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우리옷 디자이너 권용자씨

지역내일 2008-09-11
가장 옛것이 가장 첨단이 되는 옷, 그 옷을 짓는다

솟아 오른 보도블럭을 피하려다 휘청. 입고 있던 한복치마 밑단이 신발에 쓸려 찢어졌다. 여러 군데 찢기고 구멍 난 한복치마를 이집 저집 들고 다니며 수선을 부탁했다. 자기 집에서 맞춘 한복이 아니라 곤란하단다. 마지막으로 광덕로 대로변에 보이는 권용자 한복을 찾았다.
가게 안쪽 작업실에서 돋보기를 내리며 나온 권용자씨. 치마를 보더니 선선히 “내일까지 해드릴게요” 한다. 수선 후 곱게 다림질까지 해서 돌려준 그. 수선비도 저렴하고 타인의 안타까운 처지를 외면하지 않는 그 마음이 귀해 인터뷰를 청했지만 거절. 그게 지난 해 겨울이었다. 해가 바뀌고 그의 가게 앞에 무성하게 자란 나팔꽃잎만큼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무성해질 무렵 추석이 다가오니 한복 입는 법에 대해 듣고 싶다며 다시 인터뷰를 청하자 마지못해 승낙했다.

끝없는 바느질 공부
원목으로 창을 두른 가게 입구에 나팔꽃이 무성하다. 지금은 잎뿐이다.
“사실은 나팔꽃과 취꽃을 같이 보려고 심었는데 나팔꽃이 너무 무성해서 취가 속으로 숨어버렸어요.” 먹는 나물마다 꽃이 예쁘더란다. 나팔꽃을 키워보니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란 노랫말을 이해하게 됐다는 그가 이층장하나, 소품진열대 서넛, 조각보, 살창고쟁이, 황원삼, 빨간 저고리가 바닥과 벽을 차지한 가게 안에서 화장안한 얼굴에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햇빛에 색이 바랜 샘플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애는 어린데 일은 하고 싶었어요. TV를 보는데 바느질 하는 사람이 나오데요. 집에서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 애가 다 자라도록 배우기만 하다 6년 전에야 가게를 열었다고.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는데 딸이 보고 있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단다.
“늦게 시작해서 열심히 배웠어요. 그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뭘 배운다는 건 시간이 가야 하더라고요.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아요.”
그의 말처럼 10년을 배워야 겨우 입문단계에 접어든다는 우리옷 바느질(우리옷 짓는 사람들이 쓰는 ‘바느질’이란 용어에는 디자인과 천, 컬러가 포함되어 있다). 양반가바느질, 왕실바느질이 다르고 여자, 남자, 아이들 옷이 수십 벌 씩 되니 유행 따라 변해 온 바느질법을 다 배우려면 공부가 끝이 없단다. 더구나 발굴문화재에서 출토되는 옷이 많아지면서 늘 새로운 바느질법이 개발(사실은 복원)되는 ‘가장 옛것이 가장 첨단이 되는 분야’가 이 쪽이란다.

싸고 좋은 원단 까다롭게 골라
가게 안에 진열된 옷을 보니 조선후기 복식사에 나오는 옷 그대로다. 단순, 심플, 원형. 그가 추구하는 모토다. 우리옷은 원단 자체가 디자인이라 문양과 색을 살려 바느질하면 된다고.
옷은 추위를 막아주고 예의를 차릴 정도면 된다는 생각. 그 생각으로 옷을 만든다. 하지만 옷에 음식이 묻어도 원단이 좋으면 물수건으로 닦기만 해도 염색이 번지거나 천이 변형되는 일 없이 잘 닦인다고. 제작자가 생각하는 ‘(품질) 좋은 옷’과 소비자가 생각하는 ‘(싸고) 좋은 옷’ 사이의 괴리. 그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싸고 좋은 원단을 찾아 헤맨다. 그런 그에게 원단집에선 주인이 까다로워서 그렇다고 하고 그는 손님이 까다로워 신경 써서 고른다고 한다. 그 까다로움이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어 최고급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서도 제값을 받지 못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그의 살림살이를 그나마 채워주는 듯.
“‘어려서 엄마가 밤 새워 제 한복을 만들어 줬어요’ 하는 사람들, 접해 본 사람들이 (우리옷을) 입어요.”
그는 우리옷을 입을 때 속옷 제대로 갖춰 입고 슬리퍼 신는 것만 삼가달라고 부탁한다. 치마는 지나치게 길지 않게 맞추고, 벙벙하게 띄우는 속치마 입지 말고 앞치마로 치마길이를 조절해서 입으면 우리옷도 일하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고. 또 치마말기로 가슴 중간을 눌러 입으면 저고리 앞섶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 어깨 중심선이 앞으로 1cm 정도 넘어오도록 입으면 저고리가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 어깨를 세우고 등을 편 채 서서 한 쪽 다리만 살짝 구부리면 자태가 다소곳해 보인다는 것을 알려준다.
안동지방에서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도 이 옷처럼 시원하게 해라’하는 의미로 해준 모시 살창고쟁이를 처음 봤다. 요즘 태어난 게 행복해지는 오후였다.

서영란 리포터 triumv@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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