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35

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수석 큐레이터 김언정 차장

큐레이터, 고귀한 예술 정신을 위해 뛰다

지역내일 2009-11-20 (수정 2009-11-20 오후 3:39:13)
하루 세 끼. 주부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하루쯤 미루고 싶은 숙제이기도 한 식사를 굳이 ‘의미’까지 생각해 본 적은 솔직히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도심 곳곳에 붙은 ‘식사의 의미’ 전시 포스터는 ‘뭐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람미술관을 찾은 날, 전시된 작품을 찬찬히 보면서 오래 묵은 기억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말라붙어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큐레이터는 고귀한 예술적 취향과 심미안을 가졌을 테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에스프레소 따코스따젤라띠또꽈르띠떼’ 아니면 입도 대지 않으리라.

아줌마가 일하려면 하늘이 도와야 한다?!
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의 수석 큐레이터 김언정 차장(39)은 미술관 입구의 계단을 가뿐히 뛰어넘어왔다. 바바리코트 자락이 포르르 날리게 뛰어온 그는 숨을 몰아쉬며 크고 시원한 미소를 날렸다. 상상 속 큐레이터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에 많이 털털한 목소리다.
“아줌마 얘기가 재밌을 것 같아요. 전시, 일 얘기는 매일 하는 거고.”
의외였다. 세련되고 고고한(혹은 할 것 같은) 큐레이터의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자신을 ‘아줌마’라고 말하는 그가. 그런 솔직함에 급속도로 호감이 가기 시작한다.
“둘째가 지금 17개월이에요.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구요. 터울이 좀 있죠? 첫째 낳고 나서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때도 일하고 있었는데, 육아와 일을 조화롭게 하지 못했어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지요. 그 때는 어렸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지금 아들이 둘이라 정신은 없는데 세상이 참 공평한 것 같아요. 예전보다 지금은 마음이 넓어졌어요. 그래서 둘째가 성격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가 워킹맘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 땅에서 아줌마가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것. 많은 부분을 사회가 돕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경우, 육아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았고, 김치와 밑반찬은 시어머님이 공급해줬으며, 그의 일을 존중하고 가사일을 도와 준 남편이 항상 함께했다. 이를 두고 ‘하늘이 도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어려운 작업도 즐겁게 몰두했던 나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프로페셔널 한 여성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석 큐레이터, 생활과 밀착한 기획을 중시하다
큐레이터는 소위 ‘뜨는 직업’에 속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이를 홍보하는 전문직으로 대중의 문화적 욕구와 소비가 늘수록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직접 일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문화라는 것이 먹고 사는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서 고고해 보이고, 가진 자들의 여유처럼 보이기도 하죠. 사실 그런 부분이 있어요. 생계와 관련되지 않은 고민들에 몰입해 볼 수 있는 것, 큐레이터들의 특권이에요. 하지만 정말 기획의 맛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갔을 때, 생활과 깊이 공감을 가질 때 나오는 것 같아요.”
‘생활에 밀착한 기획’을 강조하는 김언정 차장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로 석사논문을 썼다. 현재 박사논문은 팝아트에 관해 쓰고 있다. 대학원 시절부터 미술평론, 큐레이터에 관심이 많아서 첫 직장도 가나아트갤러리의 계간잡지 <가나아트> 수습 기자로 출발했다. 그 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전시기획과 교육분야 경험을 쌓았고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고양문화재단의 큐레이터로 6년째 일하고 있다.
요즘 미술 작가들은 벽에 작품만 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을 통째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설치작업을 할 때, 그 기본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도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다. 이번 <식사의 의미="">전에서는 ‘다국적 자본과 대량 소비의 문제’를 다룬 김기라 작가의 설치작품을 위해 김언정 차장과 스텝들이 온 시장을 이 잡듯 뒤져서 재료를 구했고 밤 새 작업을 진행했다. 그 뿐 아니다. 작품 이해를 돕는 도록을 만들고, 언론 매체와 지역에 홍보를 하는 것도 큐레이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이 세밀하게 깔려야 비로소 관람객들은 순도 높은 감동을 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큐레이터가 폼나고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쉽게 일하는 직업이 아닌 것이다.

편견을 깨뜨리고 싶다
종종 이해가 불가능한 ‘현대 미술’을 두고 ‘철학’에 비유한다. 김언정 차장은 이렇게 너무 어렵고 개념적인 작품이 아닌 퀄리티(quality)가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전달성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혹자는 너무 쉽게 푸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게 저희 미술관에 맞다고 생각해요. 미술사 지식 자랑하듯이, 굉장히 개념적이고 난해한 작품들을 우아하게 전시했다면 저는 만족스러울지 모르나 보시는 분들은 만족하지 못할 거라는 거죠. 아무도 즐거워하지도 않는, 소통되지 않는 미술을 전시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러한 생각은 그가 그동안 기획한 전시회에서도 드러난다. <오늘로 걸어나온="" 겸재="">, <만남>, <행복한 상상="" 프로젝트="">, <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리고 <식사의 의미="">전 등. 내년에 전시할 <왕릉의 전설="">(가칭)도 고양시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해서, 역사적 재미를 느끼는 동시에 아트까지 접근할 수 있는 전시회다.
“지역적인 소재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기획을 많이 만들어서 ‘지역적인 것이 지협적이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고양문화재단 수석 큐레이터의 당찬 계획이다. 그리고 말한다. 불경기에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이 많이 줄고 있지만, ‘가장 고귀한 예술 정신’을 만드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좋아서 일하는 사람은 말릴 수 없다. 일과 가정에서 단단히 무게중심을 잡은 김언정 큐레이터가 다음에는 어떤 전시를 기획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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