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학생 사이에 낀 의사의 고민

지역내일 2010-03-23

내가 어릴 때는 웬만큼 부유한 가정이어도 자기 방을 갖기가 힘들었다. 형제도 많고 집도 그리 크지 않아서였다. 고등학교쯤 가면 자기 방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때부터 비밀스런 사생활이 가능한 셈이었다. 그렇지만 자기 방이라 해도 혼자 쓰기보다는 형제가 같이 사용하는 수가 많았고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자녀의 생활을 훤히 알 수 있었으며 그리 은밀한 사생활이 있을 수 없는 것이 핸드폰도 없고 이메일도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린 어릴 때부터 부모 특히 엄마와 비밀이 거의 없이 고교시절까지 보냈다. 대개는 엄마가 직장이 없이 늘 집에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엄마와는 비밀이 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대학을 가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지만 고등학교 시절만큼은 거의 그랬다. 

요즘은 시절이 빨리 변하고 IT분야의 발달로 개인적인 통신기기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는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도록 했으며 직업도 다양해지고 진로 선택도 예전과 달리 생각지 못한 분야를 원하기도 한다. 이는 부모와 사고방식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고 보수적인 부모라면 벽에 부딪쳐 대화단절과 개인적인 불행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얼마 전 필자를 찾아온 J는 강남의 모범생이다. 적어도 부모 눈에는 그렇게 여겨졌으나 고3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었다. J는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심한 분노와 함께 엄마에게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심각할 정도로 머리가 빠지고 2개월 동안 약 9킬로그램이 증가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였다. 체중 증가의 주원인은 비정상적인 식욕으로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빵을, 특히나 단맛이 강한 크림빵을 주로 먹었다.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J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었으며 이미 슬럼프도 3개월 이상 지속됐다고 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잠이 많고 분노와 함께 피로가 누적된 듯한 증상을 보였다 비정상적인 식욕은 비만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은 다시 외모의 손상으로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6주간의 투약과 괄사요법을 병행한 결과 명랑해지고 말도 많아졌으며 식욕이 정상으로 돌아와 체중증가도 없으며 조금씩 줄어드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8킬로그램의 체중이 남아있어서 J를 애타게 했다. 

부모 눈에는 고3 수험생이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여겨졌으며 많은 시간을 싸이월드에서 보내고 채팅을 하는 것도 이상한데 감히 부모를 원망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또 대화에 일관성이 없으며 한 번 한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해서 힘들어했다. 진료예약을 해 놓고도 한 번도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상담결과 J는 장차 연예인이 되고 싶어 부모님 모르게 연예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딸을 두고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만 여겼고 정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생각만을 정상이라 여기며 딸은 소위 말하는 권리만 알고 책임은 모르는 버릇없는 십대의 전형으로 믿고 있었다. 

J는 지금은 우울증도 없고 비만도 심하지 않다. 또 현실과 생각을 혼동하지도 않고 비정상적인 식욕도 없다. 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단히 보수적인 부모가 보기엔 아직도 딸이 정상이 아니다. J의 부모들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루한 사람들이라 그들에겐 시간이란 쪼개고 쪼개어 사용해야 하는 금쪽같은 것이다. 그래서 딸의 생활이 나태하게 여겨지고 정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J가 연예인으로 꼭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여러 가지 방황을 경험한 후 얻는 것이 많으리라 믿는다. 사람이란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을 겪으며 알게 된 것을 가장 완전하게 자기 것으로 갖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얻고 난 후에 몰라보게 성숙한 성인이 될 것이다. 딸이 고통과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이 물론 안타까울 수 있지만 부모에게 지켜봐 주라고 이야기 했다. 이미 그것을 경험해보기로 결정한 이상 막을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안타까움에 만류하고 싶은 감정과 ‘꼭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정상이어서 치료보다는 체력보강이나 대화와 위로 등을 필요로 한다. 비정상은 물론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J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아니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기는 하다.


김은기 원장
<한의사 엄마의 공부체질 이야기>저자
문의 (02)535-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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