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사람들

“소리의 철학이요? 원칙을 지키면 좋은 소리가 나죠”

오희연 서도소리 이수자

지역내일 2010-04-20 (수정 2010-04-20 오후 4:36:44)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기능 보유자 오복녀 명창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이후 사람들은  ‘대동강 물을 먹어야 제대로 한다’는 서도소리의 명인이 사라졌다고 슬퍼했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후 세월은 무심히 흘렀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녀의 혼이 담신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가면서 소리를 통해 조용히 세상에 나눔을 실천해온 이가 우리 곁에 있었다. 




우연하게 시작한 소리, 인생이 되다
황해도 은율 출신의 그녀는 서도소리의 대가 오복녀 명창의 슬하에서 소리를 배웠다. 열아홉 나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서도소리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것이 어느덧 그녀의 30년 소리인생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서도소리를 배운 것은 결혼을 하고 첫 딸을 낳고 난 후부터였다.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아이 키우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자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시절, 가정을 지키면서 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리를 그만 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기에 항상 바쁘게 살았다는 그녀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 소리 연습을 하느라 하루 3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가족과 주위의 격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또한 자신의 소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좋아졌을 뿐이지 스스로 특별하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소리인생을 잘 걸어가야 뒤따라오는 후배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사명감만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오희연 국악연구소를 운영하는 오희연 선생은 “저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대단한 소리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라며 “다만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훗날 후배들의 이정표가 될 테니 소리 인생 끝나는 날까지 함부로 걷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를 이은 소리인생
지난 1991년 소리인생의 말없는 지지자이자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20여년이 흘렀지만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는 오희연 선생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국악학원을 시작했다. 학원을 하면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함께 화합하는 방법, 그리고 소리와 악기가 따로 또 같이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풍물도 배웠다. 

그렇게 우리 소리와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은 그녀의 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신은 소리가 좋아서 평생을 바쳤지만 무남독녀 외동딸에게는 다른 세상도 한번 살아보라며 국악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피는 못 속이는 법. 뒤늦게 한양대학교 국악과에서 정악을 전공한 딸은 가곡 가사 시조 등 정가소리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두각을 나타내면서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현재는 전문 국악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희연 선생은 “경은이(딸)만큼은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기를 바랐지만 제 스스로 원해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엄마이기 전에 선배로서 딱 한 가지만 당부했어요”라며 “목표를 명예나 돈에 두지 말고 욕심내서 바삐 가지 말라”고 부탁했단다. 









‘세상의 빛’이 된 소리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내가 갖은 뭔가를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오희연 선생은 큰 대회나 경연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나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함께 했다. 타고난 품성 때문일까?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부족하나마 자신이 갖고 있는 재주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

그녀는 제자들과 함께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돌며 소리로 재능을 나누는 ‘프로보노’를 몸소 실천해오고 있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은 물론이며 1년에 20회가 넘는 정기공연을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열어온 것이다.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더욱 많이 만나게 된 오희연 선생은 자선모금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지난 2000년 교육문화회관에서 ‘소리가 빛이 되어’라는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어 2004년 ‘소리 속 어울림’,  2007년 ‘소리가 벗이 되어’ 등 3년에 한 번씩 대형공연도 이뤄냈다. 한번 공연 때마다 2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냈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전액 기부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 반한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1천명 정원의 객석이 매진사례를 이뤘다.

큰 공연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사는 것이 더 즐겁다는 오희연 선생은  “제자들이 함께 해준 덕분으로 세상에 좋을 뜻을 펼치며 살아갈 기회를 얻은 것”이라며 모든 공로를 제자들에게 돌렸다.




박수진리포터 icoco1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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