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사람들 - 복지시설 디자인 자문으로 재능 나누는 전미자 교수

각 분야 재능 가진 이들과 함께 나눔 실천하고파

지역내일 2010-04-06 (수정 2010-04-06 오후 2:11:13)



1999년 1월 강원도 영월에 고(古)건축물 답사를 갔던 전미자(48, 서초구 반포동) 건국대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는 우연히 치매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둘러보게 된다. 창문도 없이 어둡고 차가운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노인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아프다 못해 충격을 받았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늘 새롭고 좋은 건물들을 보기위해 국내외를 돌아다니던 그녀였다. 그동안 그렇게 열악한 디자인 사각지대는 볼 수도 없었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전 교수의 머릿속은 온통 “내 힘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디자인 나눔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그 해 전 교수는 본격적인 봉사를 위해 ‘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복지시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몇 년간 전국의 시설을 찾아다니며 “벽지를 고를 때만이라도 나를 불러 달라”고 설득해야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2005년 처음으로 파주 노인복지관 신축에 참여하면서 전 교수의 진정성이 입소문을 타게 됐다. 전 교수의 컨설팅으로 통풍과 채광, 안전성 등을 고려한 건물이 완공되자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비록 파주 노인복지관의 경우 공사가 많이 진행된 시점에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단계 자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기저기서 전 교수를 찾기 시작했다. 당장 리모델링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부르는 곳도 많았지만 전 교수는 시설 이용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떠올라 그야말로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지금까지 전국 60여 곳의 복지시설에 인테리어 자문을 해왔다.
사회복지 관련 용어까지 외워 가며 디자인 자문을 해주던 전 교수는 제대로 알아야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공부까지 했다. 하지만 마치 신들린 듯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서 나눔을 실천하는 그녀를 보면서 가족이나 지인들은 “국가 차원에서 해야 될 일을 왜 개인이 하느냐”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기도 했다. 그래도 전 교수는 “복지시설 디자인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구체화되면 그 때는 다른 이들도 이 일을 많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라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장애인이든 치매노인이든 모든 사람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아무 것도 못 느낄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들도 색이나 조명, 예쁜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어 내부 환경을 통해서라도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 전 교수가 작은 체구로 쉴 새도 없이 12년째 이 일을 계속해오고 있는 이유다. 전 교수의 아름다운 나눔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실제로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두 명이 현재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전 교수는 팔순 노모를 모시면서 집안일에다 강의, 디자인 자문, 봉사활동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도 공을 들인다. “내가 몸으로 뛰어야 그만큼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 기억했다가 필요한 곳에 연계해 도움을 주는 것이 내 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면서 전 교수는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여긴다. 만약 영리를 목적으로 이 일을 했다면 과연 누가 자신을 찾아주고 가는 곳마다 한 식구처럼 반겨 줄 것인지를 생각하면 스스로도 기쁘기만 하다.
2년 전, 여성쉼터와 장애인시설에 나눠줄 물건을 양손 가득 사들고 오다가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장애인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겼었는데 막상 자신이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주변의 모든 것이 장애물이 될 수 있고, 작은 손잡이 하나라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전에는 공간에만 신경을 썼었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살펴주는 계기가 돼 오히려 감사했다고.
 






나눔의 기쁨은 누구라도 누릴 수 있어
처음 치매노인시설을 봤을 때 다른 이들은 모두 불쌍하게 여기고 말았지만 전 교수는 내내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최근 한 청소년감호시설 리모델링을 위해 시설을 방문한 후에도 며칠 동안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울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그곳에서나마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집보다 더 예쁘게 꾸며줄 참이다. 그 아이들 중 몇 명이라도 자신이 디자인해준 공간에 감동해 새 삶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늘 이런 마음이다 보니 이 일이 전 교수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전 교수는 복지디자인은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곳에 ‘내 부모나 내 아이가 있다면, 내 아이가 뇌성마비라면’, 바로 그런 마음으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대학원 강의를 할 때도 “장애인이나 노인 분들이 돈을 들고 오는 고객이라면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겠는가. 특히 복지시설 디자인을 할 때는 그런 마음을 갖고 철저하게 이용자 중심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전 교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봉사하는 ‘서초구 저명인사 자원봉사단’ 총무를 맡아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서초구청 1층 ‘조이플라자’를 비롯해 서초구 노인복지관, 보건소, 치매지원센터 등에도 전 교수의 손길이 미쳤다. 디자이너가 개입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봉사자가 1년에 한 번씩 그림을 기부하면 시트지에 인쇄해 벽면을 장식하는 식으로 경제적인 디자인을 해주고 있다. 현재 장애여성쉼터, 이주여성쉼터, 여성가족폭력쉼터, 지역아동센터 등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컨설팅을 추진 중이다. 서울여성가족재단, 서울디자인재단과 함께 장애아동이나 여성들의 재능을 개발해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나눔이 익숙하지 않고 나누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분들이 많다. 각 분야에 재능을 가진 이들이 조금만 시간을 내 동참하면 큰일을 해낼 수 있다. 주부라면 가정폭력을 피해서 아이와 함께 빈 몸으로 도망쳐 나온 여성들을 위해 옷이나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 등을 모아주는 것도 큰 나눔이다.”
앞으로 복지 디자인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싶다는 전 교수. 배워서 함께 나눌 이들을 위해 사회복지와 관련된 디자인이나 환경 등의 교육이 총체적으로 가능한, 전문화된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