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해외시장 진출기-그리스-터키편 ①

현대차, 유럽 텃세 딛고 그리스 안착

지역내일 2004-08-27 (수정 2004-08-27 오전 11:38:09)
그리스와 터키는 각각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면서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정치적으로 오랜 굴곡을 지닌 양국이지만 ‘부유한’ 유럽국가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럽중심의 시장질서가 당연시되는 이들 국가에서 우리 기업들이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어 현지를 찾아가 보았다.
/편집자주

여객기가 짙푸른 에게해를 건너 아테네 상공을 선회하면서 둥그런 원을 그리면, 승객들은 그 원 속으로 도시 전역이 끌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10년 사이 300만명이나 불어난 인구 탓에 몸살을 앓는 중이지만, 아테네는 여전히 밝고 평온한 도시다. 한 관광객은 아테네 시가지와 주요 유적지를 다 둘러보는 데 하루면 족하다는 사실을 대단한 발견인 듯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훑어보는 일이다. 아테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압도하는 곳이다. 마치 그리스가 하나의 국가명을 넘어 자연에 대한 인류 문명의 가장 성공적인 도전이자 승리를 상징하는 코드로 이해되는 것처럼. 서구인들이 그들 문명의 뿌리가 아테네임을 부인하지 않는 것은, 오늘 유럽이 아테네의 거대한 성공에 뿌리를 두고 자랐기 때문이다.

파르테논, 아테네 문명의 정수
그 성공은 아마 그리스인들이 동시대인들과 비교하여 인간이 가진 능력의 극대치를 보여주었고, 동시에 자연과 신에 단순히 복종하지 않고 그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음을, 자신의 문명을 통해 증명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 문명이란 바로 아테네에서 만개한 인간중심의 철학, 보통 시민이 지켜낸 민주정치, 파르테논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문화수준, 나아가 그들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올림포스의 수많은 인격화된 신들, 그 모두를 말한다.
아테네를 방문하는 이라면 반드시 고대 아테네 유적지를 찾는다. 전체를 둘러봐도 하루면 족한 이 유적지는 그러나 가장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한 장을 펼쳐낸다.
고대 아테네는 용도에 따라 크게 세 개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먼저 아고라는 시민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상업과 집회의 중심지였다. 그런 만큼 가장 번잡한 곳이었으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댔고, 많은 철학자들이 이곳 길모퉁이에서 젊은이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 곳이었다.
다음이 아레오파고스 언덕. 아고라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바위언덕으로 그리스 귀족 정치의 산실이다.
기원전 462년 아레오파고스 회의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아테네는 동맹국 중 가장 먼저 민주정을 확립했다. 지금은 돌덩이 하나하나가 광을 낸 듯 반질반질해서 이 언덕을 오르려면 거의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데, 그 또한 귀족 정치의 몰락을 연상케 한다.
세 번째가 아크로폴리스. 고대 아테네인들이 ''가장 높고 신성한 지역''이라 말한 이곳은 사실 해발 156미터인 작은 동산이다. 그 정상에 아테나 여신을 모신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 많은 신전과 성소들이 모여 있다. 말하자면 아크로폴리스는 신을 모시는 장소다.
또한 이곳은 지금도 그리스인들이 자신의 찬란했던 옛 아테네 문명의 증거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며, 파르테논 신전은 그 모두를 대표한다.
447년에 착공, 15년에 걸쳐 완성된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은 몇 개의 기둥과 바닥, 내벽 정도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 건물은 당대 최고의 건축술과 수학, 미학, 종교, 역사, 철학, 그리고 동맹국의 협력과 아테네의 위상 등이 총집결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테네인들은 인간 중심의 그리스 문명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찬란한 문명은 오늘날 막대한 관광자원으로 남겨졌지만, 로마에서 오스만투르크로 이어진 일천년간의 식민통치는 그리스를 유럽의 변방국가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을 딛고 과거의 영광을 향해 재도약하고자 하는 그리스인들의 의지가 아테네 올림픽으로 분출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 계기로 외자유치 기대
북부 그리스 산업연맹(FING)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그리스 정부는 정부, 기업 및 지역 전반에 걸쳐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 정부는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고 기업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EU로부터 연간 40억달러에 달하는 지원자금을 받아쓰는 중이다. 이와 병행하여 과감한 세제 개혁을 단행했고, 유적지 발굴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리스의 유적지 발굴은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예를 들어 파르테논 신전 보수 공사는 10년째 진행되고 있으나 일부 기계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건물 외벽에 웅크리고 있다. 이제 와서 그리스 정부가 서두르는 데는 저조한 성장률과 만연된 실업으로 EU 국가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을 한시바삐 벗어던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2003년도 기준 개인소득 1만7967달러로 EU에서는 ‘아주 가난한’ 국가에 속한다. 지난 5월 발간된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는 지난 2001년 이래 국가경쟁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수출이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면에서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로 평가되었으며,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수많은 유적지 탓에 기업 활동이나 지역 개발도 많은 제약을 안고 있다.
게다가 관광 중심의 산업 구조 탓인지 근로자의 일하려는 동기 또한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의 인프라도 유럽 최하위 수준이다. IMD 보고서에 따른 그리스의 2004년도 국가경쟁력은 조사대상국 중 44위(같은 기간 한국은 35위).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국내 사정이 취약하지만은 않다. 정부의 계속된 노동시간 연장 권고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오전 8시 출근에 오후 2시 퇴근이라는 짧은 노동시간을 여전히 고수하지만, 이 나라의 GDP는 1997년 이래 꾸준히 상승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비증가율이나 국내 투자, 저축률,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재정적자도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경제의 외관은 작아보이지만 성장세가 안정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지표들이다. 성장엔진을 갖추는 데 가장 절실한 외국인투자 유치 문제는 올림픽을 계기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그리스 정부의 의지이다.

“현대차 위상 갈수록 높아질 것”
아테네 국제공항에 도착해 짐을 싣고자 카트를 찾으면 SAMASUNG이란 글자가 먼저 눈에 띈다. 삼성전자가 아테네공항의 승객용 카트를 몽땅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에 대해서 아느냐 물으니 “카트 만드는 회사”라고 답한 관광객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물론 그리스인들에게 삼성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올림픽 공식 스폰서이자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아테네 식당에서 잘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십중팔구 애니콜 제품이라 보면 된다.
공항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묵직하게 생긴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현대 투싼이다.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이 부스에는 그밖에도 안내용 터치스크린과 홍보영상을 실은 대형 PDP가 쉴 새 없이 화려한 이미지를 뿜어낸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
현재 올림픽 공식 차량으로 승용차와 버스 등 500대의 차량이 시내를 질주하는 중이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현대차는 대중적인 차종으로 부상했다. 올림픽 후원에 따른 보답인지, 그리스 정부는 지난 7월30일부터 한국면허를 현지면허로 교환해주고 있다. 그리스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나라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판매고는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회사는 자체공장을 보유하지 않고서도 그리스에서 2002년 연간 2만2970대를 판매하여 점유율 8.6%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같은 점유율을 유지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7월까지 9.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유럽 차종들이 자기 안방으로 생각하는 지역에서 매년 1~2위를 다투는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메이커들이 자존심을 내세워 굼뜬 경쟁을 펼치는 사이에, 경-소형차 시장에서 가격과 서비스를 무기로 특유의 저돌성을 발휘한 결과라고 평가된다.
아테네 시내 레오프가에 소재한 현대차 매장 담당 딜러는 숨볼러스 폴레시온이라는 그리스인이다. 그에게 현대차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묻자, “한 번 사간 손님에게서 적극 추천을 받아 긴가민가 오는 분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들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단지 동료의 차를 빌려 타보도록 권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매장의 그리스인 딜러에게 현대차의 성능을 묻자, 그는 액센트를 가리키며 “손님이 동급의 다른 차종에 관해 말하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이번 올림픽으로 현대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2년 전에 다른 차를 팔다 현대차를 보고 진로를 바꾼 인물이다.
그리스는 유럽 문명의 뿌리이다. 단기간에 그 뿌리에 적응한다는 것은 머지않아 줄기를 거쳐 꽃에 이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럽 자동차시장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그리스에서 한국이 지난해 10%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온 사실이 그렇다. 그리스에서 보기 좋게 성공한 우리 기업이라면, 그로써 유럽 전역에서 나래 펼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스 경제와 그리스인
관광·해운업 중심 … 올림픽에 크게 기대
한국과 자동차·선박·전자분야 교역 활발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중반 이래 3~4%대를 유지하고 있다. 물가는 1999년을 저점으로 2.6%에서 점차 상승하는 추세인데, 지난해는 3.4%로 EU 국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부존자원이 적고 토지가 척박하여 제조업과 농업 모두 취약하며, 기간망 분야를 제외하면 거의 완전개방 시장이라 볼 수 있다.
그나마 관광업과 해운업이 그리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양대 산업. 지난해 이 나라를 방문한 관광객은 1300만명, 그들이 내놓은 돈은 60억불에 달했으며 올해는 올림픽으로 인해 그 규모가 훨씬 커질 전망이다.
또한 그리스는 고대 이래 해양강국의 전통을 유지, 최대 해운국으로 세계 선박의 18%를 점유하고 있다. 선박왕 오나시스를 배출한 것도, 이번 올림픽 기간에 부족한 육지의 호텔을 배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일은 이 때문에 그리스가 한국 조선업계 최대 고객이어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 주요 조선업체가 대거 그리스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이다.
무더운 해양 기후 아래 여유를 추구하는 그리스인의 특징은 식습관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대개 오후 2시경 일을 마치고 낮잠을 취한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눈을 뜨는데 늦잠이라도 들면 일어나는 시간이 식사시간이다. 자신의 경험에 의거, 초저녁부터 12시가 넘도록 그리스인들이 식탁에만 앉아 있더라고 주장하는 외지인도 있다.
그리스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매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EU국가들은 그리스인들이 게으르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객관적으로도 그리스의 노동생산성이나 근로의욕은 유럽 최하위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도박에 손을 대지 않고, 공공장소에서는 게임도 금지되어 있다.
짐작컨데 그리스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유쾌하고도 내용을 갖춘 떠버리들이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그들은 누구와 마주 앉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들의 신화와 역사, 민주주의와 독립투쟁, 그리고 여자(남자)와 바다에 대해 떠들 자세가 되어 있다.
샐러드와 수블라키, 거기에 물을 타면 하얗게 변하는 우조(그리스식 소주) 한 병 곁들이면, 그들에게서 그리스의 이면사를 밤새워 들을 수 있고, 그 하나하나가 서구 문명의 전설로 기억될 터이다.

/아테네=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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