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여자' 검색결과 총 779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발언대> 전천후 부모노릇 교내 불량서클 선배에게 늘씬하게 두드려 맞은 상아는 상처를 묻는 엄마에게 국어선생님께 맞았다고 둘러댔다. 화가 몹씨 난 엄마는 담임에게 항의했고, 담임선생은 간단한 전화 통화를 통해 금새 진상을 밝혀냈다. 우리 아이는 절대로 거짓말을 안한다는 엄마의 맹목적인 믿음이 빚어낸 실수다. 또 울리는 전화 벨, 이번에는 우등생 미연이다. “어떻게 해요? 선생님, 큰일 났어요. 수학시험지 답안을 18번부터 밀려썼어요.” “내가 뭐라든? 긴장하지 말라고 했지? 그렇다고 이 밤중에 전화를 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은 뭐니?” “엄마가요, 성적표 나오면 수학 점수만 봐요. 오늘 망쳤으니 무지무지 욕먹고 용돈도 깍일거에요. 밀려 쓴 것 다시 고쳐줄 수는 없나요?” 미연이는 수학을 잘 하는 편이다. 이해력도 높고 문제도 열심히 풀지만 막상 시험지를 받아들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시험을 망치는 것이다. 엄마의 극성이 완벽주의 콤플렉스로 옮아간 것이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생활지도를 하다보면 부모님 때문에 엎친데덮친격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세 번이나 가출한 혜정이를 찾아내어 겨우 데려 갔더니 “너 같은 딸은 없는 셈 치겠다며 따귀를 올려붙이는 아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나가버린 혜정이, 여학생을 성희롱하다가 걸려 학생부에 불려 온 석용이 때문에 달려 온 엄마의 말, “남자애들 다 그럴 수 있지요. 한번만 봐주세요. 여자애가 얼마나 꼬리쳤으며 그렇겠어요?”, 커닝을 적발하여 처벌했다가 아이의 아빠에게 멱살을 잡혀 교장실로 끌려 간 여선생님…. 물론 이해한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성적 공포에, 사교육비에, 만성적인 교육병으로 날마다 시달리다 보니 우리 부모님들은 어느새 진정한 자녀 사랑이 뭔지 깨닫지도 못한 채 아이의 원수가 되어 버린다. 억울한 일이다. 자잘한 생활 문제나 학습 장애에 이르기까지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문제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어릴적부터 응석받이로 자라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다가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갑자기 권위로 밀어부치면 아이가 따라올 리 만무하다. 눈높이를 맞추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해주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갖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면 아이들은 의외로 속마음을 열어놓는다. 부모나 교사의 지시가 조금 강압적일지라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 불만 없이 따라주는 트인 면도 옛 세대와는 다른 신세대의 장점이다. 전천후 부모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1-30
- <발언대> 선생님 만나지 마세요 자두색 새교복을 차려입은 신입생들의 맑은 웃음 소리에서 봄이 먼저 묻어난다. 3월에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새 학교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신입생의 모습은 마냥 달뜨고 어설퍼서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우리의 학교는 아직 가부장적인 학급문화를 갖고 있고, 스무평 교실에는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할 수도 있는 담임선생님이 있다. 교사와 부모는 만나야 한다. 세 번 선생님을 만나면 자녀 교육은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는 옛말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교사와 학부모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전화도 하고 만나야 할 사정도 생기지만 서로의 만남이 만만치가 않다. 때로 부모는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교사는 부모를 부담스러운 벽으로 생각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을 병적으로 꺼리는 자녀가 있는 가정은 더욱 그렇다. 아이가 “선생님 만나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열등감에 빠져있거나 소심한 경우이다. 공부도 뜻대로 되지 않고 학교생활도 소극적이어서 부모가 담임을 만나봤자 자신에 대해 악평을 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둘째, 요즘 드물다고 하지만 엄마가 치맛바람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살까 두려워서이다. 이런 경우 과거에 잠시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확률이 있다. 셋째, 가정에서 매사에 이겨 버릇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식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키우다 보면 아이가 선생님과의 면담 문제에서도 주도권을 쥐게 되는 일이 생긴다. 부모는 부모답지 못하고 아이는 아이답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넷째, 부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이다. 학교생활에서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러 담임선생님에게 약점이 잡혀 있는 경우에 아이들은 면담을 통해서 그것이 탄로날까 봐 엄마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 학교를 향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교사와 학부모의 면담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 이럴 때 면담 문제에 획을 긋지 못하면 모두가 괴로워질 수 있다.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국제적으로 볼 때도 전적으로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이니까 상관하지 말라는 단호함을 아이에게 보여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 교사와의 면담에 지레 짐작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 모호한 자세,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따위는 금물이다. 무엇보다 담임 만나기는 “권리”이지 “인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와 부모의 만남이 생산적이라면 그 만남 속에서 “사람을 일깨워 그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꽃 피울 것이다. /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2-27
- <발언대> 싸우면 둘 다 나쁜 것? 맞는 아이와 때리는 아이는 폭력이 낳은 두 얼굴이다. 힘이 약해서 일방적으로 맞거나 물론 양쪽 다 문제가 있어서 시비 끝에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힘에 자신이 있는 아이가 먼저 폭력행위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어느 쪽이든 어른에게는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너희들 둘 다 나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양비론을 펼치는 교사들이 많다. 교사들에게는 아이들 간의 싸움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때리고 맞는 것은 둘 다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그러나 폭력은 그렇게 치부될 문제만은 아니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막상 주먹을 뻗어 먼저 상대방을 치는 아이는 힘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폭력성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한 상황이고, 대부분의 싸움은 힘센 아이의 주도로 끝이 난다. 그것을 적당히 둘 다 나빠라는 양비론으로 덮어두면 때리는 아이는 때리는 습관이 붙고 맞는 아이는 자폐적 절망감에 휩싸인다. 폭력 피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나 교사 입장에서 개인폭력이든 집단폭력이든 상황을 인지했으면 일단 둘 다 분리시킨 후 제일 먼저 약자에게 피해 사항을 상세히 쓰게 하고, 아울러 주변의 친구나 목격자를 재빨리 불러내어 객관적인 증거나 증언을 채집한다. 시일이 지난 일이면 일기나 증언을 통해 정황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가해자를 조사한다. 그래야만 가해 아이가 오리발을 내밀어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양쪽 보호자를 초치해 화해를 유도할 때 그 증거로 인해 사과와 용납을 유도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힘에 의지하여 폭력을 휘두르면 대가를 치른다는 따끔한 교훈을 새겨주어야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힘이 약해서 맞는 것도 억울한데 둘 다 나쁘다며 사건을 호도하고 은폐하며, 두루뭉실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교사폭력이고 학교폭력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등에 나오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직접 상담해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양비론에 희생된 이중 피해자가 대부분이다. 때마침 따돌림으로 투신 자살한 과천의 문원초등학교 선정현군의 통곡의 빈 자리 졸업식이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는 시기에 다시 한 번 학교폭력에 대한 어른들의 경각심을 촉구하며, 교사들이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풍토를 만들어주기를 교육당국에 호소한다. /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 2002-02-20
- ‘삶의 아름다운 무늬 엿보기’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얻기 위해 버리면 안 버리고 못 버리는 것’이란 말도 있다. 개인의 이기심과 공명심을 버리고 모여선 이들에게서 풍기는 향기, 그래서 이들의 작품에선 아름다운 삶의 무늬가 느껴지는가 보다. 구미지역에서 아름다움의 맥을 이어보자는 의미를 가진 이름 ‘미맥회’. 이름에서 느껴지듯 후배사랑이 학교와 지역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작품만큼 세대에서 세대로 어우러지는 사랑도 배어 나온다. 구미고 미술반에서 터를 닦은 선후배들이 십년만에 모여 작품을 모아 예술회관 제 2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모교 20주년 기념행사가 계기가 되었다는 이번 전시회는 준비하는 작가 개개의 마음이 설레임으로 고향을 찾는 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예술작품이 삶의 껍질이고 보면 이들의 전시회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기억의 강이 흐르고 있고 그 중심에 내리사랑을 전하던 미술반이 자리하기 때문일 터이다. 삶이라는 산을 하나 넘는 것이 바로 인간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라면 어릴 적 고향에서 속이 뻥 뚫린 커다란 나무를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이름도 모른 채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그 커다란 나무가 그립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들…”(미맥 동문전 서문 중) 시간은 기억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그 끈의 시작은 그림이 좋아서 무작정 그리기만 했던 고교 미술반. 무작정 화구를 메고 금오산에 오른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 당시 선배에게 배운 것은 기교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사색과 감성이었다”는 최경수 화백(2기). 그저 나무가 좋아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한다는 그는 제재소 한 귀퉁이에서 굴러 다니던 나무조각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고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작품중의 하나 ‘念’. 그 때 교감되었던 정들이 이제 형상화된 틀로 보여지는 순간이다. 처음 미술반을 만들어준 스승이셨던 최영태 교사와 13명의 회원들의 작품들이 순수예술과 디자인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획되고 있는 미맥 전시회. 한 장소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묘미도 있고, 취향대로 선택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산을 하나 넘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은 누구나 궤적을 그린다”는 김헌동 화백(1기). 그의 작품 ‘존재의 가벼움’이 가벼움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일까. 미래지향적인 도시 구미 + 문화 다양한 지방색을 갖은 사람들이 모여 다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도시 구미. 첨단 테크놀리지의 구미가 이젠 다른 방향으로도 삶의 질을 높여가야 할 때란 것은 이미 일반적인 이야기.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모임들 틈에서 아무 색도 갖지 않는 그래서 어떤 색이든 될 수 있는 씨앗 같은 모임이 되고 싶은 미맥회 회원들이다. “후배들에게 바랄 것이 뭐 있나요, 요즘은 전부 다 알아서 잘합니다”라면서도 “자신이 뿌리 내릴 터를 잘 잡아 자부심을 갖고 역량을 쌓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을 나고 자라게 해준 고향에 대한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는 미맥회 최고참 김헌동 화백. 개인적으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더 많아 졌으면 하는 게 바램이라고 한다.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후배들에게 다양한 진로의 경로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10분씩도 서있을 수 있는 여유’가 감상 포인트라고 전했다.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지식과 정보를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의 검색엔진에 의존하는 신세대들에겐 특히 그렇다. 그런 우리의 기억력은 컴퓨터의 전원을 뽑으면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우린 존재와 삶에 대한 사색이라는 시간의 소중한 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돌아볼 때다. 김은선 리포터 6k5tod@orgio.net 2001-12-20
- <발언대> 벤처기업 하는 중학생들 “저 사실은 벤처기업 해요. 이번 달에는 120만원을 벌었어요.” 아침마다 지각을 하는 정민이는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 ‘디아블로’나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을 업그레이드하여 팔기 위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밤을 지새며 게임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게임에 필요한 무기와 소품을 훔치거나 만들어 경매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방과 후 낮에는 호프집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부는 저녁나절 2시간 정도 잠깐 보습학원에 앉아 있는 것으로 대체한다. 그런 정민이에게 학교와 가정은 돈벌이 틈틈이 잠을 청하기 위한 휴식처로 평가절하된다. 그나마 학교에 애오라지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은 교실에 친구들이 있고, 특별활동인 컴퓨터 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민이같은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취미로 돈벌이에 나서기 시작하다가 중학생쯤 되면 본격적으로 장사에 몰두하는 것이다. 스스로는 ‘벤처기업’한다고 내심 자부하면서 선생님에게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예사다. 부모도 아이가 심심찮게 학비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을 대견해 하며 내심 ‘천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정말 그럴까? 아이가 게임을 팔아 돈벌이하는 것을 벤처기업으로 치부하는 현실을 떳떳하게 수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교사와 부모들은 그런 아이의 행동을 놓고 어디까지가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인지 갈수록 자신 없어 하고 있다. 벤처 열풍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 상혼의 자리에 엉뚱하게도 아이들의 심성이 파편처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7차교육과정이 실시되면서부터 멀쩡하게 존재하던 체험학습이나 특별활동을 교과 재량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1시간씩 줄여서 대체하고 있는 판국이니,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의 모험심을 담아낼 재간이 없다. 아이들이 밤을 지새며 게임에 몰두하면서 벤처기업(?)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하는 하는 선생님도 없고, 바로 잡아 줄 교육 프로그램도 없다. 어른들이 명문대 타령을 하면서 대학서열화를 부채질하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되었다면서 고교입시를 부활하자고 난리를 피는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나고 있다. 정민이같은 아이들이 그나마 학교에 정을 붙이게 하려면 학교는 감성이 넘치고 체험학습이 가능한 체제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청소년이야말로 어른의 벤처기업이다. 아이들을 위험한 벤처로 만드느냐 창조적인 벤처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어른들의 손에 달려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벤처 정신으로 구현해 내야 할 때인 것이다. /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2-07
- 발언대 아이들은 어른의 벤처기업 “저 사실은 벤처기업 해요. 이번 달에는 120만원을 벌었어요.” 아침마다 지각을 하는 정민이는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 ‘디아블로’나 ‘바람의 나라’같은 게임을 업그레이드하여 팔기 위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밤을 지새며 게임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게임에 필요한 무기와 소품을 훔치거나 만들어 경매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방과 후 낮에는 호프집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부는 저녁나절 2시간 정도 잠깐 보습학원에 앉아 있는 것으로 대체한다. 그런 정민이에게 학교와 가정은 돈벌이 틈틈이 잠을 청하기 위한 휴식처로 평가절하된다. 그나마 학교에 애오라지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은 교실에 친구들이 있고, 특별활동인 컴퓨터 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민이 같은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취미로 돈벌이에 나서기 시작하다가 중학생쯤 되면 본격적으로 장사에 몰두하는 것이다. 스스로는 ‘벤처기업’한다고 내심 자부하면서 선생님에게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예사다. 부모도 아이가 심심찮게 학비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을 대견해 하며 내심 ‘천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정말 그럴까? 아이가 게임을 팔아 돈벌이하는 것을 벤처기업으로 치부하는 현실을 떳떳하게 수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교사와 부모들은 그런 아이의 행동을 놓고 어디까지가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인지 갈수록 자신 없어 하고 있다. 벤처 열풍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 상혼의 자리에 엉뚱하게도 아이들의 심성이 파편처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7차 교육과정이 실시되면서부터 멀쩡하게 존재하던 체험학습이나 특별활동을 교과 재량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1시간씩 줄여서 대체하고 있는 판국이니,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의 모험심을 담아낼 재간이 없다. 아이들이 밤을 지새며 게임에 몰두하면서 벤처기업(?)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하는 하는 선생님도 없고, 바로 잡아 줄 교육 프로그램도 없다. 어른들이 명문대 타령을 하면서 대학서열화를 부채질하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되었다면서 고교입시를 부활하자고 난리를 피는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나고 있다. 정민이 같은 아이들이 그나마 학교에 정을 붙이게 하려면 학교는 감성이 넘치고 체험학습이 가능한 체제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청소년이야말로 어른의 벤처기업이다. 아이들을 위험한 벤처로 만드느냐 창조적인 벤처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어른들의 손에 달려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벤처 정신으로 구현해 내야 할 때인 것이다. 김대유(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2-06
- 센스 있는 주부가 도전한다 “공간을 정리하는 방식은 단순히 그 사람의 취향이나 미감을 넘어서 그 사람의 본질과 세계관까지 반영한다.” 소설가 최윤의 이야기다. 주부의 가치관을 적절히 풀어놓은 가족공간에는 눈썰미 있고 손끝매운 안주인의 삶이 담겨있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섬세한 부분과 잘 맞아떨어지고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주부라면 시작해 볼 만한 일이 인테리어 소품점이다. 주말 데이트를 함께 하는 부부 옥계동 아파트 상가 안에서 작은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정선희씨. 주말이면 항상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물건을 배송해 주는 아저씨가 1주∼2주 간격으로 오지만 시장동향도 파악하고 ‘자신만의 상품’을 갖추기 위해 일요일엔 항상 서문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을 들르는 것. 아이들이 컸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휴일까지 반납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녀는 ‘프로’다. 일에 임하는 자세만큼 보상도 따르게 마련이다. 월세로 들어왔던 상가를 일년만에 ‘분양’ 받았다. 처음 창업비용은 250만원선. 1년이 지난 지금은 구비물건 가격만 2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시작할 때 나와 약속을 했습니다. 허투루 시작한 게 아닌 만큼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드나드는 사람의 취향이며 원하는 물건을 그날그날 체크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구요.” 관심이 용기로 이어져 “7년∼8년쯤 전부터 여기를 드나들었지요. 발품을 팔아가며 원하는 물건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튀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어울리는 이곳의 가구와 소품들이 하나씩 집안에 옮겨 올 때 이런 가게 하나 운영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죠.” 상공회의소 맞은편 길가의 엔티크한 수입인테리어 전문점 ‘USSO’를 운영하고 있는 지순희(형곡동)씨는 처음에 고객으로 매장을 방문했다가 창업으로 발전한 케이스. “평소에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창업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몇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던 가게 덕에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녀의 말처럼 관심은 정보수집으로 이어지고 ‘할 수 있다’는 용기로 이어지게 된 듯하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수입품 위주이다 보니 A/S가 가장 문제이다. 이태리산 전화기 같은 경우 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달 남짓. 또 대부분이 수입품이다 보니 운반과정에서 겪는 조금만 흠집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다. 수입품인 만큼 품절 되었을 때와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구색 갖추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조금씩 물건이 늘어나면서 가게가 복잡해지는 까닭에 자신만의 컨셉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지순희씨는 “소품을 하나 팔 때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 집의 분위기”라고 말한다. “내 집에 들여놓았을 때 제값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식구들을 생각하면 절대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죠.” 물건은 소품일 경우 직접 배달하고 좀 덩치 큰 가구들은 택배를 이용한다. 같은 물건인데도 고객의 입장에서 고를 때와 판매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다른걸 많이 느꼈다는 지순희씨. 눈썰미를 키우는 이론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내가 당신이 할 일과 내가 할 일을 가르지 않듯 주부 창업 또한 부업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인 경영을 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이에 따라 창업자금도 갈수록 커지고 ‘주부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협심하고 노력해서 가업으로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로 손을 마주잡고 한 방향을 보고 나아가는 부부들에겐 맹렬한 겨울 추위도 두렵지 않은 듯 하다. 김은선 리포터 6k5tod@orgio.net 2002-02-04
- <신문로 칼럼>왜 베를린에 구 공산당 집권했나(박성조 2002.01.22) 왜 베를린에 구 공산당 집권했나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2002년 1월 18일 통일 독일 수도 베를린시에서 사민당·민주사회당(PDS 구 공산당) 연립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신연립주정부를 축하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물론 PDS 당원들과 지지한 유권자들은 내심으로 자축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독일이 통일된 지 11년이 지난 오늘 구동독을 독재적으로 통치했던 구 공산당이 다시금 합법적으로 비록 좌파연정이긴 하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물론 구동독의 북쪽 두 주정부는 PDS가 연립정권을 형성했거나 또는 소수 사민당 정부를 관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공산세력이 이렇게 강세를 보인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PDS가 동독지방에서 구 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을 그냥 그대로 승계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정당 속에는 아직도 과격한 공산당 요소(파)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겐크냇흐트(Wagenknecht) 여사를 앞세우는 과격파가 그러하다. 그러나 과격파는 공산당에서 소수파를 이루고 있다. 연방 정당 당수 짐머(Zimmer) 여사, 베를린 PDS 지부장 파우(pau) 여사는 중도파라고 볼 수 있으며 기지(Gysi) 전 당수를 축으로 한 보수주의적으로 변신한 다수파가 베를린 연립정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PDS 속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파로 가고 있는 베를린 사민당이 PDS와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한다면 현재 독일 공산당은 그간 많은 변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지도층, 구 공산당 강화에 반성하라 경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왕년의 공산당이 변신을 했다고 해도 과거 동독에서 분단과 인권박해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PDS는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계약의 서문에 ‘구동독 공산당 정부’가 저지른 여러가지 행적(베를린 장벽, 정치 망명자 사살, 인권운동자 투옥 등)에 대해서 통감스럽게 책임을 진다고 했다. 과연 현재 PDS는 옛날의 공산당과 다를까?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 슈미트 전 수상은 구 동독에서 공산당 존재는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왜 구 공산당인 PDS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베를린 주의회 선거 때 PDS는 동 베를린에서 거의 절반의 유권자 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미 동 베를린에는 구 공산당 출신의 구청장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PDS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동독인의 이익과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동독에 뿌리를 둔 정당이 구 공산당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동독인은 그들의 정치적 고향이 구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정당과 이익단체들은 거의 전부가 ‘서독 정당·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통일이 서독정치, 자본, 조직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 동독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돌파구가 바로 구 공산당 강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떻게 말하면 통일 독일이 외면적, 제도적, 행정적 측면에서 완결됐다고 볼 수 있으나 통일의 내실화 및 인간적, 정서적 차원에서의 융합은 미흡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독인은 2등 국민이며 서독인은 자신만만하고 활기 있는 ‘부자’라는 인식이 동독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서독은 구 동독에 통일 비용을 위시하여 많은 투자를 해왔다. 사회간접자본(도로, 통신, 학교, 병원, 교통 등등)은 거의 서독 수준에 왔으며 일부는 서독수준을 능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시행한 사람도 서독인이고 이것을 운영하는 책임자도 서독인이다. 그리고 제조업에서 동독인 주도로 세운 공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서독인은 정책 결정자, 고용인이고 동독인은 구태의연하게 정책을 시행하며 기업체에서는 피고용인이다. 그들은 선거 때 투표하는 것 이외에는 발언권이 없다. 이번 베를린 주정부 경제상은 구 공산당 당수 출신 기지(Gysi) 변호사다. 야당과 기업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부서를 맡았으니 투자가들은 베를린을 회피할 것이고 굴레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PDS는기독교 민주당(CDU)이 집권했을 때에도 베를린에는 큰 투자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상 앞으로 베를린에서의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지’ 경제상에 맡겨보자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념적 차원 아닌 인간의 이질성 부정이 원인 물론 현재 어느 선진국이든 집권자의 능력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20세기 경제문제만을 생각했던 집권자들이 21세기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 경제문제는 세계화 속에서 국민경제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즉 제 경제들의 통합시장 형성, 또는 경제내부의 통합·통일(예:동서독간)이 큰 이슈로 등장한다. 그러나 통일·통합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간의 통합이며 ‘문화’와 ‘문화’간의 대화이다.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동·서독인 간의 차이’를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 동일성론으로 무시하고 그 위에서 통일정책을 수립했다. 오늘날 독일에서 구 공산당이 다시금 머리를 드는 것은 과거의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간의 이질성을 인정 않은데서 출발한 것이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2002-02-04
- 인사 ■농림부 ◇국장급 전보 ▲국방대학교 파견 김영만 ■국무조정실 ▲심사평가조정관실 조사심의관실 서기관 강태옥 ▲심사평가조정관실 조사심의관실 서기관 양홍석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업무담당비서관실 과장 윤창렬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 부국장겸 팀장 김원식 ▲총무국〃 유양기 ▲감독총괄국〃 정민주▲신용감독국〃 김순배 ▲검사총괄〃 원우종 ▲기획조정국 팀장 권인원 김종철 송시영 최일규 ▲조사연구국〃 이강세 ▲정보시스템실〃 황주영 ▲총무국〃 송경철 ▲감독총괄국〃 고영준 ▲은행감독국〃 박창섭 ▲비은행감독국〃 김준현 ▲보험감독국〃손광기 ▲증권감독국〃 최진배 ▲공시감독국〃 최규윤 ▲자산운용감독국〃 박원호 ▲국제업무국〃 박동순 ▲회계감리국 실장 최진영 ▲소비자보호센터 팀장 강성범 김양권 박재원 ▲소비자보호센터 실장 송태회 ▲소비자보호센터 팀장 오중관 이병석이춘근 조욱현 최병용 ▲검사총괄국 팀장 이석근 ▲검사총괄국 실장 김인석 ▲은행검사1국 실장 장광우 ▲은행검사1국 팀장 최태문 ▲은행검사1국 검사전문역 김종태노명환 심의영 심재호 윤진섭 장활철 정옥빈 ▲은행검사2국 실장 허세원 ▲은행검사2국 팀장 최동준 ▲은행검사2국 검사전문역 김명호 문흥식 오용석 이상덕 조선호 최명희 ▲비은행검사국 실장 류영돈 윤익상 ▲비은행검사국 팀장 소순배 신의용 이병수 정재삼 ▲비은행검사국 검사전문역 고 택 김용순 박락영 신영태 오재극 유부철임승보 조덕인 한승진 ▲보험검사국 실장 김제성 장상용 ▲보험검사국 팀장 여상구최용수 ▲보험검사국 검사전문역 김용걸 박병명 박영서 석중기 소주영 이상일 이성조 ▲증권검사국 팀장 백수현 ▲〃 실장 이장훈 ▲〃 검사전문역 김영구 문순배 유재규 이중선 최태완 홍숙표 박해균 ▲조사1국 실장 박광철 하위진 ▲〃 팀장 최순권 민안기 ▲조사2국 실장 김성수 이원관 임승철 ▲〃 팀장 민경열 ▲감사실 〃 용규광 ▲부산지원 부지원장겸 팀장 김동수 ▲대구지원 〃 전수용 ▲광주지원 〃 신동명▲대전지원 〃 김혁수 ▲광주지원 전주출장소장 최상훈 ▲대전지원 춘천출장소장 박창규 ■인천광역시 △사회복지여성국장 정영복 △상수도사업본부장 김익오 △자치행정국장 권기일 △연수구 부구청장 정용준 △교통국장 윤석윤 △남동구 부구청장 이상익 △인천대 사무처장 여광혁 △자치행정국 인사과 김용국 △계양구 부구청장 이장복 △옹진군 부군수 이용우 △감사관 최기봉 △건설행정과장 이관진 △회계과장 백은기 △청소행정과장 조재완 △지방공무원교육원 서무과장 김광석 △기업지원과장 권이철 △환경보전과장 김영윤 △여성복지과장 장부년 △인사과장 최석봉 △의회사무처 의사담당관 신의현 △사회복지과장 서인수 △지방공무원교육원 교학과장 이정호 △체육청소년과장 박기창 △인천대 총무과장 조상수 △국제통상과장 김한기 △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장 정대유 △상수도사업본부 시설부장 이희원 △공촌정수사업소장 우제준 △남동정수사업소장 김동수 △부평정수사업소장 매기목 △노온정수사업소장 윤종철 △도시개발본부 송도개발부장 김기형 △검단개발부장 김종선 △개발계획과장 최철 △종합건설본부 건설 1부장 김병규 △종합건설본부 총무부장 한종연 △종합건설본부 도로관리부장 이한영 △재난관리과장 오의섭 △가좌환경사업소장 안재규 △승기수질환경사업소장 김낙철 △동부공원사업소장 한태일 △녹지조경과장 임경환 △노사고용안정과장 김동인 ■강원도 ▲관광문화국장 이방웅 ▲동해부시장 김정삼 ■대전광역시 ◇서기관 ▲건축과장 김광신 ▲동구 안계영 ▲지하철건설본부 시설부장 차영선 ◇사무관 ▲유성구 오세기 ▲자치행정국 김명길 ▲동구 민정식 ▲복지국 한량규 ▲서구 강선규 ▲문화체육국 박장형 ▲" 송근성 ▲건설교통국 박영범 ▲도시주택국 김정대 ▲건설관리본부 건축과장 이진석 ▲동구 이권구 ■농협중앙회 ◇부부장 ▲기획조정실 엄승섭 조명문 ▲조사부 정태호 ▲회원지원부 남수현 최두해 박태식 ▲인력개발부 안영학 ▲총무부 지복만 ▲자재부 박철현 ▲농촌지원부연해복 ▲한우낙농부 원유석 신훈 ▲양돈양계부 박휘석 ▲금융기획실 신충식 ▲자금부 허수 ▲여신부 손정주 ▲채권관리부 이정대 ▲영업부 박상환 ▲신용보증기금 안용준 ▲농업농촌발전기획단 전흘수 신기엽 김진국 ▲자산관리사설립준비단 한영익 ▲하나로마트분사 김진식 ▲성남유통센터분사 김겸배 ▲고양유통센터분사 김창성 ▲육가공분사 신건선 ▲유가공분사 조현종 ▲계육가공분사 김두현 ▲축산물공판장분사 이창호 ▲공제보험분사 문일현 ▲전산정보분사 정균성 ◇국회지점 지점장 유지홍 ◇교육원장 ▲창녕 도진언 ▲구례 장세영 ◇경제사업장장 ▲부산공판장 김영태 ▲대구공판장 이창원 ▲대전공판장 권주년 ▲광주공판장 유영률 ▲서울양곡공판장 이상욱 ▲하나로클럽신촌점 권주홍 ▲횡성배합사료공장 윤장수 ▲청주배합사료공장 윤태진 ▲부산특수사료공장 채현석 ▲사료축산연구소 배익찬 ▲안성목장 하병국 ▲청양유가공공장 김락석 ▲부천축산물공판장 안종도 ▲고령축산물공판장 계경성 ▲인천축산물가공사업소 박치봉 ◇부본부장 허선구 손경익 ◇지점장 ▲양재남 옥광명 ▲공항동 김선구 ▲광화문 도경환 ▲방배 한원종 ▲사당동 이희석 ▲상도동 윤지영 ▲서울대 이호겸 ▲성내동 김갑영 ▲성동 장광희 ▲신월동 진상현 ▲신촌 김현준 ▲종로 김영신 ▲중계동 정종현 ▲천호동 김수현 ▲한강로 강두승 ▲가락동 하시호 ▲경동시장 김승곤 ▲구파발 조일희 ▲난곡 이용호 ▲남시흥 이영진 ▲녹번 김창배 ▲논현동 김영수 ▲당산 이석규 ▲도봉 최현호 ▲독산동 조춘옥 ▲동교동 김종은 ▲마들역 이경상 ▲명동 허선구 ▲보광동 박영구 ▲보문동 안창호 ▲봉천동 이철순 ▲상계동 이기만 ▲석촌 정국주 ▲선릉 유재남 ▲송파 안규화 ▲시흥동 이상현 ▲신사동 최훈구 ▲신설동 김영기 ▲양재 김영수 ▲원효로 전태일 ▲을지로4가 송만구 ▲자양로 김상구 ▲잠실 박효복 ▲종로1가 한일 ▲중화동 곽경두 ▲창동신유통 육영수 ▲청담동 김정일 ▲충무로 김춘돈 ▲노원역 김면수 ▲신당동 엄춘실 ▲일원동 김대식 ▲합정동 김창권 ◇부본부장 김봉수 ◇시·군지부장 ▲고양시 송재목 ▲의정부양주 김태영 ▲남양주 임교석 ▲연천군 김남훈 ▲양평군 박경호 ▲부천시 정찬인 ▲성남시 박철현 ▲포천군 형종근 ▲용인시 이윤희 ▲수원시 박현규 ▲안양과천 우석윤 ▲의왕시 최준석 ▲군포시 이호준 ▲안산시 이재진 ◇지점장 ▲상대원 신광성 ▲서둔동 이강범 ▲안양남 최영환 ▲호계동 박태용 ▲인계동 유창준 ▲송내동 강대련 ▲심곡동 김찬래 ▲원미동 유석희 ▲단대 이윤형 ▲수원북문 김종환 ▲수원연무 민윤기 ▲상동 박후연 ▲능곡 이신형 ▲백마 신동구 ▲한국도로공사 박문택 ▲주엽 김성일 ▲화정남 이호근 ▲호원동 박승근 ▲송우 박종하 ▲여주서 황성룡 ▲일산 김상규 ▲남천 이교훈 ▲장호원 최민호 ▲하이닉스 정연호 ▲신갈 김종원 ▲송탄남 이영규 ▲송탄 정진 ▲안정 최영송 ▲안중 김효철 ▲송죽동 유상현 ▲평촌 박춘수 ▲수원대평 윤경재 ▲마사회 김재천 ▲수원중앙 이윤호 ▲광명서 이영수 ▲북변 심기열 ▲군포남 정기호 ▲금정 유청희 ▲월피동 송창원 ▲정왕동 임승도 ▲안산도매시장 서정통 ◇부본부장 김명기 정택우 ◇시·군지부장 ▲영월군 김종철 ▲인제군 유수열 ▲화천군 우종원 ▲철원군 조창현 ▲고성군 김충수 ▲삼척시 김홍걸 ▲속초시 조규명 ▲동해시 정대식 ▲평창군 심우인 ▲횡성군 전익우 ▲양구군 김희식 ▲홍천군 엄동일 ▲강릉시 최관영 ◇지점장 ▲학성동 이정식 ▲묵호 조성학 ▲사북 이평욱 ▲북평 박창선 ▲장성 홍순도 ▲중앙로 이희원 ▲원주남 선주천 ▲강남동 함형대 ▲북원 최덕수 ▲성남동 최장길 ▲강릉교동 최근수 ◇부본부장 이재찬 ◇시·군지부장 ▲충주시 이종건 ▲보은군 김광열 ▲진천군 노원식 ▲음성군 이완순 ▲옥천군 백의현 ▲영동군 한용택 ▲제천시 전용구 ▲단양군 이재순 ◇지점장 ▲석교동 권오중 ▲서문동 이영희 ▲신봉동 박병덕 ▲율량동 이태훈 ▲충일 이원준 ▲청주물류센터 김용래 ◇부본부장 양승진 ◇시·군지부장 ▲천안시 곽호설 ▲공주시 구기인 ▲보령시 김송복 ▲아산시 박인희 ▲서산시 최이섭 ▲논산시 천우영 ▲연기군 최병무 ▲부여군 이재두 ▲당진군 김병남 ▲금산군 조성구 ◇지점장 ▲성정동 황옥현 ▲성환 유병열 ▲쌍용동 김문환 ▲대천 서봉석 ▲서산동부 김광영 ▲연무 김정실 ▲장항 나진열 ▲광천 원두희 2002-01-29
- <발언대> “엄마들은 단순해요” 금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5분 자유발언’ 시간에 웬일인지 보라가 발언을 신청했었다. “국물도 없어”로 소문난 보라는 모두가 무서워하는 학급의 청소반장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보라는 엄마 얘기를 했다. “영어 듣기 평가를 치른 날 엄마가 몇 개 맞았느냐고 묻기에 무심코 한 개만 틀리고 다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깜박 속은 엄마가 “야 우리 딸 최고다”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스토를 아홉 개나 만들어 주셨어요.”그걸 먹으며 양심의 가책을 받았노라고, 그러면서 간신히 한마디를 던진다. “엄마들은 단순해요. 그냥 속잖아요. …여러분 공부 열심히 합시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보라는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울음을 삼켰다. 그 독한 보라가 말이다. 킥킥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멎는가 싶더니 하나 둘씩 눈시울이 붉어진다. 꼴찌를 면치 못하는 영신이는 고개를 숙였고, 일등을 독차지하는 은정이의 눈망울에도 이슬이 맺혔다. 잔물결이 일 듯이 교실에 아이들의 눈물이 번졌다. 교실은 고요하고 아이들의 얼굴은 아침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거짓말일지언정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믿음에 대한 목마름일까? 자기들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수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일까? 아니면 공부 때문에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화상에 대한 자기 연민일까? 아무튼 우리 학급의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스터디 그룹의 참여율이 높아지고, 시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임원들이 자기 희생을 하며 열심히 예상 문제를 뽑아오고, 공부와는 담을 싼 만년 꼴지 반 아이들이 웬지 난리를 쳐댔다. 깜짝 쇼 같은 아이들의 노력은 채 두 달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 여운과 감동은 오래도록 교실을 맴돌았다. 보라의 눈물은 아이들 가슴속에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그 감동은 차디찬 아이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공부”는 분명 지적 산물이지만 “공부하려는 마음”은 감성의 산물이다. 그저 머리로 하는 공부는 점수만을 올리지만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인생을 변화시킨다. 교실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공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라의 눈물과 아이들의 감동이 일깨워 준 진리다.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괴로워할 때 그들의 지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공부하라”는 강요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공부는 괴롭더라도 기쁨과 감동을 주는 작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공부를 통해 설정된다. 일등에게나 꼴찌에게나 공부가 스스로에게 유익한 것이고 꼭 해야 할 인생의 과정이라는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가 된다. 지금처럼 일등에게도 꼴찌에게도 “지겨움” 이상의 별 의미가 없는 공부체계는 우리 사회 전체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떨어지면 올릴 걱정, 오르면 더 올릴 걱정에 공부 고민은 끝이 없다. 재미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신경성 위장병을 앓으며, 컴퓨터 게임에 빠져든다. 이제 엄마들은 눈에 불을 켜야 한다. 재미없는 교과서를 만들고, 재미없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재미없는 입시를 만드는 허망한 정책에 차가운 분노를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오늘 하루, “엄마들은 단순하다”고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슴에 떠올려보자. /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