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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아들이 된 박종철·이한열 박종철과 이한열.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름이다. 두 열사는 6월항쟁의 상징이며, 온 국민의 아들이다. 이들은 부산과 광주 출신으로 풍운의 꿈을 안고 서울대와 연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이들의 대학생활은 개인의 안일과 명예만 좇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인 박종철 열사는 학내 운동권 동아리 ‘대학문화연구회’에 가입해 사회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인 이한열 열사도 일찍이 동아리 ‘만화사랑’에 가입해 각종 학내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박 열사는 86년 4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에 참여했다가 한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돌이킬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충분히 반성하고 나가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바라시던 저의 모습을 만들겠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비치파라솔 밑에서 선글라스 끼고 한가하게 피서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먼지와 기름 냄새로 가득한 무더운 작업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에 비하면 저는 신선놀음입니다.” 박 열사는 구속된 가운데도 옥중편지를 통해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노동자·민중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이한열 열사 역시 평소 끊임없이 사회현실에 대한 사색과 고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채찍질했다. “오늘 또 다시 생각한다. 나의 어린시절 추억, 피의 항쟁이 끝난 후 6월 초순,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자연을 만끽했고 고풍의 문화재에 심취했다.” “내가 제물이 되어 인간들이 소외당하지 않은 채 살아가게 하고 싶다.” 이 열사는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기 불과 한 달 전인 87년 5월에 광주항쟁에 대한 ‘단상’을 정리하면서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87년 6월항쟁은 박종철에서 시작해 이한열로 끝났다. 그 해 1월 14일 남영동 경찰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 열사 사건은 경찰의 은폐조작의도가 드러나면서 국민적 저항을 촉발시켰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민주세력은 6월 10일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전 국민적인 저항을 선언했다. 항쟁을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이한열 열사는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을 맞고 사경을 헤맸으며,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 국민의 울분을 자아내 거대한 항쟁의 거리로 뛰어들게 했다. 이 열사는 7월 5일에 27일 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들다 21세의 꽃다운 넋을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쳤다. 7월 9일 서울시청앞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이 이 열사 장례식에 참여했다. 국민들은 박종철과 이한열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별취재팀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1
- 21일자 밥일꿈 나눔, 그 즐거움에 대하여 한국자산관리공사 홍보실 우종철 과장 3년 전 회사 연수차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박사과정에 있던 여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다. 그 학생과 집이 가까워서 통학 시에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그 때마다 남학생이 학교부터 집까지 자동차로 그 여학생의 통학을 도와주고 있었다. ‘도와주는 학생이 남자친구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과 아무 관계없는 자원봉사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과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주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놀란 것은 아무런 대가 없는 자원봉사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런 게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뭐 하러 저런 고생을 사서 하지?’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우연한 기회에 회사의 자매결연 단체인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전에 계셨던 자원봉사 선생님이 갑자기 직장을 지방으로 옮기게 되어 중학생 아이들의 영어지도를 잠시라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두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회사 일이 너무 바쁠 때에는 ‘왜 이런 걸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들과 만나 수업을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우리나라도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의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고, 회사마다 사회공헌팀을 만들어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유용한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이 한 시대의 유행처럼 반짝했다 사라지지 않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이 자리잡으려면 기업의 경영전략 차원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 명절이나 연말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회사 차원에서 행해지는 사회공헌 활동에 의존하기에는 따스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봉사라는 것이 처음에는 귀찮고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막상 몇 번 해보다 보면 딱딱한 의무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의 조그만 노력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처음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산을 오르는 것이 두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산이 나의 친구처럼 생각되고 또 가고 싶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봉사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재작년부터 ‘문화포인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 도서상품권이나 공연 티켓을 주는 일종의 인센티브제도인데 직원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처음에는 도서상품권을 염두에 두고 봉사활동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에 빠져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직원들은 무의탁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중국경제를 공부하는 동아리에서는 정성을 모아 내몽고 지방의 조선족 학교를 후원하는 등 봉사활동의 종류나 분야도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있다.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이따금 3년 전 깁스를 한 여학생의 통학을 도와주던 자원봉사 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그때 그 학생에게 “당신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하고 물었다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일단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그러면 당신도 그 즐거움에 빠져들 테니까요.”라고.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1
- [밥일꿈]나눔, 그 즐거움에 대하여 나눔, 그 즐거움에 대하여 우 종 철 (한국자산관리공사 과장) 3년 전 회사 연수차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박사과정에 있던 여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한동안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다. 그 학생과 집이 가까워서 통학 시에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그 때마다 남학생이 학교부터 집까지 자동차로 그 여학생의 통학을 도와주고 있었다. ‘도와주는 학생이 남자친구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과 아무 관계없는 자원봉사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과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주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놀란 것은 아무런 대가 없는 자원봉사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런 게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뭐 하러 저런 고생을 사서 하지?’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우연한 기회에 회사의 자매결연 단체인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한두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회사 일이 너무 바쁠 때에는 ‘왜 이런 걸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들과 만나 수업을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우리나라도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의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고, 회사마다 사회공헌팀을 만들어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유용한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이 한 시대의 유행처럼 반짝했다 사라지지 않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이 자리잡으려면 기업의 경영전략 차원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 명절이나 연말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회사 차원에서 행해지는 사회공헌 활동에 의존하기에는 따스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봉사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재작년부터 ‘문화포인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 도서상품권이나 공연 티켓을 주는 일종의 인센티브제도인데 직원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처음에는 도서상품권을 염두에 두고 봉사활동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에 빠져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직원들은 무의탁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중국경제를 공부하는 동아리에서는 정성을 모아 내몽고 지방의 조선족 학교를 후원하는 등 봉사활동의 종류나 분야도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있다.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이따금 3년 전 깁스를 한 여학생의 통학을 도와주던 자원봉사 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그때 그 학생에게 “당신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하고 물었다면 아마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일단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그러면 당신도 그 즐거움에 빠져들 테니까요”라고.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1
- 제약업, 한미FTA 파고를 넘는다 “신약개발·해외진출로 위기를 기회로” 국내외 기관 전략적 제휴로 한계 극복 … cGMP 설비, 미국시장 진출 조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시행 등 어느 때보다 악화된 환경에 처한 제약업계는 주요제약사를 중심으로 과감한 신약개발과 해외진출을 모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킨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어 주목된다. 주요제약사들은 신약 후보물질을 새로 찾는 것과 함께 해외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협소한 국내시장을 벗어나 과감한 해외투자와 시장개척 등 해외진출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도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일부 제약사는 동아시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진출을 했거나 조만간 진출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한미 FTA는 주요 제약시장인 미국 진출의 기회이기도 한 만큼 이를 놓칠 수 없다고 보고 국제 기준에 맞는 의약품 제조시설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악화된 제약환경 = 국내 제약산업은 제네릭(오리지널약 특허만료 이후 나온 복제약) 의약품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신약개발 역사도 최근 일인 만큼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상태다. 이번 한·미 FTA에서 신약의 특허권이 보장·강화됐기 때문에 제네릭 의약품 위주의 국내제약사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로 인해 제네릭 의약품 허가가 지연될 것이고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전면 시행되면 효과 대비 경제성이 부족한 의약품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며 복제약 가격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cGMP(미국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기준)를 갖추어서 미 FDA(식품의약품안전국)의 허가를 얻어야 하지만 이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군소 제약사들이 정리되고 상위 제약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국내 업계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R&D 투자 확대 = 녹십자는 한·미 FTA 타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매출에서 제네릭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고 ‘바이오 신약’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점들이 근거로 꼽힌다. 녹십자는 ‘바이오 신약’분야 특히 단백질 재조합 기술 연구에 매진해 바이오 신약 및 바이오 제네릭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골다공증 치료제 ‘rhPTH’의 국내 임상 1상과 해외 임상 2상을 마치고 내년 임상 3상에 들어가 오는 2010년 상품화할 계획이다. 대장암 전이 억제제 ‘그린스타틴’은 올해 국내외 동시 임상에 들어간다. 디스크 등 골관절 치료에 사용하는 추나약물을 바탕으로 한 천연물 신약 ‘GCSB-5’는 임상 2상중이다. 녹십자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용을 지난해 6.8%(251억/3667억원)에서 올해 8.2%(353억/4300억원)로 확대한다. 한국형 개량신약(오리지널약과 기본 성분은 같고 효능이나 제법 등이 개선된 제네릭) 개발에 주력한 한미약품은 용도변경·제형변경 등 개량신약 개발을 통해 신약개발을 위한 자금줄을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주사제 형태만 있던 ‘탁솔’을 경구용 형태로 개발한 ‘오락솔’ 임상 1상을 진행중이다. 내년 상반기 중 임상2상을 거쳐 시판허가를 받을 계획이다. 또 다른 경구용 항암제 ‘오라테칸’의 임상 1상도 하반기에 시작한다. 또한 지속성 단백질 의약품 기반기술을 항체 의약품에 적용하는 등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 개발 파이프라인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대비 연구개발비중이 9.6%(405억원)로 국내 제약사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대웅제약은 ‘2010년 글로벌 연구소’를 설립해 24시간 연구체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연구인력 육성 및 세계화 품목 개발을 진행한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단백질 생산과 항체기술에 대한 바이오 역량 △고난이도 원료합성 역량 △뛰어난 제형 기술 △아데노바이러스 생산기술 및 연구시설 등을 근간으로 국내외 연구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신약과 신제품을 개발할 방침이다. 대웅제약이 진행중인 신약으로는 아데노바이러스 표적 항암제는 동물임상에서 안전성을 확인했고 화합물 신약은 안전성 평가 중이다. 국내 생명공학 신약 1호인 이지에프는 당뇨병성 족부궤양 임상3상을 하고 있다. ‘스티렌’과 ‘자이데나’ 등 2종 신약의 성공적 출시를 한 동아제약은 오는 2010년까지 3개 신약을 추가로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당뇨병 치료제 신약 특성화 센터를 설치해 당뇨병 치료제 연구 기반을 구축하고 불임치료제 ‘고나도핀’ 발매 역량을 기반으로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 4년 동안 연구개발투자가 연간 20%이상 증가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매출액의 15%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종근당도 세계적 신약개발에 힘을 쏟는다. 개발에 성공한 항암제 ‘캄토벨주’의 적응증 확대를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당뇨병 치료제 CKD-501은 올해 임상 2상이 진행중이고 패혈증 치료제 CKD-712는 영국에서 전임상이, 국내에서 임상 1상이 이뤄지고 있다. 혈관신생억제성 항암제 CKD-732는 국내에서 임상 1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중외제약은 국내와 미국, 일본에 모두 4개의 연구소를 운영해 한·미·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신약후보물질 연구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개발하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호르몬 의존성 유방암치료제, 과민성대장증후군 치료제를 로슈그룹 츄가이제약과 공동개발했고, 2005년 대장암치료제인 CW-231을 로슈-츄가이제약과 함께하기로 계약했다. 일동제약은 알츠하이머병, 비만, 노화, 내성균 등을 표적으로 하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내성균을 표적으로 하는 연구는 전임상 돌입 단계에 있다. 이외에 항암제와 당뇨병치료제,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개발 등이 연구중이다. ◆해외시장 진출 = 동아제약은 중진국 시장에 맞는 신약을 개발해 해외시장 점유를 확대하는 ‘소(小) 글로벌화 성장전략’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있다. 2017년까지 해외매출 규모를 전체 4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외제약은 차세대항생제 이미페넴을 일본과 중국 중남미지역에 지난해 1000만달러 이상 수출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제약사와 2000만 달러 규모의 기초수액 공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이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를 단일 시장으로 보고 인력 제품 생산의 현지화를 꾀하고 있다.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 등에 지사 및 법인이 있다. 지난해 제약업계 최초로 수출 5000만달러를 돌파한 한미약품의 올해 목표는 6220만달러이다. 중국에 있는 북경한미는 글로벌 제약사로서의 도략을 위한 전초기지다. ◆글로벌 수준 갖추어야 미국 시장 진출 가능 = 국내에서 허가된 의약품이 미국 FDA에 의해 인정받기 위해서는 cGMP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LG생명과학은 이미 cGMP 시설을 확보했다. 유한양행이나 중외제약도 이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미약품은 경기도 평택에, 부광약품은 경기도 안산에 cGMP 공장을 각각 준공할 계획이다. 녹십자는 충북 청원 오창공장을 이 기준에 맞게 생산설비를 갖추고 혈액제제 및 유전자공학제제를 생산할 계획이다. 동아제약은 cGMP에 맞춘 첨단 제조시설을 갖춘 공장건설을 추진중이다. 대웅제약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와 생물의약품 cGMP 생산시설 이용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단백질 의약품업체 셀트리온은 인천 송도에 cGMP 생산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며 신약개발 전문의약품업체인 VGX 인터내셔날도 미FDA 품질검증시스템이 적용된 제조공장 건설을 준비중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2007-06-20
- 3040세대를 민주주의자로 훈련해 배출 학생총회는 6월항쟁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6월항쟁 전에는 소수의 운동권 학생이 감옥에 갈 결단을 하고 시위를 했다. 그러나 87년 6월엔 달랐다. 각 과마다 동아리마다 총회가 열렸고 일반 학생들도 참여해 발언했다.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할 것인지 난상토론을 한 끝에 집회참석을 결의하면 대부분 학생들이 참석했다. 과별로 깃발을 들고 단과대학 총회에 참석해 단과대학 차원에서 결의하고 총학생회 총회에 참석한다. 과별 단대별 깃발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스크럼을 짠 학생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전국의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총회는 압도적인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장이었다. 대학교정을 짓누르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 80년 광주학살 이후 전국의 대학에는 경찰이 들어와 상주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두 서넛만 모여도 경찰이 해산에 나섰다. 광주에서 자행된 학살을 고발하고 군사정권을 규탄하려는 운동권 학생들은 몇 초라도 더 진실을 알릴 기회를 갖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고 밧줄을 타고 건물에 매달려 집회를 했다. 주장을 알리기 위해 학교 옥상에서 유인물을 뿌린 후 투신하고 분신하는 일도 80년대 중반까지 끊이지 않았다. 대학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는 “데모하지 말라”는 말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총회를 통해 절대 다수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면서 학생운동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학생운동 지도부는 보다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게 평화집회를 기획했다.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당시 고려대학교 총학생장이었던 이인영(43·국회의원)씨는 “자민투 민민투로 나뉘어 학생들 앞에서 분열돼 운동과 대중이 괴리되고 있었다”며 “역사의 주인인 대중을 믿고 그들의 자주성을 끌어내는 대중노선으로 전환하는 게 절박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소수의 운동권이 독점한 학생운동을 다수 학생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바꾸었다. 비밀학생회는 공개학생회로 바뀌었고 학생운동은 그 해 8월 전대협을 결성했다. 최소 10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매년 평균 100명 이상의 학생이 학생회 활동에 참여했고 이 흐름이 90년대까지 이어졌다. 총회는 한국사회의 허리를 구성하고 있는 30~40대를 민주주의자로 배출했다. 특별취재팀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서울시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 개원 광진청소년수련관 내 ‘아이윌’ 6월 말 개소 7월 중순 중학생 100명 대상 시범사업 인터넷과 게임에 중독된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시름 덜게 됐다.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인터넷 중독 장기치료센터를 개설한다. 서울시는 이달 말 광진구 광진청소년수련관 안에 청소년 전문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 ‘아이윌(I-WILL)센터’를 개소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가 청소년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20~30%가 인터넷 게임중독 위험군에 속한다. 5%는 중독치료가 필요하고 15%는 상담이 필요한 수준이다. 서울 청소년 214만명 가운데 10만여명은 중독치료가 32만여명은 상담이 필요한 셈이다. 김홍기 서울시 청소년담당관은 “또래관계 부적응이나 가족문화 단절과 인성파괴 등 심각한 청소년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현재는 상담 수준으로 의료기관을 연계한 장기치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중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7월 중순까지 학교와 지역 청소년수련관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다. 아이윌센터는 치료와 대체 놀이문화를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상담가 상담과 신경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 등 의료적 접근, 그리고 지역 청소년수련관 시설과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치료는 4단계로 최장 2년에 걸쳐 진행된다. 1~3단계까지 청소년들은 매주 1회 3시간씩 청소년수련관을 방문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치료는 무료지만 부모가 가족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1단계는 상담치료. 기초상담을 거쳐 중독 정도에 따라 선별하고 개인상담과 가족상담을 진행한다. 2단계는 행동장애 즉 중독에 대한 집중치료 기간이다. 가족단위 캠프와 문화 체육 치료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필요한 경우 신경정신과 상담 약물치료도 연계한다. 서울은평병원과 협의 마무리단계다. 3단계는 프로젝트치료 과정으로 청소년들이 동아리를 구성해 활동하거나 자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청소년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윌센터 핵심과정이다. 마지막 4단계는 재발방지프로그램이다. 수련관을 떠나 일상에 복귀하도록 돕는 한편 다시 인터넷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조언자(mentor)가 지지·지원한다. 구상대로라면 중독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은 다른 청소년들을 돕는 또래상담자 역할까지 할 수 있다. 내년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연령대 청소년 연 200명으로 대상과 인원을 늘린다. 반응이 좋을 경우 권역별로 치료센터를 추가 설립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학교나 청소년시설 등을 찾아가는 예방교육을 병행한다. 박현숙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사무총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자녀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눈을 돌린 건 바람직하다”며 “사회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해가면서 청소년 스스로 중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6월 항쟁 그후 20년]6월을 일군 사람들 ⑧ 학생 60% 이상 참여한 총회의 주역들 박대승·김종삼씨 임각철(43) 공무원 군에서 제대한 후 대전 한남대학교 2학년에 복학했다. 4월 사법시험 1차 시험을 치렀는데 이한열이 최루탄에 쓰러진 후 적극 참여했다. 수 많은 학생들이 집결할 때 시대가 변한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 뿌듯했다. 이순모(39) 사업 대전 목원대학교 1학년이었다. 3월부터 한원민주화투쟁을 시작했다. 6월에는 수천명이 대전시내로 몰려나갔다. 충남대 등 모든 대학이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내에는 매일 5만명이 모였다. 정 일(42) 공무원 86년까지는 부산외대학교에서 집회를 할 때 두려움이 있었다. 학생들도 많이 모이지 않았다. 87년 6월엔 대부분 학생들이 다 참여했다. 총회를 통해 압도적인 다수가 모이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두려움도 사라졌다. 박종희(41) 회사원 경희대학교 본관 앞에 대형태극기가 걸려있고 매일 학생총회가 열렸다. 과총회와 단대총회를 거쳐 스크럼을 짜고 본관 앞으로 향할 때 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 폴짝폴짝 뛰면서 봐도 끝이 없었다. 정승호(40) 회사원 신입생이었다. 부산외대 독일어과였는데 150명 정원에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총회에 참여했다. 학교 집회는 빨리 마치고 다들 거리로 나갔다. 거리에서 경찰들이 막으면 보도블럭을 깨서 던지기도 했다. 서울지역 주요대학 ‘서대협’ 구성 대중노선 구사 일반학생들 대거 참여해 “호헌철폐” “독재타도” 87년 6월항쟁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대해 학생과 시민이 분노하면서 촉발됐지만 대규모 항쟁을 가능하게 한 조직적인 힘이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서울지역의 주요 대학교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구성해 대중노선을 구사했다. 감옥을 갈 각오를 한 소수의 학생운동권에 의한 운동을 일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으로 전환시키는 시도였다. 주요 집회가 열리는 날은 어김없이 학생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과총회 단대총회를 조직했다. 수업에 빠지기 일쑤이던 학생회간부들이 수업에 참석하고 과총회를 주도했다. 일반 학생들도 토론에 참석하고 정치집회를 위해 왜 수업을 거부해야 하는지 토론했다. 그리고 군사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수업과 시험 거부를 결의하고 다 함께 가두시위에 참석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시립대 경희대 중앙대 등 서울지역 대부분 대학교에서 벌어진 이 현상은 역사를 바꿨다. 대규모 집회시위가 적었던 지역대학교들도 항쟁의 기운이 확산되면서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슬기로움 그대로 반영 = 이런 상황은 지방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87년 6월 10일 경북 경산에 있는 영남대학교 학생 1만여명이 20km를 걸어서 대구시내에서 열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조작 규탐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에 참여했다. 세 시간 넘게 논두렁을 지나 산을 넘어서 걸어온 길이었다. 대구 경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날 집회는 학생총회를 통해 이뤄졌다. 영남대는 87년 총학생회장을 직선으로 뽑았다. 영남대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직선으로 뽑힌 학생회장과 간부들이 4월 구속됐다. 학생들은 “우리가 뽑은 학생회장을 돌려달라”며 과별로 단대별로 총회를 열고 구속학생들을 석방할 때까지 수업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이 흐름은 6월항쟁에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 학교를 다니던 박대승(44·시민단체·왼쪽 사진)씨도 과총회에 참석했다. 박씨는 “군에서 학생들이 좌경화돼 있고 데모하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복학해보니 수 천명의 학생들이 매일 데모를 하고 있었다”며 “대자보 등을 보면서 광주학살에 대해 알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언론이 통제돼 있던 상황이라 대자보가 한 장 붙으면 수 백명의 학생들이 몰려가 그것을 봤다”고 기억했다. 총회가 열리면 그는 적극 발언했다. 전투경찰로 군을 제대한 예비역 학생의 발언에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호응했다. ◆과별 단대별 장기 드러나 = 부산대학교도 87년 6월항쟁 전 이미 들끓고 있었다. 1만 5000여명의 학생 중 1만여명이 참여하는 집회가 연일 열렸다. “대학신문을 학생기자 중심으로 운영하자”, “실험복을 넣어둘 사물함을 만들어 달라”며 시작한 학내 민주화운동에 절대 다수 학생들이 참여했다. 4월 말 대학총장은 학생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힘은 6월항쟁에 그대로 이어졌다. 철학과 경제학과 등에서 “우리도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운동에 동참하자”며 총학생회에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총학생회가 총회를 소집하자 바로 5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거리로 나섰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김종삼(43·한의사·오른쪽 사진)씨는 학생총회가 당시 대학과 사회를 바꾼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86년 말 새로운 학생회가 구성된 후 학생복지와 학생자치신문(학보)문제를 제기했는데 처음엔 학우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87년 3월 개학 후 학생총회가 열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학생회 간부들은 학교 공사장에서 손수레에 마이크를 매달고 학교를 돌며 홍보활동을 했다. 이들은 또 단식농성도 벌였다. 이에 인문대 철학과와 상대 경제학과에서 총회를 열고 “단식학생을 구하자”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자”며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동아리 단대 총학 등의 간부들이 모두 과총회에 참석했다”며 “왜 학내민주화운동을 하는지 총회에서 직접 설명하고 토론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호응했다. 공대 학생회는 총회를 통해 단식농성장에 차양막을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단식농성하는 학생들에게 퇴약볕을 막아주자는 마음이었다. 인문대는 총회를 통해 시험을 거부하고 책·걸상을 모두 강의실 밖에 들어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비가 오면 책·걸상이 젖으니 비닐을 사와 덮자고 제안했고 총회에서 통과됐다. 김씨는 “과학생회 단대학생회가 스스로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방안이 나왔다”며 “총학생회에서 기획했다면 나올 수 없는 지혜였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총회는 거리시위 전술도 쪽지에 적어 공개했지만 오히려 경찰에 누출되지 않았다”며 “86년까지는 비밀리에 시위약속을 해도 경찰이 어떻게 알았는지 집회를 봉쇄하곤 하던 것과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87년 6월항쟁은 이들의 삶도 바꾸었다. 예비역 복학생이던 박씨는 6월항쟁을 거치며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됐고 89년 ‘임수경 방북 배후조종 및 각종 집회시위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됐다. 박씨는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민주동문회 활동을 했고 지금은 대구경북지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일하고 있다. 조선공학과 학생이던 김씨는 졸업 후 취업을 위한 학교추천서를 받지 않았다. ‘총학생회장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받을 수 없다는 게 6월항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작은 금형회사에서 주임으로 일하다 한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김씨는 환자들에게 좋은 의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6월정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정연근 문진헌 김은광 윤여운 백만호 원종태 방국진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이-박 지지율 놓고 ‘동상이몽’ 박 “토론회 덕에 격차 줄어 … 내달 역전” 이 “ 하락 멈춰 … 내달초 반등 노릴 것” 대선후보 지지율 추이를 둘러싼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박 후보측은 “지지율 격차가 눈에 띄게 줄면서 조만간 역전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반면 이 후보측은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가 멈췄고 내달초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검증공방이 지지율 추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후보측은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두 후보간 격차가 한자릿수로 좁혀진 것으로 나타난다”며 “최대 30%P까지 벌어졌던게 불과 두달만에 10%P 이내로 줄어든 것”이라고 자평했다. 실제 최근 언론사와 여론조사전문기관의 조사추이를 보면 뚜렷하게 격차가 줄고 있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달 두 후보간 격차는 24.8%P에서 이달들어 19.0%P로 줄었다. 다른 기관의 조사결과는 더 격렬하다. 동아일보 조사에선 한달만에 지지율 격차가 20.7%P에서 13.0%P로 감소했고, 한겨레신문 조사에선 22.5%P에서 14.7%P로 좁혀졌다. 심지어 SBS 조사에선 격차가 한자리수인 8.7%까지 줄어들었다. 박 후보측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원인에 대해 “정책토론회에서 박-이 두 후보간 능력이 비교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사 조사추이를 보면 정책토론회가 끝난 직후 이 후보의 지지율은 모두 떨어진 반면 박 후보의 지지율은 동시에 올랐다는 것이다. 박 후보측 관계자는 “지지율 격차는 조만간 더 줄어들면서 이달말이면 오차범위내로 접어들 것”이라며 “내달 중순 청문회와 지역연설회를 거치면서 역전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 후보측 해석은 정반대다. 네거티브 공방을 거치면서 격차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어느정도 일단락됐다는 설명이다. 정책토론회는 지지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네거티브 공방이 시작되면서 격차가 12%P까지 줄어든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측 반격이 살아나면서 어느정도 바닥을 찾은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마지노선을 8%P로 보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후보측은 검증공방을 거치면서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전략모색에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이달말까지는 서로를 겨냥한 공방이 지루하게 계속되면서 지지율이 정체되겠지만, 내달초부터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 감소는 검증공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만큼 향후 방향도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게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한나라당 사정을 잘아는 한 전문가는 “대운하와 BBK, 위장전입 등 검증공방이 격화되면서 이 후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 측면이 강하다”며 “조만간 검증공방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나라당 지지세력의 다수가 계속 이 후보를 지지할지, 아니면 박 후보를 대안으로 선택할지 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이-박 지지율 놓고 ‘동상이몽’ 박 “토론회 잘한 덕에 격차 줄어 … 내달 역전” 이 “지지도 하락 멈춰 … 내달초 반등 노릴 것” 전문가 “검증공방이 변화 촉발, 향후 방향 결정” 대선후보 지지율 추이를 둘러싼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박 후보측은 “지지율 격차가 눈에 띄게 줄면서 조만간 역전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반면 이 후보측은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가 멈췄고 내달초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검증공방이 지지율 추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후보측은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두 후보간 격차가 한자릿수로 좁혀진 것으로 나타난다”며 “최대 30%P까지 벌어졌던게 불과 두달만에 10%P 이내로 줄어든 것”이라고 자평했다. 실제 최근 언론사와 여론조사전문기관의 조사추이를 보면 뚜렷하게 격차가 줄고 있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달 두 후보간 격차는 24.8%P에서 이달들어 19.0%P로 줄었다. 다른 기관의 조사결과는 더 격렬하다. 동아일보 조사에선 한달만에 지지율 격차가 20.7%P에서 13.0%P로 감소했고, 한겨레신문 조사에선 22.5%P에서 14.7%P로 좁혀졌다. 심지어 SBS 조사에선 격차가 한자리수인 8.7%까지 줄어들었다. 박 후보측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원인에 대해 “정책토론회에서 박-이 두 후보간 능력이 비교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사 조사추이를 보면 정책토론회가 끝난 직후 이 후보의 지지율은 모두 떨어진 반면 박 후보의 지지율은 동시에 올랐다는 것이다. 박 후보측 관계자는 “지지율 격차는 조만간 더 줄어들면서 이달말이면 오차범위내로 접어들 것”이라며 “내달 중순 청문회와 지역연설회를 거치면서 역전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 후보측 해석은 정반대다. 네거티브 공방을 거치면서 격차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어느정도 일단락됐다는 설명이다. 정책토론회는 지지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네거티브 공방이 시작되면서 격차가 12%P까지 줄어든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측 반격이 살아나면서 어느정도 바닥을 찾은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마지노선을 8%P로 보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후보측은 검증공방을 거치면서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전략모색에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이달말까지는 서로를 겨냥한 공방이 지루하게 계속되면서 지지율이 정체되겠지만, 내달초부터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 감소는 검증공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만큼 향후 방향도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게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한나라당 사정을 잘아는 한 전문가는 “대운하와 BBK, 위장전입 등 검증공방이 격화되면서 이 후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 측면이 강하다”며 “조만간 검증공방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나라당 지지세력의 다수가 계속 이 후보를 지지할지, 아니면 박 후보를 대안으로 선택할지 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20
- 어깨 : 손학규 지지도 6%의 의미 탈당 외엔 국민마음 끌 계기 부족 4월 이후 완만한 상승 … 선진평화연대 이후 주목할만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의 틀을 깨고 나온 지 3개월이 흘렀다. 스스로의 말대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분투한 시간이었지만 손 전 지사의 지지도는 완만한 오름세를 보였다. 6월 들어 실시된 몇 개 여론조사에서 손 전 지사의 전체 대선주자 선호도는 6%대로 나타났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9~10일) 조사 7.0%,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 조사(14일) 6.0%,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16일) 조사 6.8%다. 손 전 지사의 지지도는 한길리서치(4월 5.1%→5월5.6%)와 리서치플러스(4월 3.9%→5월 4.0%)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매달 조금씩 상승했고, 비한나라권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한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도 2위 주자와 10%포인트 혹은 그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달의 경우, 한길리서치 조사에선 비한나라권 주자 중 18.5%로 2위인 이해찬 전 총리(8.6%)보다 9.9%포인트 앞섰고,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도 26.5%로 이해찬(11.5%) 전 총리와 정동영 전 의장(11.4%)의 두배를 넘었다. 코리아리서치 조사는 손학규 33.8%, 이해찬 11.7%였다. 손 전 지사의 이런 지지도 추세는 비한나라권 여러 후보 중에선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지만 전체 대선주자 선호도에선 한나라당 ‘빅2’인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선진평화연대 출범식 하루 전인 16일 이뤄진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선 이명박 40.1%, 박근혜 25.4%에 한참 처지는 6.8%로 3위를 차지했다. ◆비한나라권에선 1위이지만... =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탈당 이전부터 비한나라당 지지층으로부터 잠재적인 ‘이명박 대항마’로 손꼽히긴 했지만 정작 한나라당 텃밭을 떠나 비한나라권 영역으로 몸을 옮긴 뒤에도 ‘빅2’와의 격차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한계는 무엇보다 손 전 지사의 오랜 약점으로 꼽혀온 대중성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정치권 전문가나 학계, 기자 등 여론주도층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감 1위로 꼽히면서도 정작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자리 수 지지율에 머무는 이유도 대중성 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비한나라권 차기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보이는 지표도 ‘잘 모르겠다’는 무응답층이 높다는 점을 잘 따져봐야 한다. 한길리서치의 4~6월 조사에선 ‘잘 모르겠다’는 응답비율이 47.6%, 38.8%, 50.4%로 나타나 손 전 지사의 지지도보다 높았다. 호남과 수도권 등의 비한나라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는 손 전 지사를 가장 선호하고 있지만 판단을 미루고 있는 관망층이 아직은 더 두텁다는 의미다. 비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이 지지를 유보하는 이유는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 외에는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한’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불투명한 대통합 전망은 구조적 장애 = ‘김근태 불출마선언’으로 탄력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비한나라권의 대통합 향방도 손 전 지사의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이다. 한나라당과 맞설 ‘판세정리’가 되지 않아 후보가 난립하고 여러 정당과 세력으로 흩어진 현재의 비한나라권 정치지형은 지지층의 결집을 막는 장애물이다. 손 전 지사의 국민 지지도가 지금까지의 여러 한계를 넘어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까지 진행된 여론조사들은 손 전 지사가 자기 세력이 전무한 비한나라권으로 옮겨와 ‘선진평화연대’란 정치조직을 묶어내고 대규모 출범식을 치른 17일 이전에 실시된 것이다. 손 전 지사와 시민사회세력을 포함한 비한나라 진영은 대통합을 성사시켜 정당구도를 먼저 정리한 뒤 대선후보간 경쟁단계로 돌입할 수도 있고, 지지 유권자층이 유력 후보를 밀어 올려 그를 중심으로 각 세력간 대통합을 압박하는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손 전 지사가 이런 흐름에서 자기세력 확대 뿐 아니라 얼마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의 국민지지도 상승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