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검색결과 총 6,135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소형 재건축아파트 기준시가 크게 오른다 서울 잠실과 반포 등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단지의 기준시가가 시가의 90% 수준까지 크게 오를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2일 "강남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중에는 값이 6억원을 넘어 고가주택으로 분류되면서도 평형이 작다는 이유로 기준시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시가가 일정 기준을 넘는 고가 아파트는 가격에 따른 가산율을 적용해 기준시가의 시가반영율을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아파트의 기준시가는 평형을 기본으로 삼되 가격 비중을 고려해 가산하는 방식으로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전용면적 85㎡(25.7평) 이하로 기준시가가 시가의 75%에 못미치는 소형 아파트 중 일부는 50평 이상 대형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기준시가의 시가 반영 비율이 최고 90%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들 소형 아파트는 부분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부과되는 투기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시가가 크게 올라도 양도세 부담이 추가로 확대되지는 않지만 상속.증여세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2004-05-03
- 시민단체 파병철회 행동 개시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학대 행위가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파병 철회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파병철회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국회의원들에게 파병안 철회를 요구하기로 했다. 각계각층 인사들 1만명은 이라크 파병 철회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3일 오후 2시 한국언론재단 20층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1만명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파병철회를 위해 서명활동을 벌여왔다. 이번 선언에는 박원순 이돈명 변호사, 김중배 전 MBC 사장, 리영희 백낙청 강만길 교수, 영화감독 박찬욱씨, 조준희 사법개혁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국민행동은 기자회견에서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저항하고 있는데 우리만 파병을 고집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17대 국회는 하루 빨리 파병 철회 논의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국민행동은 또 파병 철회를 위한 범국민 청원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국민행동 정대연 기획단장은 “범국민 청원운동의 하나로 5월 중 시민서명운동과 각 정당 및 국회의원당선자 면담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각계의 상징적 인사로 구성된 ‘국민청원대표단’을 위촉, 공개할 예정이다. 이들은 앞으로 ‘서희·제마 부대 철수 및 추가파병 철회 결의안’ 채택을 목표로 총선 당선자를 설득하고 파병철회 당론 확정을 요구하는 시위 등을 벌여 각 당을 압박해 나가기로 했다. 정 단장은 “국회에서 추가파병에 대한 철회결의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법적으로 수용해야 하는지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소장·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의 파병추진과 관련해 국방부, 외교통상부, NSC 등에 대한 특별정책감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참여연대는 감사요청 공문에서 △세계 3위 규모 파병의 적정성과 타당성 △전후 재건지원의 현실성과 타당성 △재건지원 목적에 대규모 혼성부대 편성의 합목적성과 타당성 △파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적 정보왜곡 △국방부의 국회 보고사항에 대한 자의적이고 무책임한 변경 △중대한 사정변경의 무시 등을 정책 감사 대상으로 꼽았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기존 파병 반대 움직임이 정부와 국회를 외부에서 압박한 것이라면 이번 감사요청은 내부에서 파병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남성 기자 kns1992@naeil.com 2004-05-03
- 영국 자동차에는 영국이 없다 지난 해 가을 개봉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이탈리안 잡’에는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샤를리즈 테론 못지않게 눈길을 끈 출연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초소형 스포츠카 미니쿠퍼이다. 163마력, 최고시속 218km로 LA의 복잡한 도로와 지하도를 종횡무진하다 하수구까지 날렵하게 통과하는 3대의 미니를 보고 탄성을 자아낸 관객이라면, 이 차에 대한 궁금증이 한 번 쯤은 일었을 법하다. 작지만 위대한 차로 불리는 미니는 1959년 영국 로버사가 발표한 뒤 서민과 귀족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의 하나로 손꼽혔고, 1999년말 ''포드 모델 T''에 이어 20세기의 자동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로버 미니, 포드 미니, BMW 미니 그런데 미니는 그 인기만큼이나 기구한 팔자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 차의 주인이 영국의 오스틴, 모리스, 로버 등 이러저러한 회사에서 미국 포드로, 마침내 독일 BMW의 독립 브랜드로 남게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던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 기계공업의 발원지인 이 나라는 당연 자동차산업의 원조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국에 고유의 자동차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자동차회사는 시장의 규모를 고려한 외국자본이 불가피하게 유지하는 중이고, 주요부품은 모두 외국에서 수입되기 때문이다. 영국 자동차업계는 전통적인 자유경쟁 원리에 충실하게 군소회사가 난립한 상태로 출발했다. 적어도 2차대전이 끝날 무렵까지는 이러한 구조가 문제되지 않아서, 당시 영국은 세계 1위의 자동차 수출국이었고 미국에 이어 최대 생산국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전후 마샬 플랜이 가동되어 유럽재건이 진행되고 한국전쟁 특수를 거치며 일본 자동차업계가 부활하자 사정은 변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동차 산업을 기간산업으로 간주하여 이른바 정부 지원 하에 독과점체제를 유도한 데 비해, 영국은 자유경쟁 체제를 계속 고집하여 포드나 폴크스바겐에 대항할 만한 대형업체는 나타날 수가 없었다. 1960년대 들어 외국 자동차들이 추격을 시작하면서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 먼저 생산성에서 영국 업계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전 세계가 포드주의 시스템으로 무장한 지 오래고, 거기다 일본에서는 도요타나 혼다가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영국은 그때까지도 도제(개수임금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작업장에서는 상급노조보다 현장위원(Shop Steward)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생산성이 현장의 결정에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영국 내에서도 영국차가 팔리지 않는 것이 자유경쟁 원리상 당연했다. 다급해진 영국 정부는 외국업체에 대항할 대형업체가 필요함을 깨닫고 국내 메이커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로써 1966년 BMC와 재규어를 합친 BMH가, 이듬해 로버와 이랜드를 중심으로 한 LMC가 만들어졌고, 1968년 이들이 합친 단일 자동차그룹 BLMC가 탄생했다. 정부, 통합 회사 금융자본에 맡겨 BLMC의 당면과제는 업체들의 장점을 모아 경쟁력 있는 통합으로 시너지를 발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단위공장마다 얽히고설킨 노동조합 정파와 지역주민들의 이해에 부딪혀 공장 통합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지역간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까지 공장부지 선정에 개입했다. 그 결과 기존 공장은 어색한 짜깁기 상태로 남게 되고, 신설 공장은 인프라도 채 갖추어지지 못한 낙후 지역에 세워진다. 단일그룹의 이점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한 기업만이 남아 외국 업체의 공세를 막아야 하니 자동차산업의 리스크만 높인 셈이 되었다. 그 배경에는 제조업을 사양산업으로 치부한 영국 정부의 금융 중심 정책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통합을 주도하면서도 산업보호 입법에는 무관심했고, 더욱이 BLMC를 금융자본에 넘겼다. 이 산업에 필수적인 장기적 투자기회를 정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매번 정책을 갈아 치우는 바람에 BLMC는 유명한 ‘서다가다(Stop-Go)’ 정책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출범 6년만인 1974년 판매부진 속에 오일쇼크가 겹치자 BLMC는 파산에 몰렸고, 정부는 급히 진상조사를 벌인 뒤 회사의 공기업화를 결정했고 사명도 BL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BL의 실적이 나아지지 않자 그 원인을 노사관계에서 찾은 정부는 에드워즈라는 반노조주의자를 회장으로 파견했다. 그때부터 영국 자동차업계 전체가 경영진의 공격과 노조의 반격으로 이어지는 충돌의 역사로 점철되어, 1980~86년 사이 17만4895명이 정리해고로, 5만5305명이 조기퇴직 등으로 직장을 떠났다. 이처럼 의도한 대로 노조를 잠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거기 매몰되는 바람에, BL의 경영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 회사가 살아남은 이유는 순전히 정부 투자 때문이었다. 실적이 이를 보여준다. 오일쇼크 전인 1973년 2600만파운드이던 순익은 1982년 2억300만파운드의 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 2억9300만파운드의 순손실로 둔갑해 있었다. 거듭된 매각, 남은 것은 껍데기뿐 오일쇼크 결과 외국을 따르거나 자동차산업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영국 정부는 1975년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신사유람단은 일본 도요타나 혼다의 탁월한 생산방식에 경탄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4년 뒤인 1979년 BL과 혼다의 제휴가 성립되었다. 이로써 BL은 외형상 소생하는 듯했으나 실은 대부분의 인기차종이 혼다에서 설계한 차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차의 판매만 늘어났다. 제휴 전인 77~81년 사이 0.4%에 불과하던 일본 수입차의 점유율 증가폭이 제휴 뒤인 85-90년 사이 4.4%나 늘어난 반면, BL의 내수 점유율은 72년 58%에서 합작 후인 86년 31.6%로 무섭게 떨어졌다. 일본에 뒤통수 맞았다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이미 BL은 소생불가능 상태였다. 1979년 실정을 거듭한 노동당의 캘러헌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되자, 이어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 총리는 애물단지가 된 자동차산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1984년 정부는 BL에서 재규어를 떼어 내 팔았고, 이어 버스, 대형트럭, 부품사업부문 등을 차례로 팔아치웠다. 영국 자동차를 대표하던 이 회사는 단 2년만에 승용차와 4륜차만 남은 로버사로 축소되었고, 대처 정부는 거기서 손을 털었다. 자생력을 상실한 반쪽 회사 로버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1988년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회사는 브리티쉬에어로스페이스(BAe)에 매각되었다. 항공산업 확장의 일부로 합병을 추진했던 BAe는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자 다시 회사를 독일의 BMW에 팔아버렸다. BMW 경영진은 혼다방식 철폐를 로버 수술의 1차 과제로 두었는데, 결과는 로버를 영국시장에서 버티게 한 마지막 동력을 제거한 셈이 되었다. 로버의 서툰 변신에는 로버사 직원들도, 나아가 영국 소비자들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6년 뒤 BMW는 로버를 포기하고 투자사인 알케미에 넘겨 원금을 건지려 했는데, 노조를 포함한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영국 산자부장관까지 나서는 통에 방침을 바꾸어 분리매각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최대 공장인 롱브리지를 MG 로버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이 인수하고, 랜드로버를 포드가 인수하는 것으로 매각은 종료되었다. 영국자동차산업이 국가대표에서 지역대표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BMW의 독립브랜드로 남아 영국에서 생산된 유일한 차종이 바로 ‘미니’였다. /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2004-05-27
- “과밀학교 우선 해소” 공염불 경기도와 도교육청이 고양시를 이달초 ‘과밀·과대학교 조기해소 시범지역’으로 지정했으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과밀학교 해소를 위해서는 도내 자치단체보다 건설교통부와 교육인적자원부 등 중앙정부와의 협의가 더욱 필수적이니만큼 해당 자치단체와 교육청은 정부를 상대로 과밀학급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이달초 “고양, 안산, 안양, 과천지역을 과밀·과대학교 조기해소 시범지역으로 선정하고 학교부지 마련부터 설립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One-stop)으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기도는 시범지역 공동추진기획단을 구성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마련, 40여명에 육박하는 학급당 학생수를 기준대로 35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 11일과 20일, 도교육청과 도시계획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용지 확보를 위한 대책회의를 갖고 도내 자치단체의 도시관리계획에 학교설립을 위한 학교용지를 우선 반영토록 했다. 또 그린벨트내 학교설립과 도시내 재건축 등 도시정비계획을 수립할 때 학교시설을 반영해 과대·과밀학급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별로 관할 교육청과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학교부지와 재원확보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고양시 등 해당 자치단체들은 학교용지 확보에 난색을 표명, 학생수용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일산신도시 및 화정지구 등 사실상 과밀이 심각한 지역은 이미 도시개발이 거의 완료돼 학교부지로 선정할 토지가 아예 없는데다 도시계획 결정과정에서 특정 부지를 학교시설로 지정할 경우 토지주들이 재산권 침해를 내세우며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린벨트에 학교를 짓는 문제는 자치단체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린벨트 해제의 열쇠는 건설교통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회 김의호 의원은 “과밀학급 문제는 단순히 선언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며 “정작 과밀학급 해소의 열쇠는 건교부와 교육부 등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만큼 경기도와 교육청은 정부를 상대로 학교용지 확보를 위한 그린벨트 해제 등을 강력히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처음부터 행정절차, 부지확보 등의 문제점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의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 추진 가능여부를 확인하라”고 도 간부회의에서 지적하기도 했다. /고양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2004-05-31
- “다음 목표는 2010년 세계 1위” 닛산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자 최고경영자인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51). 그는 현재 도쿄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12만5천명의 직원을 이끌면서 연간 약 700억 달러의 소득을 기록하고 있다. 부임한 지 3년이 채 못돼 파산 직전의 닛산을 회생시킨 그에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재건계획 4년만에 사상최고 수익 1999년 프랑스 국영기업 르노사의 경영진은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해외 파트너를 물색, 당시 파산 직전에 몰려 있던 일본 2위 자동차회사 닛산의 자산 36%를 인수했다. 뒤이어 루이 슈바이처 르노사 사장은 겨우 46세의 카를로스 곤을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일본 도착 6개월 후 곤은 200억 유로의 예산이 투입되는 ‘닛산 재생 계획’을 발표했다. 30%의 설비 감축, 5개 공장 폐쇄, 전체 직원 중 20%에 해당하는 2만1천명의 감원, 후지중공업 등 수익성이 불투명한 관련 사업 매각 등, 현지 관습을 무시한 듯한 곤의 전략은 일본 사회에 일대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성공했다. 4년이 지난 2003년, 닛산의 순이익 42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에게는 비용 킬러, 혹은 얼음 깨부수는 사람, 심지어 장의사 등 갖가지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작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를 일본 최고 경영자로 뽑았다.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 곤 사장은 “일본에서 나에 관한 책이 14권 출판되었고 그중 하나는 만화책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한 바 있다. 예수회 신자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이제 세간의 명성과 충분히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닛산의 성공 과정만큼이나 곤의 개인적 삶 또한 특이하다. 1953년 브라질의 레바논 이미자 가정에서 태어난 곤은 6살 때 부모님을 따라 레바논으로 갔다. 프랑스 문화에 애착을 가진 부모는 그를 예수회 수도사가 운영하는 노트르담 소재 드 베루트 중학교에 보냈다. “나는 원칙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지적 자유를 장려하는 가운데 경쟁, 계속적인 도전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다.” 곤의 회고다. 자신의 뿌리가 강할 때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법. 세계 시민이기를 자처하는 그에게 가족의 뿌리에 대한 애착은 문화적 특성을 띠고 있으며 이로부터 곤 특유의 개방형 카리스마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세계 자동차시장 ‘시계 제로’ 대학을 마친 후 미쉐린사에 첫 입사한 그는 다양한 직급을 거쳐 계열사 사장에 오른다. 이후 권력 세습을 둘러싼 미쉐린의 기업 풍토에 회의하던 그는, 당시 자신에 이어 2인자를 물색하던 루이 슈바이처 르노 사장의 연락을 받고 곧장 짐을 쌌다. 이렇게 르노사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대대적인 비용절감 계획을 주도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다. 그러자 슈바이처 사장은 곤에게 닛산 부활이라는 임무를 맡겼고, 그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의 성공 비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프랑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카를로스 곤은 인간과 재정상태라는 두가지 상이한 화두에 몰두했다. 그는 먼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서 시작한다. 닛산에서 그가 행한 모든 활동은 ‘설명, 설득, 훈련’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집약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고난 교육자의 자질을 보였다. 그는 또한 일의 결과가 최종 심판자이며 사람의 능력은 곧잘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에 따라 판단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대화는 대부분 ‘가치 창출, 생산성, 투자 수익’ 등으로 장식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습관을 뒤흔들고 다른 세계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중국시장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닛산을 다시 훈련시키는 중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닛산의 주가는 르노사의 세배에 달하지만 곤의 야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르노사는 지난해 240만대인 판매대수를 2010년까지 연간 400만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다 닛산의 예상 판매대수를 합칠 경우, 2010년이면 GM과 도요타를 밀어내고 세계 1위에 오를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양사는 이미 단일화 작업을 시작했고, 카를로스 곤이 단일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맡게 되는 내년 4월부터 그룹사의 세부 매출내역과 순익이 통합·발표된다. 그럴 경우 르노-닛산자동차는 단숨에 ‘글로벌 5’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지혜 리포터 urfmania96@hanmail.net 2004-05-31
- 영국 자동차에는 영국이 없다 지난 해 가을 개봉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이탈리안 잡’에는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샤를리즈 테론 못지않게 눈길을 끈 출연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초소형 스포츠카 미니쿠퍼이다. 163마력, 최고시속 218km로 LA의 복잡한 도로와 지하도를 종횡무진하다 하수구까지 날렵하게 통과하는 3대의 미니를 보고 탄성을 자아낸 관객이라면, 이 차에 대한 궁금증이 한 번 쯤은 일었을 법하다. 작지만 위대한 차로 불리는 미니는 1959년 영국 로버사가 발표한 뒤 서민과 귀족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의 하나로 손꼽혔고, 1999년말 ''포드 모델 T''에 이어 20세기의 자동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로버 미니, 포드 미니, BMW 미니 그런데 미니는 그 인기만큼이나 기구한 팔자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 차의 주인이 영국의 오스틴, 모리스, 로버 등 이러저러한 회사에서 미국 포드로, 마침내 독일 BMW의 독립 브랜드로 남게 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던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 기계공업의 발원지인 이 나라는 당연 자동차산업의 원조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국에 고유의 자동차산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자동차회사는 시장의 규모를 고려한 외국자본이 불가피하게 유지하는 중이고, 주요부품은 모두 외국에서 수입되기 때문이다. 영국 자동차업계는 전통적인 자유경쟁 원리에 충실하게 군소회사가 난립한 상태로 출발했다. 적어도 2차대전이 끝날 무렵까지는 이러한 구조가 문제되지 않아서, 당시 영국은 세계 1위의 자동차 수출국이었고 미국에 이어 최대 생산국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전후 마샬 플랜이 가동되어 유럽재건이 진행되고 한국전쟁 특수를 거치며 일본 자동차업계가 부활하자 사정은 변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동차 산업을 기간산업으로 간주하여 이른바 정부 지원 하에 독과점체제를 유도한 데 비해, 영국은 자유경쟁 체제를 계속 고집하여 포드나 폴크스바겐에 대항할 만한 대형업체는 나타날 수가 없었다. 1960년대 들어 외국 자동차들이 추격을 시작하면서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 먼저 생산성에서 영국 업계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전 세계가 포드주의 시스템으로 무장한 지 오래고, 거기다 일본에서는 도요타나 혼다가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영국은 그때까지도 도제(개수임금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작업장에서는 상급노조보다 현장위원(Shop Steward)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생산성이 현장의 결정에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영국 내에서도 영국차가 팔리지 않는 것이 자유경쟁 원리상 당연했다. 다급해진 영국 정부는 외국업체에 대항할 대형업체가 필요함을 깨닫고 국내 메이커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로써 1966년 BMC와 재규어를 합친 BMH가, 이듬해 로버와 이랜드를 중심으로 한 LMC가 만들어졌고, 1968년 이들이 합친 단일 자동차그룹 BLMC가 탄생했다. 정부, 통합 회사 금융자본에 맡겨 BLMC의 당면과제는 업체들의 장점을 모아 경쟁력 있는 통합으로 시너지를 발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단위공장마다 얽히고설킨 노동조합 정파와 지역주민들의 이해에 부딪혀 공장 통합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지역간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까지 공장부지 선정에 개입했다. 그 결과 기존 공장은 어색한 짜깁기 상태로 남게 되고, 신설 공장은 인프라도 채 갖추어지지 못한 낙후 지역에 세워진다. 단일그룹의 이점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한 기업만이 남아 외국 업체의 공세를 막아야 하니 자동차산업의 리스크만 높인 셈이 되었다. 그 배경에는 제조업을 사양산업으로 치부한 영국 정부의 금융 중심 정책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통합을 주도하면서도 산업보호 입법에는 무관심했고, 더욱이 BLMC를 금융자본에 넘겼다. 이 산업에 필수적인 장기적 투자기회를 정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매번 정책을 갈아 치우는 바람에 BLMC는 유명한 ‘서다가다(Stop-Go)’ 정책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출범 6년만인 1974년 판매부진 속에 오일쇼크가 겹치자 BLMC는 파산에 몰렸고, 정부는 급히 진상조사를 벌인 뒤 회사의 공기업화를 결정했고 사명도 BL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BL의 실적이 나아지지 않자 그 원인을 노사관계에서 찾은 정부는 에드워즈라는 반노조주의자를 회장으로 파견했다. 그때부터 영국 자동차업계 전체가 경영진의 공격과 노조의 반격으로 이어지는 충돌의 역사로 점철되어, 1980~86년 사이 17만4895명이 정리해고로, 5만5305명이 조기퇴직 등으로 직장을 떠났다. 이처럼 의도한 대로 노조를 잠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거기 매몰되는 바람에, BL의 경영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 회사가 살아남은 이유는 순전히 정부 투자 때문이었다. 실적이 이를 보여준다. 오일쇼크 전인 1973년 2600만파운드이던 순익은 1982년 2억300만파운드의 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 2억9300만파운드의 순손실로 둔갑해 있었다. 거듭된 매각, 남은 것은 껍데기뿐 오일쇼크 결과 외국을 따르거나 자동차산업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영국 정부는 1975년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신사유람단은 일본 도요타나 혼다의 탁월한 생산방식에 경탄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4년 뒤인 1979년 BL과 혼다의 제휴가 성립되었다. 이로써 BL은 외형상 소생하는 듯했으나 실은 대부분의 인기차종이 혼다에서 설계한 차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차의 판매만 늘어났다. 제휴 전인 77~81년 사이 0.4%에 불과하던 일본 수입차의 점유율 증가폭이 제휴 뒤인 85-90년 사이 4.4%나 늘어난 반면, BL의 내수 점유율은 72년 58%에서 합작 후인 86년 31.6%로 무섭게 떨어졌다. 일본에 뒤통수 맞았다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이미 BL은 소생불가능 상태였다. 1979년 실정을 거듭한 노동당의 캘러헌 내각이 의회에서 불신임되자, 이어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 총리는 애물단지가 된 자동차산업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1984년 정부는 BL에서 재규어를 떼어 내 팔았고, 이어 버스, 대형트럭, 부품사업부문 등을 차례로 팔아치웠다. 영국 자동차를 대표하던 이 회사는 단 2년만에 승용차와 4륜차만 남은 로버사로 축소되었고, 대처 정부는 거기서 손을 털었다. 자생력을 상실한 반쪽 회사 로버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1988년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회사는 브리티쉬에어로스페이스(BAe)에 매각되었다. 항공산업 확장의 일부로 합병을 추진했던 BAe는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자 다시 회사를 독일의 BMW에 팔아버렸다. BMW 경영진은 혼다방식 철폐를 로버 수술의 1차 과제로 두었는데, 결과는 로버를 영국시장에서 버티게 한 마지막 동력을 제거한 셈이 되었다. 로버의 서툰 변신에는 로버사 직원들도, 나아가 영국 소비자들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6년 뒤 BMW는 로버를 포기하고 투자사인 알케미에 넘겨 원금을 건지려 했는데, 노조를 포함한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영국 산자부장관까지 나서는 통에 방침을 바꾸어 분리매각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최대 공장인 롱브리지를 MG 로버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이 인수하고, 랜드로버를 포드가 인수하는 것으로 매각은 종료되었다. 영국자동차산업이 국가대표에서 지역대표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BMW의 독립브랜드로 남아 영국에서 생산된 유일한 차종이 바로 ‘미니’였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2004-05-27
- 실거래 과세로 집값 상승 억제 실거래가로 주택거래를 해야 하는 주택거래신고지역이 드디어 지정됐다. 서울 강남 3개구(강남·강동·송파)와 성남시 분당구가 그곳이다. 이들 지역내에서 아파트를 거래하게 될 경우 매매가를 실거래가로 신고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취득세의 5배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매매가를 실거래가로 신고하면 이를 근거로 취등록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세금이 크게 오르게 된다. ◆ 전보다 3~5배 세부담 늘어나 = 건설교통부는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실거래가로 취등록세를 부과하게 되면 현재보다 통상 3~5배 정도 세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69평의 경우 과세표준은 3억 1700만원이지만, 실거래가는 16억 5000만원이기 때문에 취등록세가 1838만원에서 9570만원으로 5.2배 늘어나게 된다. 송파구 문정동 훼미리아파트 32평은 과세표준은 1억 5100만원이지만 실거래가는 5억 7000만원이어서 취등록세가 896만원에서 3306만원으로 3.8배 늘어난다. 이같은 세부담이 크게 늘어나면 투기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가격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일부 강남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매호가가 적은 폭이나마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재건축개발이익 환수대책 상반기 확정 = 하지만 이번 대책의 맹점은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지만 조합설립 이전단계에 있는 18평 이하 아파트가 제외된다는 점이다. 부동산 포털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같은 단지는 강남·강동구에만 6만 3600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실거래가 적용이 제외되는 이들 단지가 재건축 가격 상승을 또다시 주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인근아파트 값이 안정되면 기대수익이 감소하게 되고 △조합설립단계에서는 전매가 불가능해지고 △금년중 ‘재건축개발이익 환수’방안이 시행될 예정으로 기대수익이 감소할 것이므로 신고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추가적인 가격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교부는 상반기중 관계부처 및 당정협의 절차를 거쳐 시행방안을 확정해 하반기중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억제책만으론 집값 안정 미흡 = 이번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허위신고자에 대한 적발이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건교부는 “국민은행과 한국감정원 등의 협조를 받아 전국 투기지역을 대상으로 주태가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이를 해당 지자체에 매월 1회 제공해 자료로 활용케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주택거래신고지역 지정이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세제만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남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근본 이유는 우수한 교육여건 등에 따른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어서 이를 흡수하거나 분산시키는 대책 등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세제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2004-04-22
- 드골의 자존심과 경찰의 자존심[수사연구 2003.10.] 드골의 자존심과 경찰의 자존심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장군이었으며, 전후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신념에 찬 프랑스의 장교로서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독창적인 사고를 갖춘 인물로 유명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국민성향에도 불구하고 드골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드골은 군대시절 한때 프랑스를 구원한 영웅이었던 패탱 장군을 만났다. 둘은 프랑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함께 하였고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힘을 합쳐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하자 패탱과 드골은 갈라진다. “끝까지 싸웁시다. 끝까지 싸워서 독일을 물리칩시다” “대세를 알아야지. 지금 우리 프랑스의 힘으론 역부족이야. 독일과의 협상을 이끌어야 하네” 독일과 타협한 패탱은 나치에 협력하는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었고 이에 반대한 드골은 패탱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의 처절한 패배였다. 이후 드골은 망명정부를 수립하여 대 나치 저항을 앞장서 이끌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정부의 수반이 되어 패탱을 전범으로 기소하였고 배심원들은 90세가 넘은 패탱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드골은 패탱을 종신형으로 감형해주었고 어느 섬에서 부인과 함께 살게 해 주었다. 패탱은 떠나면서 드골에게 말했다. “우리가 지난 세월 같은 물줄기로 흐르다가 어찌하여 다른 물줄기로 갈라졌나... 그러나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네와 같았지. 안 그런가?” 이후 패탱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였고 드골은 두 번의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다. 무엇이 드골에게 시련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주어 마침내 그를 최후의 승리자로 이끌었는가? 국민적 영웅이던 패탱장군을 배신한 반역자 정도로 취급되던 드골의 내면세계에 일관되게 관통했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이라는 그의 절대적인 신념이었다. 드골은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그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강력하고도 유일한 목표를 위해 조국에 헌신하고 국익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투쟁도 불사하는 강인함을 보여 주었다. 드골에게 절대적인 행동의 기준이 되었던 것은 바로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영국의 도움을 얻어가며 영국에 머물면서 레지스탕스를 지휘한 드골이 영국의 처칠수상에게 보였던 오만한 행동들은 처칠은 물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까지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드골은 자신은 프랑스의 대표이기에 자신의 자존심은 곧 프랑스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였고 “자존심이 지켜지지 않는 프랑스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뿐 이었다. 이러한 드골의 자존심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되는 전후 유럽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프랑스의 입지를 확보하게 하였고 마침내 전후 피폐해진 프랑스를 세계 열강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골은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냉담하다는 국내외적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지만 드골 특유의 자신감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를 극복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냉엄한 현실사회 속에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이든 일관되게 자존심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약자의 입장에 서있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은 종종 무모한 발상으로 비판받기 쉽상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냉철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한 전략적인 판단까지 헤아린 것이라면 그러한 선택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용기있는 자만이 선택하는 행동으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자존심을 지켜나간다는 것의 의미는 국가에게나 조직에게나 마찬가지이며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없는 조직이나 국가에게는 결코 미래의 영광은 오지 않을 것이다. 척박한 현실속에서도 자신의 조직이 자존심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 조직원들은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힘을 얻게 될 것이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경찰조직은 자존심이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 자존심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경찰조직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있는가? 한편으로는 자존심을 거론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일부 조직내부의 도덕적 해이 탓도 있을 것이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직외부로부터 경찰자존심을 지켜내지 못하는 탓이 클 것이다.이웃나라 일본의 경찰수뇌부가 때로는 정치권력에 대항하며 때로는 검찰로부터 경찰의 독립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며 경찰조직의 자존심을 지켜내었고 그 과정에서 조직내부의 도덕적 무장을 강화하여 결과적으로 경찰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해온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조직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그 조직의 크고 작은 리더들에게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소조직의 리더이든 대조직의 리더이든 그들이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조직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려는 굳센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 조직의 자존심은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리더들이 일신상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거나 외부세력의 막강파워에 쉽게 굴복하고 나아가 그 세력에 기대어서라도 오로지 스스로의 영달만을 꾀하려 한다면 그 조직의 자존심은 일상적으로 짓밣히고 말 것이다. 많은 경찰관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외부세력에 의해 너무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한탄한다. 그 외부세력은 때로는 검찰이기도 하고 때로는 언론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밖의 기관이기도 하다. 조직 내부의 정화와 개혁이 선행되어 조직이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은 연후에야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부의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고 외부의 환경이 불리하다고 하여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없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경찰조직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찰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조직으로 제자리에 위치시키자는 목표이므로 결코 편협한 조직이기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자존심을 위해 자신을 던지며 용기있게 맞서 싸운 사람이 아직은 떠올려지지 않는다. 조직의 미래의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스스로 희생하고 투쟁하며 조직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려는 과정없이 어느 날 갑자기 외부의 변화된 환경에 의해 조직의 목표가 달성된다 한들 그것을 유지 발전시켜 나갈 조직원의 동력은 뒷받침되지 않는다. 일신의 영달의 그늘에 숨어 신념과 용기가 부족함을 마치 냉철한 현실인식 인양 포장하여 자신과 조직을 기망하려는 교활함과 비겁함이 득세하는 현실에서는 조직의 자존심은 회복되기도 또 유지되기도 어렵다. 자신의 자존심을 조국 프랑스의 자존심과 일치시켜 나가며 일관된 신념 하나로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해내고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위대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헌신한 드골의 오만한 자존심이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진다. 경찰조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패탱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드골의 오만한 자존심이다. 2004-04-20
- 서울 아파트값 상승 10·29 이후 최고 서울지역 아파트 값이 지난해 발표한 10?29대책 이후 가장 높은 오름세를 기록했다. 부동산포털 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값은 지난주 0.3%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29 직후 하락세를 기록하던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 1월말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10?29대책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등 또다시 아파트값이 들썩이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하는 양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송파 재건축 2.56% 올라 =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지역은 10?29 대책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재건축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면서 0.3%의 상승률을 기록해 신도시, 수도권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값은 1.17% 올라 9월 초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고, 저밀도 재건축은 2.17%의 변동률로 역시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반 아파트는 0.1%의 상승률에 그쳐 대조를 보였다. 구별로는 송파구 아파트값이 1.1% 상승해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강동구가 0.98%, 용산구가 0.57% 올랐다. 송파구는 잠실주공4단지를 비롯한 재건축 아파트값이 2.56%나 상승했고, 강동구 재건축도 2.15% 올랐다. ◆ 개발이익 환수대책 마련 시급 = 재건축 아파트값이 이처럼 상승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을 아파트 소유자가 대부분 가져가는 상황에서 평수를 늘리는 재건축아파트는 크게 남는 장사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재건축아파트가 집값상승을 주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규제위주의 대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개발이익의 환수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주택거래 신고지역지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택거래 신고를 실거래가로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가중 처벌하는 주택거래신고제가 도입된 이후 아직 지역이 지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고지역 조기지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파트값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병호 기자 bhjagn@naeil.com 2004-04-19
- 스페인군 보름안에 이라크서 철수 외신종합=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스페인 정부는 앞으로 ‘15일 안에’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할 계획임을 이집트측에 통고했다고 이집트 외무부 관리가 18일 밝혔다. 스페인은 이라크에 13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 관리는 언론 발표문에서 미구엘 앙헬 모라티노스 스페인 외무장관이 아흐메드 마헤르 이집트 외무장관에게 이같은 결정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모라티노스 장관은 15일 내에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신임 총리의 의사를 마헤르 장관에게 알리면서 미국측에도 이미 이같은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를 인용해 이번주 미국을 방문하는 모라티노스 외무장관이 철수하는 병력을 ‘비군사 지원요원’으로 대체하겠다는 방안을 미국측에 제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모라티노스 장관이 21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만나 스페인이 이라크 재건과 안정을 돕겠다고 다짐하고 이같이 제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신임 총리는 이날 ‘가능한 한 빨리’ 이라크에서 스페인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공식 취임한 사파테로 총리는 이날 TV 방송에서 호세 보노 국방장관에게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이라크 주둔 병력이 고국에 돌아오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지금 가진 정보와 지난 수주일간 수집한 정보로 볼 때 유엔이 스페인의 조건을 충족시킬 결의안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가장 안전하게 가장 짧은 시간안에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사파테로 총리는 이라크에 주권이 이양되는 오는 6월30일까지 유엔이 이라크에서 정치, 군사적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1300명의 자국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200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