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음치 일본인, 그리고 부동산 거품

지역내일 2010-02-26
얼마 전 오마에 겐이치의 <지식의 쇠퇴="">를 읽었다. 그가 이 책에서 제기한 화두는 현대인들의‘지식쇠퇴’다.‘우물 안 개구리’같은 좁은 시야 때문에 현대인들에게‘사고의 정지’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인을 경제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경제음치’라고 혹평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는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의 대가다. 그런데 어째서 경제대국 일본인을 경제음치로까지 깎아 내린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본의 기형적인 금융구조다. 현재 금융기관에 맡겨진 일본인의 총 개인자산 1500억엔 중 1/3이 넘는 돈이 예금이다. 하지만 일본은 현재‘제로금리’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고작 0.1% 안팎이다. 금융기관에 아무리 예금해 봐야 거의 이자 한푼 안 붙는다는 얘기다. 아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야말로‘앉아서 까먹는’ 셈이다. 일본정부는 지난 90년대 시작된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제로금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제로금리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여 경기회복을 도모하는 한편 개인들 에게는 원금과 확정수익 위주의 안전한 자금운영에서 벗어나‘투자’를 촉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정부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금리가 바닥인 상황에서도 일본인의 예금선호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인은 여전히 은행이나 우체국 예금 등에만 돈을 집어 넣고 있다. 금리를 흔히‘경제생활의 신호등’이라고 한다. 금리가 저축•투자 등 모든 경제활동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금리를 신호등 삼아 돈의 흐름을 예측하고 그에 알맞게 대처하는 것이 경제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제로금리라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도 안전한 예금만을 고집할 뿐 저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겨울이 돌아 왔는데도 철 지난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인이다. 이것이 바로 오마에 겐이치가 일본인을 경제적 사고를 멈춘 경제음치라 혹평한 이유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게 경제성을 따진다고 해서‘경제동물’이라고까지 불리는 일본인이 왜 경제음치가 된 것일까? 그것은 80년대‘부동산 버블’ 이후 일본인의 심리적 위축과 공포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80년대 중반 일본인은 빚을 내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경제는 이후 10년 동안 장기침체에 시달렸다. 소위‘잃어버린 10년’이다. 빚 잔치를 벌여 사들인 부동산은 구입과 동시에 감가상각이 되고 가격이 떨어졌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부채까지 같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결국 부동산투자는 일본인에게 평생 짊어져야 할 부채를 안겨주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일본인은 부동산 버블의 후유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버블붕괴의 고통을 뼈아프게 경험한 일본인은 이제‘위험(Risk)’을 떠안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바로 제로금리 시대에도 일본인들이 예금에만 집착하는‘속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가격이 치솟으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일본식의 부동산 버블 붕괴가 이미 시작되었다는‘비관론’을 펼치기도 한다. 특히 급증하고 있는‘가계부채’가 비관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2009년 9월말 현재 7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중 주택관련대출의 비중이 50.8%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면서 감당하기도 어려운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물론 저금리 시대에 당장 눈앞에서 아파트 값이 치솟다 보니 빚을 끌어서라도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정경제 의‘시한 폭탄’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금리인상이 시한폭탄의‘도화선’이 될 것이다.
이렇게 빚 덩이가 숨통을 조여오는 데 웬일인지 모두들 천하태평이다. 하나같이 빚을 두려워하지 않는‘부채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부동산 빚’에 초연한 사람들의 마음 속 심연에는 소위‘부동산 불패신화 (不敗神話)’가 자리잡고 있다. 아파트를 사놓으면 무조건 돈이 되었던 달콤한‘성공의 추억’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의 향배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비관론자들의 주장처럼 부동산 거품이 하루아침에 꺼질 수도 있고 낙관론자들의 기대처럼 앞으로도 계속 오를 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투자의 제 1원칙은 ‘수익률’보다는‘위험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빚 낸 돈으로 투자해서 부자가 되기란 정말 성경의 말씀처럼‘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더 힘들다. 빚으로 하는 투자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는 일이다. 빚더미 위에 지어진‘두바이의 마천루’들도 한 때는‘사막의 기적’이라고 불렸지만 결국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하는 투자는 인생을 건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동산처럼 목돈이 들어가는 투자는 더더욱 위험하다. 가계부채로 지탱되고 있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모래성 위에 지은 집’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폭증하는 가계부채는 부동산시장이 거품으로 치닫고 있다는‘전조’일수 있다. 일본도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던 부동산 광풍 때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했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인들처럼 부동산 거품은 우리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지 모른다. 부동산이 끝없이 오르리라 믿고 대출을 받았다가 결국‘경제음치’가 되어버린 일본인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일본인들의 잃어버린 10년을‘반면 교사(反面敎師)’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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