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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세계 만화로 담아낸 만화가 오일룡

지역내일 2009-10-23
한국 만화역사 100년. 우리나라에 처음 만화가 소개된 지도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의 PC방만큼 많았던 것이 만화책 대여방이었다. 동네 어귀, 지하로 쑥 들어가 있던 만화방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비오는 날 뜨뜻한 아랫목에서 만화책 한 질 쌓아두고 야금야금 읽는 재미’가 학생들의 휴식이자 어른들의 휴가였던 시절이었다.
요즘 텔레비전의 스포츠 채널을 대신했던 ‘스포츠 만화’는 소년과 성인 남성들에게 경기장에 와 있는 듯한 박진감을 안겨주었다.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인 존재로는 중견 만화가인 오일룡씨가 있다. 소위 ‘만화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두루 거치고 4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온 오일룡씨는 한국 만화의 흐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생의 3분의 2를 바쳤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혼자서 터득한 그림 실력, 미국 출판사에 인정받기도
1949년 평양에서 태어난 오일룡씨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충남 대전으로 피란 내려 왔다. 그 때 집에 남았던 3살 터울의 형은 아직도 평양에서 살고 있고,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만났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장남이 되어버린 오화백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접하기 시작한 만화책은 어느새 그의 습작용 교과서가 되어 버렸고, 부모님의 반대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미술 데생, 만화기법을 터득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미국의 유명 출판사로 보낸다.
“그 때가 미국 만화책이 얇게 나오던 때였는데, 전 세계에 파견된 미군들이 한번 보고서 버리고 하는 바람에 만화시장이 굉장히 호황을 누리던 때였어요. 만화가가 많이 필요했던 때였죠. 저는 두 군데 출판사에 그림을 보내고서 모두 초청을 받았습니다. <스파이더맨>, <엑스맨>을 출판한 ‘마벨 코믹스 클럽’과 <슈퍼맨>, <배트맨>을 그린 ‘내츄럴 코믹스 클럽’입니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을 뿐, 영어도 못하는데 미국 가서 어떻게 만화가를 할까 싶어 포기했지요. 사람은 다 운명에 따라 살게 돼 있는 거죠, 뭐.”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 존재
1968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박광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시작한 그는 <방랑기사>로 정식 만화가가 된다. 원래 오일룡 선생의 본명은 ‘오일룡’이 아닌 ‘오선일’이다. 성공하기까지 다양한 분야, 즉 SF, 역사, 순정, 스포츠 만화 등을 시도했고 그 때마다 필명을 바꾸었다. 만화 독자들은 ‘만화가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작품이 실패하면 다른 필명을 만들어 다시 도전했다.
초기 그의 그림체는 미국 만화풍으로 실제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림 솜씨는 훌륭했지만, 주인공이 뚜렷한 특색이 없어 다른 인물에 묻히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인기도 항상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83년 한국청소년대표팀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뤘던 일이었다. 지금만큼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이 쏟아진 이 경기는 그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았다. 오 화백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축구장의 감동을 지면에 그대로 담아내는 ‘축구만화’를 그렸다. <춤추는 쎈타포드="">, <그라운드의 반항아="">, <슈퍼골잡이>, <그라운드의 미친="" 들소="">, <월드컵의 축구황제="">, <축구황제>, <수퍼 스트라이커="">, <레드사커> 등 실제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축구경기가 수없이 많은 스토리와 함께 탄생했다. 일산 백석동에 ‘오일룡 프로덕션’이 꾸려지고 98명이나 되는 문하생이 모여 만화를 대량생산해내던 시절이 이 때였다. 이 시기 오 화백의 그림은 훨씬 단순해지고 코믹해진다. 특히 주인공의 코가 뾰족해지면서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되어 독자들이 책장 넘기는 스피드가 빨라졌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과 만화 대본소 등에서 꾸준히 읽혀지는 ‘오일룡 만화’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축구 마니아의 꿈은 이뤄진다
“데뷔하고 15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컷이 많으면 품이 많이 드는데, 제 작품의 특징이 인물과 배경을 실제처럼 세밀하게 그리면서 컷을 많이 집어넣는 거였어요. 열심히 하니깐 중간정도의 인기는 유지했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죠. 그런데, 축구 만화를 그리면서 바로 반응이 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한번 감을 잡고 나서는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는 쉽게 떠올랐어요. 그 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일룡 화백은 축구 마니아다. 십여 년 전 자신이 만화 속에서 꿈꾸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대가 요즈음이다. 세계적인 축구 구단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고 있고,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시절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은 바뀌었다. 대량 생산하여 대본소에 공급하던 체제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다. 기회가 줄수록, 그가 다시 ‘축구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진다. 그의 말처럼, ‘만화가는 타고 나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는 그라운드를 다시 그릴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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