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과업계 전설이 된 천재 셰프 이야기

강남사람들_ 정홍연 셰프

지역내일 2010-03-16 (수정 2010-03-16 오전 11:20:58)


정홍연 셰프의 홈베이킹 강습 시간에 맞춰 찾아간 서래마을에는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겨우내 웅크렸던 동물들이 새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듯 서래마을 역시 새 단장이 한창이었다. 타고난 감각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일본 제과업계를 평정한 후 ‘전설 같은 존재’가 된 그가 바로 이 서래마을에 둥지를 튼 것이다. 이렇다 할 광고 한 번 없었지만 그가 만든 제과 맛에 반한 이들의 발길이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끊이질 않는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많은 연락을 받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함인지 초등학생도 다 갖고 있는 그 흔한 휴대폰도 없다. 그러니 그를 만나려면 가게로 연락할 수밖에. 상황이 이러니 자료라도 받기 위해 이메일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사람들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그를 만나려 애쓰고 그를 무척이나 아낀다. 또 혹자는 그를 가리켜 ‘천재’ 혹은 ‘예술가’라고도 말한다. 


먹는 것이 좋아 시작한 일
어떻게 셰프의 길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먹는 것이 좋아 시작했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외국인에 대한, 특히 한국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심했던 일본 땅에서 ‘구름위의 사람’으로 불리는 제과장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일본어가 서툴러 조금이라도 머뭇대거나 실수를 하면 말도 안 통하는 바보라고 무시를 당하며 바닥청소부터 시작한 그가 일본 리가로열호텔에서 총지배인이자 제과장을 지낸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이국땅에서 외국인으로서 받아야 했던 무시와 따돌림을 혹시나 가족들이 알까 싶어 내색 한번 못했다는 그는 가정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만든 원천이자 디딤돌이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알 순 없었지만 노력만이 해법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래, 일본인보다 딱 두 배만 일하자’고 생각한 그는 모두 퇴근한 밤이면 몰래 문을 열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쉴 새 없이 작업을 하다 피곤에 지쳐 졸음이 몰려오면 그냥 주방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을 잤던 밤이 셀 수도 없었다고. 찬 바닥에서 잠들면 입이 돌아간다는데 혹시 알고 있었냐고 묻자 그는 한국에 와서야 구완와사(안면신경 마비)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땐 몰랐지요. 알았다고 해도 다른 선택은 없었을 거예요”


바닥청소에서 제과장까지, 전설이 되다
제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내온 시간이 쌓이다 보니 우직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그의 한결같은 모습은 차갑고 배타적인 일본인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항상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그에게 찾아온 기회를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었다.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에게만 오니까.

그는 지난 2001년 재팬케이크쇼 초콜릿 대형공예부분에서 연합회 회장상 1위에 올랐다. 그 후 2003년에는 쿠프뒤몽드(세계제과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을 했으며 연이어 일본 ‘TV 챔피언’ 크리스마스 케이크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제빵제과 전일본대회는 일본 전역에 생중계 될 만큼 인기가 높고 권위가 있어 그가 우승을 차지하자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팬클럽이 생길 만큼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리가로열호텔은 우리나라 호텔들이 매년 연수를 가는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호텔 안에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상가를 만들기도 했으며 로비에서 카페와 라운지 운영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런 리가로열호텔의 제과장은 제과를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다시 말해 관리자의 능력이 필요했기에 일본인들에게도 다가서기 힘든 ‘꿈의 자리’였다. 그가 제과장과 총지배인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한국인은 물론 그 어떤 외국인도 제과장과 총지배인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본 사례가 없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둥지를 틀다
독수리는 60년을 산다고 한다. 처음 태어나서 30년은 그냥 살아가지만 나머지 30년을 살기위해서는 자신의 부리와 깃털을 모두 뜯어내고 새로운 부리와 깃털로 환골탈태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제 2의 인생을 설계했다. 그는 조직이 점차 비대해져가자 어느 순간 처음 제과를 배울 때 가졌던 도전정신과 열정이 사그라짐을 느꼈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는 세계 최강의 팀이라는 자긍심이 가져온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일본에서의 위치가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가슴속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지난 2007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래마을에서 홈베이킹 수업과 함께 문을 연 카페 ‘레꼴두스’가 입소문이 나면서 로드숍 쪽으로도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던 그는 마카롱을 비롯해 까늘레, 보르드레즈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때문에 레꼴두스에는 한 달 전에 맛봤던 메뉴라 하더라도 다시 찾아갔을 때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살짝 접어두자. 그 대신 더욱 맛좋은 메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레꼴두스는 계절에 따라 레서피가 달라진다. 그는 똑같은 제과라도 계절에 따라 기온과 습도가 다르기에 언제나 최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과에도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래마을에서 바르게 살기협회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레꼴두스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와 후원에 사용한다. 돈보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그의 삶이 한국에서도 전설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


박수진 리포터 icoco19@paran.com
사진 박경섭(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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