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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인터 통역지원사업 ‘호평’ (주)대우인터내셔널(대표 김재용)이 지난해부터 지원하고 있는 이주민 통역지원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안산시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에 위치한 이주민 통역지원센터는 국내 최초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무료 통역상담센터다.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등 이주민들의 언어불편으로 인한 고충을 해소하고자 지난 2008년 3월 대우인터내셔널의 후원으로 개소했다. 현재 이주민 통역지원센터는 중국어, 인니어, 몽골어 등 10개국 언어에 대해 ARS(컴퓨터 음성 응답시스템) 전화(1644-7111)상담과 내방 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인근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 출장 통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년간 3만건 이상의 통역 상담을 실시했다. 올해는 기존 10개국 언어에 스리랑카어와 러시아어의 2개국 언어를 추가해 더 많은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운영은 안산지역 NGO(외국인 노동자의 집, 안디옥 선교회)와 안산시가 함께 책임지고 있어 민·관·기업의 성공적인 사회공헌 협력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4일 안산 이주민 통역지원센터의 2009년 운영 지원금 1억9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전달했다. 지난해 2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김 사장은 “이주민 통역지원센터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형수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5
-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죽었다 살아난 호수’ 더는 없어야 시화호와 함께 한 15년 세월 … “최근 주변 개발로 또 걱정” 경기도 안산시청 공무원 최종인(55)씨.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시화호지킴이’다. 25일 안산시청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씨는 사진기와 동영상 촬영장비를 한가득 들고 있었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비디오테이프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은 그 장비로 찍은 것들이다. 그가 15년간 한결같이 담아온 시화호의 모습이다. 환경지킴이와 시화호가 만나다 최종인씨가 시화호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건 지난 1989년 안산으로 이사하면서다. 연이어 사업에 실패한 뒤, 안산과 시화호는 그에게 안식처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1994년 방조제가 들어선 뒤 시화호는 더 이상 그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다. 공사가 시작되던 1991년부터 갯벌의 물이 눈에 띄게 줄더니 방조제 건설 뒤에는 썩은 생선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가 됐다. ‘최악의 환경재앙’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씨도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호수’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그의 몫이 됐다. 떼죽음을 당해 허옇게 떠오르는 물고기며 조개류를 사진에 담고 동영상으로 전했다. 호수는 거무죽죽한 간장 색으로 변해갔다. 1997년 환경부에서 시화호 조사에 나섰다.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17.4ppm, 대부분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에서는 호수 주변의 오염물질을 탓했는데 시화호가 죽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갯벌이었어요. 갯벌 속에서 수천만마리에 달하는 생물체가 죽어가면서 호수도 썩어간 거죠. 썩은 생물체가 시화호 60%를 죽였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정부는 여론에 등떠밀려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포기했다. 바닷물을 막은 거대한 간석지에 농업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담수호에서 용수를 공급하겠다는 개발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7년 사실상 바닷물이 시화호에 흘러들기 시작됐다. 1999년 2월부터 조개며 바지락 등이 조금씩 살아났다. 2002년에는 시화호 상류까지 숭어들이 살기 시작했다. 시화호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골치아픈 민원인’이 공무원으로 시화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최씨는 안산시청에게 가장 골치아픈 민원인 중 한명이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고발거리를 들고 시청에 달려왔기 때문이다. 밤에는 공공근로로 일하며 사업실패를 수습하고 낮이면 시화호와 시청을 오갔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당시 박강호 안산시 환경과장이다. “1999년 박 과장님이 아예 공무원으로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그 해에 그는 일용직으로 안산시청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전문직 공무원으로 전환, 지금은 지구환경과에서 일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가 공무원으로 변신한 뒤 어려움은 없을까. 최씨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부닥치는 게 많아요. 협의과정이 정말 힘들거든요.”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시민단체 회원일 때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공무원에 대한 시각이 우선 바뀌었다. 물론 공무원들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그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시민단체 일꾼에서 공무원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시화호에서 보낸다. 사진을 찍고 새들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감시한다. 여유가 생길 때면 ‘무리한 개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세상에 전하고 있다. 각종 강의에 참여, 자신이 겪은 일들, 환경에 대한 생각 등을 가급적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고기가 넘쳐나는 호수 시화호는 더 이상 죽음의 호수가 아니다. 최씨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물고기가 넘쳐난다. 잠수부가 한번 들어가면 수도 없이 소라를 건져내온다. 하지만 최종인씨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시화호는 살아났어요. 하지만 아직은 시화호에 대한 관심을 멈출 때가 아닙니다. 어찌보면 시화호로서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시화호는 요즘 때아닌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에 골프장 5개가 들어서고 북측엔 시화 멀티테크노밸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측엔 농경지가 조성되고 있다. “당장 갈대가 걱정입니다. 정화작용으로 시화호를 지켜주던 갈대가 개발과정에서 없어지면 오염물질이 다시 시화호에 들어올 거거든요.” 최종인씨는 요즘 또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죽음의 호수로 인식이 굳어져버린 ‘시화호’라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시화호는 원래 시흥시와 화성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에요. 이름에 목적이 없어요. ‘죽었다 다시 살아난 호수’라는 뜻을 담은 새 이름이 있었으면 해요.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의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6
-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초안)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 제목 : “다시는 이런 잘못 되풀이 말아야죠” 부제 : 시화호와 함께 한 15년 세월 … “최근 주변 개발로 또 걱정” 최종인(55)씨를 만난 곳은 그가 근무하는 안산시청 작은 사무실이었다. 한눈에도 상당한 고가의 카메라와 동영상 카메라를 가득 들고 서 있는 그를 사무실 문 앞에서 만났다. 사무실 안은 예상대로 시화호와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비디오테이프가 정리돼 있고 벽면에는 그가 찍은 시화호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시화호 지킴이’.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다. ◆운명처럼 만난 환경지킴이와 시화호 = 최종인씨가 처음 시화호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인연은 지난 1989년 안산으로 이사오면서 부터다. 어린 시절 시작한 전기 기술에 인생을 걸었지만 사업은 연이어 실패를 거듭한 후였다. 그렇게 찾아든 곳이 안산이었고 바닷가가 있는 안산은 그에게 하나의 위안이었다. 그가 안산에 들어올 쯤 환경운동도 슬며시 찾아왔다. 안산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던 90년대 초반 송파구에서 발생한 민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환경운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화장실 물이 그대로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면서 악취가 발생한 민원이었다. 당시 공해추방운동본부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93년 환경운동연합에 정식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연합 안산 통신원으로 자리잡게 됐고 이런 인연은 자연스럽게 방조제가 건설되는 시화호로 그를 이끌었다. “94년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찾아간 시화호는 썩은 생선냄새로 진동했어요. 이미 공사가 진행되던 91년부터 갯벌의 물이 눈에 띄게 빠지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환경사태였던 시화호 사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부터 최씨는 정신없이 이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수없이 죽어 떠오르는 물고기와 조개류 등 시화호는 말 그대로 간장색의 ‘죽음의 호수’로 변해갔다. 1997년 환경부 조사로 시화호의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17.4ppm이었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에서는 시화호 주변의 오염물질이 결정적이라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화호를 죽인 것은 죽은 갯벌 속에서 죽어간 수천만마리의 생물체였습니다. 생물체의 썩은 물질이 시화호의 60%를 죽였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정부는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포기했다. 바닷물을 막은 거대한 간석지에 농업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담수호를 통해 용수를 공급한다는 개발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7년 사실상 바닷물 유통이 시작됐다. 99년 2월에 조개 바지락 등이 조금씩 살아났다. 2002년도에는 시화호 상류까지 숭어들이 살기 시작했다. 시화호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공무원으로 = 시화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최씨는 94년 본격적으로 시화호에 살리기에 나섰다. 부상당한 새들을 세 들어 사는 집 옥상에서 돌보기도 하고 시화호를 죽이는 온갖 인간들의 행위에 맞섰다. 1994년에는 안산환경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 이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안산시청에게 최씨는 골치아픈 민원인이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고발꺼리를 들고 시청에 달려왔다. 이런 그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당시 박강호 안산시 환경과장이 밤에는 공공근로, 낮에는 시화호로 달려가는 그를 보고 아예 공무원으로 일할 것을 권했다. 최씨는 이를 받아들여 99년 일용직으로 안산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전문직 공무원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안산시 지구환경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가 공무원으로 변신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죠. 아직도 부딪히는 게 많아요. 협의과정이 힘들어요.”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시민단체 회원으로 부정적으로 보던 공무원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물론 공무원들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그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공무원이 됐다 해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시화호에서 보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새들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감시하는 역할은 그의 몫이다. ◆“시화호 이름을 바꾸고 싶다” = 이제 시화호는 더 이상 죽음의 호수가 아니다. 최씨의 말처럼 “물반 고기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넘쳐난다. 잠수부가 들어가면 소라를 수없이 건져낸다. 하지만 아직 그가 가야할 길은 멀다. “시화호는 지금 살아났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시화호는 지금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화호는 요즘 때 아닌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에 골프장 5개가 들어서고 북측엔 시화 멀티테크노밸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측엔 농경지가 조성되고 있다. “당장 갈대가 걱정입니다. 정화작용으로 시화호를 지켜주던 갈대가 개발과정에서 없어지면 오염물질이 다시 시화호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는 최근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러 저러한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들, 환경에 대한 생각 등을 이들에게 알린다. 무리한 개발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그들에게 알리고 있다. 요즘 최종인씨는 시화호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화호는 원래 시흥시와 화성시의 합성어다. “이름에 목적이 없어요. 죽었다 다시 살아난 호수라는 뜻이 담긴,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의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이 때문에 최근 논란을 빚는 경인운하나 대운하도 그에게는 근심거리다. “너무 급해요. 100년을 보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당장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5
- “퀴즈 영웅 박춘록, 베스트셀러 작가 박춘록…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어? 나도 아는 문젠데? 나도 한번 나가 봐?’ 하지만 결승전으로 치닫고 경합이 치열해질 즈음에는 귀신같이 맞히는 그들을 보며 혹시 PD랑 아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TV 속에서 ‘아줌마 퀴즈 영웅’ 박춘록 씨가 탄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퀴즈 프로그램 4개에서 우승했다니 의혹의 눈초리를 더욱 거둘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주부 퀴즈 영웅을 찾아 청주까지 다녀온 뒤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퀴즈 영웅은 ‘그냥’ 탄생될 리 없음을 박씨에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취재|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사진|최선주충북 청주시 모충동의 한 아파트. 퀴즈 영웅 박춘록 씨(41)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퀴즈 영웅이 되는 그 비결이 뭐냐고. 그가 꼽은 첫째 비결은 ‘자신감’이다. ‘난 할 수 있어, 달인이 될 수 있어, 영웅이 될 수 있어!’ 그는 퀴즈대회를 앞두고 혼자 이런 생각을 곱씹었단다. 두 아들에게도 물어본다. 하지만 그 질문은 항상 “엄마, 퀴즈 영웅 될 수 있지?”하는 의문형이 아니라 확인형이다. 행여 아들 중 하나라도 “글쎄요…” 하고 얼버무리면 그날로 혼쭐이 난다.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확신을 갖게 하는 게 그가 자신감 키우는 방법이다. ‘1단계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다 공연히 망신살만 뻗치면 어쩌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단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뭔가를 시작할 때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을 만큼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못한다는 소리를 아예 하지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이루어지니까요.” 이것이 박씨가 40년을 살면서 깨달은 인생의 원동력이다. 2남 1녀 중 둘째,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다 “공부한다는 놈을 더 가르칠걸….” 요즘 박씨의 친정엄마는 이런 얘기를 자주 하신단다. 사연은 이렇다. 박씨는 2남 1녀 중 둘째. 어린 시절 박씨는 공부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성적은 중학생 때까지 60명 중 5~6등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성적표를 가져가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그저 도장 찍어 가라는 얘기만 듣곤 했다고. 아버지가 몸져누우신 상태, 어머니 혼자 돈을 벌어 온 가족이 먹고살던 시절이라 오빠와 남동생에 치여 그의 공부까지 뒷바라지해주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형제들 기죽을까 봐 그랬구나 싶다가도, ‘엄마가 칭찬 한 번만 해줬다면 더 열심히 했을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박씨는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3교대로 일하며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받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그의 선택.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는 포부였다. 공부는 잘하는데 집 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인 그곳에서 박씨는 첫 시험부터 1등을 했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고3 무렵 앓아 누우면서 졸업 후 치른 학력고사 성적도 기대 이하로 떨어졌다. “4년제 대학에 갈 점수는 안 돼고, 해서 대전전문대 원서를 냈는데 합격했어요. 당시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였는데, 제 수중엔 100만 원이 전부였죠. 그걸 갖고 등록금 내고 대학 다닐 생각하니까 막막하더라고요.”여자가 아니라 사회인 되고 싶어 시작한 자격증 공부 버는 족족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다 보니, 그에게 남은 건 퇴직금이 전부였다. 결국 당찬 둘째는 대학 대신 속기학원에 등록했다. 6개월간 공부하던 그는 결국 고향인 충남 부여로 내려갔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박씨가 아니다. 고향에서 전자 회사, 포장 공장 등을 오가며 공장 생활을 하던 박씨는 좀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신문 구직 광고란을 살펴보다 ‘고압가스화학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러나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여자는 현장 투입이 안 되니 자격증만 걸어놓고 경리를 하라는 얘기가 들렸다. 매일 책상과 바닥 닦기에 신물이 나던 차에 신문에서 여자 중장비 훈련 모집 공고를 본 그는 그 길로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이후 롤러운전기능사와 굴삭기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4년 7개월가량 전국을 돌며 아스팔트를 깔러 다녔다. 안산, 반월부터 멀게는 진주까지 다니는 사이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2년간 연애, 자취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퀴즈 영웅에게도 무명 시절은 있었다퀴즈 프로그램을 빼먹지 않고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는 결혼 1년 만에 첫 퀴즈 프로그램에 나선다. <알뜰 살림 장만 퀴즈>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말 그대로 살림이 탐나서 참가했다. 늘 TV로 보기만 하다가 때마침 대전 지역 예심이 있다는 소식에 참가했다가 본선까지 진출, 4명 중 3등을 기록했다. 성급하게 방망이를 누른 것이 패인. 하지만 지금껏 주방에 놓인 장식장 등 당시 얻은 살림살이는 어마어마하다. 살림이 들어 있는 문제만 맞힌 결과다. 3등이라는 결과 때문인지, 당시 멀리 서울까지 응원 왔던 남편은 그뒤 다시는 응원길에 동행하지 않았단다. 그 역시 창피한 마음에 행여 누가 알아볼까 싶어 6개월간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다시 용기를 낸 건 2006년. 평소 즐겨 보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청주에서 벌어진다는 말에 구경이나 갈까 싶어 나섰다가 합격했다. 워낙 따로 공부한 게 없어 합격 전화를 받고는 “저, 공부 좀 하게 좀 늦게 불러주심 안 될까요?” 하며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두 달 뒤 우승하고, 연말 왕중왕전에 나가 우승을 거머쥔다. 그 기회로 <우주인 서포터스 선발 퀴즈쇼> <퀴즈 대한민국>에까지 나섰다고. <퀴즈 대한민국>을 앞두고는 그의 말처럼 무식하게 공부했다. 다음 카페의 ‘일반 상식 따라잡기’와 ‘퀴즈피아’에 고수들이 올린 자료를 기본으로 나만의 자료를 만든 뒤, 최신 시사 중심으로 보고 또 봤다. 무작정 외우지 않고 방향을 돌려가면서 질문을 유추하고, 신문 정독도 빼먹지 않았다. 프로그램 전 열흘가량은 아이들 밥 챙겨주는 시간 빼고 남은 12시간 이상씩은 공부했다고. 이렇게 퀴즈 영웅은 탄생됐다. ‘운’이 아니라 숱한 자격증을 따며 자신을 연마한 박씨 인생의 결과다. 퀴즈 영웅이기 전에 알뜰한 두 아이 엄마대한민국 퀴즈 영웅이 된 뒤 집안에서도 대우가 달라졌다. 오랜만에 들른 시댁에서 시누이나 남편이 “야~” 하고 부르면 시아버지가 “퀴즈 영웅한테 어디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며 한 말씀 하신단다. 며느리가 퀴즈 영웅됐다고 동네 잔치까지 해주신 시아버지다. 매일 TV 속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 아줌마들이 우승하면 “저 아줌마 독한 거 봐!” 하던 남편도 남자들은 술, 담배를 해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두 아들 앞에서도 보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꿈꾸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마음에 뿌듯하다. 하지만 그뿐. 퀴즈 영웅이라 해서 생활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2009-02-20
- 경기도 방범용 CCTV 설치 확대 연쇄살인범 강호순(38) 검거에 폐쇄회로TV(CCTV)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경기도는 올해 방범용 CCTV 추가 설치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늘리기로 했다. 도에 따르면 최근 군포·안산·시흥 등 경기 서남부 지역이 범죄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문수 지사가 지난 1일 담당 부서에 CCTV 추가 설치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도는 경기지방경찰청 및 시·군과 협의, 이미 올해 계획이 수립된 1000대 이외에 추가 설치가 필요한 곳을 파악한 뒤 추경예산에 관련 사업비를 반영할 계획이다. 또 도는 CCTV 설치비 중 일부를 특별교부금으로 지원해 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요구했다. 도는 지난해 말 현재 1222대인 각 시·군의 방범용 CCTV를 당초 올해 1000대 추가 설치해 모두 2222대로 늘릴 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도는 조만간 의왕, 하남, 동두천 등 3개 지역 경찰서 설치와 정원보다 1032명 부족한 경기지역 경찰인력의 충원, CCTV 설치비의 국비 지원 등 치안과 관련한 종합적인 건의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수원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03
- [일자리 희망찾기]2. 최악서 일군 희망 ④ 중소기업서 희망 찾는 한도경씨 온갖 일 다해보니, 결론은 기술 … 고용한파 극복 비결은 마음가짐 “4일간 밤새운 적도 있어요. 새벽에 1시간 눈을 붙이는데도 피곤한 줄 몰라요. 왜냐구요? 여긴 배울 게 너무 많거든요.” 지난 13일 밤 8시 안산시 반월공단 내 시스매니아에서 만난 한도경(29)씨는 복잡한 카메라 전자회로 기판에 정신을 몽땅 뺏긴 상태였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배선시스템의 결함을 찾는 연구개발팀의 업무를 돕는 중이었다. 그는 현장에 시공된 제품을 다시 뜯어보면서 ‘고객이 무엇인지’, ‘팀워크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씨는 지난달 연구개발실에서 ‘수습 딱지’를 뗐다. 지난해 11월 입사한 그는 최근 심각한 고용한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찾아냈다. 그는 ‘직장을 돈 버는 곳이 아닌 배움터라고 여긴 마음가짐이 비결’이라고 했다. 정식사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업무에 적응해야 했다. 전자산업기사, 무선설비산업기사, 회로설계산업기사, 전자기기기능사, 무선설비기능사, 전자계산기기능사, 컴퓨터운영기기기능사 등 7개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온통 낮선 것들뿐이다. 근무조건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1800만원 연봉에 고정수당은 없다. 다만 퇴직금은 매년 중간 정산한다. 근무시간도 길다. 일주일에 6일 근무. 정해진 출근 시간은 오전 9시30분. 밤 8시가 퇴근시간이지만, 보통 10시나 돼야 회사 정문을 나선다. 서울 대방동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는 지하철로 1시간 10분 거리다. 인근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잦다. 한씨가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은 수준 높은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폴리텍대학 졸업반 시절 담당교수는 기술을 배우려는 열정이 높은 그에게 ‘업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가 있다’며 취업을 권했다. 실제로 와보니 이 회사는 생산과 직원들도 대부분 전자과를 졸업한 엔지니어고, 경쟁사들도 시스템업계 최고 기술회사라고 평했다. 20명 직원에 매출은 40억원. 올해 목표는 두배 높은 80억원이다. 비정규직이 없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그만큼 직원들을 아낀다는 의미다. 다른 회사에 없는 매력적인 급여제도도 있다. 매년 연말이면 이익금 일부를 개인 기여정도에 따라 인센티브로 나눠준다는 것이다. 한씨가 이처럼 기술 욕심을 내는 것은 고교 졸업 후 사회를 경험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인문계 고교를 나와 대학에 떨어지자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고, 그저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안해본 일이 없었어요. 세차장·PC방 아르바이트에서 아파트 건축일, 한식 중식 배달일 모두 해봤죠. 군 제대 후 전자제품 유통업체서도 일했는데, 결국 내가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한씨는 민간직업전문학교를 들어갔다. 4개의 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고급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폴리텍대학을 찾아갔다. 2년간 3개의 기사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했다. 한씨에 대한 회사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시스매니아 이종수 개발실장은 “한씨가 회사의 주요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며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한씨는 ‘어쩌면 인생이 배움 그 자체일수도 있다’고 했다. 새로운 자격증이나 높은 학벌도 무언가를 더 배울 기회를 얻기 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개인 발전은 회사 발전과 떨어질 수 없잖아요. 지금 목표는 회사가 나에게 작은 일이라도 맡길 수 있는 수준까지 배우는 거예요. 배워야죠. 배우면서 기다려야죠.” 안산=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 워크넷으로 본 중소기업 구인 현황 1월 7만 구인중 80% 중소기업 고용한파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채용하려는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활발한 구인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업들의 신규 구인인원은 7만2599명. 이중 100인 미만 중소기업 구인자수는 5만7868명으로 79.7%나 됐다.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 빈 일자리는 적어도 10만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노동부가 지난 연말 300인 미만 사업체의 미충원근로자(고용주가 근로자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채용에 실패한 경우)를 집계한 결과 8만6000여명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300인 미만)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취업지원자 없거나(33.9%), 직무능력을 갖춘 지원자 없었기 때문(23.2%)이었다. 노동부도 현재 빈 일자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워크넷에 등록된 상시인력부족업체를 대상으로 전화조사 및 방문조사를 실시중이다. 또 워크넷에 6번 이상 구인등록한 1만7000여곳과 외국인 근로자를 5인 이상 고용하고 있는 업체도 조사대상이다. 노동부는 이런 곳을 찾아 상세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실업급여 수급자와 고용지원센터 심층상담자 중 취업의욕이 강하고 눈높이 조절이 가능한 구직자에게 추천한다는 방침이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18
- 안산중앙병원·사랑의공동체 진료 협약 임호영 안산중앙병원장은 17일 안산 상록구 소재 노인의료복지시설인 ‘사랑의 공동체’와 응급환자 진료, 가정간호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사랑의 공동체는 2005년도에 설립돼 50여명의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안산중앙병원은 지역에서 유일한 공공의료종합병원이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18
- 경기 ‘국제레저항공전’ 엠블럼 공개 경기관광공사는 오는 5월 1~5일 안산에서 열리는 ‘2009 국제레저항공전시회’의 엠블럼과 슬로건, 캐릭터를 17일 공개했다. 엠블럼은 2대의 비행기가 창공을 날면서 남긴 자취가 각각 눈·코와 입 모양이 돼 웃는 얼굴 형태를 만들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파란색과 녹색 비행기의 자취가 만든 미소 띤 얼굴을 통해 하늘에서 펼쳐질 즐거운 축제와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슬로건은 지난달 도민 대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창공에서 그리는 꿈과 희망’으로 결정됐다. 캐릭터는 ‘비두리’가 채택됐다. 수원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18
- 경기 ‘국제레저항공전’ 엠블럼 공개 경기관광공사는 오는 5월 1~5일 안산에서 열리는 ‘2009 국제레저항공전시회’의 엠블럼과 슬로건, 캐릭터를 17일 공개했다. 엠블럼은 2대의 비행기가 창공을 날면서 남긴 자취가 각각 눈·코와 입 모양이 돼 웃는 얼굴 형태를 만들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파란색과 녹색 비행기의 자취가 만든 미소 띤 얼굴을 통해 하늘에서 펼쳐질 즐거운 축제와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슬로건은 지난달 도민 대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창공에서 그리는 꿈과 희망’으로 결정됐다. 캐릭터는 도의 상징새인 비둘기를 조종사로 의인화 한 ‘비두리’가 채택됐다. 임병수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이번 행사에는 국내 30여개 업체가 참여할 예정”이라며 “일회성 행사가 아닌 대한민국 항공산업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18
- 군포살해범 ‘실종자 7명 살해’ 자백 군포 여대생을 납치해 살해한 강호순(38)이 지난해 11월 수원에서 실종된 주부 김 모(48)씨를 비롯해 총 7명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30일 오전 강씨가 경기서남부 지역에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 사이 실종된 나머지 부녀자 5명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경찰에서 2005년 전처 사망으로 1년여 동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고 여자들을 보면 살인충동을 느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경찰은 30일 강씨의 수원 당수동 축사 트럭에서 압수한 강씨 점퍼의 소매에 얼룩으로 남아있던 체액(또는 혈흔)의 DNA가 사라진 김씨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강씨를 추궁해 1차적으로 김씨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안산에 사는 김씨는 지난해 11월 9일 오후 6시쯤 지인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수인산업도로 버스정류장에 내려 휴대전화로 남편에게 “집에 들어가겠다”고 통화한 뒤 연락이 두절돼 가족들이 다음 날 경찰에 미귀가 신고했다. 경찰은 그동안 김씨가 승용차에서 내린 버스정류장과 주변 야산 일대를 중심으로 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김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강씨의 축사에서 불과 1.5㎞거리라는 것에 주목해 그동안 발생했던 경기서남부 지역 부녀자 실종사건과 강씨와 연관이 깊을 것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추궁한 결과 범죄 사실 전부를 자백 받았다. 군포여대생과 김씨를 포함해 2006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여 동안 발생한 7명의 부녀자 실종사건의 장소가 모두 강씨의 당수동 축사를 중심으로 반경 7㎞ 이내의 거리에 있다. 강씨는 2004년 체포된 유영철, 2006년 체포된 정남규 이후 최대 인원인 총 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드러났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약 1년 동안 서울에서 부유층 노인, 윤락여성 20명을 상대로 연쇄살인 행각을 벌였으며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2년여 동안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일대에서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 등 13명을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