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여자' 검색결과 총 779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저자와 함께 읽는 건강이야기 저자와 함께 읽는 건강이야기 - 김영삼의 ‘한방으로 끝내는 갱년기·만성피로’ 장점 바라보는 긍정적 마인드 중요 스트레스 만병의 원인 … 만성피로 장기간 치료할 생각해야 인다라한의원 김영삼 원장 스트레스는 건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현대인들이 자주 묻는 화두다.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느냐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심혈관계 질환을 비롯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다. 바쁜 현대인의 만성피로, 눈 피로,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갱년기도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황제내경의 글귀 = 인다라한의원 김영삼 원장은 스트레스와 과로를 이기는 길에 대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이 갖는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한방으로 끝내는 갱년기·만성피로’ 책의 서문에서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의 글귀를 인용했다. ‘심정즉만병식(心靜則萬病息) 심동즉만병생(心動則萬病生)’, 즉 ‘마음이 고요해지면 만 가지 병이 사라지고 마음이 움직이면 만가지 병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는 “건강의 척도는 바로 마음에 있다”며 “자신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파악하고 있다면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장기의 기능저하에 주목 =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은 많지만 이 질환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해보지만 속시원한 답을 얻기 힘들다. 별다른 원인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진단한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영향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정상인보다 쉽게 피로감을 느낄 뿐 아니라 수면을 취하고 휴식을 해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일상생활 전체를 압도하는 나른함으로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항시적인 피로감은 두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심한 경우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면역반응 자체에 이상을 주어 각종 면역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김 원장은 “만성피로는 단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며 “따라서 단기에 완치하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의학적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은 오장육부의 기능저하와 밀접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내적인 원인 외에 외적인 원인으로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 뒤 끝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스트레스를 잘 다뤄야 = 마음이 어떤 이유로 인해 영향을 받은 상태를 스트레스라고 한다. 슬픔 분노 고민과 같은 감정적인 것일 수 있고 온도 습도 소음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도 있다. 또한 업무나 인간관계와 같은 사회적 요인도 들 수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들을 피해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김 원장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하다”며 “어차피 외부자극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외부자극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고민하면 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외부자극 자체가 아니라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을 뜻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어떤 광고 문구처럼 스트레스가 순기능으로 작용하면 오히려 신체와 정신에 활력을 준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밝고 깨끗한 면만 보려는 마인드를 가지는 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마음을 통한 몸의 치료, 몸을 통한 마음의 치료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8
- 잊혀진 항일투쟁의 영웅 양세봉 장군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조문기 지음 / 안병호 옮김 나무와숲 / 1만5000원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독립군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양세봉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1920~1930년대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양세봉 장군은 수십차례에 걸쳐 조선진공작전을 펼친 항일 명장이다. 거듭된 전투에서 승리하자 항일전선에 합류하려는 만주족과 한족이 양세봉을 찾아왔고 그의 부대는 1000명을 넘어섰다. 양세봉 장군의 활동 근거지였던 요령성 신빈현(옛 홍경현) 왕청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석상이 세워져 있고,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군신(軍神)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활동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양세봉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의형제를 맺었고, 해방후 그의 가족들은 북한으로 이주해 북한 정부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그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그의 묘소가 평양애국열사릉에 있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남한에서 홀대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양세봉의 묘소는 북에 있지만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도 있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그의 묘소가 있지만 남쪽 묘지는 허묘다. 양세봉은 1934년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이로부터 암살됐다. 그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파헤쳐져 목이 잘린 채 거리에 걸렸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의 시신을 다시 수습해 가매장했다. 가족들은 독립 후 그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겼고 이후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된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유일한 독립투사라는 점에서 그의 항일투쟁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의 원저자는 만주족 출신의 역사가 조문기였고, 이 책을 옮긴이는 퇴역장성으로 1991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낸 안병호 제정구기념사업회 이사다. 남한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가 퇴역장성에 의해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역자는 서문을 통해 “편협한 퇴영적 민족주의를 넘어 진취적으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이 실천한 ‘개방적 민족주의’와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방략’에서 시사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4
- 지방브리핑 포항명물 ‘과메기’ 디자인개발 착수 포항시가 포항의 명물인 ‘구룡포 과메기’의 디자인개발에 착수했다. 포항시는 20일 구룡포 과메기의 고부가 가치화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룡포 과메기단체와 영남이공대학교간 등과 공동 디자인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디자인 교육의 일환으로 디자인 개발 및 적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분야에 대해 영남이공대학 산업디자인계열 시각디자인 전공(교수 최운용)이 ‘2007년 포항 구룡포 과메기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포항시가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디자인개발을 의뢰하면서 이뤄졌다. 영남이공대 최운용 교수는 ‘2004년 봉사단체를 위한 디자인’ ‘2005년 우리 농민사랑(쌀 포장지) 디자인’ ‘2006년 서문시장(CI)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포항시와 영남이공대학은 ‘포항 구룡포과메기’의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향후 바람직한 활성화 방안과 디자인 경쟁력 강화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포항시는 개발 결과물(BI, 캐릭터, 포장디자인 등)을 제작 완료 후 영어조합법인과 생산자협회에 무료로 제공해 특구지역 생산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는 지역 특산물로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지난해 박승호 포항시장이 직접 참여한 과메기 홍보광고가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먹거리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포항시는 지난 5월 포항구룡포 과메기를 재정경제부의 지역특화발전특구산업으로 신청해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포항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앗! 이런 곳이 성주 관광 3선 가야산 야생화식물원 해발 550미터에 자리한 자연학습장 지난 2006년 6월에 개장한 전국유일의 군립식물원이다. 전시관, 유리온실, 야외전시원, 도로변 꽃길로 구성돼 있다. 꽃길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5ha에 이르며 600여종 60만여본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가야산국립공원 내 해발 55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주변의 심원사, 법수사 삼층석탑과 가야산 해인사 등의 문화재와 인근 백운동지역의 녹색체험마을, 정보화마을 등의 체험프로그램과 연결해 탐방이 가능하다.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은 크게 실내전시관, 야외전시원, 유리온실로 나뉘어 있다. 실내전시관은 자연환경과 식물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할미꽃의 전설, 가야산의 사계 등 3가지의 동영상도 흥미롭다. 야생화 퍼즐 등의 게임을 통해 야생화와 친숙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 고생대 양치식물 화석 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양치식물 화석을 감상할 수 있다. *왜관IC →성주→수륜면 해인사IC →가야면→59국도 성밖숲 마을 재앙 막아주는 왕버들나무 군락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성밖숲은 지금은 군민의 휴식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예전부터 마을 재앙을 막아주던 신성한 곳이었다. 수령 300~500년생의 왕버들나무들이 즐비하다. 지난 99년 천연기념물(제403호)로 지정됐을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마을의 풍수지리와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중엽 서문밖의 마을 어린이들이 이유 없이 자주 죽자 ‘마을주변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며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밤나무숲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숲은 당시 토성으로 축성된 성주읍성의 서문밖 이천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후에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나무를 조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심주변에 휴식, 체육, 행사장 등으로 연간 6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성주버스정류소 → 우회도로 (승용차 5분 소요) 세종대왕자태실 대왕의 열여덟 왕자, 그리고 단종의 태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 태실은 수양대군을 비롯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를 안장한 곳이다. 처음에는 19기의 태실을 두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축출한 뒤 이를 반대한 수양의 동복동생 금성대군, 배다른 한남군, 영풍군, 그 사건에 무고로 연좌된 화의군 및 계유정란에 죽은 동복동생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등은 세조 3년(1457) 산아래로 파 던져 졌다. 그러나 지난 97년 흩어진 기단석을 찾아 복원했다고 한다. 세조가 왕위에 등극한 뒤 예조판서 홍윤성은 세조의 태가 이곳에 묻혀 있음을 알리고 비를 세웠는데 세조의 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비석에 오물을 퍼붓고 돌로 찍고 갈아서 비석의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됐다. 화강암으로 만든 19기의 태실은 조선왕조 태실의 의궤에 따랐고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백자로 된 태호가 들어있다. 또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석, 개첨석으로 이뤄져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태실이 있는 곳이다. *성주버스정류소 → 월항면 → 인촌리 (선석사 30분소요, 1일2회 운행)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13
- 앗! 이런 곳이 / 성주 체험관광 3선 사진 각 1개씩 3개 가야산 야생화식물원-해발 550미터에 자리한 자연학습장 지난 2006년 6월에 개장한 전국유일의 군립식물원이다. 전시관, 유리온실, 야외전시원, 도로변 꽃길로 구성돼 있다. 꽃길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5ha에 이르며 600여종 60만여본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가야산국립공원 내 해발 55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주변의 심원사, 법수사 삼층석탑과 가야산 해인사 등의 문화재와 인근 백운동지역의 녹색체험마을, 정보화마을 등의 체험프로그램과 연결해 탐방이 가능하다.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은 크게 실내전시관, 야외전시원, 유리온실로 나뉘어 있다. 실내전시관은 자연환경과 식물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할미꽃의 전설, 가야산의 사계 등 3가지의 동영상도 흥미롭다. 야생화 퍼즐 등의 게임을 통해 야생화와 친숙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 고생대 양치식물 화석 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양치식물 화석을 감상할 수 있다. 성밖숲-마을 재앙 막는 왕버들나무들의 화려한 군무 성주읍 경산리 있는 성밖숲은 지금은 군민의 휴식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예전부터 마을 재앙을 막아주던 신성한 곳이었다. 수령 300~500년생의 왕버들나무들이 즐비하다. 지난 99년 천연기념물(제403호)로 지정됐을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마을의 풍수지리와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중엽 서문밖의 마을 어린이들이 이유 없이 자주 죽자 ‘마을주변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며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밤나무숲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숲은 당시 토성으로 축성된 성주읍성의 서문밖 이천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후에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나무를 조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심주변에 휴식, 체육, 행사장 등으로 연간 6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성주버스정류소 → 우회도로 (승용차 5분 소요) 세종대왕자태실-대왕의 열여덟 왕자, 그리고 단종의 태를 품다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 태실은 수양대군을 비롯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를 안장한 곳이다. 처음에는 19기의 태실을 두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축출한 뒤 이를 반대한 수양의 동복동생 금성대군, 배다른 한남군, 영풍군, 그 사건에 무고로 연좌된 화의군 및 계유정란에 죽은 동복동생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등은 세조 3년(1457) 산아래로 파 던져 졌다. 그러나 지난 97년 흩어진 기단석을 찾아 복원했다고 한다. 세조가 왕위에 등극한 뒤 예조판서 홍윤성은 세조의 태가 이곳에 묻혀 있음을 알리고 비를 세웠는데 세조의 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비석에 오물을 퍼붓고 돌로 찍고 갈아서 비석의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됐다. 화강암으로 만든 19기의 태실은 조선왕조 태실의 의궤에 따랐고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백자로 된 태호가 들어있다. 또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석, 개첨석으로 이뤄져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태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성주버스정류소 → 월항면 → 인촌리 (선석사 30분소요, 1일2회 운행)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11
-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철회 촉구 한국기자협회(회장 정일용) 대의원들은 7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전국 언론사 대의원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1차(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은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치 않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정부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하 정부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기협 대의원들은 이날 채택한 결의문을 통해 △선진화 방안 즉각 철회 △정보공개 확대와 브리핑제도 내실화 △정부와 기자협회가 공동조사단 구성 및 실태조사 착수 등을 요구했다. 대의원들은 결의문 서문에서 “기자협회가 전국 언론사 현직 일선기자 3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정부안을 반대한다’고 밝혔다”면서 “언론계는 물론 정계, 학계 등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55억원의 예산을 들여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의원들은 “정부안은 언론의 부도덕, 부조리를 전제로 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며 “언론을 통제하거나 좌지우지 하려는 발상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뜻을 모았다. 대의원들은 “특히 공무원 접촉 제한은 기자들의 취재영역을 축소시킬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의 알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정보공개 확대와 브리핑 내실화를 먼저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대의원들은 “정부가 정부안에 유리한 조사내용만을 공개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면서 “기자협회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국내 언론사회의 문제점과 선진국의 취재지원,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전면 재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대의원들은 특히 “정부는 전체언론이 부도덕하고 문제가 있는 특권기관인 것처럼 호도하고, 여전히 기자들의 담합과 비리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듯 주장하며 언론을 매도하고 있다”며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한 비난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은 특히 “이상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헌법소원을 포함한 모든 법적대응을 불사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경주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8
- 한국기자협회, ‘정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철회 촉구 7일 경주서 대의원 대회 열고 결의문 채택 한국기자협회(회장 정일용) 대의원들은 7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전국 언론사 대의원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1차(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은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치 않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정부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하 정부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기협 대의원들은 이날 채택한 결의문을 통해 △선진화 방안 즉각 철회 △정보공개 확대와 브리핑제도 내실화 △정부와 기자협회가 공동조사단 구성 및 실태조사 착수 등을 요구했다. 대의원들은 결의문 서문에서 “기자협회가 전국 언론사 현직 일선기자 3백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정부안을 반대한다’고 밝혔다”면서 “언론계는 물론 정계, 학계 등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55억원의 예산을 들여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의원들은 “정부안은 언론의 부도덕, 부조리를 전제로 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며 “언론을 통제하거나 좌지우지 하려는 발상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뜻을 모았다. 대의원들은 “특히 공무원 접촉 제한은 기자들의 취재영역을 축소시킬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의 알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정보공개 확대와 브리핑 내실화를 먼저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대의원들은 “정부가 정부안에 유리한 조사내용만을 공개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면서 “기자협회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국내 언론사회의 문제점과 선진국의 취재지원,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전면 재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대의원들은 특히 “정부는 전체언론이 부도덕하고 문제가 있는 특권기관인 것처럼 호도하고, 여전히 기자들의 담합과 비리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듯 주장하며 언론을 매도하고 있다”며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한 비난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은 특히 “이상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헌법소원을 포함한 모든 법적대응을 불사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경주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8
- 중국 동북지역의 군신 양세봉의 일대기 중국 동북지역의 군신 양세봉의 일대기 국립묘지와 평양애국열사릉 양쪽에 묘소가 있는 유일한 독립투자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장군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양세봉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1920~1930년대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양세봉 장군은 수십차례에 걸쳐 조선진공작전을 펼친 항일 명장이다. 거듭된 전투에서 승리하자 항일전선에 합류하려는 만주족과 한족이 양세봉을 찾아왔고 그의 부대는 1000명을 넘어섰다. 양세봉 장군의 활동 근거지였던 요령성 신빈현(옛 홍경현) 왕청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석상이 세워져 있고,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군신(軍神)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활동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양세봉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의형제를 맺었고, 해방후 그의 가족들은 북한으로 이주해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그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그의 묘소가 평양애국열사릉에 있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남한에서 홀대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양세봉의 묘소는 북에도 있지만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도 있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유일한 독립투사라는 점에서 그의 항일투쟁의 무게가 느껴진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그의 묘소가 있지만 남쪽 묘지는 허묘다. 양세봉은 1934년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이로부터 암살됐으며 그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파헤쳐져 목이 잘린 채 거리에 걸렸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의 시신을 다시 수습해 가매장했으며 가족들은 독립 후 그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겼다. 특이한 점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의 원저자는 만주족 출신의 역사가 조문기에 의해 쓰였고, 이 책을 옮긴이는 퇴역장성으로 1991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낸 안병호 제정구기념사업회 이사다. 역자는 서문을 통해 “편협한 퇴영적 민족주의를 넘어 진취적으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이 실천한 ‘개방적 민족주의’와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방략’에서 시사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조문기 지음 안병호 옮김 나무와숲 1만5000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4
- “중국 증시는 규칙 없는 도박장” 중국에서 대중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학자이자 정협(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우징렌(吳敬璉)은 현재의 중국 증시를 “규칙 없는 도박장”으로 묘사했다. 지난해 3월 정협 기자회견에서 그는 “중국경제의 기상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주식시장이 국민경제의 발전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올해 3월 양회 기간에 가진 인터뷰에서 우징렌은 더욱 강한 어조로 “요즘 주식시장은 비정상”이라 못박았다. 중국에 비해 미국의 주식소유자가 월등 많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개념을완전히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 반박했다. 어떤 미국사람도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직접 주식투자를 하지 않지만 다수 중국인들이 컴퓨터 앞에서 자신이 직접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기본적으로 장기투자를 하고 회전율이 2년 이상이지만 중국투자자의 회전율은 6개월 이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 분위기는 그의 주장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우징렌은 체코 작가 푸치크의 명언으로 대꾸했다. “사람들아, 나는 당신들을 사랑하지만 당신들은 경계하는구나.” 참고로 우징렌은 중국 주식시장 초기에 시장 안정화를 위해 크게 공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출간된 그의 저서 은 수년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 서문에 적은 글이 그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시대의 행운아로서 개혁의 첫 번째 성과를 누리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수많은 평민군중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럴싸한 생활을 추구할 평등한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생활의 방편이 없는 해직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그마한 저축을 들고 어쩔 수 없이 불법이 판치는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가?”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31
- 새책 - 인사동 마니아의 눈으로 본 한국의 문제 인사동 마니아의 눈으로 본 한국의 문제 “한국은 작은 미국인가” … 강북의 강남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 대한민국 사용후기 J.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갤리온 1만2000원 최근 한 지상파 방송에서 한국에 장기간 체류중인 외국 여성들을 패널로 초청해 토크쇼와 같은 형식의 쇼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참석한 여성들의 미모와 각계각층에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간접경험을 제공해 준다. 경어를 잘못 쓴다거나 정확한 단어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상당하다.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웃음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들이 한국에서 느끼고 경험한 내용에 있다. 출연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한국인들의 불친절과 외국인에 대한 싸늘한 시선, 선입관을 가지고 대한다거나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모습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쇼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한 한국인의 문제점을 잘 짚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이들이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있거나 뼈 있는 비판으로 한국인을 비판할 경우 여지없는 뭇매를 맞는다. J. 스콧 버거슨이 지은 ‘대한민국 사용후기’는 이러한 쇼프로그램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이나 해외에 살던 교포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그들이 본 한국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다만 공중파에서 나오는 단어보다 더 강하고 토속적이고 거침없다는 점만 제외하고 말이다. 대개 한국의 문화나 한국인에 대해 비판하는 책들은 두가지 부류다. 저자의 짧은 지식과 자국 문화를 기준으로 한국인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대해 오래 체류해 있고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으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 사용후기’는 후자에 맞다. 물론 책 내용을 다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 사회 부조리를 제3자의 눈으로 지켜보고 충분한 지식으로 이를 해석·비판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사랑한 만큼 미워졌다 = 책의 내용을 들여 보기에 앞서 서문을 읽다보면 묵은 변비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를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던 만큼, 한국이 미치도록 미워졌다”고 말했다. “작은 미국이 되려고 용을 쓰는 것이 싫었다. ‘섹스 앤 더 시티’와 ‘스타벅스’를 무슨 새로운 매스마켓 종교라도 되는 듯이 숭배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꼴 보기 싫었다. 음악에서 패션과 댄스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를 지배하는 거품이 잔뜩 낀 힙합 문화를 증오했으며, … 쓰레기 같은 백인들이 쓰는 ‘폰 더치’ 트럭 모자를 쓴 꼭두각시 한국인들이 싫었다. 패리스 힐튼이나 니콜 리치 같은 싸구려 딴따라들이 ….” 미국 문화를 생각 없이 따라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거침없는 비판을 하면서 지도층에 대해서도 화살을 겨눴다. “김정일만큼이나 ‘자주’를 자주 언급하는 좌파 민족주의자 노무현조차 결국 때가 되면 잘 훈련된 푸들처럼 조지 부시 앞에서 구르기를 거듭한다.” ◆요정이었다는 이유로 허물어진 옛 궁궐 = 이 책의 정수는 요정이야기다. 속칭 기생집이었던 요정은 한때 한국의 밤 문화를 좌우했지만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 다른 유흥문화에 밀려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일본이 요정과 비슷한 게이샤를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한 것과 다른 모습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인사동의 요정 ‘도원’은 1955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50여년간 장사를 해왔다. 하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정리한다면 관할 구청이 이를 허물고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기와집(도원)의 주인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1877~1955)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919년 임시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갔다 체포돼 압송됐다. 저자는 서울시 협조를 얻어 1923년 서울 중심부 지도를 볼 수 있었고 도원이 의친왕의 사동궁(궁궐의 별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에 외국인인 저자가 한국인 공무원들에게 “역사적인 건물을 허물고 고작 주차장을 지었냐”는 꾸짖는다. 저자는 “어떤 이들은 기생집이 ‘비도덕적’인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없애는 게 낫자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 어쨌건 기생집을 없앤다고 해서 반드시 그 건물까지 때려 부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건물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그 ‘도덕적 오점’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주차장으로 변신한 도원을 놓고 역사를 강간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는 “성인들 사이의 합의에 의해 성을 사고파는 것과, 단지 돈을 벌려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강간한 것, 둘 가운데 무엇이 더 나쁜지는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질투가 근원인 민족주의 = 저자는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사랑보다는 질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의 위협이 있기 전까지 사랑의 대상을 그냥 당연히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완전히 무시하기까지 하는 역기능적 동력이라는 것이다. 주위에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는 중요함을 모르고 있다가 저자가 국내에서 당한 과도한 민족주의 사례는 내가 했음직한 그런 일 투성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마냥 행동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 만하다. 그는 천박한 민족주의가 남한과 중국 일본 일부 극우파들 사이에서만 통하고 이러한 과도한 민족주의가 한국만의 네티즌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네티즌(인터넷 시민)이 진정한 인터넷상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현실세계든 온라인에서든 언제나 자기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성숙하고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