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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해리포터와 문화 길잡이 모처럼 아이들과 영화 해리포터를 보았다. 십대로부터 삼십대에 이르기까지 해리포터 독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작품답게 극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21세기를 여는 문화와 예술의 바다에서 영화 해리포터는 단연코 우리 아이들의 눈길과 마음을 온통 끌어당기는데 성공한 것이다. 주인공 해리포터와 악당 볼드모트의 대결은 정교한 장치와 기상천외한 반전에 힘입어 보는 이들의 넋을 잃게 하였고, 진부하지만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우정과 가족애는 선과 악의 대결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양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영화 해리포터가 중학교 2학년인 지원이와 슬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작품 속 해리포터의 세계는 창의적인 소품과 독특한 캐릭터가 컴퓨터 게임처럼 배치돼 있고,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연출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면서 해리포터만이 줄 수 있는 세계가 꿈처럼 아이들의 가슴을 파고 든 것이다. “왜 해리포터에 열광하니?” “너무나 진짜 같아요. 책 내용과 영화 내용도 똑같잖아요.” “뭐가 진짜니? 어차피 책이나 영화는 상상의 세계잖니?” “하지만 해리포터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평소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걸요.” 그랬다. 해리포터는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의 심리를 물처럼 담아내고 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날마다 전자오락에 열중하는 지원이와 슬기에게 해리포터의 내용이 현실 속의 세계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변했다. 눈물과 감동은 퇴색하고 오락성은 차고 넘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가슴을 적실 수 있는 문화가 증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슬기와 지원이에게 해리포터의 양면성을 얘기해 주었다. 잘생긴 주인공과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난 천재만이 각광을 받는 세계, 백인우월주의와 팍스 아메리카가 마약처럼 감각을 무디게 하는 세계, 예외 없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의 부작용 등을 지적했다. 원작 인어공주와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예를 들기도 했다. 영화 속 인어공주가 멋진 왕자의 품에 안겨 함빡 웃는 행복한 결말과는 달리 원작 속의 인어공주는 사랑이 물거품이 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비극적 과정에서 읽는 이들은 사랑의 진면목과 인생의 고민을 느끼며 생각의 여백을 만들게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생략한다. 운좋게도 왕자의 품에 안겨 생긋 웃음 짓는 인어공주의 해피엔딩에서 감동 대신 찔끔 웃음이 나오는 ‘재미’를 느끼며, 아이들은 덤으로 횡재하는 인생 보너스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눈빛 초롱한 슬기와 지원이는 의외로 진지했다. 해리포터에 그런 성격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작품을 대할 때 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겠다는 예쁜 고백도 이어졌다. 아이들은 대부분 영화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서 얻는다. 이제는 부모가 공부할 차례다. 어른부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을 어떻게 현대적인 영화와 대비시켜서 교훈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 김대유 (서울 서문여중 교사) 2002-01-16
- 겨울방학, 역사 속에서 배우자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요즘. 겨울방학을 맞은 우리 아이들에게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자.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직접 가서 보고 느낀 점을 함께 이야기하며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유산들도 많지만 먼저 아이들에게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우리동네 문화유산을 답사하도록 하자. 아이들에게 우리 고장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등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김포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많이 보존되고 있다. 또한 가까운 강화 역시 아이들과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꼽힐 만큼 많은 문화유산들이 보존돼있다. 1. 김포의 문화유적 김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김포시청 뒤 풍무동에 위치한 장릉을 들 수 있다. 장릉은 사적 제202호로서 조선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황후 구씨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 중기 능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다. 관리사무소(984-2897). 대곶면에 위치한 덕포진은 사적 제292호로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되는 어구이기도 했다. 손돌항에 천연의 요새를 이용한 군사의 요충지로 창설시기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왕조의 선조로 추정된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격전을 치뤘던 곳이며, 1980년에 발견되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감정동에 위치한 우저서원은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0호로 1972년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며 의병장인 중봉 조헌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48년(인조26)에 창건하였다. 조헌은 김포에서 출생하여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전라도 금산에서 전사하였다. 북변동에 위치한 김포향교는 문화재 자료 제29호로서 고려인종 5년(1127) 3월에 창건하였다. 공자 및 맹자 순자 증자 자사의 5성과 정자 주자의 송조2현 및 우리나라의 맹현 18위의 위패를 모셨다. 이 향교는 원래 장능 동북방 현 김포고등학교 산기슭에 있던 것을 원종대왕을 장능으로 모시게 되자 김포시 김포동으로 이전하였다가 현 위치에 이축하였다. 하성면에 위치한 애기봉은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기생인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있는 곳으로 지금은 북녘 땅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분단의 아픔을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곳이다. 실향민의 망배를 위하여 93년에 망배단을 세웠다. 방문시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관리사무소(988-6128) 2. 강화의 문화유적 강화의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중의 하나인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를 비롯하여 고려산(436m)을 중심으로 반경 4km내에 고인돌 120여기가 집중되어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강화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강화시내를 직진으로 빠져 나와 강화서문에서 4km 정도 직진하면 하점면에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인 강화지석묘가 있다. 강화도에 있는 사찰은 전등사 보문사 정수사 등이 있다. 사찰 중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전등사로 전등사대웅전(보물 제178호)과 전등사약사전(보물 제179호) 전등사범종(보물 제393호) 전등사대조루(문화재자료 제7호)가 있다. 보문사에는 보문사석실(시 유형문화재 제27호)과 보문사마애석불좌상(시 유형문화재 제28호)이 있다. 전등사 보문사와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찰 중의 하나로 정수사대웅전(보물 제161호)이 있다. 전등사 관리사무실(937-0125). 관청리에 위치한 용흥궁은 조선 후기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곳으로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70m 정도 서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기와집이다. 용흥궁은 원래 초가였으나, 1853년(철종4)에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용흥궁의 배치는 서울에 있는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으로 지어 질박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는 철종이 머물던 옛 집터임을 표시하는 비와 비각이 있다. 마찬가지로 관청리에 위치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인천 유형문화재 제31호로, 한국 성공회 역사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당으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성베드로와 바오로성당’이라고도 하며 한국 성공회 초대 선교사인 요한 주교에 의하여 1900년(광무4) 11월15일에 건립되었다. 외형상 직사각형인 이 성당은 서구의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동양화한 것으로 불교사찰의 분위기를 지녔으며 특히 지붕과 내부구조를 한국적 건축양식으로 하여 그리스도교 한국 토착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불은면의 광성보는 사적 제227호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며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갑곶리 강화의 초입에 위치한 강화역사관은 강화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토기, 고려청자 대포 기타 문구 종류와 의상 등 총 169점의 유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역사의 고도이며 개국의 성역인 강화도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역사관(930-3525).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2002-01-01
- <꼭지> 익산참여자치연대, 3대 시의회 평가 <익산1면> 농촌지역 초선의 젊은 의원 활약 두드러져 정책입안·갈등조정자 역할 아쉬워 창립3주년을 맞은 '익산참여자치연대'(대표 김성태. 이하 참여연대)가 제3대 익산시의회 3년간의 활동을 모니터링한 평가서를 내놔 주목을 끌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2일 창립 기념식과 함께 시의회 활동 평가 내용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의정활동 모니터링과 회의록 등을 통해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본지는 참여연대가 발표한 '평가 보고서'가 완벽한 평가서라고는 볼 수 없으나 비교적 객관적인 수치와 자료에 기초하고 있고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의회활동을 평가했다는 점을 감안해 평가서의 내용을 발췌 보도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의원들의 출결 발언횟수 등 기초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내용을 보도한다. 참여연대는 평가서에서 "의회와의 입장차이와 이해부족에서 오는 갈등도 있었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면서 "의회발전과 시 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평가 보고서가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석 완결 28명중 14명 가장 기본이 되는 출석관계를 살펴보면 3대의회 전체 출석일수 264회 가운데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은 의원은 14명으로 나타났다. 박문기 의원이 총 12회를 결석해 가장 많은 결석횟수를 기록했고, 임귀택 의원이 8회, 정철교, 권석종 의원이 7회의 결석이 있었다. 그 외에 남궁승영, 김세현, 강덕원, 이종웅, 나훈, 주방식, 송석철, 김광수, 서동훈 의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문기 의원은 5일간 열린 제57회 회기에서 5번을 모두 결석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의회 건물 안에만 들어와도 출석으로 처리하는 제도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실제 의원이 회의장에서 이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상황은 출결현황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결상황에 대한 정확한 규정과 관리가 진행돼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졸의 농촌지역 의원 질의빈도 높아 회의록에 나타난 의원활동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나이와 학력, 직업렬로 질문의 횟수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인당 150회 정도의 평균발언빈도에서 40대 이하의 젊은 의원이 다수를 차지했고, 직업별로는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의원이 상대적으로 왕성한 질의를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졸보다는 고졸이나 초졸이 높은 질의 빈도를 보인 점은 주목을 끈다. 지역구별로는 농촌지역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의회에 진출한 의원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도농통합시 농촌지역의 발언권 축소를 염려했던 우려와는 달리 농촌지역 의원들의 활동이 더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선수별로는 초선의원의 빈도가 월등하게 높게 나타난다. 분포에서는 재선의원이 가장 많았지만 질문빈도는 가장 낮았고 심지어 3선 의원보다 저조했다. 재선의원들의 소극적인 활동은 예상을 빗나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안제시형 질문 1위 박재희 의원 참여연대가 의원들의 질문을 유형별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박재희(모현 계문동) 의원이 대안제시형 질문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대안제시형 질문 287건중 10.8%에 해당하는 31회로 나타났고 신영철(망성면) 남궁승영(함라면) 양종규(용안면) 의원 등이 뒤를 이었다. 참여연대는 "의원의 의회 활동에서 정책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대안제시 여부"라면서 "다만 나름의 연구와 타당성이 검증되지 못한 결과도 있어 아쉽다"고 평가했다. 질문출처에 따른 분류에서 박종규(오산면)의원은 가장 연구를 많이한 의원으로 꼽혔다. 박 의원은 개인연구에 기초한 질문현황에서 전체 131회의 개인연구 질문에서 15회로 11.45%를 기록했다. 박종규(14회) 김정기(13회) 주방식(11회) 의원 등이 뒤를 이었다. 참여연대는 "개인연구는 의회활동의 사전준비를 의미한다"면서 "전체 질문에서 이 분야가 대단히 낮은 비율을 차지해 의정활동에 연구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함께 상반기 각 상임위의 차수별로 한번도 질의를 하지 않은 의원들도 눈에 띈다. 성실한 의정활동과 연계되는 미질의 현황은 시의회의 현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분석하고 있다. 행자위의 경우 전체 548회의 미질의 현황에서 임수웅(함열) 의원이 66회로 가장 높았고 김세현(64회) 주방식(56회) 임귀택(54회) 나 훈(50회) 순이었다. 사회산업건설위원회는 정철교(중앙)의원이 63회, 김정기(58회) 국옥환(58회) 김종만(52회) 서문재(50회) 의원 순이었다. 공무원 자료 의존도 월등 의정활동에 필요한 각종 자료는 시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공직자가 마련해 준 자료가 주를 이룬 상황에서 효율적인 의회활동에 의문이 간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질문유형별로는 설명요구형(46%)이 가장 많았고 입장표명요구형(26%) 비판추궁형(21%) 등이 뒤를 이었다. 행정기능별로는 일반행정이 전체의 59%를 차지했고 예산(19.4%) 환경(5.95%) 지역개발(4.45%) 등으로 행정일반에 대한 질의량이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행정일반에 대한 질의로 집중되고 전문성이 필요한 전문분야는 취약성을 나타냈다"면서 "사회복지 교육 문화 청소년 등의 문제에 대한 질의가 대단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2001-12-17
- 노무현 고문, 링컨평전 출간 민주당 노무현 고문이 4일 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에 관한 평전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다른 링컨에 관한 책들이 ‘위인적 관점’ ‘초월적 대통령의 관점’에 입각한 것과 달리 정쟁과 분열, 갈등 속에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는 ‘현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링컨을 서술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 고문은 서문에서 ‘지난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 개표가 진행될 때 부산에서 링컨 대통령의 재취임 연설을 읽으면서 링컨과 다시 만났고, 이 때 받은 충격적인 감동이 집필의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노 고문은 이 책에서 링컨의 두가지 점을 강조했다. 하나는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룬 링컨의 뛰어난 정치력이다. 링컨은 세력기반이 취약한 소수파로 열악한 정치환경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링컨은 포용과 결단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연방통합과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했다. 노 고문은 다음으로 링컨은 원칙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모범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우리 역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반칙이 승리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링컨은 정직과 성실, 원칙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후세들에게 남겼다는 것이다. 2001-12-04
- 선산읍성 남문 낙남루 중창 기공식 열려 선산도호부의 위상을 재현해 구미시의 새로운 상징물로 기대되고 있는 낙남루가 복원된다. 26일 구미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의 현장을 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취지로 낙남루 중창을 추진, 26일 오후 선산읍 1호 광장에서 기공식을 개최한다. 선상읍성 남문인 낙남루는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으로 선산을 지켜온 역사적인 문화유산. 낙남루는 고려말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 수 백년 동안 선산 사람들과 선산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이 드나든 관문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산읍성의 연혁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여지도서’ 등 인문지리지와‘선산부 관안’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선산읍성은) 흙으로 쌓았다. 고려말에 지군(知郡) 이득진(李得辰)이 쌓았는데, 둘레가 2740척이요, 안에 9개의 샘과 3개의 못이 있었으나 없어진지 이미 오래고, 지금은 다만 남문과 서문 두 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갑인년 부사 조두수(趙斗壽)가 석축을 하였는데 둘레가 1448척이고 높이가 9척이며 동서남북 4문이 있다. 그 후 1790년∼1793년경에 선산부사 박수원이 남문루를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또 1808년∼1811년경에 선산부사 이재항이 남문루를 수리하였다.” 하지만 선산읍성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지고 그 기능이 잊혀져 가며 낙남루 또한 옛 지도에만 남게 됐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선산읍성 성문의 중창은 경북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게 구미시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시는 낙남루 중창을 위해 철저한 고증과 기초자료를 수집할 학술용역과 실시설계를 이미 마쳤으며 앞으로 약 1년의 공사를 거쳐 내년 10월경 준공할 예정이다. 2001-11-28
- 시설은 합격점, 대회 운영은 아직 전국 최고 수준의 경기장 시설을 자랑하며 8일 개장한 전주월드컵 경기장 개장식이 대회 운영면에서 많은 숙제를 남겨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오후 도내 각지에서 몰려든 입장객들이 17만여평에 이르는 방대한 경기장 주변을 누비는 등 뜨거운 열기로 첫발을 내 딛었으나, 운영상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은 물론 시민의식의 실종으로 어김없이 교통혼잡을 연출, 내년 대회의 성공적인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는 평이다 특히 전주시가 차량2부제 운영과 셔틀버스 운행 등을 도입했지만 교통난 해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해 시내권에서 진입하는데 꼬박 1시간이 걸리는 등 교통문제가 가장 큰 난제로 부각됐다. 진입에 1시간, 나오는데 1시간 개장식 식전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차량으로 경기장 주진입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고속도로와 군산 익산에서 진입한 차량과 팔달로를 통해 경기장을 찾는 입장객 차량이 뒤 엉키면서 교통흐름이 마비상태에 이를 정도. 서부우회도로를 통한 경기장 진입도 밀리기는 마찬가지. 국가대표팀과 세네갈 팀과의 경기 시작 1시간여를 남기고서는 서곡지구 인근 도로부터 진입로가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평소 차량으로 10분을 넘기지 않는 도로를 가는데 꼬박 1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시간에 쫓긴 행사차량 10여대는 경찰차의 호위를 받아 역주행을 불사하는 '모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기장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데는 짝수차량 진입금지와 셔틀버스 이용을 당부했던 주최측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경기장의 동문과 서문중 동문만을 개장한 영향도 컸다. 이는 서부우회도로에서 진입하는 도로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장식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기장 인근 뿐만 아니라 시내권에서부터 도로망의 교통소통 전체를 체크해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 가동이 필요하다"면서 "내년 대회전까지 충분한 검토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량2부제 청결 질서는 남의 일 이와같은 교통대란은 월드컵 경기를 치를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한 시민의식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주시는 교통체증을 예상해 차량2부제 시행과 함께 셔틀버스 이용을 당부해 왔다. 그러나 개장식이 다가오면서 버젓이 짝수차량을 타고 진입하는 관람객에 대한 단속은 소통을 위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지정 주차장제도를 운영했지만 가까운 곳에 차를 대려는 시민들은 이를 무시해 심지어 잔디 화단위에 차를 올려놓는 몰상식을 연출하기도. 지정석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들은 남의 자리에 앉아 말다툼이 벌어지는 가 하면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시민들을 상대로 암표상들이 폭리를 취하는 등 후진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시민단체와 함께 의욕적으로 펼쳐왔던 '한줄로 서기' 운동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화장실과 매표소는 몰려드는 관람객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익산에서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경기장을 찾았다는 김경수(36세)씨는 "월드컵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모양"이라면서 "시민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 놔도 어렵지 않겠느냐"며 개탄했다. 사상 최고의 관람객이 몰린 월드컵경기장 개장식은 식전행사에 이어 대형 폭죽과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폭죽이 깜짝쇼 형식으로 터지면서 관람객이 놀란 것은 물론 '도난방지시스템'을 설치한 차량이 폭죽 폭발음의 진동으로 작동해 울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등석 점령한 높으신 분들, 게임중에 몰려나가 1등석 다수를 점하고 있던 도내 지방정치권 인사들이 게임도중 관람석을 빠져나가 경기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던 관객들과는 대조를 보였다. 입장권을 구매가 아닌 초대권 형식으로 입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경기 중반 선약이나 다음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 4만여명의 관객이 몰려 꽉 찼던 운동장은 이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이빨이 빠진' 모양을 연출했다. 정치권 인사 불참, 관중석 뜨거운 열기와 대조 대규모 행사에 뒤질세라 참석했던 중앙정치권 인사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은 개장식이었다. 도내 국회의원중 장영달 의원만 참석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궁 진 문화관광부장관이 대통령 치사를 대독했고 월드컵조직위 정몽준 이연택 공동위원장, 이무영 전 경찰청장 등만 참석해 당초 대규모 귀빈석을 준비했던 전주시와 주최측이 서운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국내외 취재진, 전통미 살린 경기장 호평 한국과 세네갈 대표팀과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내려온 취재진이 경기장 시설을 둘러본 뒤 '특색있는 경기장'으로 호평. 특히 합죽선 모양으로 배치된 지붕 사이가 뚫린 점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중앙언론사의 한 기자는 "늦가을이라 지금은 춥게 느껴지지만 내년 본대회가 초여름에 개최되는 점을 감안하면 시원한 경기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무영 청장 교체소식 듣고 급거 경기장 치안상태 점검 등을 이유로 전주를 방문했던 이무영 청장은 오후 6시경 정부로부터 경찰청장 교체 소식을 듣고 경기 중반에 급거 상경. 올들어 7번째로 지역을 방문한 이 청장은 당초 기자실을 들러 12월 초 청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교체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지사 선거 출마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청장이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할 지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이 청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발전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향후 행보에 관해 여운을 남겼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2001-11-09
-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 의 전 청와대 출입기자가 쓴 책 한 권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야와 언론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정치부 성한용 기자는 최근 펴낸 ≪디제이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라는 책에서 정부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착수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덧붙였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청와대 인사들의 발언이다. △98년 8월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은 언론개혁에 대해 “좀 지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하면 사활을 건 전쟁이 된다. 이런 얘기가 나가면 큰일난다”고 털어놓았다. △98년 11월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한밤중에 술에 취해 “중앙과 세계는 당장 작살내겠다. 조선도 두세 달 내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고 말했다. △2000년 3월 15일 공보수석실 한 비서관은 “총선 이후 뭔가를 해야 한다는 데는 실무자들 사이에 이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할지 여부는 대통령만 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 시기를 살펴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2001년 초 청와대 한 수석은 “우리가 언론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조선, 동아, 중앙은 길길이 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뭘 어떻게 하겠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겨레가 줄기차게 요구한 언론개혁을 곧 시작한다. 기사를 미리 쓰지 마라.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했다. 그동안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해 온 야당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청와대의 해명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호남 편중 인사와 경제 위기 등과 관련한 비판적 보도에 대한 (정부의) 감정적 대응으로 세무사찰이 실시됐고, 언론사 사주도 괘씸죄로 구속됐음이 드러났다”며 “지금이라도 즉각 언론 탄압을 중단하고 구속 사주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민련 정진석 대변인은 “최근 일련의 언론사태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정치적 탄압임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여권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 오홍근 대변인은 “책 내용 중 세무조사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은 “정치부 기자의 저서를 근거로 실상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책을 쓴 성 기자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이 책은 집권세력이 정권출범 이후 거듭되는 보수 언론사의 ‘정권 흔들기 논조’에 맞서 언론과의 검은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법대로 처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세무조사를 결정하기까지의 비화를 기술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세 신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대부분 빼버리고 짜깁기해 왜곡보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 기자는 책 서문에서 “인용한 발언이나 자료는 모두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한겨레 보도에서도 이를 부인하지 않아 청와대 관계자들의 발언 진위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2001-10-26
- 청주시, 서문교풍물시장 점포입주자에 계고서 발송 청주시는 행정대집행법 규정에 따라 계고기간이 끝나는대로 서문교 풍물시장 점포들을 강제철거키로 하고 1일 52개 점포에 계고장을 발송했다. 청주시는 이 계고장에서 시의 철거방침을 전하고 재산상 피해가 없도록 자진철거해 줄 것을 촉구했다. 청주시는 지난 89년 노점상 생계대책차원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한시적으로 유도구역을 설치했으며 96년에는 ‘노점상대책위원회의 건의’를 수용, 철거를 5년간 유예해 왔다. 청주시는 서문교 풍물시장을 철거한 후 사직동 분수대 공원과 연계해 시민휴식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서문교풍물시장에는 140개 점포에 52가구가 입주해 있다. 청주시 관계자는 "올 8월말 유예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주민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84.5%가 순차적으로 철거해야한다는 의견이었다"며 "그 중에도 서문교 풍물시장이 가장 먼저 철거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청주 정성기 기자 tjdrl@naeil.com 2001-09-02
- 인사동정 인사 서울은행 ◆부장 ▲영업부장 이수희 ▲종합업무부장 이찬종 ◆팀장 ▲마케팅팀장 서종한 ▲전자금융팀장 유지설 ◆지점장 ▲63빌딩 이천수 ▲고대병원 김향 ▲고척동 이만성 ▲공항로 이증내 ▲구로동 김상옥 ▲길동 염병언 ▲독산동 고선호 ▲목동 조홍연 ▲목동중앙 최인식 ▲방배동 김몽석 ▲보람 정재억 ▲사당동 최진 ▲삼성역 김근배 ▲삼풍 김홍열 ▲상계동 조영종 ▲서빙고 김봉수 ▲서소문 권호달 ▲서초동 안선엽 ▲성동 김선영 ▲수표교 이홍규 ▲신길동 김재기 ▲신답 박종일 ▲신반포 임병운 ▲신설동 나상도 ▲신정동 장석만 ▲여의도중부 김하은 ▲역촌동 유갑동 ▲영등포 심상팔 ▲우이동 김택영 ▲잠실본동 심우대 ▲종로1가 노수경 ▲청담동 김창운 ▲태릉 차철남 ▲한남동 김동수 ▲화양동 정진성 ▲훼밀리 윤성수 ▲관양동 이상찬 ▲대구 김인수 ▲동대구 양상휘 ▲둔산 박희균 ▲서대신동 송주홍 ▲서신동 윤홍만 ▲서현동 하석현 ▲수원 이동기 ▲수원서문 노대석 ▲수지 김흥배 ▲숭의동 임태길 ▲울산 박용주 ▲월배 이윤상 ▲율량동 박열하 ▲의정부 공석진 ▲인천서 유성열 ▲전주 김영택 ▲초량 김병태 ▲평촌꿈마을 오영근 ▲포항 김양회 ▲호수마을 이봉재 해양수산부 ◇과장급 전보 ▲항만국 항만정책과장 정만화 ▲항만국 항만건설과장 윤병구 ▲국립수산진흥원 연수부 교학과장 김이운 ▲국립수산진흥원 남해수산연구소 기획과장 정재춘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선원선박과장 장병희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항무과장 장황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파견 전기정 ▲국제해사기구(IMO) 파견 정형택 문화재청 ◇시설서기관 승진 ▲문화재기획국 궁원문화재과 이상필 동원증권 ▲감사실장 최득길 노동일보 ▲편집국장 선경식 ▲논설위원 장재철 한미은행 ▲사당역지점장 장도순 ▲야탑역 〃 김명성 대우증권 ▲서비스개발부장 민경부 ▲서광주 지점장 변길원 ▲광주 〃 조익표 ▲순천 〃 김현중 한국산업단지공단 △전산팀장 이상녹 △비서실장 이현수 동정 정대근 농협회장은 28일 충남 아산 둔포조합 미곡종합처리장을 방문 , 관내 조합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수확기 대책마련과 벼 판로확대를 당부했다. 박호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오는 29일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몰리나(Mario J. Molina) 미국 MIT대학 교수를 접견하고 KIST-MIT간의 협력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마리오 몰리나 교수는 'CFC-오존 결핍이론'으로 지난 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으며 오는 31일까지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제12차 대기보전 세계대회 및 전시회 참석차 방한중이다. 이억수 공군참모총장은 30일 연세대 국제학연구소와 미 랜드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4회 항공력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한다. 구천서 2001서울제36회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29일 고문단 및 대회 관계자들과 함께 대회 성공을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 제막식을 개최한다. 주광일 변호사(제일국제법률사무소 대표)는 31일 전직 고위 검찰간부의 자격으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제6차 국제검사협회 총회에 참석한다. 박영식 언론중재위원장 30일∼9월1일 강원도 강릉시 현대호텔에서 ‘법정에 선 언론보도,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 9월3일 서울 반포동 법무법인 바른법률의 고문으로 취임한다. 최동규 중소기업청장 29∼3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중소기업장관 회의’에 참석,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에 관한 주제발표를 한다. 부음 ▲장홍식(한영외고 교사) 홍범(한국은행 시장조사총괄팀장)씨 부친상, 윤호근(소망농장 대표) 홍성민(LG이노텍 시스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권중(대우통신 천진유한공사 총경리)씨 빙부상. 28일 오전 1시 서울중앙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30분. 3010-2292 ▲김봉식(안성무역 이사) 주식(파이낸셜뉴스 편집국 사회부) 명선씨(대학 전임강사) 부친상. 28일 부산 동의의료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51)852-0243 ▲홍근태(대흥교통 노조위원장) 근영(범양정공 대표) 근석(기린인력관리 대표) 모친상. 28일 고대 안산병원.발인 30일 오전 8시. (031)411-5336 ▲최병남(전 영풍산업 부사장) 병모씨(변호사) 부친상=28일 국립암센터.발인 30일 오전 6시. (031)920-0301 ▲허만형씨(전 신동양건설 상무) 별세, 문구씨(포스코경영연구소 센터장) 부친상. 만희씨(전 부산은행 부장) 형제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5시. (02)3410-6902 ▲김영보씨(대구시 민방위과장) 배우자상, 현숙(서대구농협) 지영씨(성당중학교교사) 모친상. 28일 동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53)252-0639 ▲정연석(서울신용평가정보 상무) 연국(백색가전 대표이사) 연범(도시철도공사 과장) 연도(중소기업진흥공단 부장) 연희씨(재미) 모친상. 28일 서울중앙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02)3010-2268 ▲노기웅(개인사업) 운성(노운성 이비인후과) 영철씨(인성) 부친상. 27일 서울중앙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02)3010-2265 2001-08-28
- <금감위·금감원 사람들> 이순철 금감원 부원장 “해태타이거스 이순철은 야구도 잘하고 매너도 좋은디…. 우리공장 이순철은 언제나 철이 들까.” 지난 89년 한국은행 벽보에 나붙었던 ‘노동조합원 발언대’의 한 구절이다. 한 10여년 전쯤 한국은행에 근무했던 사람 치고 이순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시 해태 타이거스 이순철과 비교되면서 한은 벽보를 장식했던 ‘이순철’이 지금의 이순철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10여년전 한은 행원 1명과 노동조합 간에 벌어진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는 얘기를 듣고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묻자 이 부원장보의 얼굴은 삽시간에 상기됐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물으시니 당황스럽습니다.” 이 부원장보는 가슴 한켠 깊이 묻어 둔 힘들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이 부원장보가 말하는, 일명 ‘한국은행 노동조합 간부들의 외화자금과 난동사건 일지’의 개요는 대충 이랬다. 89년 이순철 부원장보가 한국은행 외화자금과장이던 시절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해 6월 이순철 과장이 당시 부하직원이었던 김 모씨가 단체교섭위원으로 노조에 1개월간 파견 근무하게 돼 자금관련 업무에 차질이 생기자 다른 직원을 그 자리에 대신 임명, 업무공백을 메우려 한 일부터 시작됐다. 89년 당시는 사회적으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노동조합 활동이 격렬한 시기였다. 한은 노조는 이 과장의 업무조치가 노조탄압 행위라며 원색적인 표현으로 이 과장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한은 내에 붙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조 간부들이 이 과장의 사무실에 찾아와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번졌다. 이유야 어찌됐건 당시 대자보 내용은 이 과장의 인격을 짓밟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과장은 은행발전의 위해자” “이 과장은 바보 병신 짓거리 그만두거라” 등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했다. “당시 저는 노조 간부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여버리겠다. 생에 애착이 없냐는 얘기까지 들었으니까요.” 아픈 상처로 남아버린 법정 싸움 그때 한은 노조간부들과 이 과장은 극단적인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다. 결국 양측의 싸움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당시 이 과장은 노조간부들을 상대로 폭력행위, 명예훼손, 모욕 등 7번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 89년 말부터 3년여 동안 법정싸움을 벌였다. 한은 경영진에게는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다섯 차례나 보내고, 행내 폭력사태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경영진에 항의했다. 또 노조는 이순철 과장을 한은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경영진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오는 등 이래저래 한은 내부는 노조와 이 과장 사이의 싸움으로 시끄러웠다. “전 그때 경영진이 무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행내에서 벌어진 노조의 폭력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영진에게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쯤해서 그만두라’는 경영진의 회유에 더욱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노조가 이 과장에게 사과하고 한은 13개 지점에 일주일간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93년 8월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노조와 벌어졌던 일들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해 책을 한권 펴냈다. 제목은 . 책 서문에 그는 “다시는 소신 없고 무책임한 최고 경영층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빌면서, 그리고 나를 도와주신 행 내의 많은 분들에게 그간의 투쟁경과를 보고 드리기 위해, 조금의 보탬도 없이 있었던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깁니다”라고 썼다. 노조와 인연은 계속되다 그가 한국은행에 입행한 것은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65학번) 졸업 후 2년 뒤인 72년이었다. 한은 입행 후 그는 주로 외환과 국제업무를 주로 맡았다. 99년 금융감독원이 출범한 이후에는 감독조정실장을 잠시 맡다가 금감원 안살림을 챙겨야 하는 총무국을 맡아 99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2년여 동안 이끌었다. 출범초기 금감원은 은행감독국, 증권감독국, 보험감독국,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이 합쳐진 터라 조직융합 작업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서로 섞이기 힘든 조직을 융화시키려면 각각으로 흩어져 있던 인사제도와 조직체계를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먼저 직원간 서열을 재정비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 사람도 생겼다. 특히 은감원 출신들은 입사가 빠른 데도 타 출신보다 서열이 뒤쳐져 불만을 갖기도 했다. 이런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은감원 출신들을 발탁하는 ‘탕평책’을 썼다. 상근 노조 인원을 줄이는 일도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이 진행됐기 때문에 노조전임자 인원 역시 축소해야 할 형편이었다. 금감원의 현 노조 간부는 “노조 전임자 인원을 12명에서 5명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노조와 마찰은 있었지만 별 무리 없이 일을 진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초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 속에서 노조가 강경 투쟁을 벌일 때도 총무국장으로서 노조의 입장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노조와의 악연이 있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순철 부원장보는 자신이 세운 원칙에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을 하지 않는 외곬 기질이 있다”며 “그의 매력은 바로 원칙주의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독조정국 이끌어 그가 부원장보로 승진한 것은 지난 4월이다. 입행 동기이자 대학동기인 정기홍 부원장보다 승진이 약간 늦은 편이었지만 지난해부터 부원장보 승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현재 그는 감독총괄 부원장보로 감독조정국장을 겸하면서 경영정보실 등을 책임지고 있다. 그가 앞으로 해야 일은 많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 등 금융지주회사가 올곧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과거 그가 보여줬던 기질과 원칙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금융정책에 그대로 반영돼 앞으로도 더욱 금융산업 발전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