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하나하나가 꼭 제 아이 같아요”보온성과 통기성이 뛰어나 천년을 이어간다는 우리의 전통 한지 닥종이.
예로부터 한옥의 문풍지로 사용돼올 만큼 우리와 친숙한 종이다. 그 한지를 이용해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따뜻하고 정감 어린 표정에 부드러운 곡선, 친숙한 우리 주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형. 그 인형들의 엄마이자 닥종이 공예가인 강명자(52ㆍ상현동)씨다.
15년에 걸쳐 탄생시킨 아이(인형)들이 이젠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그이. 손길 하나하나에 생명의 기운을 담아 인형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는 그이의 공예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섬세한 손길과 정성으로 기다림을 즐기는 예술
“초등학교 어머니 교실에서 맛보기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고 끌리는 거예요. 그 뒤로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2년을 공부하다보니 차츰 자신이 생겨 주민센터에 나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기 시작했어요.”
우연으로 시작한 취미가 그의 인생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강씨.
당시만 해도 생소한 공예에 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인형 하나하나 마치 아이를 잉태해 출산하는 것과 같은 보람과 희열을 안겨주었기 때문.
“마음을 온전히 집중해 손길을 더해 줄 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창조 되고, 마지막 작업인 머리카락을 만들 때는 밤을 꼬박 새울 만큼 집중하게 돼요. 그렇게 뭔가에 무아지경으로 빠질 수 있음이 저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죠.”
인형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정성, 기다림이 동반되어야 오롯한 인형을 탄생시킬 수 있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은 깊은 애착이 느껴진다고.
“아이가 자라면 새 옷을 입혀주듯 인형 옷이 낡아지면 새 옷을 만들어 주고 한지를 덧발라 세월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것도 닥종이 공예의 매력이에요.”우리네 이웃같이 정감 있는 닥종이 인형
닥종이 인형은 우리네 이웃과 많이 닮아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부터, 축구선수, 장년의 노부부까지 인형의 얼굴에서 희로애락과 시간의 흐름이, 인생이 녹아나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다양한 얼굴과 표정은 자료 수집을 해서 스크랩을 해둬요. 종이를 몇 번 덧대어 붙이느냐에 따라 굴곡이 살아나고 각가지 표정이 나타나니 내가 원하는 얼굴을 마음껏 표현 할 수 있죠.” 그렇게 얼굴의 명암이나 색조 등도 닥종이만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단다.
닥종이가 가진 무한매력을 알리려 강 씨는 현재 분당구 정자1동과 금곡1동, 야탑 3동의 주민 센터에서 열혈 제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이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불러주는 이들 중에는 일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 제자도 많다.
금곡동 주민 센터에서 닥종이 공예를 배우고 있는 이영희(74ㆍ구미동)씨도 그중 한 명.
“정년 퇴임하고 한국무용, 사물놀이 등 우리 것이 좋아져 배우다가 닥종이 공예를 알게 돼 배우고 있어요. 한지 고유의 멋과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닥종이 공예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이 시간이 너무나 즐겁죠.”
손주에게 줄 인형을 만들기 위해 닥종이를 매만지는 이 씨의 손길에는 즐거움이 배어있다.
“인형을 만들면 정서가 안정되고 손을 많이 움직여 집중을 해야 하니 연세가 드신 시니어 분들에게도 좋은 취미가 되고 있어요.”
우리 멋을 살리는 좋은 취미 활동
한편 그동안 강명자씨와 제자들은 ‘수미회’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지역에 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단다.
얼마 전에는 성남아트센터에서 전시를 했었고, 경기도 민속촌에서는 아예 전시관을 전담 운영했을 정도란다. 삼성 갤러리와 디자인 센터 등에서 열린 전시회 등을 통해 닥종이 공예의 멋스러움을 한껏 알릴 수 있었다고.
“얼마 전에는 닥종이로 녹원삼을 만들어 패션쇼를 하기도 했어요. 전통 한지로 만든 옷을 모델이 입고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내 준 놀라움과 찬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웃음”
서양의 웨딩드레스도 한지를 이용해 만들면 새로운 멋이 풍긴다는 강씨. 은은하면서도 고요한 우리한지의 멋스러움이 그대로 살아나는 까닭이다.
이쯤에서 인형 하나하나가 모두 자식 같다는 그이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물어보았다. 고심하던 그이가 사람들에게 유독 관심을 많이 받는 작품을 가리켰다.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노부부 인형이다. 쓸쓸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노부부의 얼굴이 우리네 인생을 닮았기 때문일까. 사람들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고.
“시대는 고령화 사회가 되는데 자꾸만 동적인 사회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워요. 젊은 사람들의 빠르고 동적인 문화도 좋지만 정적인 문화와도 조화를 이뤘으면 해요.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닥종이 인형은 그런 면에서 추천하기 좋은 활동이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시간을 즐기는 취미에 한 번 쯤 발길을 돌려보세요.”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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