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에 걸친 부시가의 대선승리이면에는 가공할만한 전략가 칼로브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2001년부터 백악관에서 대통령 정치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칼 로브(사진)는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미국 25대 대통령으로 1896년과 1900년 대선에서 승리, 35년에 걸친 공화당 장기집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어느 누구도 조지 부시가 그 자신의 힘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를 돕고 밀고 현재의 위치까지 끌고 와야만 했다.
불가능 했던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 ‘꼭두각시 조종사’의 이름은 바로 칼 로브다”고 르몽드는 29일자 분석기사에서 전했다.
로브는 ‘사기꾼’ 혹은 ‘킬러’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기도 하다. 선거 경쟁자에게 인신공격 및 비방으로 타격을 주는 전략을 주로 쓰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3주전 텔레비전에 방영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존 케리의 베트남전 참전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는 광고의 이면에도 칼 로브가 버티고 있다.
◆‘부시의 뇌’는 칼로브=현 부시 대통령의 대선선거출마를 공식화하는 이번 공화당 뉴욕 전당대회를 3일 앞둔 27일 뉴욕시 3개 영화관에서 ‘부시의 뇌(Bush’s Brain)’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에 들어갔다.
이 영화는 1년전 출시된 제임스 무어와 웨인 슬레이터의 공동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슬레이트는 텍사스주의 수도 오스틴에서 달라스 모닝 뉴스를 이끌고 있다. 로브와 부시일가의 모든 것이 1970년대 말 텍사스에서 시작됐다.
‘부시의 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명확하다. 칼 로브가 부시와 함께 미국의 ‘공동 대통령’이라는 것.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선거 전략을 임명하는 것이 바로 칼 로브다.
무역, 세금, 사회, 환경, 교육 정책뿐 아니라 특히 외교정책 및 전쟁을 명령하는 것도 칼 로브다. 또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 자금을 모금하고 아이오와주의 농가와 펜시바니아의 제철업자의 마음을 얻고 남부 침례교도들과 플로리다 쿠바 이민자들의 환심을 살것을 명령하는 것도 그다.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물론 로브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지만 그는 보스에 대해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신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로브는 특히 자신이 미국 대통령직에 앉힌 부시를 존경해마지 않으며 그를 두달 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로브의 눈에는 조지 워커 부시는 공화당 정치인중에서 공화당 장기 집권 천하를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칼 로브는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미국 25대 대통령으로 1896년과 1900년 대선에서 승리, 35년에 걸친 공화당 장기집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어느 날 “언제부터 대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나”라는 질문에 로브는 “1950년 12월 25일”이라고 답했다. 이는 그가 태어난 날이다.
◆불운한 유년시절=칼 로브는 미국 서부의 매우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는 그리 순탄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맥탐사원이었으며 어머니는 살림을 꾸리고 그를 포함한 5명의 아이를 보살피는 가정주부였다. 19세가 됐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얼마 되지 않아 칼은 자신과 형이 자신이 아버지라 믿었던 사람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는 자신과 형을 친자식처럼 아껴준 의붓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1980년대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칼 로브의 특이한 점은 아주 어린 나이에 정치와 보수주의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존 케네디가 많은 미국 젊은이들을 매료시킬 때 칼 로브는 9살이 나이에 라차드 닉슨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그보다 더 힘쎈 이웃집 딸과 시비중 주먹에 맞기도 했다. 부모의 불화와 그들의 종교생활 부재가 그를 체제존중으로 이끌었을까. 어쨌든 그가 공화당을 선택한 이유는 신을 만났기 때문은 아니다.
“신이 나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조지 부시와는 달리 로브는 개신교와 카톨릭 유권자들의 반응에 항상 조심하지만 자신이 기독교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을 가져본 적이 절대 없는것은 아닌것 같다”고 그의 종교적 정체성을 묻는 뉴욕 타임즈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이었고 공화당지지자였던 칼 로브가 이라크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부시를 ‘제2의 맥킨리’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2001년부터 백악관에서 대통령 정치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칼 로브(사진)는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미국 25대 대통령으로 1896년과 1900년 대선에서 승리, 35년에 걸친 공화당 장기집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어느 누구도 조지 부시가 그 자신의 힘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를 돕고 밀고 현재의 위치까지 끌고 와야만 했다.
불가능 했던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 ‘꼭두각시 조종사’의 이름은 바로 칼 로브다”고 르몽드는 29일자 분석기사에서 전했다.
로브는 ‘사기꾼’ 혹은 ‘킬러’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기도 하다. 선거 경쟁자에게 인신공격 및 비방으로 타격을 주는 전략을 주로 쓰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3주전 텔레비전에 방영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존 케리의 베트남전 참전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는 광고의 이면에도 칼 로브가 버티고 있다.
◆‘부시의 뇌’는 칼로브=현 부시 대통령의 대선선거출마를 공식화하는 이번 공화당 뉴욕 전당대회를 3일 앞둔 27일 뉴욕시 3개 영화관에서 ‘부시의 뇌(Bush’s Brain)’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에 들어갔다.
이 영화는 1년전 출시된 제임스 무어와 웨인 슬레이터의 공동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슬레이트는 텍사스주의 수도 오스틴에서 달라스 모닝 뉴스를 이끌고 있다. 로브와 부시일가의 모든 것이 1970년대 말 텍사스에서 시작됐다.
‘부시의 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명확하다. 칼 로브가 부시와 함께 미국의 ‘공동 대통령’이라는 것.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선거 전략을 임명하는 것이 바로 칼 로브다.
무역, 세금, 사회, 환경, 교육 정책뿐 아니라 특히 외교정책 및 전쟁을 명령하는 것도 칼 로브다. 또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 자금을 모금하고 아이오와주의 농가와 펜시바니아의 제철업자의 마음을 얻고 남부 침례교도들과 플로리다 쿠바 이민자들의 환심을 살것을 명령하는 것도 그다.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물론 로브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지만 그는 보스에 대해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신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로브는 특히 자신이 미국 대통령직에 앉힌 부시를 존경해마지 않으며 그를 두달 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로브의 눈에는 조지 워커 부시는 공화당 정치인중에서 공화당 장기 집권 천하를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칼 로브는 부시를 제 2의 매킨리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미국 25대 대통령으로 1896년과 1900년 대선에서 승리, 35년에 걸친 공화당 장기집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어느 날 “언제부터 대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나”라는 질문에 로브는 “1950년 12월 25일”이라고 답했다. 이는 그가 태어난 날이다.
◆불운한 유년시절=칼 로브는 미국 서부의 매우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는 그리 순탄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맥탐사원이었으며 어머니는 살림을 꾸리고 그를 포함한 5명의 아이를 보살피는 가정주부였다. 19세가 됐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얼마 되지 않아 칼은 자신과 형이 자신이 아버지라 믿었던 사람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는 자신과 형을 친자식처럼 아껴준 의붓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1980년대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칼 로브의 특이한 점은 아주 어린 나이에 정치와 보수주의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존 케네디가 많은 미국 젊은이들을 매료시킬 때 칼 로브는 9살이 나이에 라차드 닉슨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그보다 더 힘쎈 이웃집 딸과 시비중 주먹에 맞기도 했다. 부모의 불화와 그들의 종교생활 부재가 그를 체제존중으로 이끌었을까. 어쨌든 그가 공화당을 선택한 이유는 신을 만났기 때문은 아니다.
“신이 나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조지 부시와는 달리 로브는 개신교와 카톨릭 유권자들의 반응에 항상 조심하지만 자신이 기독교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을 가져본 적이 절대 없는것은 아닌것 같다”고 그의 종교적 정체성을 묻는 뉴욕 타임즈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이었고 공화당지지자였던 칼 로브가 이라크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부시를 ‘제2의 맥킨리’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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