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검색결과 총 5,824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동북3성 쌀은 한국산”(관련 기사) 청나라때까지만 해도 동북3성은 벼재배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콩이나 밀 등 잡곡을 주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선후기들어 조선족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벼 재배가 시작됐다. 날씨가 추워 못자리를 내지 못했고 직접 파종을 통해 벼를 재배했다. 문화혁명 이전까지는 생산성이 높지 않았다. 80년대이후 비닐하우스를 통한 못자리가 가능해지면서 벼의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지금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동북3성에서 생산된 쌀을 수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북3성 논 경지면적은 260여만㏊으로 우리 나라 논 경지면적 107만㏊보다 두배이상 많다. 2001-10-31
- 제65회 기술사 합격자 명단 △가스 김남규 김응호 김현태 박몽주 이상훈 이응록 조광선 한귀호(8명) △건설기계 강호육 권영호 김원호 김종성 김준성 박봉두 변성준 안철홍 원윤호 이정덕 이찬용 장경래 장석동 정인철 정재복 정종협 지석철(17명) △건설안전 강정우 김성진 박진선 심영수 윤희봉 이상철 이창목 임재식 임재창 전한권 정세균 주성관(12명) △건축구조 곽철승 구근모 김경민 김용남 김형준 나민수 남궁진 유정웅 문원태 박동순 성열영 송성용 이승일 이채복 이충열 이하정 정봉오 정석재 조남철 조범수(20명) △건축기계설비 강봉규 고창현 곽대근 구윤모 김치권 문기주 문종권 박상열 서범식 선수일 손성영 유상열 윤종영 이기욱 이이길 이임상 이춘기 임중호 조재규 조준범 황완진(21명) △건축시공 강동일 김경호 김경훈 김무봉 김미영 김선호 김성훈 김성훈 김승수 김용수 김원일 김정래 김종재 김진우 김태현 노창근 유윤학 마선일 문기호 민경조 민병철 박두현 박성배 박인산 박정순 박정한 박찬우 박형철 방세영 배승호 서현만 석진혁 설원희 손석헌 송효근 신재한 안준오 오광열 원요재 유성근 유재신 윤석시 이 철 이기현 이도행 이동준 이병욱 이봉식 이상배 이성무 이성주 이영용 이용집 이원현 이정인 이종열 이철식 이호면 임주혁 정헌욱 조장현 최재헌 허준회 황용호 황원용(65명) △건축전기설비 김득중 김용강 김학선 박규남 심경택 이윤열 이해수(7명) △건축품질시험 김완기 김재민 박치선 이용희 정영기(5명) △고분자제품 김지혁(1명) △공업계측제어 최권희 최인호(2명) △공업화학 오승호(1명) △공장관리 고영진 김기영 김창규 문병훈 문선민 민병석 박석하 심원보 양희정 윤철오 이원규 조수형 차용구 홍창수(14명) △공조냉동기계 곽종섭 김용원 김원구 김정기 신희열 오명준 오희선 이남기 이상욱 이욱범 이인배 임문택 임중호 장근호 전용덕 조대형 조성은 채왕병(18명) △교통 김태현 백승배 서영배 신경호 엄문성 유경상 이길운 진준일 최흥순 한용석(10명) △금속재료 김경주 김상석 김상태 문인채배창환 손상언 송재형 우영욱 이승희 전채홍 정원종 최동준 한상호(13명) △금헝 권혁홍 박광희 오병섭 윤여권 최권주 한수훈(6명) △기계공정설계 김영복 이동기(2명) △기계안전 강정배 김승환 김원선 민태문 이만재 임춘근 전관옥 전용택 채창열(9명) △기계제작 이종규 차정식 최경근 허윤탁(4명) △농화학 김경선 엄한용 윤재윤 이수영 이수형 이승헌 최주현(7명) △대기관리 박성규 박수진 박정흠 변윤환 윤중섭 한상준 허재황(7명) △도로및공항 강주영 김정수 김종락 김형철 박병재 양우준 여찬수 오원호 이상규 이용욱 이준구 장석현 전현익 조남승 조연우 조영제 한규원 한성기(18명) △도시계획 김근태 정광덕(2명) △발송배전 김경식 김영진 박재원 여경규 원성배 이종호 이청준 장창현 최성엽(9명) △방사선관리 윤창원(1명) △산림 김영도 유지현 박삼봉 손재호 이성일 임병준 정규원 정수경(8명) △산업기계 고광훈 김상열 김종식 유정태 이래홍(5명) △산업위생관리 권오윤 김규완 김동일 김재웅 박성호 임남구 (6명) △상하수도 변석호 오영기 조혁진(3명) △선박건조 강준성 신현태(2명) △선박기계 김승진 김용철(2명) △선박설계 박성우 서관희(2명) △세라믹 김상영 안형수 한동희(3명) △소방설비 강주생 박영두 이광흠 최 혁(4명) △소음진동 강철호 박광현 박정석(3명) △수산양식 김용득 배희찬 성풍만 이용한 정성욱 황평길(6명) △수산제조 김현주(1명) △수자원개발 김형일 이광야 이우열 최용승(4명) △수질관리 박광규 박영준 윤여인 이지형(4명) △시설원예 배창용(1명) △식품 권영환 김기준 김성옥 김수경 김종욱 박은경 소관순 송인환 옥주안 이경애 이경희 이영수 이효숙 임성기 임재윤 장미라 정정순 조원일 최남순 최원진(20명) △어로 강동양 김충식 임동규 조현수 하봉수(5명) △용접 남성길 서상철 이광희 이정진 최성대 최홍열(6명) △원자력발전 강영근 김선배 김성태 김주운 김형민 박성규 서규민 손영규 송관우 안 철 양대근 이종희 정찬영 추강일(14명) △유체기계 오광석 이광헌 이송규 이인환 이준호 이중섭 정구충(7명) △응용지질 김규범 김지욱 박정훈 손영철연영흠 윤일중 이웅주 장석진(8명) △전기안전 나동채 박동율 이양표 장영후(4명) △전기철도 박응석 안영훈 양응초 정찬웅(4명) △전자계산기조직응용 권정삼 권창현 김숙영 김호태 박미옥 최요제 한현민(7명) △정보관리 강봉기 권혁섬 김광국 김 명 김선수 김영배 나중수 유성권 송병호 오병곤 윤성원 이돈희 이성길 이주연 임미영 정찬호 지광열(17명) △정보통신 김 활 나원경 손영태 오호근 우제택 이성영 이철수 전필복 조일권 추칠엽 한명열(11명) △조경 양효현 오승봉 유덕율 최병순(4명) △종자 김규성 김완수 김은석 김진원 노희선 손주석 염학수 전동중 정운섭 정형삼 황현직(11명) △지구물리 권영덕 김민권 박성주 백기현 원종근 최보규(6명) △지적 김영학 김정민 이재기(3명) △차량 김태훈 목희수 박영철 윤병국 이석영 정장만(6명) △철도 강윤식 김강석 김몽용 김재학 남기전 나정균(6명) △철도신호 박한제(1명) △철도차량 김영상 박문규 송문석(3명) △축산 김상록 김석조 김정국 김찬호 노병환 손이석 이응우 이재동 이정범 조봉래(10명) △측량및지형공간정보 김계현 성천복 송용학 유근배 최승필(5명) △토목구조 곽명순 김상석 김인섭 김 재 김재홍 김정관 박진범 박창민 배문교 백광규 신주환 양 붕 윤정현 이기종 이영석 이용일 이태호 이현직 임철수 전재영 정구헌 정승욱 주성낙 황근하 황인구(25명) △토목시공 강대선 강성곤 강성민 강준우 강태학 강현식 고영택 고재경 공인규 공진희 곽태호 길성국 김기수 김기영 김명설 김상옥 김선주 김성규 김승호 김영화 김용수 김재현 김종갑 김종철 김주태 김주호 김 진 김창엽 김춘수 김태훈 김한성 김현태 김효근 도상덕 박덕노 박도석 박복흠 박상묵 박원휘 박재호 박종태 박진보 박홍조 배경진 백종명 서승명 성명준 송상훈 송현식 신상윤 신영수 신중경 양경섭 양미호 양상영 양주생 양학승 여권영 연제문 염우균 오경훈 오순철 오승식 우봉출 유원성 유일열 윤명섭 윤태일 이광우 이광호 이남철 이동우 이동철 이부용 이생구 이석용 이송직 이신우 이연희 이영대 이장호 이현웅 임민수 임선태 임선환 임성달 장상규 장성수 전근중 전병규 전재성 전현영 조염래 조영식 조정연 조종욱 조현석 최경일 최남훈 최상현 최원오 한성원 현성환 현영춘 황상업 황종석(106명) △토목품질시험 구용석 권오석 신광열 윤형식 최수영(5명) △토질및기초 김병연 김창근 박면규 신중훈 엄관용 윤현섭 이동찬 이병웅 이상웅 차달성 한규원(11명) △폐기물처리 김동국 김병환 심재왕 오일환 이광예(5명) △포장 김기섭 김 청 이찬원 전대훈 최승만(5명) △품질관리 권영문 배종욱 석성재 신호건(4명) △항공기관 진명구 최덕호(2명) △항공기체 김영익(1명) △항만및해안 박필규 이범석 장성두 함종철(4명) △해양 이경식 이인호 한동훈(3명) △핵연료 방환기 송종걸 안병헌(3명) △화공안전 김송환 민경란(2명) △화약류관리 김남수 이 효(2명) △화학장치설비 강정훈 고창민 김부기 김현정 남기철 문경진 심민섭 정민조(8명) 2001-12-09
- <국회의원 열전> 민주당 이윤수 의원 이윤수(성남 수정구) 의원은 동교동계 출신이면서 쇄신연대에 가담했다. 이 의원은 “쇄신의 출발점인 인적쇄신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는데 자꾸 다른 데로만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입에서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권노갑 박지원 한광옥 김홍일 이해찬 다섯명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동교동계가 중심이 되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생각은 과욕”이라고 지적하면서 “누릴만큼 누린 사람들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입바른 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고 있다는 걸 잘 안다고 했다. 그는 권노갑 다음으로 자신이 동교동계 비서출신 중에 서열2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난 대선때 가신 임명직 불참선언에 끌어들이려 할 때 국민을 속이지 말라며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동교동계 비판은 거침이 없다. “집권하고나서 그 사람들 좋은 건 다 차지하지 않았느냐”며 “외유를 나가든 2선퇴진하든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는게 당과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서 처신하라”고 했다. 그는 40년간 정치생활의 이면을 망라한 두권짜리 회고록을 집필완료했다. 그 책 속에 동교동계 이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또 한번 파문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대위가 후보·당대표 중복출마를 금지키로 한데 대해 “당원들의 출마자유를 막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해 당무회의에서 이 문제에 못질을 할 것임을 예고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은 을 통과시킨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낙동강 유역은 지난 대선때 영남민심을 좌우했을 정도로 경남북간에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사안이기 때문에, 이 의원은 3대강 유역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해 낸 자신의 정치력에 대해 뿌듯해 했다. 그의 지역구는 70년대 초 대규모 집단이주로 이뤄진 지역으로서 주거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다. 그가 중 고도제한을 완화하자는 개정안을 들고 뛰고 있는 것은 지역구의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6일 민주당 의원총회장에서도 그는 서명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2001-12-07
- 겸암정 뚝향나무는 ‘영변의 약산 향나무’ 김소월 님의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영변의 향나무가 안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와룡 두루 진성 이씨 종택에 가면 특이한 모양을 한 향나무 한 그루가 있어 눈길을 끈다. 안두막한 높이에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펑퍼짐하게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보기에도 멋스럽다. 소백산에서 예고계를 넘어 금학산을 지나 수창산을 거쳐 와룡에 이르러 오룡봉이 우뚝 자리를 잡는다.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두루 종택은 소백산에서 줄기차게 이어온 뒷산도 수려하거니와 앞에 보이는 안산도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 600년을 지켜온 종가터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반달은 희망과 성장 발전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보름달이 꽉 찬 달이어서 기울어짐을 의미한다면 반달은 새로 채워지는 달로 생명의 약동과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뚝향나무는 바로 이 반달 모양의 안산을 바라보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종가에 딸린 경류정 마루에 앉아 있으면 한없이 넓게 퍼져나가는 향나무와 새색시의 입술 같은 반달의 안산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향나무의 푸른 기상과 안산의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집주인의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전설 속의 이정 장군 이 향나무는 퇴계 선생의 증조부이신 이정(李禎)공이 영변 약산에서 가져다 심었다. 이정 공의 용맹은 대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 제비원미륵상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만 예전에는 주위 바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비를 맞지 않게 했다. 그 높이가 돌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수십 길이나 되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없는 높은 곳이었다. 이정 공은 이곳을 자신의 무공 수련 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주위의 돌과 돌을 옮겨다니기도 하고 주위의 지형을 이용하여 무술을 연마하였다. 그리고 석불 지붕에 올라가 공중 회전하여 뛰어 내리는 훈련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다. 공이 최윤덕 장군-세종 때 여진족을 정벌한 공으로 우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使)에 이르렀다-을 따라 건주위(建州衛)에 종군했을 때의 일이다. 건주위는 조선 태종 때 여진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으로 건주본위, 건주우위, 건주좌위 등으로 나뉘었으며, 세종 때 최덕원, 이장(李藏)이 2차에 걸쳐 정벌하고 세조와 성종 때 각각 2차에 걸쳐 다시 정벌하였으나 완전히 소탕되지는 못했다. 이 건주위는 여진이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의 세력이 약한 틈을 타서 세력을 신장하여 청을 건설했던 험준한 산골이어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공이 이곳에 부임했을 때도 큰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아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호랑이는 인근 사람은 물론 가축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니 백성들이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덕원이 유능한 포수를 모집하여 호랑이를 잡으려고 할 때 이정 공이 자청하였다. “장차 오랑캐를 치려고 하는데 내가 미리 이 호랑이를 잡아 나의 용기와 근력을 시험해 보겠다”하고 즉시 말을 달려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호랑이는 이 공을 보자 으르렁대면서 말 뒷덜미를 박차고 뛰어 오르며 공격해 왔다. 공은 날쌔게 말머리를 돌려 호랑이를 활로 쏘아 나뒹굴게 하였으니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탄복을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이정(李禎) 공은 정주판관을 지낼 때 평안북도 약산 산성 축조를 한 공로가 있었다. 약산성은 평안북도 영변 서쪽 12km 지점에 있는데, 관아의 남쪽에 있는 운주루는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그 유명한 약산동대(藥山東臺)이다. 이 약산은 사방이 높은 암석으로 깎아지른 듯이 높아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의주 삭주 강계 등 인근의 군사를 모으기에 가장 좋으며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한 지역이다. 이정 공은 1429년 약산성을 무사히 축조하고 돌아올 때에 다른 재물은 다 버리고 향나무 세 그루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두루종택 앞에 심었고, 또 한 그루는 이정 공의 셋째 아들 판서공 계양이 온혜에서 터를 잡아 집을 지을 때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그루는 화분에 담아 기르며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며 곁에 두고 길렀었다. 그러다가 선산부사 시절 박근손을 사위로 삼게 되었다. 박근손(朴謹孫)은 선산(해평) 박씨로 육 자매(남백경, 류봉수,전보문, 이주, 박근손, 권종) 중 넷째 사위이다. 그 후 선산 부사를 마치고 돌아 올 때에 사위가 너무 사랑스러웠던지 화분의 향나무를 사위에게 주었다고 한다. 자랑할 것은 굳은 지조 세 그루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경류정 정자 앞에 서 있는 뚝향나무 한 그루뿐이다. 온혜 노송정 종택에 있던 것은 노송이 되어 여러 번의 전란과 관리의 잘못으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사위 박근손에게 준 한 그루도 잘 자라다가 임진왜란 때 전란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경류정에 있는 향나무는 600년의 세월을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공의 14대손 이만인(李晩寅)은 그가 쓴 경류정 노송기(慶流亭 老松記-松은 향나무를 가리킴)에서 “향나무는 차가운 계절에도 지조가 있는 나무이다. 지금 바야흐로 차가운 계절(일제시대)이 되어 곤궁하더라도 의리를 잃지 말고 절개를 지키기에 더욱 힘써서 조선의 근본 뜻을 더럽히지 말아야만 이 향나무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더불어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적고 있다. 지금도 그 후손들은 이만인의 다짐처럼 뚝향나무의 푸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구한말의 의병과 일제치하의 독립투사들의 기개도 이러한 향나무의 숨은 뜻이 담겨있었음일 것이다. 가문의 자랑이 높은 벼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굳은 지조를 지켰던 의병과 독립투사가 많았던 것이 자랑이라는 이 집안 어른들의 말은 올곧은 양반 정신이 이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었던 옛 어른들의 모습에서 그저 물질에만 의존하는 오늘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안동문화 지킴이 11호에서 새로 정리하였음. 김호태 경일고 교사 2001-12-10
- 재외동포법 개정 신중해야 리빈 주한중국대사가 정부와 정치권의 개정 움직임에 대해 한-중 관계를 고려한 신중한 처리를 당부해 주목된다. 리빈 대사는 6일 국회 한중포럼 창립기념회 초청 강연에서 재중조선족 동포의 지위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재중조선족은 핏줄로는 한국동포지만 중국 국적을 가진 중국의 일원”이라면서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가간의 관계를 잘 고려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자칫 중국정부와 외교적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지난 5일 당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개정안을 국회에 이미 제출한 상태. 법 개정을 주도한 이주영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외동포 500만명 가운데 중국동포 200만, 옛소련 동포 52만, 무국적제일동포 15만명 등 260만명이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현행 국적주의를 혈통주의로 바꾸는 것이다. 중국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월 29일 일부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법개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2001-12-07
- 인사 대림산업 임원인사 승진 부사장 하진태(河鎭泰) 김종인(金鍾寅) 전무 이동철(李東哲) 김주화(金周和) 송시권(宋始權) 상무 신현국(申鉉國) 김용식(金龍植) 최수강(崔洙康) 신규선임 상무보 조현제(趙賢濟) 김종호(金鍾皓) 김풍진(金豊鎭) 심성걸(沈聖杰) 이주상(李柱相) 정택교(鄭土宅敎) 추문석(秋文錫) 최신현(崔信賢) 한동영(韓東榮) 박형택(朴亨澤) 조용남(趙容男) 김수웅(金秀雄) 하석봉(河析鳳) 김갑수(金甲秀) 신현광(申鉉光) 2001-12-06
- 기존 시가지 20개 구역 73만평 재개발 성남시 구 도심지역의 재개발계획안이 확정됐다. 3일 성남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한 바 있는 ‘성남시도시재개발기본계획안’이 지난달 30일 건설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됐다. 이번 재개발기본계획상 구역 지정대상으로 총 20개 구역, 73만평을 선정하여 그 가운데 6개소는 ‘전면철거방식’으로, 14개소는 ‘수복재개발방식’으로 분류하여 재개발사업을 시행한다. ‘수복재개발방식’은 구역 내 도로·공원·주차장·녹지공간 등 공공기반시설을 성남시가 사업시행자로서 설치하게 되며 건축물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토지주가 신축 또는 개량하는 것으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는 “구 도심지의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군용항공기지법’에 막혀 민간에 의한 개발이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해 시가 사업시행자가 돼 공공기반시설을 시 예산사업으로 건설하게 됐다”며 “구 도심지의 주민 부담이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가옥주나 세입자를 위하여 이주단지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건설교통부의 판교개발 방향에서 발표된 바와 같이 판교지구와 그린벨트 해제지역 등 두곳에 건설될 2000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이 이주단지로 사용될 전망이다. 특히 그린벨트해제와 관련해선 중앙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건립 정책에 부응해 이미 관내에 25만평 규모를 확보해 사업의 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총 2조6000억원이 필요한 이번 사업에서 8200억원이 소요되는 전면철거재개발사업은 민간자본과 주민들의 주택조합 결성을 통해 시행하고, 8300억원이 소요되는 이주단지는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또한 수복재개발사업에 필요한 9500억원의 비용은 시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지난 5월 28일 ‘성남시재개발사업기금운용·관리조례‘를 제정, 공포한 바 있다. 시 계획에 따르면 2016년까지 총 2700억원의 예산을 제도적으로 확보 하는 것이 가능하며, 부족한 6800억원은 매년 주차장 확보와 도로시설의 확충을 위하여 책정되는 예산규모가 1천억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중 일부를 할애하더라도 재개발사업비의 확보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불어 판교택지개발사업에 따른 개발이익금의 일부를 충당할 경우 더욱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재개발사업의 추진일정은 올 12월 안으로 건설교통부장관의 재개발기본 계획을 승인 받으면 내년 2∼3월에는 주민의 의견을 취합, 시범사업을 위한 두세 곳의 재개발구역지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게 된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2001-12-05
- 기존 시가지 20개 구역 73만평 재개발 성남시 구 도심지역의 재개발계획안이 확정됐다. 3일 성남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한 바 있는 ‘성남시도시재개발기본계획안’이 지난달 30일 건설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됐다. 이번 재개발기본계획상 구역 지정대상으로 총 20개 구역, 73만평을 선정하여 그 가운데 6개소는 ‘전면철거방식’으로, 14개소는 ‘수복재개발방식’으로 분류하여 재개발사업을 시행한다. ‘수복재개발방식’은 구역 내 도로·공원·주차장·녹지공간 등 공공기반시설을 성남시가 사업시행자로서 설치하게 되며 건축물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토지주가 신축 또는 개량하는 것으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는 “구 도심지의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군용항공기지법’에 막혀 민간에 의한 개발이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해 시가 사업시행자가 돼 공공기반시설을 시 예산사업으로 건설하게 됐다”며 “구 도심지의 주민 부담이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가옥주나 세입자를 위하여 이주단지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건설교통부의 판교개발 방향에서 발표된 바와 같이 판교지구와 그린벨트 해제지역 등 두곳에 건설될 2000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이 이주단지로 사용될 전망이다. 특히 그린벨트해제와 관련해선 중앙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건립 정책에 부응해 이미 관내에 25만평 규모를 확보해 사업의 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총 2조6000억원이 필요한 이번 사업에서 8200억원이 소요되는 전면철거재개발사업은 민간자본과 주민들의 주택조합 결성을 통해 시행하고, 8300억원이 소요되는 이주단지는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또한 수복재개발사업에 필요한 9500억원의 비용은 시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지난 5월 28일 ‘성남시재개발사업기금운용·관리조례‘를 제정, 공포한 바 있다. 시 계획에 따르면 2016년까지 총 2700억원의 예산을 제도적으로 확보 하는 것이 가능하며, 부족한 6800억원은 매년 주차장 확보와 도로시설의 확충을 위하여 책정되는 예산규모가 1천억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중 일부를 할애하더라도 재개발사업비의 확보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불어 판교택지개발사업에 따른 개발이익금의 일부를 충당할 경우 더욱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재개발사업의 추진일정은 올 12월 안으로 건설교통부장관의 재개발기본 계획을 승인 받으면 내년 2∼3월에는 주민의 의견을 취합, 시범사업을 위한 두세 곳의 재개발구역지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게 된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2001-12-05
- 성남시 20개구역 73만평 재개발된다 성남시 구 도심지역의 재개발계획안이 확정됐다. 3일 성남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한 바 있는 ‘성남시도시재개발기본계획안’이 지난달 30일 건설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됐다. 이번 재개발기본계획상 구역 지정대상으로 총 20개 구역, 73만평을 선정하여 그 가운데 6개소는 ‘전면철거방식’으로, 14개소는 ‘수복재개발방식’으로 분류하여 재개발사업을 시행한다. ‘수복재개발방식’은 구역 내 도로·공원·주차장·녹지공간 등 공공기반시설을 성남시가 사업시행자로서 설치하게 되며 건축물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토지주가 신축 또는 개량하는 것으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는 “구 도심지의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군용항공기지법’에 막혀 민간에 의한 개발이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해 시가 사업시행자가 돼 공공기반시설을 시 예산사업으로 건설하게 됐다”며 “구 도심지의 주민 부담이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가옥주나 세입자를 위하여 이주단지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건설교통부의 판교개발 방향에서 발표된 바와 같이 판교지구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건설될 2000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이 이주단지로 사용될 전망이다. 앞으로 재개발사업의 추진일정은 올 12월 안으로 건설교통부장관의 재개발기본 계획을 승인 받으면 내년 2∼3월에는 주민의 의견을 취합, 시범사업을 위한 두세 곳의 재개발구역지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게 된다. 한편 총 2조6000억원이 필요한 이번 사업에서 8200억원이 소요되는 전면철거재개발사업의 경우 민간을 통한 사업시행으로, 8300억원이 소요되는 이주단지는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수복재개발사업에 필요한 9500억원의 비용은 시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다. /성남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2001-12-03
- <신문로 칼럼>즉흥 아닌 깊은 연구 필요한 중국 (지용택 2001.12.03) 즉흥 아닌 깊은 연구 필요한 중국 (지용택 2001.12.03)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중국의 WTO 가입과 올림픽 유치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예선전을 한국에서 치르게 된 일 등 언론들은 최근 중국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의 젊은 가수들이 중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 ‘한류(韓流)’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인데 중국편에서 한국을 관찰해보면 재벌 영수와 최고 경영자들이 줄줄이 중국행을 하고, 학계나 정계 인사들이 중국의 저명한 대학 및 인사와 연계하여 일회성 세미나 및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한국이야말로 광풍적인 ‘한류(漢流)’가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류(流)이기는 하나 그 내용의 질이나 폭, 수위의 차원이 너무나 다르다. 중국은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 22개의 성(省), 5개의 자치구(自治區), 북경, 천진, 상해, 중경 등 4개의 직할시, 백여년 만에 회귀한 홍콩, 마카오 그리고 양안(兩岸)의 정치문제는 남아 있지만 경제적 통일은 이미 시작된 대만까지 포함하면 34개의 나라가 고유한 환경과 전통을 지키며 발전해간다. 또 많은 이민족들이 중국화되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漢)족과 55개의 소수 민족이 각기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 공존하고 있다. 민족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중국이란 거대한 테두리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하지는 않는다. 물론 티벳, 신강 등 독립운동이 일고 있는 지역도 있지만 이주 정책에 의해 원주민보다 이주민인 한족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 중국이 분열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현장을 좀더 지켜보며 연구할 일이다. 그래도 우리의 기업과 연구자들이 중국을 대하는 차원은 마치 단일국가를 대하는 듯한데, 이런 추측은 단지 나의 우둔함에서 비롯된 것이길 바랄 뿐이다. 치욕의 역사적 현실, 지도자들 의식하는가 중국대륙 방방곡곡. 역사와 문화를 찾아다니며 환희를 느낄 때가 있다. 풍부한 철학유산과 전통문화의 비옥한 토양 속에 뿌리내린 중국의 흡인력을 벗어나 우리 민족이 주체적 독립민족으로 남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천하를 통일한 청나라 만주족, 세계를 놀라게 한 원나라의 몽골족, 동북 지역의 선비, 거란, 여진, 예맥, 발해 등은 다 소멸되었거나 지금은 55개 소수 민족으로 명목상의 이름만 잔존해 있는 형편인데, 우리만이 독립된 국가, 주체 민족으로 남아 고유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조국의 분단이라는 멍에를 지고 지역갈등과 경제위기에 불구하고 그나마 21세기를 맞이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경이로운 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옛 고승들의 비갈명문(碑碣銘文)을 보면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에 이어 ‘대송고려국(大宋高麗國)’이 되고, 또 학창시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외워야 할 이름들인 정철, 송시열, 임경업 같은 사대부의 무덤에 서있는 비문들 역시 첫 글자가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유(有)란 중국의 제후국을 말하며 그 중에서도 ‘대송고려국’은 너무 직선적인 표현이다. 조상의 묘비명까지도 중국을 섬기는 기록으로 남긴 것은 어떤 이론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정당성과 칭송을 담은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 음각되어 있는데, 한때 이를 역사의식 없는 이들에 의해 ‘평제탑(平濟塔)’이라고 교과서에 수록되어 배우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에 항복하여 수항단(受降壇)을 쌓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리고, 그 자리에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세워 생명을 부지하고 자치권은 유지했으나 수십만의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갔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찬탈당하고 광복은 했으나 나라가 허리를 잘린 지 반세기, 치욕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지도자들은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지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볼 때 매우 불만스럽다. 얼마전 임칙서(林則徐)의 고향인 복건성 복주(福州)와 그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광동성을 답사하며 그의 행적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아 곳곳에 동상과 기념관, 생가, 사당 그리고 호문(虎門) 기념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기념하고 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청조는 청영전쟁(아편전쟁)의 결과로 상해, 복주, 광주, 영파, 하문을 강제로 열게 되는데, 중국인들은 이것을 개항(開港)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21세기 과업, 강대국 틈에서 자존 지키는 것 우리는 1876년 불평등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고, 부산 외 두 곳을 강제로 여는데 이것을 지금까지 ‘개항’이라 부른다. 벌써 천년 전에 있었던 개항은 어떻게 하고 일본의 침략을 개항이라고 하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대륙 세력으로, 일본, 미국은 해양 세력으로 한반도를 서로의 세력권으로 넣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일 수도 있다. 9·11 테러 발생 이후 우리 사회는 이슬람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음을 절감했다. 지금 중국 땅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를 지속시키고,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키며 계속 번영해나길 바란다면 중국에 대한 즉흥적인 자세를 버리고 그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동서독 통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흡수통일 기법이 아니라 그들의 참을성과 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거족적 공존(共存)의 자세이다. 21세기 우리의 과업은 이들 양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자존을 지켜나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략을 개항으로, 전쟁을 평화로 가르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200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