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원장이 추천하는 책이야기 6. 아련한 성장통의 기억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지역내일 2010-07-27 (수정 2010-07-27 오후 7:06:57)

                                               
 오늘은 그야말로 책이야기다. 성장소설에 대해 쓰려고 이책 저책을 기웃거리다 10대 때 읽었던 데미안을 떠올렸다. 그래서 찾아낸 책이 지금 들고 있는 책이다.
 오래전에 활발하게 출간되던 문학 전집 중 한 권이다. 헤르만 헤세의 ‘향수’와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한권에 엮었다. 전집의 나머지는 야스나리 등 일본작가와 헤밍웨이, 세익스피어, 괴테, 세르반테스가 한 권씩을 차고 앉아있다. 우에서 좌로 내려읽는 2단 편집에 활자는 ?글에서 제일 작은 6포인트보다 작다. 그야말로 깨알보다 작고 그나마 활자는 바래고 깨져서 온전한 글자꼴도 아니다. 1970년 1월에 인쇄된 것이니 사람으로 치면 마흔이 넘은 이 책이 아직도 서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니. 장마철이라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빛바랜 책을 펼치니 누런 종이에서 알싸한 먼지 내음과 나무향이 피어오른다.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아들의 장래에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이 전집이 좋은지, 장광설로 아버님의 지갑을 여는데 성공한 그 외판원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또 청계천 헌책방들은 왜 생각이 나는 건지.
 전집 가운데 네 권의 책이 사라졌는데, 고교시절 어느 친구가 빌려가서는 돌려주기를 잊은 게 분명할 테다. 나도 빌려 읽고 돌려주지 않은 책이 꽤 되니 말이다. 빌린 책이 딱히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꼭 돌려받아야 될 만큼 애착을 지닌 책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빌려 준 친구나 빌려 간 친구 모두 잊게 된 거다. 그러나 나를 페미니스트로 이끈 여인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가져간 친구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 친구도 이미 오래 전 그 책을 잃어버렸고, 지금은 은행쟁이를 하고 있다. 이번 휴가에 책이나 한 권 선물해야겠다.
 
 ‘데미안’을 들추니 군데군데 밑줄 친 곳이 눈에 띈다. 
‘신이 우리를 고독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자신으로 끌어 들이는 길은 수없이 많다.’
‘이세상에 있는 어떠한 길도 자기 자신에게로 통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우리들이 돌연 천애의 고독과 죽음과 같은 차가움을 스스로 느낄 때 생애에 단 한번 우리들의 운명인 죽음과 신생(新生)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거야. 그는 자기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내가 왜 이 글귀에 밑줄을 그었는지 정확한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인용 문구를 놓고 추론해 볼 수는 있겠다. 당시 나는 고독했으며 죽음에 대해 고민했을 게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회의하였을 게다. 그리하여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는 나인가? 행동하는 나인가? 나는 하나인가 둘인가? 따위의 생각에 깊이 빠져있었음에 틀림없다. 부모의 잔소리는 물론, 자상한 말 한마디나 학교, 시험, 선생님 등 나를 둘러싼 모든 일상을 구속으로 느꼈을 게다. 나만의 세계에 홀로 있고 싶어 하면서도 나조차 나를 알 수 없다는 무력감과 외로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나를 구원해 줄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을 터이다.
 그렇다. ‘데미안’은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던 시기, 즉 알 속의 세상에서 알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춘들의 초상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과 십 몇 년 동안 살아온 틀에서 벗어난다는 두려움의 교차점에서 누구나 겪는 성장통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밑줄은 ‘데미안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 쯤은 들어본 유명한 문구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투쟁과 도전만이 알을 깨고 구원(새 세상)에 이르게 한다. 새 세상은 하나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으며 선과 악이 혼재하는 세계다. 알을 깨고 나와도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갈매기 조나단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도전을 두려워하지는 말자. ‘줄탁동시’란 말을 아는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몇 개의 껍질이나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때마다 깨고 나가면 그만이다. 실패했든 성공했든 10대의 모든 노력들은 우리를 규정하는 토대가 된다. 고뇌와 방황, 실수와 실패로 단련된 사람일수록 누구보다 단단해져서 알을 깨기도 훨씬 쉬운 법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투쟁하고 도전하라.  

※줄탁동시 :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


조동기국어논술 영통캠퍼스 031-273-2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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