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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초대석-박원길 관악경찰서 강력 3팀장 “경찰 생활 20년동안 마음 아파 눈물도 흘려보고 범인과 맞닥뜨려 칼도 맞아 봤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관악 경찰서 강력3팀을 이끌고 있는 박원길(사진) 팀장. 77년 경찰에 입문한 후 줄곧 특진으로 진급했다. 이렇게 진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무리 어려운 강력사건이라도 척척 해결한 베테랑 형사이기 때문이었다. 김 팀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경찰 입문 초기에 해결했던 ‘부인윤락’ 사건이다. 범인은 윤락가 포주로 활동하면서 윤락녀로 일하던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가 아이를 출산 후 10일후부터 다시 윤락가로 보낸 비정한 남편이었다.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박 팀장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박 팀장은 “범인은 구속시키면 그만이지만 몸과 마음이 갈가리 찢어진 불쌍한 여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너무 괴로웠다”고 회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경찰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해 진실하게 노력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박 팀장은 이후 의정부 한빛은행 강도사건, 의약품 비리 리베이트 사건, 예술단체 시상관련 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척척 해결해 냈다. 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교급식 납품 비리 사건을 파헤쳐 학교급식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강력사건만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가정을 돌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적극적인 내조로 자녀들도 큰 문제없이 컸다. 올해 대학졸업반인 큰 딸과 고3인 아들도 이런 아버지가 늘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박 팀장은 ‘당신이 항상 건강하게 사건처리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제 기도 덕분이줄 알아 달라’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일고 있는 강력사건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 팀장은 “강력형사 몇 명이 전체시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무리다”며 “경찰과 주민이 상시적인 공조시스템을 짜는 것이 강력사건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지름길이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경찰생활 동안 “범인을 잡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억울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신조였다”며 “얼마 남지 않은 경찰 생활이지만 억울한 사람들 가슴을 쓸어주는 따뜻한 경찰관으로 남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2005-04-12
- 12개 공기업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결과 살펴보니(이공계 72%, 지방대 51%, 여성 22%, 토익 841점) 산업자원부·건설교통부 등 정부 산하 16개 공기업은 지난 2월 신입사원 동시 모집공고를 내고, 이중 12곳이 3월말~4월초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이들 공기업은 총 1524명을 선발했는데, 지원자수가 7만6616명(경쟁률 50.3대 1)에 달했다. 특히 인천공항공사는 29명을 뽑는데 8961명이 지원, 경쟁률이 309대 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서부발전 136.6대 1, 중부발전 108.5대 1, 농수산물유통공사 10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대규모 신입사원을 채용한 한전(392명 모집에 1만2000명 지원-30대 1), 토지공사(199명 모집에 1만1107명 지원-56대 1), 수자원공사(187명 모집에 9137명 지원-49대 1), 도로공사(129명 모집에 4773명 지원-37대 1)의 경쟁률도 높았다. 조사대상은 한국전력·서부발전·중부발전·한국수력원자력·광업진흥공사·주택공사·토지공사·도로공사·수자원공사·인천공항공사·한국감정원·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이다. ◆이공계 72% 이공계 위기 불구 취업문 넓어 12개 공기업 신입사원 중 이공계 대학출신 비율은 71.9%로 나타났다. 최종합격자 1524명중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사 34명을 제외한 1490명 중 이공계 출신이 1071명이었다. 범사회적으로 ‘이공계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의 취업문이 인문계 출신보다 훨씬 넓음을 입증한 것이다. 다만 공기업의 이공계 취업률은 40대 민간 대기업(지난해말 기준-중앙일보 조사)의 76.8%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다. 회사별로는 한수원이 총 181명 중 163명으로 전체의 90%를 차지, 이공계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한국전력 83%, 중부발전 83%, 서부발전 77%, 도로공사 76%, 수자원공사 75% 등 70% 이상인 곳도 6곳에 달했다. 전력그룹사 한 관계자는 “이공계 취업률이 높은 것은 각 사마다 전기·기계설비·정보통신·토목·자원개발 등 기술직 수요가 많은 것이 주 요인”이라며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모두 이공계 출신에게 취업기회가 더 많고, 이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 51% 회사 충성심 높아 인사담당자 선호 지방대(서울지역 대학 제외) 졸업자의 신규채용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전체 대졸자의 지방대 비율 73.3% 보다는 낮지만, 40대 민간 대기업의 지방대 채용비율 35.5%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수자원공사와 토지공사의 지방대생 채용비율은 각각 70%, 62%에 이르렀다.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는 “해외 유학파나 특별한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의 상당수는 경력만 쌓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지방대 출신 사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인사담당자들이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또 지방인재채용목표제를 실시하거나, 학력제한을 철폐해 철저히 실력위주로 뽑는 채용방식의 변화도, 지방대생 차별화를 막은 주 요인이다. 도로공사는 지방인재채용목표제(최종합격자의 30% 이상)를 실시,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달 비율만큼 지방대 출신을 추가로 선발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중부발전 등도 학력제한을 완전 폐지, 입사원서에 학력표기란 조차 배제했다. ◆여성비율 22% 성(姓)의 벽 아직 뛰어넘지 못해 여성비율은 22.0%로, 아직 남녀 성(姓)의 벽은 뛰어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학생의 49.4%가 여성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취업률이 상당히 낮은 셈이다. 이는 40대 민간기업의 여성비율 22.4%와 거의 유사한 수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공기업 관계자는 “신규인력 수요가 많은 기술 분야에 여성인력이 적어 뽑고 싶어도 못 뽑는 경우가 많다”며 “아울러 입사 후 일을 가르쳐, ‘이제 함께 일해 볼 만 하다’ 싶으면, 결혼·출산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전체 신입사원 35명 중 20명을 채용, 여성비율이 57%에 달했으며, 인천공항공사와 서부발전도 각각 31%, 30%를 차지했다. ◆토익평균 841점 회계사 등 고급자격증 소지자도 탈락 12개 공기업 최종합격자의 토익평균점수는 840.7점으로 조사됐다. 40대 민간대기업의 777.8점보다 무려 62.9점 높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93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기관명 공개를 꺼린 산자부 산하 모 공기업의 사무직 평균점수는 970점에 달했다. 이 공기업에는 990점 만점자로 한명 있었다. 다만 사무직과 기술직의 차이가 컸는데, 모 공기업의 경우 사무직과 기술직의 평균이 각각 970점, 840점이었으며, 다른 공기업도 각각 910점, 850점으로 격차를 보였다. 전문대학 졸업생만 공개 채용한 모 공기업은 616점으로 가장 낮았고, 그 외는 모두 830점 이상이었다. 모 공기업은 출신학과별로 균형있게 뽑다보니 토익 960점짜리 지원자가 떨어지기도 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4년제 대졸자의 경우 지원 최소자격을 토익 700점 이상으로 정하지만, 900점을 넘는 지원자가 수도 없이 많다”고 소개했다. 한편 고급 자격증을 보유했더라도, 전공시험이나 면접시험 등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부발전은 면허 소지시 5~10점의 가점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계사·세무사·노무사 등 66명 전원이 탈락했으며, 광업진흥공사도 공인회계사 등 31명 지원자가 모두 떨어졌다. 수자원공사는 고급자격증 소지자가 100여명 이상 지원했으나 회계사 1명, 미국 공인회계사(AICPA) 2명 등 총 3명만 최종 합격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2005-04-07
- 12개 공기업 올 상반기 신입사원 1524명 입체 분석 정부 산하 16개 공기업 중 12곳이 3월말~4월초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이들 공기업은 총 1524명 선발에 지원자수가 7만6616명(경쟁률 50.3대 1)에 달했다. 본지가 이 12곳의 신입사원 채용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공계·지방대의 약진이 눈에 띄였고 여성비율은 22%로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학생의 49.4%가 여성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취업률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은 한국전력·서부발전·중부발전·한국수력원자력·광업진흥공사·주택공사·토지공사·도로공사·수자원공사·인천공항공사·한국감정원·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이다. ◆이공계 72%-‘이공계 취업 유리’ 당분간 지속 최종합격자 1524명중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사 34명을 제외한 1490명 중 이공계 출신은 1071명인 71.9%로 나타났다. 범사회적인 ‘이공계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의 취업문이 인문계 출신보다 훨씬 넓음을 입증했다. 다만 40대 민간 대기업(지난해 말 기준-중앙일보 2월 14일자)의 76.8%보다는 다소 낮았다. 회사별로는 한수원이 총 181명 중 163명으로 전체의 90%를 차지, 가장 높았고, 한국전력 83%, 중부발전 83%, 서부발전 77%, 도로공사 76%, 수자원공사 75% 등 70% 이상인 곳도 6곳에 달했다. 전력그룹사 한 관계자는 “이공계 취업률이 높은 것은 각 사마다 전기·기계설비·정보통신·토목·자원개발 등 기술직 수요가 많은 것이 주 요인”이라며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모두 이공계 출신에게 취업기회가 더 많고, 이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 50%-회사 충성심 높아 인사담당자 선호 지방대(서울지역 대학 제외) 졸업자의 신규채용 비율이 50%(50.2%)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전체 대졸자의 지방대 비율 73.3% 보다는 낮지만, 40대 민간 대기업의 지방대 채용비율 35.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수자원공사와 토지공사의 지방대생 채용비율은 각각 70%, 62%에 이르렀다.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는 “해외 유학파나 특별한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의 상당수는 경력만 쌓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지방대 출신 사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인사담당자들이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또 지방인재채용목표제를 실시하거나, 학력제한을 철폐해 철저히 실력위주로 뽑는 채용방식의 변화도, 지방대생 차별화를 막은 주 요인이다. 도로공사는 지방인재채용목표제(30% 이상)를 실시, 미달 비율만큼 지방대 출신을 추가로 선발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중부발전 등도 학력제한을 완전 폐지, 입사원서에 학력 표기란을 없앴다. ◆토익평균 841점-회계사 등 고급자격증 소지자 대거 탈락 12개 공기업 최종합격자의 토익평균점수는 840.7점으로 조사됐다. 40대 민간대기업의 777.8점보다 무려 62.9점 높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93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기관명 공개를 꺼린 산자부 산하 모 공기업의 사무직 평균점수는 970점에 달했고 990점 만점자도 한명 있었다. 다만 사무직과 기술직의 차이가 컸는데, 모 공기업의 경우 사무직과 기술직의 평균이 각각 970점, 840점이었으며, 다른 공기업도 각각 910점, 850점으로 격차를 보였다. 전문대학 졸업생만 공개 채용한 한 공기업은 616점이었고, 그 외는 모두 830점 이상이었다. 모 공기업은 출신학과별로 균형있게 뽑다보니 토익 960점짜리 지원자가 떨어지기도 했다. 한편 고급 자격증을 보유했더라도, 전공시험이나 면접시험 등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부발전은 5~10점의 가점을 부여했으나 회계사·세무사·노무사 등 66명 전원이 탈락했으며, 광업진흥공사도 공인회계사 등 31명 지원자가 모두 떨어졌다. 수자원공사는 고급자격증 소지자가 100여명 이상 지원했으나 회계사 1명, 미국 공인회계사(AICPA) 2명 등 총 3명만 최종 합격했다. ◆여성비율 22%-40대 민간기업과 비슷한 수준 여성비율은 22.0%로, 아직 남녀 성(姓)의 벽은 뛰어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40대 민간기업의 여성비율 22.4%와 거의 유사한 수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공기업 관계자는 “신규인력 수요가 많은 기술 분야에 여성인력이 적어 뽑고 싶어도 못 뽑는 경우가 많다”며 “아울러 입사 후 일을 가르쳐, ‘이제 함께 일해 볼 만 하다’ 싶으면, 결혼·출산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전체 신입사원 35명 중 20명을 채용, 여성비율이 57%에 달했으며, 인천공항공사와 서부발전도 각각 31%, 30%를 차지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2005-04-08
- 북 여성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북한은 변화하지 않는 사회’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사회에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호주국립대학에서 동아시아문제를 가르치고 있는 안드레이 랜코브는 6일자 아시아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북한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급신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부간의 가정 내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고 적고있다. 다음은 랜코브의 기고문을 정리한 것이다. 북한 가정에서 남성의 역할은 1997~98년사이에 ‘무용지물’로 변했다. 적어도 경제적 면에서 볼 때 남성들은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신 여성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북한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서서히 붕괴하면서 그 자리에 초기자본주의가 들어서는 과정에 나타난 현상이다. ◆여권 커지면서 부부관계도 변화 = 사실 지난 10년동안 북한사회에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급격하게 신장된 것을 들 수 있다. 북한의 시장에서는 길가에 앉아 물건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럭을 운전하거나 무거운 등짐을 지고 나르는 사람들도 모두 여성이다. 이처럼 북한자본주의경제를 여성들이 주도하게 된 계기는 북한자본주의의 생성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위로부터의 계획에 의해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러시아나 중국과 달리 북한 자본주의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변화이다. 1990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시장은 그 역할이 아주 미미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생존하는 데는 충분한 물자가 배급제도를 통해 공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 붕괴로 원조물자의 공급이 끊기자 상황은 돌변했다. 배급물량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곧 이어 찾아온 대기근으로 북한의 배급제도는 그 기능을 완전히 잃었으며 공장도 생산을 멈췄다. 당연히 소득도 없어졌지만 남성들은 직장을 떠날 수 없었다. 상황이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조직화된 생활도 남성들을 직장에 묶어두는 데 일조를 했다. 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전업주부로서 비교적 자유스러운 입장이었다. 대부분의 공산국가와는 달리 북한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이 많았다. 1980년대의 기록을 보면 신의주에 사는 기혼여성 가운데 70%가 전업주부였다. 이런 사회적 배경 때문에 경제위기와 함께 시작된 시장경제 활동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몫이 됐다. 그들은 긴요하지 않은 가재도구를 처분하거나 집에서 만든 음식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남성들이 직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 여성들의 상행위는 점차 규모가 커져 사업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북한에서 상업을 한다는 것은 남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붕이 없는 트럭을 타고 먼 길을 가야하고 시멘트바닥에서 밤을 지새기도 한다. 때로는 지방공무원에게 뇌물도 바쳐야 한다. 또 무거운 짐도 직접 등에 지고 날라야 한다. 그래서 이런 상행위에는 중류층과 빈곤층의 여성들이 주로 종사했다. 상위5%의 엘리트계층은 풍족한 배급을 계속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비즈니스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상류 여성도 영업 나서 = 그러나 최근에는 상류층 여성들도 “싼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다니는 공장 물건을 싼 값에 구입한 다음 되파는 영업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부패에 연루될 것을 우려하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은 부부 사이 역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사회에서는 최근까지도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위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이 심한 함경도 지방의 남성들은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의 경제력의 변화는 집안일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도 바꾸고 있다. 체면을 버리고 가사를 돕는가 하면 아내의 비즈니스를 짬짬이 돕는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또 국경지대의 밀수와 같은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남편들도 늘어나고 있다. 90년대 북한을 휩쓴 대기근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대기근에서 살아남은 북한의 여성들은 그들의 강인함과 현명함을 스스로 발견하였고 지금은 그들의 가정과 북한자본주의를 이끄는 리더로 자리 잡게 됐다. /김광호리포터 holhol@naeil.com 2005-04-06
- 교황 장례식 가는 부시, 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참석 하기로 확정하는 등 전통을 깨는 교황 추모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부시대통령의 다소 이례적인 교황추모선도는 보수화운동을 촉진시키고 나아가 미국내 6400만 가돌릭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 최초 장례식 참석 = 백악관은 5일 부시 대통령이 5명으로 구성된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8일 거행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조문단에는 부시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 여사이외에도 아버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대통령, 그리고 독실한 가돌릭 신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포함됐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6일 워싱턴을 출발해 8일 교황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밝혔다. 현직 미국대통령이 교황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최초를 기록하게 된다. 이에앞서 부시 대통령은 4일 백악관에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황과 자신의 관계, 교황이 미국에 미친 영향등에 대해 숙연한 표정 으로 설명하며 직접 조문할 것임을 공표한 바 있다. 부시는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황 장례식에 참석할 것임을 공표하고 “교황은 용기 있고, 도덕적이며 신성한 인물”이었다고 거듭 추앙했다. 부시는 특히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도덕을 이야기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위대한 유산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부시는 이어 2001년 7월 이탈리아 하계 휴양지에서 교황과 만났던 때를 회상하면서 “교황이 우리를 웅장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궁전의 발코니로 데려가 그의 세계관에 대해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 순간은 나의 대통령직에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는 교황의 이라크 전쟁 비판에 대해 “교황은 평화의 인간이었으며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이해하며 그 문제로 교황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감사히 여긴다”고 받아 넘겼다. ◆구교에 항거한 청교도 나라 대통령 = 역대 미국대통령들이 그동안 교황장례식에 단 한번도 직접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구교에 항거했던 청교도 출신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인데다가 1984년 이전에는 국교가 없었기 때문이며 근년 들어서는 가톨릭 교회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근년들어 재임중 2명의 교황 서거를 맞았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교황청과 국교가 없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부인과 어머니를 대신 조문사절로 보낸바 있다. 교황서거는 없었지만 미국 최초의 가톨릭 신자출신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대선 출마시부터 “나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대통령후보”임을 강조하고 당선후에도 교황을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시는 개신교의 감리교 신자로 이미 교황과는 여러 사안에서 입장차이를 보이며 독립적인 행동을 했고 공개질책까지 받았기 때문에 독립성을 강조할 부담이 없어져 교황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안락사로 불거진 보수파 끌어안기 =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최근 테리 샤이보 사건으로 불거진 보수화 운동을 촉진하고 나아가 공화당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6400만 가톨릭 표심을 더욱 끌어들여 표밭으로 굳히기 위한 의도를 띠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부시는 이미 테리 샤이보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생명존중 정신을 은근히 인용하며 생명존중의 미국문화를 보다 공고히 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부시와 공화당, 보수진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입장에서 생명존중, 낙태 및 안락사, 동성결혼 반대 등이 공화당 정강정책과 일치한다는 점을 은근히 부각시키며 보수화 운동에 활용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시진영의 보수화 운동은 결국 향후 선거에서 가톨릭 표심을 공화당의 지지텃밭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60%까지 쏠렸던 가톨릭 표심을 끌어내렸으나 역부족으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는 이를 역전시켜 가톨릭 신자인 민주당 존 케리 후보에 승리했다. /워싱턴 = 한면택 특파원 2005-04-06
- 인천구치소 적신 눈물의 편지 “저는 1964년 2월 17일 중국 길림성 룡정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4년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이혼했습니다. … 중략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고향땅에 남겨둔 채 이 땅으로 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제결혼을 소개해준 분의 경력이 문제가 돼 구속됐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27일. 인천구치소에 잔잔한 감동이 흘렀다. 재소자가 교정위원들에게 보낸 한 장의 편지 때문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조선족 출신인 최 모(41·중국 길림성 용정시)씨. 최씨는 지난해 7월 국내로 국제결혼을 해 들어왔다. 혼자 남아 학교에 다니는 외아들(16)이 눈에 밟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아들에게 부칠 요량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지난 1월 24일 혼인서류를 위조한 혐의로 구속됐다. 좌절은 더욱 커졌고 자살까지 결심했다. 이때 인천교도소 송경옥(47·여사대장) 교감이 최씨를 상담하면서 딱한 사정을 들었다. 송 교감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도록 도왔다. 또 간부회의에 알린 뒤 교정위원들과 자매결연을 주선키로 했다. 불교·천주교 교정위원회에서는 80만원의 기부금을 모아 중국 현지 최씨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송금했다. 위의 글이 바로 이 소식을 들은 최씨가 교정위원들에게 눈물로 쓴 감사편지다. 최씨는 세 페이지에 이르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구나 생각하면서 나를 위해 내 자식을 위해 다시 밥을 먹었습니다.” /인천 = 정재철 기자 2005-03-11
- 기아차, 오피러스 웨딩카 서비스 기아자동차가 오피러스 람다 3.8 모델 출시를 기념해 신랑, 신부에게 오피러스 웨딩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결혼 축하이벤트를 진행한다. 홈페이지(www.kiaweddingcar. com)를 통해 4일부터 접수하며 추첨을 거쳐 서비스를 받을 예비 신랑, 신부를 뽑을 예정이다. 서비스 대상으로 선정되면 결혼식 당일 고급 턱시도를 착용한 운전기사와 함께 오피러스 웨딩카가 제공돼 미용실에서부터 공항까지 VIP대우를 받을 수 있다. 또 결혼식 장면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CD로 제작해 증정할 예정이다. 서비스 기간은 4월16일~7월16일, 9월1일~11월30일 등 총 6개월.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2005-04-04
- <밥일꿈>눈물이 말한다 증권예탁결제원 홍보실 여상현 종합주가지수가 5년 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증권시장은 오랜만에 활력을 되찾은 분위기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198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넘어섰던 주가 1000포인트 시대에 비해 최근의 시장상황은 여러 긍정적인 요소들에 힘입어 그 상승추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증권사 객장의 빈자리가 보기 드물어지고 여의도 일대의 식당 예약이 어려워지는 장밋빛 일상의 이면에 증권업계와 증권유관기관의 구조조정 또한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 통합거래소의 출범과 함께 13% 감원의 이루어진 것을 비롯해 증권회사간 합병·매각 등을 통한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4년여 전 야간주식거래를 통한 증권시장 활성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장외전자거래시장(ECN)은 조만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증권예탁결제원도 최근 직제개편과 희망퇴직을 통해 25%의 조직축소와 15% 수준의 인력구조조정이 완료되었다. 급변하고 있는 금융환경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고객 위주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조직운영의 활용도 제고를 위해 희망자에 한하여 명예퇴직형태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퇴임식장에서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선배들의 조용한 흐느낌 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왔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때부터 결혼과 가정을 일구어가는 사이에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떠남과 헤어짐의 순간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 한방울은 결코 감추어야만 하는 부끄러움의 징표는 아닐 것이다. 젊음과 패기를 가지고 헤쳐 나갔던 역경들, 쉽지 않고 지난한 조직생활의 구성원으로서 회사와 선후배, 동료에 대한 애정을 동력삼아 앞으로만 내달렸던 뜨거운 날들이 어우러져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것이리라. 짧은 시간이나마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선후배와 동료들의 격려를 받으며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 다시금 새롭게 출발하는 당신들의 눈물은 그러기에 값싼 연민보다는 깊은 경외심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었다. ‘사오정’과 ‘오륙도’로 함축되는 21세기형 샐러리맨의 생태환경 속에서 지금의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어떤 수준의 소명의식을 지니고서 소위 월급쟁이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바로 내일 현재의 직장을 접고 다른 길을 가야한다면 과연 어제의 나를 당당하게 증언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슬 퍼런 현실 속에서 그저 소비되고 마는 조직의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자기개발에 불철주야 노력해야 한다는 세간의 주문을 읊조리기 이전에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두발 딛고 서있는 이곳에서 과연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무척이나 단순하지만 결코 대답하기 쉽지만은 않은 질문을 되뇌이게 된다. 30년을 넘어서는 증권예탁결제원의 역사와 함께하며 열정과 의지로 관통해온 격동의 지난날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대선배님의 e-mail과 이제 비록 회사를 떠나지만 영원한 예탁결제인이 되겠노라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며 감추던 눈물이 일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나에게 손을 뻗어 온 셈이다. 흐트러진 자세를 추스르게 하는 청아한 죽비소리처럼 조직과 인원을 축소하는 증권예탁결제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성과중심의 효율적인 인사제도 도입 등은 이렇듯 나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에게 새로운 변화의 문화를 알리는 순기능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는 NEC 고바야시(小林) 회장의 말처럼 조직구성원 개인에서부터 시작되는 기업전체의 변화가 곧 기업발전의 핵심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2005-03-09
- <이 사람>14년 싸움 끝에 영주권 찾은 재일교포 피아니스트 최선애 3월 넷째 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쇼팽의 편지>라는 타이틀의 듀오 연주회 열렸다. 주인공은 한국인 지문 날인을 거부했다가 영주권을 박탈당했던 재일교포 3세 최선애 씨(45)와 첼리스트인 남편 미야케 스스무 씨(43)였다. 최씨의 피아노 독주 혹은 두 사람의 듀오 연주가 한 곡씩 끝날 때마다 쇼팽이 프랑스에서 조국 폴란드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비롯해 문익환 목사, 정경모 씨의 시가 낭독됐다. 이날의 콘서트는 14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영주권을 회복한 최씨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의 한국 초연을 앞두고 열렸다. “제게 한국과 일본은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와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죠. ” 최씨의 아버지는 재일교포 인권 회복 운동에 평생을 바친 고 최창화 목사다. 아버지의 재일 한국인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지켜보던 소녀에게 한국인이라는 건 “외면하고 싶고 잊고 싶고 생각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아버지는 ‘최’라는 성을 ‘사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지 않게 하려고 학교를 찾았다. ‘최’라고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그에게 “사이라고 해도 좋잖아”라고 대꾸하는 선생들을 겪으며 어느새 그의 마음속에는 ‘최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라는 의문이 자리 잡았다. 이윽고 대학교 2학년이던 해, 그와 여동생은 외국인 등록 때 해야 되는 지문 날인을 거부할 것을 결심했다. “우리는 일본 사회에서 받는 굴욕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음을 깨달은 거예요. 내가 이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자식들은 이 괴로움을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결국 미국 인디애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던 1986년, 영주권 박탈과 재입국 불허 처분을 받은 그는 이후 180일 체류만 가능한 신규 입국자 자격으로 일본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문 날인 거부 재판에서 이미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경험이 있는 그는 이번에는 재입국 불허 취소 소송과 영주권 확인 소송을 걸어 ‘일본국’을 법정으로 불러냈다. 1989년에 시작된 소송은 고등법원에서의 승소, 국가의 상고, 대법원에서의 패소로 지루하게 이어지며 근 10년을 끌었다. 그동안 “차별은 거부한다. 그러나 일본은 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그의 호소에 1만 명 이상의 지문 날인 거부자와 유보자, 그를 지원하는 일본인 친구들이 늘어나 있었다. 1999년에는 국회가 외국인 등록법을 개정하면서 최씨 한 사람만을 위해 ‘특별 영주자로 간주한다’는 부칙을 신설했다. 마침내 영주권을 박탈당한 지 14년 만인 2000년 4월, “40세가 되어서야 손에 쥔 영주 허가 인장은 세 살 때부터 갖고 있던 영주권과는 무게가 달랐다”.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한 연극 은 지문 날인을 거부하던 20대 대학생 때부터 영주권을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수기 를 일본 극단이 무대에 올린 것. 미국 유학 시절 만나 일본인이라 안 된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남편 미아케 스스무가 극 중 주인공의 애인으로 출연하고 첼로 연주로 무대 음악을 맡았다. “미국에 있으면서 고향 일본을 그리워하고 다시 갈 수 있을지 안타까워하던 시절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제 결단을 이해해주고 모든 법정 소송을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준 사람이죠. 두 딸은 엄마의 사연을 잘 알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 공부에 관심이 많습니다.” 연극 의 한국 공연은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해 기획되었지만 최씨 부부가 한국을 방문한 시기는 마침 독도 문제로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망언이니 역사 왜곡, 독도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재일교포들은 어느 편도 들 수 없어 곤란해진다. “시마네현 의회를 비롯해 일본의 우익단체에 대해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씨는 많은 일본인과 재일교포들이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의 문제가 감정적인 싸움으로 치닫지 않고 이성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건 그의 콘서트에서 낭독된, 재일통일운동가 정경모 씨의 시가 말하는 ‘선한 싸움’을 지켜온 이로서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오진영 기자 ojy@naeil.com·사진 이의종 기자 2005-03-31
- <밥일꿈>당신 방송과 결혼했어요?(송선태 2005.03.31) 당신 방송과 결혼했어요? 송 선 태 국민은행 홍보팀 과장 세계 최초의 맞춤형 방송 커뮤니케이션을 표방하며 지난 3월 2일 출범한 국민은행 사내 위성방송 KBN이 어느새 한 달을 맞았다. 때맞춰 지난 3월 28에는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6개 사업자를 최종선정함으로써 방송환경은 바야흐로 ‘DMB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민은행의 위성방송 사업은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커뮤니케이션채널 확보의 필요성과 한 발 앞서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견지하에 시작됐다. 국민은행 위성방송시스템은 조직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직원간 빠른 의사소통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경영도구로써의 선택이었다. 국민은행의 커뮤니케이션 중심축으로 자리한 위성방송에 거는 직원들의 기대와 관심은 자못 컸다. 직원들은 KBN의 시청자인 동시에 스스로 모니터 요원이 되는 참여과정을 통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레 형성되기도 했다. 연수나 교육시스템도 효율적으로 지원 가능함은 물론 영업점을 찾는 KB고객에게도 유익한 금융정보와 흥미로운 볼거리 등을 제공할 수 있어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람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출범 한달 남짓. 이제 KBN은 직원과 고객대상의 정규방송 프로그램 외에도 커뮤니케이션의 최적 채널로 활용하기 위한 각 부서의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 방송 팀원들의 하루는 정말 숨가쁘기만하다. 하지만 이 힘찬 동력 엔진을 멈출 수 없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오히려 갈수록 명료해지고 있다. 개국전에는 방대한 시스템 구축으로 쉴 날이 없었고 개국후에는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 등으로 정신이 없다. “당신은 방송과 결혼했어요? 저랑 결혼했어요?”라는 방송가의 우스개 소리를 집사람 입에서 내가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하루는 길고 한 달은 짧은 줄 알고 살았는데 요즘 한 달은 왜 이렇게 기냐고 농을 던지기도 한다. 주야의 경계선을 넘어 주중과 주말의 경계선을 허물며 살아온 최근 시간들에 대한 무감각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는 늘 긴장과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변화된 환경에의 적응에는 항상 익숙해진 편리함을 버려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어찌보면 바로 내가 제대로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때로는 고되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와 보람이 있다. 이를 통해 내 소중한 가족에게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고, 대한민국 대표은행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KB 국민은행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살가운 사람을 만난 듯 올 봄은 내게 더 큰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200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