 평양이 고향인 이윤빈 할아버지(86·구미시 해평면). ‘1·4 후퇴’ 때 2살 난 딸과 부인을 두고 남한를 선택한 30대 청년의 얼굴엔 세월의 골짜기가 가득했다. “마누라나 딸은 봐서 뭐 하갔어, 그저 부모님 돌아가신 날짜만 알면 되지.” 애써 그리움을 달래보지만 할아버지의 두 눈은 이미 고향 땅을 밟고 있었다. 정효원 회장(구미 이북5도민회)은 “구미지역에도 치안대였거나 반공포로 출신으로 상봉신청을 하지 못하는 상당수의 이산가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산가족의 활발한 교류로 통일이 앞당겨 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구미지역의 이산가족 고향방문 신청자는 총 80명에 이르고 있으나 지금까지 단 1명도 실제 상봉을 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구미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2000-10-25
- <지역발언대>사랑방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겨울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아마도 지금의 나쯤이셨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늘 아버지 또래의 이웃 어른들이 우리 집 사랑방을 찾아 드셨다. 나는 형제들 가운데서도 유독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끼는 것을 좋아하여 그 자리에 빠지지 않았고 아버지나 어른들도 말리지 않으셨다. 어른들이 다 모이면 어머니는 막걸리와 두부, 그리고 김장김치를 내오셨다. 더러는 고구마가 따라나오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음식을 드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농사이야기며 마을의 현안에 대한 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더러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맛난 두부를 김치에 싸서 먹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자리가 무르익으면 어른들은 돌아가면서 옛이야기를 한 자루씩 꺼내 놓으셨다. 더러는 나를 의식해서 으스스한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하시고는 웃음 띤 얼굴로 내 반응을 살피기도 하셨다. 이야기판이 식으면 소리판이 이어졌다. 역시 돌아가면서 아리랑이나 노래가락 등을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 옆집의 수봉이 아저씨는 유난히도 신명이 많아서 이야기보따리도 더 많이 풀고 소리도 몇 곡씩 더하셨던 게 기억난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이 떠올라 주위를 둘러보지만 사랑방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방이야 정하면 되고 손님도 부르면 될 일이지만,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각박한 삶의 조건이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집은 혈연이기주의의 강고한 성채가 되어 이웃의 접근을 차단하고, 이웃이 쫓겨난 자리를 TV와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다. 집밖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전화방, 찜질방 등등이 만들어졌지만 이들이 사랑방의 기능을 온전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그것도 생산적인 쪽이 아니라 소비적인 쪽, 밝은 쪽이 아니라 어두운 쪽으로 사랑방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을 따름이다.인정과 놀이, 그리고 예술이 함께 하던 사랑방문화가 쇠락하고,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다른 방문화가 그것을 대체하는 과정은 곧 인정의 문화가 비정의 문화로 바뀌어간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웃과 약자들을 외면한 채 물질의 풍요를 얻었고, 인간다운 삶의 전통들을 폐기해버렸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생각케 하는 겨울이다.60년 안동출생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안동대학교 국학부 교수민속학연구소장 2000-11-21
- 김종회교수의 이산가족 이야기 필자가 적을 두고 있는 1000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한 민간차원의 활동을 막 시작하던, 1983년 여름이었다.여의도 KBS광장에서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국내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펼쳐져 온 나라가 술렁이고 전세계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던 때였다.위원회에서는 그 7월 중순 장충체육관에서 '이산가족재회 촉진대회'라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다. 공식적인 순서들에 이어 '북한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의 시간이 있었다.맨 먼저 편지를 낭독한 분은 고당 조만식 선생의 장녀 조선부 씨였다."아버님! 통분한 심정으로 삼라만상을 눈물로만 바라보며 살아온 저희 자식들의 30여 년 세월을 무엇으로 말씀드려야 좋을까요?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흘리신 아버님의 눈물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좋을까요?"미상불 선부씨의 '아버님'은 해방 이듬해 건국준비위원장으로 있다가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된, 민족적 지도자요 지금까지 존경을 받는 큰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부녀간의 애타는 사정은 필부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선부씨는 "내 죽거든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눈 두 개만 새겨두어라. 하나는 일제가 망하는 것을 볼 것이고 하나는 우리 나라가 독립되는 것을 볼 것이다"라는 월남전에 듣고 온 생전의 유언을 되새기면서 다시 역사적 사건 하나를 상기시켰다.1950년 6월26일 북한에서는 이 날에 맞바꾸자고 제의해놓고 그날이 오기 하루전인 25일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때 선부씨와 가족들은 아버님이 오신다기에 눈물의 상봉을 꿈꾸며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는 것이었다.장충체육관 촉진대회 행사에서 마지막으로 편지를 읽은 이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을순 양이었고 그 편지는 얼굴도 모르는 북한의 할머니에게 보내는 글이었다."아버지께서는 틈만 있으시면 할머니와 고향이야기를 하시곤 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표정은 침울하고 근심의 표정이 역력했어요. 더구나 요즘 방송을 통하여 이남에 함께 월남해있던 이산가족들이 재회를 하게되자, 아버지는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가 봅니다."이양은 그처럼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가 "이 다음에 통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든 북녘 땅이 보이는 일선지역의 산 높은 곳에 묻어다오. 황천길의 넋이라도 내 고향과 부모형제 곁으로 가고싶다"는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길 때면 그 남매가 아버지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만다고 했었다.편지를 읽는 사람마다 모두 울먹였고 넓은 체육관을 빈틈없이 채운 참석자들도 너나없이 눈물바다였던 광경이, 무려 18년이 지난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세월이 흘러 조선부 씨는 풀 길 없는 통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고 티없는 여고생이던 이을순 양은 이제 삼십중반의 중년이 되었으되 남녀노소와 유명무명을 막론하고, 이를테면 '초막이나 궁궐이나'를 막론하고 깊은 상처는 그때도 지금도 아프기가 매한가지이다.이 인지상정의 문제를, 그야말로 인지상정의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야 할 터인데, 가는 세월은 속절없고 해결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2000-11-20
- 이제 대통령이 할 일은 단 한 가지 뿐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 그곳엔 김대중 대통령의 실세로 불리는 동교동계의 사무실이 있었다. 동교동계는 지금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지도부를 구성한 주체세력들이다. 87년 대선 직전이었다.이 사무실은 꽤 큰 빌딩 13층에 있었고, 1층에는 죽 전문 식당이 있었다. 호박죽 단팥죽 잣죽 깨죽 쌀죽 전복죽 굴죽 소라죽 …. 죽종류로서 없는 게 없는 죽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동교동계의 보스였다. 그는 알려진 그대로 독재정권의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에 조금도 굴함이 없었다. 때문에 주변에는 그와 함께 목숨 바칠 각오를 한 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소위 가신그룹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어느날 가신들이 '선생님'에게 제안을 했다."매일 아침 1층 죽집에서 죽을 드시며 회의를 주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건강도 지키고, 분위기도 부드럽고 해서 좋을 듯 합니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죽모임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유명한 동교동계의 '죽모임'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 일찍 당사로 나와 죽모임을 가졌다. 죽모임에는 출입기자들이 배제되었다. 그러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얘기들이 많이 오갔을 터였다. 그들은 일부 민주인사들의 대선후보 단일화 노력에도 불구, DJ를 후보로 옹립해야만 된다고 믿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죽모임은 소리소문 없이 없어졌다. 뜻있는 사람들이 지도자 옆으로 몰리고, 정강 정책을 만들어 정당을 만들고, 동지가 적으로 적이 동지가 되는 정치판의 현실은 모두가 저마다 정권을 잡아보겠다는 야망 때문이다. 동교동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일부신문에 "동교동계가 죽모임 이후 죽을 쑤고 있다"는 가십기사가 나가자 죽모임을 없앴다는 후문이다. 죽을 쑤는데 어떻게 정권을 잡는단 말인가?죽모임을 없애버린 탓인지는 몰라도 꼭 10년 후 DJ는 정권을 잡고야 말았다. 50여년 걸려 야당이 여당되는 진정한 정권교체라는 의미까지 역사에 남기며-. 그리고 힘차게 출발했다. 얼마나 힘들게, 얼마나 오랜 세월 끝에 잡은 정권이었던가. '준비된 대통령'은 초기에 국정을 잘 수행해나갔다. IMF를 극복했고,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세계적 인물이 된 '인간 김대중'으로선 여한이 없을 법도하다. 이제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마음 비우고 경제위기 극복에 전력을그런데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이 시끄럽고 엉망진창이라 더 이상 문제제기하기도 싫다. 김 대통령과 그의 국정동반자들이 마치 13여년 전 죽모임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죽을 쑬 수 있을까? IMF 때처럼 '나라가 총체적 위기'인데 국민은 김 대통령에게 내정을 챙기라고 주문한다. 그럼에도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세계 일류의 문명국가 대열에 들어가는 긍지를 얻었다.'중동평화와 인도-파키스탄 관계의 중재에 나서라'고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국민들과 거리가 멀다.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대통령의 귀가 막혀 있음을 뜻한다.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는 뜻이다. 둘째, 대통령이 엄청난 고집을 부리거나 욕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 셋째, 측근인사들의 관리능력이 대통령의 탁월한 정치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웬만한데 하드웨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미국학자들은 역대 훌륭한 미국 대통령으로 로널드 레이건을 꼽는다. 레이건은 한마디로 '대세의 정치'를 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자면 김용갑 의원의 '노동당 제2중대' 발언이 있을 경우 벌떼처럼 일어나 요란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야당의 문제제기가 없으면 오히려 여당 내에서 문제를 제기토록 했다는 것이다. 레이건 역시 의회에서 정치상대를 국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한평생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대통령이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 한 가지 뿐이다. 정권초기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를 회복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 등에 대하여 마음 비우고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 경제위기 극복만을 위해 일해야한다. 2000-11-22
- 핫@벤처·웰컴넷-통합메시징 시스템 국내최초 개발 기술의 장벽을 넘어 즐겁게 의사소통을 하자. 이는 수퍼통합메시징시스템(SUMS) 개발업체인 웰컴넷(www.wellcommnet.com 사장 서경하)의 모토다. 1년도 안된 신생기업이 10%이상 시장을 장악하며 업계의 무서운 아이로 주목받고 있다.설립된지 3개월만인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음성명령 인식(ARS) 및 화자 인증(SV)기능을 갖춘 수퍼통합메시징시스템(SUMS)을 개발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기업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하나로 뭉친 결과다.서경하사장(41)은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데이콤에서 글로벌스타사업단 부장을 역임하면서 사업에 눈을 떴다. 통신업계의 동향을 파악 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개발 능력을 동시에 갖춘 통신분야 베테랑이다. 20여명의 직원중 60%이상이 기술전문가들이다. 자신은 국내외 영업을 담당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6개월만 앞서 나간다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웰컴넷이 개발한 SUMS은 일반전화, 이동전화, 팩스, 전자우편, 음성메일 등 수신자에게 도착한 다양한 메시지를 확인 할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장소의 구애는 받지 않는다. 특히 문자메일을 음성으로 변환할 때 인간의 자연어에 가장 가까운 음질을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서사장은 “우리제품은 음성합성과 음성데이터통합 등의 기능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품질은 물론 기능성과 안정성이 뛰어나다”며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중국어 등 5개 국어의 사용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 UMS기술은 미국과 세계시장에서 싸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다.지난 3월 데이컴의 협력사로 지정된 뒤 13개 솔루션업체과 업무 제휴를 맺고, 전세계 54개 지사를 보유한 데이터크래프트 국내법인과 영업망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진출의 교두보도 마련했다. 국내시장은 70개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시장규모는 100억원정도이며 내년은 10배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다.통합메시징시스템(UMS · Unified Messaging System)은 하나의 번호(주소)로 인터넷·일반전화·이동전화·팩스 등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송수신할 수 있다. 통신 시스템마다 정해진 단말기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각각의 메시지를 하나의 단말기로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웰컴넷은 지난 11일 인큐베이팅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사업규모가 예상를 추월해서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웰컴직원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1년 동안 뛰어온 세월이 보여서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곳에서 몸으로 배운 벤처정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비상의 발판으로 삼을 것을. 2000-11-16
- <클릭이사람>“배우로 끝까지 함께 하겠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창립10주년 기념 및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을 위한 가을콘서트가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이날 콘서트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개최돼 벌써 400회를 훨씬 넘긴 수요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중고교학생들을 비롯해 그동안 정대협의 활동에 함께했던 사회 각계인사들이 참여했다.참가가수 공연과 영상물 상연등의 행사와 함께 많은 관객들의 눈길을 모은 것은 놀이패 ‘한두레’의 김옥희씨가 펼친 ‘그때 그곳에’라는 모노극.‘남지나로 끌려가는 배안에서 16살 순이는 자신에게 닥칠 무서운 운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채 돈많이 벌어 고향에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밤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조선처녀들의 비명소리, 거세게 문여닫는 소리. 순이의 마음속에 한발자국씩 공포가 다가서고 결국 순이의 방에도 일본군인들이 들이닥친 뒤 생지옥 같은 강제위안부의 나날이 시작된다.끔찍스런 세월이 흘러 일본이 패망하고 갖은 고생끝에 돌아온 고향마을. 그러나 순이는 선뜻 집에 가지 못하고 마을입구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먼 발치에서 나타난 엄마의 모습. 오랜세월 보고팠던 그 얼굴이지만 순이는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입을 막은 채 소리죽여 오열하다 결국 ‘부모님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만을 남기고 큰절을 올린 뒤 돌아선다.’김씨가 두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쓸쓸히 돌아서는 순이의 모습을 연기할 때 관객들은 모두 그 시절의 순이가 되어 비통함과 가슴아픔으로 숙연했다. 모두가 김씨를 통해 강제위안부의 처절했던 삶들을 다시 한번 가슴속으로 느끼는 듯 했다.김씨와 정대협의 인연은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소리없는 만가’라는 마당극에 김씨가 주인공 순이역을 맡으면서부터. 공연을 통해 강제위안부의 고통스런 삶을 알게된 김씨는 수요시위에도 참가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해왔다. 김씨는 “처음엔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지만 직접 만나보고 듣고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뻔뻔스런 일본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김씨는 “정신대할머니들에게 명예회복과 일본의 진정한 사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배우로서 최대한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 이호석 기자 arisan@naeil.com 2000-11-19
- 대정부 질문 벌인 민정당사 농성사건 주역 김영춘 의원 전두환 정권이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1984년 11월 14일.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 중앙당사에 100여명의 대학생이 몰려가 민주화 조치 실시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이 사건은 80년대 학생운동사에서 최초의 점거농성 사건으로, 전 정권이 학원자율화 조치를 실시하는 기폭제가 됐다.그 후 꼭 16년째 되는 2000년 11월 14일, 사건의 배후 주동자로 구속됐던 인물이 당시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의원으로 의정단상에 서서 대정부 질문을 했다.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영춘 의원이 바로 주인공이다. 김 의원은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제3조를 개정하라’‘굴욕적인 SOFA를 전면 개정하라’고 주장했다.세월이 14년이나 흐르고, 소속한 곳이 바뀌었고,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과 ‘적’들의 위치도 뒤죽박죽이 돼 있지만 그의 주장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민정당사 점거농성 기념일(?)에 대정부 질문을 하는 감회를 김 의원은 “그때 우리 학생들이 민정당사 농성을 했던 것도 민주화를 위해서 했던 일”이라며 “지금은 가장 후진적이라고 비난받는 정치에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0-11-14
- 김종회 교수의 이산가족 이야기 ⑤ 톨스토이의 소설 의 서두에 이와 같은 유명한 말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모두 제 각각의 모습으로 불행하다."이 땅에 1000만에 달하는 남북 이산가족들이 있는데 그 비통하고 불행한 정황을 유형별로 분류하자면 숫자가 얼마나 될까? 톨스토이의 선언적 언술에 기대어 보면 그 유형의 숫자 또한 1000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이산가족 가운데는 대표를 뽑을만한 수범사례가 없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심경이 궁색하고 화급하기로는 누구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는 곧 한 사람 한 가족의 사연이 전체 이산가족의 비극을 대변한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이산가족관련 민간기구들이 지속적으로 컴퓨터 추첨을 통한 소수의 방문단 교환보다는 서신교환을 통한 광범위한 생사확인, 그리고 면회소 설치를 통한 가족재회의 확대를 주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언젠가 필자가 편집을 맡고있는 이라는 뉴스레터의 지면에, 편집국장으로 있던 강승희씨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북한에 두고 온 누님에게, 또 조카 동민 동혁에게, 남한에서 타계한 매형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였다. 그 매형은 강씨와는 서로 다른 길로 월남하여 1951년 부산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로부터 강씨는, 일생을 북한의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다간 매형에 대해 관찰자요 기록자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매형이 군에서 받은 무공훈장, 살만한 집과 가전 집기, 그리고 세월의 풍화작요엗 퇴락하지 아니하는 가족사랑의 뜨거운 마음, 강씨외에는 이를 증거할 '눈'이 없었던 셈이다.실정법을 무시하고 이사를 할 때마다 북한의 가족들을 함께 전입으로 신고하고, 그로 인해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기도 하면서 일구월심 전전긍긍하던 그 매형이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재혼을 권유해도 듣지않다가 끝내 혼자서 운명하면서,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강씨가 전한 그 사연은 글이 아니라 통곡이었다."매형은 임종에서 꼭 한마디, 내가 대한민국에서 떳떳이 살면서 내 처자식을 만날 날만을 기다리다가 천추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되 승희로 하여금 내거 어떻게 살다갔는가를 누님과 동민이 동혁이에게 전해달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가셨답니다."지금은 장년을 넘어 초로의 나이에 이르렀을 그 두 아들, 이제는 북녘 땅에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그 누님. 그런데도 세월의 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히 흐르고 있으니 저마다 숨은 사연을 품은 이산가족들의 속내는 애간장이 다 타서 남은 것이 없을 지경이 아니랴.이 절박한 인지상정의 통한을 앞두고 항차 사상과 제도, 체제와 이념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남과 북이 정녕 한 겨레라면, 그 지도자들이 이제 정말 동포애와 인도주의의 이름앞에 다른 조건을 내걸지 말아야 할 터이다. 적어도 그가 건전한 상식을 가졌다면, 그리고 후세의 사필을 두려워한다면. 2000-11-12
- <지역발언대> 철마는 그렇게 달려서는 안된다 이홍균전 광명라이프신문 발행인이런 일이 벌어지려고 한다. 평화공단과 평화시, 철도역사, 대규모 물류기지, 면회소, 홍수조절용댐, 공업단지 등의 건설, 2002년 세계평화엑스포 유치, 농지개발 등과 같은 중앙정부의 계획. 통일안보관광지 개발, 골프장 건설, 세계청소년 생태안보관광파크 조성, 접경지역 개발 등의 경기도와 강원도 개발계획. 현대그룹의 금강산주변지역 개발, LG그룹의 국제무역센터 건설 계획안 등등. 이 모든 일들이 DMZ 내에서 벌어지려고 한다. 지난 9월 18일의 경의선 복구공사 기공식은, DMZ 내의 생태계가 겪을 대재앙이 서막이기도 하다. 얼마나 급했는지 정부는 법을 어기고 환경영향평가 없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 시작 후 뒤늦게 9월 25일부터 공사지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건교부는 공사기한을 2001년 12월로 못박고 그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도 올해 12월까지 완료해야 한다고 정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1년 정도의 조사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철도와 도로는 터널이나 교량으로 건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DMZ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50년 냉전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이면서, 그 세월동안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DMZ에는 온대지방에서 북방계와 남방계 동식물이 공생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온대원시림이 있다. 현재 경의선 복원 및 도로 개설 공사지역인 서부파주 DMZ 일대에 오색딱따구리,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과 희귀종들이 서식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DMZ 중부지역과 동부지역에서도 많은 종류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심지어 새로운 종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DMZ의 생태계는 정부가 앞장서는 가운데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파괴될 운명에 있다. 환경부가 DMZ의 환경보존을 위한 정책을 발표했지만 DMZ 파괴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 국제자연보전연맹과 유네스코 등 국제기관도 깊은 우려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적, 국제적인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DMZ의 생태계에 대한 남북한공동의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그에 기초해서 환경보존을 위한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말처럼 통일이 당장 내일의 일이 아니라면 세계적인 생태보고를 파괴하는 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1962년 경남 거창 출생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졸업전) 광명시 교통난해소 시민운동본부 기획홍보 위원전) 광명시 교육운동시민본부 기획홍보 위원전) 푸른 광명 시민운동 기획위원현 학원 강사 200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