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51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1억 미만 전세, 서울에도 많네” 지난해에 이어 전세가격이 소폭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지역에도 1억원 미만의 역세권 전세물량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정보업체 내집마련정보사(www.yesapt.com)에 따르면 신혼부부와 젊은 직장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전세가격 1억원 이하인 역세권 아파트는 노원구와 도봉구 등 강북지역에 많았다. 잇따른 개발 호재로 최근 떠오르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전셋가격에 저렴해 전세수요가 꾸준해 매물은 귀한 편. 특히 소형평형의 경우 전세매물이 거의 없다. 더구나 청약가점제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주택 구입을 미루는 수요자들이 전세에 머물고 있는데다 봄 결혼시즌을 앞두고 미리 신혼집을 구하려 다니는 전세수요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매물이 귀한만큼 소형아파트 전셋가격도 소폭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이사철이 아니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이면 저렴한 양질의 전세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양지영 팀장은 “나홀로 단지보다 단지가 크면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향후 세입자를 찾기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전세수요자들은 신혼부부나 젊은 층이 대부분이어서 지하철역과 가까운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노원구 공릉동 공릉2단지와 3단지에 69m²는 9000만~1억원에 전세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공릉2단지는 660가구 3단지는 840가구로 대단지 아파트이어서 주변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7호선 공릉역에서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수요층이 두터운 것이 장점이다. 상계동 보람 75m²의 전세각격은 8000만~9000만원 사이다. 3315가구로 대단지 아파트이고 7호선 마들역이 걸어서 5분, 4호선 상계역이 걸어서 10분이면 이용 가능한 더블 역세권이다. 도봉구 도봉동 서원 72m²은 7000만~8000만원에 전세가격이 형성돼 있다. 2450가구로 대단지 아파트이고 인근에 하나로마트, 이마트 등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1호선 방학역이 걸어서 5분 거리다. 쌍문동 쌍문한양1차(824가구) 72m²는 8500만~9000만원으로 4호선 쌍문역 걸어서 5분 거리이다. 창동 주공1단지(808가구) 72m²는 8000만~9000만원 수준이다. 강남권에도 전세 1억원이하의 역세권 아파트가 있다. 강남구 삼성동의 현대(동남아2) 42㎡는 전세가격이 9000만~1억원 사이다. 198가구로 단지규모는 작지만 갤러리아 백화점과 청담공원, 삼릉공원 등 편의시설이 인접해 있다. 지하철7호선 강남구청역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서초구 잠원동 대우아이빌 39㎡은 168가구의 소규모 단지로 전세가격은 8500만~9500만원사이에 형성돼 있다. 현대백화점과 킴스클럽, 뉴코아백화점 등의 편의시설에 지하철7호선 논현역이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다.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2차 62㎡는 7000만~9000만원이고, 3000가구의 대단위 단지다. 롯데마트, 가락농수산물시장, 삼성의료원이 가까이에 있고 지하철8호선 송파역이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다. 이밖에 1호선 시흥역 인근의 금천구 시흥동 무지개(639가구) 76m²는 9500만~1억원, 2호선 신도림역 인근의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우성1차(688가구) 69m²은 1억원 수준이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1
- 몽골 베트남 이주민 심각한 인권침해 몽골과 베트남 이주민들이 이주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으로 조사돼 제도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는 29일 ‘고용허가제 시행이후 몽골과 베트남의 이주 및 국제 결혼 과정에 나타난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몽골 결혼이주과정에서 중개업자들의 위법행위가 심각했다.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몽골여성과 한국남성의 국제결혼은 총 1648건으로 몽골의 전체국제결혼 중 80%를 차지했다. 몽골인의 결혼이주에서 지적된 근본적인 문제는 불충분한 정보와 허위정보였다. 베트남 이주민의 국내 입국 과정 역시 고질적인 브로커시스템과 송출과정의 불투명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주민들은 브로커에게 미화 1만 달러에 해당하는 고액의 커미션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시간적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한국에 들어 와도 이 비용을 갚기 위해 인권침해를 감수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결혼이주과정의 문제점은 더 심각했다. 인권위 자료에 의하면 2003년 95건에 불과했던 베트남여성과 한국인 남성간의 국제결혼이 2006년 1만131건으로 증가했다. 베트남의 결혼중개구조는 호텔, 서류대행업자, 웨딩산업, 여행사, 관광업체등 다양한 이익집단이 결합돼 중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이주과정의 관리가 매우 강압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취약 계층의 여성을 대상으로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부채로 예속시켜 자율성을 박탈하기도 했다. 성혼을 위해 100만~300만원의 중개비를 요구하기도 하고 산부인과 검사와 처녀막 재생수술이 중개업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례도 드러났다. 인권위는 정책제안으로 △이주자 권리보호와 관련한 국제적 인권기준 가입과 △이행 고용허가제의 시행상 개선 사항들을 점검 반영 △결혼이주와 관련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상업화된 결혼중개업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반인권적 행태를 줄여야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선 기자 sslee@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0
- “안나푸르나에서 배워라” LS전선, 임원대상 트레킹 행사 실시 LS전선이 최근 임원 부부를 대상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행사를 실시해 화제다. 이는 평소 가정의 화목이 회사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사불이’ 경영을 강조해온 구자열 부회장의 제안에 따른 것. 평소 격무에 시달리는 임원들이 배우자와 함께 지내면서 자기계발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첫 대상자는 재경담당 명노현 상무 부부였다. 명 상무 부부는 안나푸르나의 해발 3210m 지점 푼힐 전망대까지 이동하는 코스로 4일간 하루 10시간의 산행을 통해 네팔의 문화와 자연을 접하는 등 8박9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30일 귀국했다. 회사에서는 기본 여행경비는 물론 등산복, 등산화, 가방, 스틱 등 산행에 필요한 용품 일체를 제공했다. 명 상무는 “결혼 20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24시간 이상을 같이 지냈다”면서 “네팔인들로부터 ‘나마스떼’(그대의 신에게 경배를 표한다는 뜻의 네팔의 기본 인사말)의 겸손을 배웠다”고 말했다. LS전선은 앞으로도 매년 3쌍의 임원 부부를 선정해 트레킹 체험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1
- [''일해도 가난'' 근로빈곤층 400만명]남편 잃고 미용기술 배워 4인가족 이끄는 지정아씨 “아이 생각에 죽을 각오로 기술 배웠죠” 미래불투명, 아직은 불안 … “일하는 것 자체가 희망”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이 둘과 저를 남기고 무심코 떠난 사람이 불쌍하기도 했고 험한 세상 살아가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경기도 의정부 신곡동에 위치한 오미영 헤어숍에서 보조 미용사로 일하는 지정아(여 39)씨. 지방도시 주거단지 인근 10평 남짓 작은 미장원이지만 최근 오픈했는지 깔끔한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덕분에 화사해 보였다. 오미영 원장과 지씨, 젊은 남자직원 3명이 근무하는 보금자리다. 이 미장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 지씨다. 지씨가 이곳에서 일한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미용기술을 배운지 1년 밖에 되지 않는 초보 미용사다. 하지만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남편 잃고 죽고 싶은 마음뿐 = 지씨가 미용기술을 배워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된 데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 28살에 남편 김 모씨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화학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 화학분야 중에서도 화약과 같은 폭발 위험성 물질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술 덕분에 남편을 찾은 기업도 많았고, 수입도 괜찮아 무난한 가정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아이도 둘이나 얻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 이런 지씨 가정에 시기의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 2002년 8월 남편이 새로 옮긴 직장의 연구실로 주말에 실험을 하러 간 것이 화근이 됐다. 실험실에서 이 회사 연구소 소장과 함께 실험을 하다 폭발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로 김 씨와 연구소장이 사망했다. 김 씨가 남겨둔 것이라곤 4살짜리 딸과 2살짜리 아들뿐이었다. 울고 또 울고 악몽같은 날을 몇 달동안 보냈다. 함께 죽는 게 사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고치고 추슬렀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겨진 재산이라고는 전세금과 몸뚱이뿐이었다. 남편은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흔한 보험도 하나 들어 놓지 않았다. 지씨는 아이들과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지씨는 “아이도 돌보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전북 정읍 시골에서 고등하교를 졸업하고 의정부에서 골프가게 종업원으로 잠깐 근무했던 경험밖에 없어 살길이 막막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3차례 기술 교육 =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식당 종업원 아르바이트부터 시간제 단순노동 등 뼈 빠지게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진 않았다. 지씨는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러던 중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다 양재기술(재봉기술)교육기관의 광고를 보고 양재기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6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지만 취업은 녹록치 않았다. 양재기술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었다. 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옷수선집을 열거나 세탁소 개업을 해야 기술을 써 먹을 수 있었다. 지씨는 “창업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며 “특히 창업을 한다고 해도 실패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창업의 길로 갈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교육기간동안 교육비는 고용보험에서 지급된 것이 위안이었다. 지씨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전문적인 기술을 익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싶은 게 지씨의 마음이었다. 지씨는 고민을 거듭하다 제과 제빵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양재기술보다는 활용도가 높을 거라고 판단했다. 다시 6개월간 제빵기술을 배웠다. 제빵기술 교육은 수료했지만 이도 취업이 만만치 않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취업을 알아봤지만 창업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지씨는 “나이제한, 기혼자, 실무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며 “아이들 딸린 여성이 반듯한 직장을 구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였다”고 말했다. 또 다시 6개월을 허송세월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함께 모시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아이들을 돌보게 했지만 이도 죄송한 마음만 들뿐이었다. 지씨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곳이 미용학원이었다. 일단 과정을 수료하면 미용실에 취직이 쉽고, 경력이 쌓이면 개인 가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6개월간 교육기간이 끝나고 견습사원으로 1년간 일했다. 이 기간 동안 월수입은 60만원에 불과했다.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머리 감기고 청소하며 어깨넘어 곁눈질로 기술을 배웠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지씨도 어느덧 어엿한 미용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빠듯한 생활이지만 아이들이 희망 = 지씨는 오미영 헤어숍으로 일터를 옮기고 월급도 120만원으로 올랐다. 남편이 사망하고 산재보험에서 보조해 주는 생활비를 더하면 빠듯하게 생활한다. 물론 지금도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를 쓰고 보험금 들어가고 나면 저축은 생각도 못한다. 지씨의 가계규모를 살펴보면 매월 60만원가량이 아이들 유치원비와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또 자신을 포함해 아이들 보험금이 40만원. 50만~70만원 정도 생활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저축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지씨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오미영 원장처럼 머리 만지는 일이 프로가 되려면 아직도 배워야할 기술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씨는 “늦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미래가 보이는 기술이 배웠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이 뿌듯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침 9시에 나오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한다. 작은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는 미국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딸에게는 최근 아버지의 사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딸은 밤새 울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지씨는 “미용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힘이 들지만 열심히 일해서 내 가게라도 차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다행히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0
- 이명박 최대후원자는 가족 가난한 집안 출신의 이명박 당선자와 달리 부인 김윤옥(61·사진) 여사는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에서 자렸다. 덕분에 낙천적이며 적극적이라는 전언. 인상도 후덕하다. 이 당선자가 현대건설에 근무할 당시엔 이 당선자 건강을 위해 한탄강에 장어를 잡으러 갔을만큼 정열적인 면도 있다. 대선과정에서도 이 당선자가 자주 챙기기 힘든 사찰행사 등을 꾸준히 찾아 약점을 보완해줬다. 하지만 김 여사는 선거기간 중 고가의 핸드백을 들고다닌 사진이 공개되면서 맘고생을 하기도했다. 이 당선자는 김 여사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첫째와 둘째딸인 주연, 승연씨는 줄리어드 음대를 나왔다. 남편은 각각 이상주 삼성화재 상무보와 최의근 서울의대 전문의다. 셋째딸 수연씨는 이대를 나와 한국타이어 부사장 조현범씨와 결혼했다. 조씨는 거액의 주식거래를 하면서 ‘이명박 테마주’를 만들어내 구설수에 오르기도했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조씨를 유독 아낀다는 평. 미국에서 유학한 아들 시형씨는 위장취업과 히딩크 사진, 고가 샌들 등 시비에 휘말리면서 주목받기도했다. 이 당선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둘째 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있다. 이 당선자의 정치선배인 이 부의장은 서울대 상대를 나와 코오롱 사장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 부의장은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과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1등 공신이다. 언제나 이 당선자의 그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했다. 첫째 형 이상은 다스 회장은 다스가 이 당선자의 은닉재산이라는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는 곤욕을 치렀다. 엄경용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20
- [밥일꿈]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면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면 한창규 (한국갱생보호공단 이사장) 경제만 성장하면 국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복지사회가 실현될 것으로만 믿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소외된 자들의 불행감을 더욱 높게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이 범죄의 발생, 특히 출소자들에 의한 재범율의 증대와 누범율의 가속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범죄는 해마다 줄지 않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범죄의 비중이 높아져 가고 있다. 범죄로부터 우리사회를 보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일시적으로 격리시키는 시설내(교정시설) 처우와 전력자를 중심으로 범죄예방활동을 하는 갱생보호제도가 그것이다. 범죄자를 시설 내에 수용하고 교정·교화를 하는 것은 범죄예방에 일시적인 효과가 있지만 일탈 행위자를 영구히 격리시키지 않는 한 사회가 범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따라서 질서 있는 사회를 위해서 언젠가는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어떻게 개선하고 교화시켜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도록 할 것인가가 이들을 격리수용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다. 이처럼 갱생보호사업은 사회적 기피대상인 무의탁·생계곤란 출소자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과 범죄예방활동을 통해 개인 및 공공의 복지 증진과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특히 출소자들에게 있어서 출소 후 2∼3개월은 재범의 유혹과 함정이 많기 때문에 이 기간을 잘 넘기면 사회적응이 쉽고 갱생자립에 성공할 수 있다. 이 때가 사회 내에서의 직업교육, 교우관계 및 주거환경 개선, 정신교육, 사후지도 등의 집중적인 재사회화 교육 및 보호지원이 요청되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한국갱생보호공단에서는 호구대책도 없이 출소하여 생계가 막연한 소외·극빈 계층인 출소자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사회에 재적응 할 수 있는 방안강구를 위하여 ‘교정시설과 사회를 이어주는 출소자의 교량’ 역할로 무의탁 출소자에 대한 숙식제공, 특별한 기술이 없어 취업에 애로를 겪고 있는 출소자들에게는 자동차정비, 중장비, 이·미용, 요리, 자동차 운전 등의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 취업처가 없는 대상자들에게는 취업을 알선해주고 있으며 주거지원사업과 합동결혼식 개최, 무호적자에 대한 호적취득, 주민등록 재등록, 자매결연, 의료시혜 등 이들의 자립갱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이들을 외면하고 냉대하며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들을 멀리하면 멀리 할수록 그 부작용은 범죄라는 큰 해악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 사회 구성인 모두가 이들에게 인간적인 온정으로 먼저 다가설 때 이들은 우리의 다정한 이웃으로 서서히 자리잡게 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0
- <北에 바둑 ''열풍''>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 북한의 신세대 사이에 바둑 열풍이 불고 있다고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29일 전했다. 진원지는 평양시 대동강 구역에 있는 문수바둑장. 바둑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기치로 2003년 문을 연 이 바둑장은 등록자 200명가운데 70%가 아마추어 1단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평양기계대학, 조선체육대학, 평양미술대학, 평양외과대학 등이 바둑장 인근에 있는 관계로 등록자의 80%를 20~30대 대학생이 차지해 ''대학생 바둑장''이라고도 불린다. 대학생 단골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평양철도대학 등 다른 구역에 있는 대학생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이 바둑장에서는 바둑 두기를 가르쳐 주면서 매달 두번씩 단과 급수 판정 경기를 연다. 이 바둑장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정소희(28.여) 책임자. 평양시 바둑장에서 일하는 바둑 보급자(바둑 사범)가운데 유일한 20대인 그는 "민족문화 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데서도 새 세대가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 정길남(61.조선체육학회 회원)씨의 당부로 평양음악무용대학 기악학부를 나온 뒤이곳에 투신했다. 바둑장 설립 때부터 일하고 있는 그가 새 세대 바둑 보급자로 활약하면서 지금까지 가르친 바둑 애호가만도 수백여명에 이른다고 신문은 소개했다.그는 국내외의 각종 바둑교재와 참고서들을 구해 회원들에게 전파하고 바둑 실력자들의 초빙 강의를 주최하는 등 바둑의 저변 확대와 기술 향상을 위해 시간과 열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 정씨는 "하루 종일 바둑 애호가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민족적 정서를 가꾸는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면서 바둑을 처음 배운 ''제자''들 속에서 이제는 ''스승''을 압도하는 바둑 유단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남편 김현(33.평양미술대학 4학년)씨도 이 바둑장의 이용자로, 지난해 바둑장에서 만나 결혼한 뒤 바둑 보급을 위해 애쓰는 정씨에게 "언제나 힘과 용기를 주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hsh@yna.co.kr(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0
- 서평 “세계화 시대, 변하고 뭉쳐서 뛰어야 산다” 경제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이관우 지음, 한국경제신문) “세계화 시대, 변하고 뭉쳐서 뛰어야 산다” IMF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후 수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반복해서 제안하고 수용한 정책들을 IMF사태가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주장해 왔던 선배 금융인이 있다. IMF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그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전 한일은행 이관우 행장이 바로 그다. 이관우 행장이 1990년대 초부터 언론 기고와 강연, 금융기관장 회의에서 한 발언과 그 외 여러 경로를 통해 사견으로 제의되었던 내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경제학자인 두 아들(이석형, 이은형 경제학박사)이 엮어서 으로 펴냈다. 이들은 2007년 말 한국 금융산업과 경제가 나아갈 바를 조명하는데 선배 금융인의 생각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표시했다. ◆전문 경영인 양성 = 이 행장은 지난 96년 ‘21세기를 맞는 금융인의 자세’라는 글을 통해 최근 국내 금융회사들에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전문 경영인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21세기를 몇 년 앞둔 시점에서 WTO체제 출범, OECD 가입, 금융자율화 등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를 가속시키고 있다”며 “무사안일한 제도권 속에 안주해 온 은행원들의 각고의 반성과 자기계발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이야말로 은행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며 “우수한 인재의 확보는 물론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을 은행경영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시행, 한국 금융산업의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금융권에서 해외진출과 IB(투자은행) 업무를 위해 인재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내용을 이미 10년전부터 주장한 것이다. ◆세계화의 중요성 강조 = 또 이 행장은 세계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지난 95년 ‘세계화의 길’이라는 글에서 그는 “결혼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듯이 세계화 역시 마찬가지”라며 “최소한 남이 하니까 덩달아 하는 세계화는 아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무한경쟁, 세계화 시대에 세계일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세계일류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다같이 변하고 뭉쳐서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화를 위해서 그것을 가로막는 요인부터 제거해야 하며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내세운다. ◆중소기업의 생존전략 = 또 이 행장은 세계화에 대비한 중소기업의 대응전략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이 행장은 “중소기업은 국가경제의 밑바탕이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중소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재무구조의 충실화, 인적자원의 자질향상, 국제업무 능력 배양, 노사협력관계 유지, 전산화 추진, 품질제일주의, 금융기관과의 건전한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침체는 기업이 체질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중소기업 스스로의 혁신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중소기업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과제들이어서 중소기업에게만 맡겨져서도 안된다”며 “중소기업 스스로의 노력, 정부의 정책, 금융기관의 효율적인 지원이라는 삼박자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IMF의 교훈 = IMF가 발생한 다음해 봄에는 ‘경제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글에서 이 행장은 “당시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동남아에서 외채 규모가 너무 커 원리금 상환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한국만큼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외국에서 강조했다”며 “전 국민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과 한일은행이 전개한 ‘IMF 경제위기 극복 3000만 저축운동’이 외국인들에게 외채 상환의지가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감동을 전했다. 이어 “계절은 봄이지만 경제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IMF라는 현실은 가혹하다”면서 “우리의 잘못을 자성하고 우리 경제구조를 변혁한다면 한국은 다시 없는 재도약의 기회를 움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금융산업 미래 = 우리나라 경제가 1960년대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1960년대 1인당 GNP가 79달러에서 1996년에는 1만504달러로 성장했으며, 수출은 3290만 달러에서 96년도에는 1297억달러가 됐다. 이후 200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달한다. 경제규모와 질적 수준이 이렇게 커진 가운데 전부 7개이던 은행이 한국은행을 제외하고 96년에는 33개가 됐다. 이런 변화에 대해 이 행장은 “내가 입행할 때만 해도 영업점 안에 ‘친절 신속 정확’이라는 문구를 고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 붙여 놓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어느 은행을 가 봐도 그런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고객만족, 고객 감동이라는 것은 친절, 신속, 정확이라는 세가지로 끝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결론에서 “우리 금융산업은 지금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이제는 단지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을 갖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며 “정보통신산업, 철강산업, 조선산업처럼, 우리 금융산업도 이제는 국제 금융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과 우수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활용해 우리만의 금융모델을 정립하고 굴지의 금융기관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 금융인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1936년 경기도 의정부 출생. 보성고,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몽골 국립대학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길림대학 명예교수, 중국 길림성 사회과학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62년 한일은행을 입행하여 임원부속실장, 영업1부장을 거쳐 1988년 이사에 취임하였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은행장을 역임하였다. 상임고문을 역임한 후 사회봉사활동인 백범건립위원회 재정위원장,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교 초빙연구원, 중앙대학교 객원교수,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몽골 국가훈장을 수훈하였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몽골협력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융인 최초로 대한민국 문화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금융산업발전에 대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17
- 남편 잃고 미용기술 배워 4인가족 이끄는 지정아씨 “아이생각하며 죽을 각오로 기술 습득” 양재 제과제빵에 이어 미용기술 습득 … 3전4기 끝에 직장 얻어 미래 불투명, 아직은 불안 …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희망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이 둘과 저를 남기고 무심코 떠난 사람이 불쌍하기도 했고 험한 세상 살아가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경기도 의정부 신곡동에 위치한 오미영 헤어숍에서 보조 미용사로 일하는 지정아(여 39)씨. 지방도시 주거단지 인근 10평 남짓 작은 미장원이지만 최근 오픈했는지 깔끔한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덕분에 화사해 보였다. 오미영 원장과 지 씨, 젊은 남자직원 3명이 근무하는 보금자리이다. 이 미장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 지 씨다. 지 씨가 이곳에서 일한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이제 갓 미용기술을 배운지 1년 밖에 되지 않는 초보 미용사이다. 하지만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남편 잃고 죽고 싶은 마음뿐 = 지 씨가 미용기술을 배워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된 데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 28살에 남편 김 모씨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화학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 화학분야 중에서도 화약과 같은 폭발 위험성 물질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술 덕분에 남편을 찾은 기업도 많았고, 수입도 괜찮아 무난한 가정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아이도 둘이나 얻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 이런 지 씨 가정에 시기의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 2002년 8월 남편이 새로 옮긴 직장의 연구실로 주말에 실험을 하러 간 것이 화근이 됐다. 실험실에서 이 회사 연구소 소장과 함께 실험을 하다 폭발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로 김 씨와 연구소장이 사망했다. 김 씨가 남겨둔 것이라곤 지 씨와 4살짜리 딸과 2살짜리 아들뿐이었다. 울고 또 울고 악몽같은 날을 몇 달동안 보냈다. 함께 죽는 게 사는 것 보다 낮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고치고 추슬렀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겨진 재산이라고는 전세금과 몸뚱이뿐이었다. 남편은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흔한 보험도 하나 들어 놓지 않았다. 지 씨는 아이들과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지씨는 “아이도 돌보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전북 정읍 시골에서 고등하교를 졸업하고 의정부에서 골프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잠깐 근무했던 경험 밖에 없어 살길이 막막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3차례 기술 교육 =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식당 종업원 아르바이트부터 시간제 단순노동 등 뼈 빠지게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진 않았다. 지 씨는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낮다고 생각했다. 이러던 중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다 양재기술(재봉기술)교육기관의 광고를 보고 양재기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6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지만 취업은 녹록치 않았다. 양재기술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었다. 지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옷수선집을 열거나 세탁소 개업을 해야 기술을 써 먹을 수 있었다. 지씨는 “창업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며 “특히 창업을 한다고 해도 실패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창업의 길로 갈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교육기간동안 교육비는 고용보험에서 지급된 것이 위안이었다. 지 씨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전문적인 기술을 익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싶은 게 지 씨의 마음이었다. 지 씨는 고민을 거듭하다 제과 제빵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양재기술보다는 활용도가 높을 거라고 판단했다. 다시 6개월간 제빵기술을 배웠다. 제빵기술 교육은 수료했지만 이도 취업이 만만치 않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취업을 알아봤지만 창업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지씨는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나이제한, 기혼자, 실무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며 “아이들 딸린 여성이 반듯한 직장을 구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였다”고 말했다. 또 다시 6개월을 허송세월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함께 모시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아이들을 돌보게 했지만 이도 죄송한 마음만 들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 씨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곳이 미용학원이었다. 일단 과정을 수료하면 미용실에 취직이 쉽고, 경력이 쌓이면 개인 가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6개월간 교육기간이 끝나고 견습사원으로 1년간 일했다. 이 기간 동안 월수입은 60만원에 불과했다.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머리 감기고 청소하며 어깨넘어 곁눈질로 기술을 배웠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지 씨도 어느덧 어엿한 미용사가 되어 가고 있다. ◆빠듯한 생활 아이들이 희망 = 지 씨는 오미영 헤어숍으로 일터를 옮기고 월급도 120만원으로 올랐다. 남편이 사망하고 산재보험에서 보조해 주는 생활비를 더하면 빠듯하게 생활한다. 물론 지금도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를 쓰고 보험금 들어가고 나면 저축은 생각도 못한다. 평균 지 씨의 가계규모를 살펴보면 매월 60만원가량이 아이들 유치원비와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또 자신을 포함해 아이들 보험금이 40만원. 50만~70만원 정도 생활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저축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지 씨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오미영 원장처럼 머리 만지는 일이 프로처럼 되려면 아직도 배워야할 기술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씨는 “늦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미래가 보이는 기술이 배웠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이 뿌듯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침 9시에 나오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한다. 작은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는 미국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딸에게는 최근 아버지의 사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딸은 밤새 울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지씨는 “미용기술은 배우는 과정은 힘이 들지만 열심히 일해서 내 가게라도 차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다행히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30
- 지난해 전세자금·주택대출 급증 작년 전세자금 보증 2조5천억 돌파 … 전년대비 46.5% 급증 11월 주택대출 연중 첫 1조원 넘어 … 입주물량 급증, 일시 현상 지난해 전세값 상승과 신규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서 전세자금과 11월 주택관련 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세값이 상승한 것은 청약 가점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집값 급등세가 주춤해지면서 주택 구입을 미루는 사례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11월에는 신규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서 예금은행의 주택 관련 대출이 1조3000억원 가량 늘어 연중 최대의 증가액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가계대출은 전월에 비해 증가 규모가 다소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2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작년 주택금융공사가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주신보)을 통해 무주택 서민들의 전세자금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서준 금액은 총 2조5365억5500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8045억6900만원(46.5%) 급증했다.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 보증은 만 20세 이상 부양가족이 있는 가구주나 결혼 예정자가 담보나 연대보증 없이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해주는 제도이다. 기금의 보증한도가 은행 대출액의 90%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작년에 은행들이 공급한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약 2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자금 보증 공급액은 2005년 1조8140억4500만원에서 2006년 1조7319억8600만원으로 820억5900만원(4.5%) 줄었지만 지난 해 급증세로 돌아섰다. 기한연장을 제외한 신규 보증규모는 작년 1조7104억1000만원으로 전년의 1조670억2700만원에 비해 6433억8300만원(60.3%) 급증했다. 전세대출 수요가 급증한 것은 청약 가점제와 분양가 상한제 시행 등을 앞두고 주택 구입을 미루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예금은행의 주택관련대출이 급증했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007년 11월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472조6983억원으로 전월말에 비해 4조8273억원이 늘어 10월(5조640억원 증가)에 비해 증가 폭이 둔화됐다. 하지만 11월 신규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서 예금은행의 주택 관련 대출이 1조3000억원 가량 늘어 연중 최대의 증가액을 기록했다. 예금은행의 주택 관련 대출은 월중 1조2986억원이 늘어 연중 처음으로 증가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한은은 “용인, 성남 등의 아파트 입주 증가로 잔금 대출이 늘고 서울·경기지역의 주택 관련 대출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라면서 “주택대출 시장이 비수기임에도 이처럼 큰 증가액을 나타낸 것은 입주물량 급증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