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30

9사단 독수리연대 한미자 상사

대한민국 ‘군인 아줌마’로 산다는 것은

지역내일 2009-10-15 (수정 2009-10-16 오전 11:37:50)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9사단 독수리연대. 한미자 상사는 이곳 400여 명의 군인 중 유일한 여성이다.
9사단 정훈장교의 도움으로 인터뷰가 성사돼 한미자 상사를 만나러 가는 길, ‘군’과 ‘여성’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을 벌써 19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군에서 상사 계급이면 연배가 지긋한 이들이 많다. 헌데! 한미자 상사는 서른여덟, 해맑은 얼굴에 함박웃음이라도 지을라치면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사격 선수였던 소녀, 군인이 되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한미자 상사는 중학교 1학교 때부터 사격을 시작했다. 어려웠던 살림에 7남매 중 다섯째였던 그는 운동으로 성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교 3학년, 기로에 섰다. 당신이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딸이 대신 풀어주길 원했던 어머니는 대학에 가길 바랐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살이에 위로 언니 셋이 포기했던 대학에 혼자 가기는 미안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국군체육부대. 1990년 11월, 제주도 소녀 미자는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다.
군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실업팀보다 대회에 나갈 기회도 많았다. 실업팀 소속은 국가대표가 돼야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지만, 국군체육부대는 세계 군인 올림픽 대회 등 외국 원정 경기가 많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군인’이기보다는 ‘사격선수’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전역을 1년여 앞둔 1995년 12월, 야전부대 전출을 자원해 6사단 신병교육대 사격 교관으로 부임했다. 야전에서 신병을 교육했던 이때의 경험은 특별했다. ‘사격선수’보다 ‘군인’의 길을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차례 연장 복무연한이 끝나 전역을 해야만 했을 때, 경북산업대 학생 겸 코치로 옮겨 갈 수 있는 자리가 났다. 헌데 뜻하지 않은 제의가 들어왔다. ‘신교대 사격교관 한미자’를 유심히 지켜본 사단장이 장기 복무의 기회를 준 것. 그는 다시 갈림길에 섰다.
“엄마 소원대로 이미 대학교 등록금도 납부한 상태에서 사단장님이 장기복무를 제안하시니 갈등이 생겼죠. 사격 코치로 가느냐, 군에 남느냐…. 고민하는 제게 엄마는 ‘네 뜻대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흔쾌히 말씀 하시더군요. 딸이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이미 알고 계셨던 거죠.”
제주도 해녀였던 어머니는 늘 그를 일으켜 세우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변변한 자기 총도 없이 총 한 자루로 3명이 쏘는 시합에서 그만 후배들이 탄착을 잘못 해놓는 바람에 3위 밖에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서러워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던 그를 위해 경기용 독일제 총(당시 150만원)을 사주신 어머니다. 20년 전 일이니 지금 가치로 따지면 1000만원이 넘는다. 3년 동안 메주콩을 팔아서 모아 놓았던 돈을 딸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던 어머니는 그에게 등대와도 같은 분이다. 해서 한미자 상사는 “군인으로 사는 날까지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병사들의 마음 문을 열다
2003년 상사로 진급한 후 일선 부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수개월 동안 소대장이 없이 분대장 중심으로 생활했던 탓인지 ‘여군 소대장’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일이 많았다. 병사들의 마음 문을 열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무릎을 탁, 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소대원 전체 부모님께 자필로 편지를 썼어요. 귀한 아드님을 건강하게 부모님 품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아무개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 도와달라고요. 전화번호를 남겼는데 일주일 내로 전 소대원의 부모님이 전화를 해주시더군요. 어린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씀해 주신 덕분에 병사들과의 대화에 막힘이 없게 되었어요. 부모님과 소대장이 하나가 되는 걸로 병사들의 마음을 공략 했던 것이 성공한 거죠. 제가 소대장을 하는 3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답니다.”
그는 안다. 병사가 있기에 간부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혹한기 훈련을 나가서도 그 춥다는 106미리 무반동총 차량에 올라탄다. 19년 군 생활을 하면서 “항상 병사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한 상사를 걱정하는 제주의 어머니처럼, 아들을 군에 보내고 노심초사하는 병사들의 어머니 마음도 그러할 것을 알기에.


같은 길을 가는 남편, 삶의 청량제 두 아이
한미자 상사의 남편은 직업군인이다. 계급은 상사. 6사단 신교대 교관 시절, 만난 지 두 달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해, 슬하에 초등학교 6학년(아들), 3학년(딸) 두 아이를 뒀다.
지금이야 살림과 아이들 돌보기를 공평하게 나눠서 하지만 결혼 초기에는 확실하게 ‘각’ 잡힌 ‘깐깐한’ 아내 때문에 남편이 어지간히 맘고생을 했을 거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시부모님이 키워주신 덕분에 두 아이는 예의 바르게 컸어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어쩜 인사성이 그리 밝으냐’며 칭찬을 하실 정도죠.(웃음) 특별히 제가 교육하는 건 없어요. 아이들이 책 읽을 때, 숙제를 할 때는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죠. 설거지를 하거나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전날 당직근무를 서서 몸이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두 아이가 잠들 때까지는 기다립니다. 그게 제 교육법이에요.”


여군이 아닌 군인으로 사는 법
아직 우리 군에서 여성은 소수다. 훈련을 나가면 여군이 자는 천막은 병사 2명이 지키고 있어야 한다. 화장실도 따로 구분해 놓아야 한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와는 달리 신경 쓸 일이 늘어나니 지휘관들도 여군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미자 상사는 군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강원도에서의 혹한기 훈련에 다녀왔어요. 영하 18도에서 보름 동안 생활해야 하는 거라 만만치 않은 일이었죠. 대대장님이 여군이 아닌 군인으로, 너는 믿을 수 있는 부하다, 라는 믿음을 준 것이기에 더욱 감사하죠.”
대한민국 군인 아줌마로 산다는 것,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 인생의 절반을 부사관으로 군에서 보냈는데, 앞으로도 장교와 병사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요. 전역 하는 그 날까지 우리 부대에서는 단 한건의 사고도 없게 하는 것, 제 목표입니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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