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격,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엄마, 열공에 빠지다

지역내일 2010-12-17 (수정 2011-04-05 오후 4:59:20)
“로마는 사실 이탈리아 반도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나라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무장을 한 농민들이 큰 역할을 했지요. 갑옷이나 창, 방패 등과 영화에서 보이는 로마병사 특유의 대열들로 승전을 거듭합니다. 이를 통해 농민들이 귀족과 같은 권리를 갖게 되기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년 뒤에 농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공화정이 시작됩니다…”

천안시 한 기관에서 진행되는 역사논술 지도사 세계사 수업. 강사의 설명에 열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적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 시간의 수업 동안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수강생은 대략 40대 전후의 주부들. 수업에 참여한 한 주부는 “한국사 과정에 이어 세계사 과정까지 듣고 있다”며 “역사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아이와 대화가 풍부해져서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들이 열공에 빠졌다. 아이들에게만 강요하는 공부가 아니다. 엄마들이 책을 읽으며, 수업을 들으며 공부에 열중한다. 아이 학교 보낸 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잡담은 옛 이야기다. 바쁜 채비와 함께 엄마들은 공부하러 움직인다. 엄마들 사이에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다.

대학교마다 개설된 평생교육원에서도 변화는 엿볼 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취미, 예술 분야가 단연 인기였다. 그런데 점점 영어, 독서논술 등의 과정에 수강생이 몰린다. 학원에서도 오전 시간 엄마를 대상으로 다양한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 물론 그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왜 공부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걸까.

미래를 향하는 아이, 과거에 머무른 엄마

엄마들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어디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한 마찰은 상당하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아이는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따라온다 해도 그 과정은 상당히 벅차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의 관심은 더 이상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는 자신의 규칙과 리듬을 따라 가는데 엄마는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잔소리로 여기는 거지요.”

감돌역사교실 허진숙 원장은 이로 인해 아이와의 트러블로 힘들어하는 가정이 상당히 많음을 지적한다. 아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부모는 계속 과거에 머물러 아이를 대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학습 역시 마찬가지다. 교과과정이 어떻게 구성되고 학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교재가 어떤지를 엄마가 모르면 아이 교육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지금은 아이에게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공부할 것만 강요할 때가 아니다.

내가 알아야 아이를 가르치지요~

특히 입시 자체가 그 어떤 과목보다도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대입 임박해서가 아니라 미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발 빠르게 정보를 모아두지 않으면 길은 점점 험해지는 비포장도로다. 각종 설명회의 뜨거운 호응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미래의 길을 찾기 위한 엄마의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아이에게 무조건 공부할 것만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명하게 진로를 찾는 과정에 함께 하기 위함이다.

하이토크어학원 이명규 원장은 “영어가 중요해지면서 아이에게 영어공부를 많이 시키는데 정작 엄마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영어교육을 잘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래서 엄마들 스스로 자신이 알아야 아이 공부를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영어공부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램넌트 어학원 심대근 원장은 “학원마다 영어교육에 관해 제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제시하는데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내용을 선택하려면 엄마가 내용을 알아야 한다”면서 “길게 가야 할 아이 영어교육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라도 먼저 엄마가 공부를 하고 내용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강요하는 공부? 함께 하는 공부!

엄마들이 공부하면서 달라지는 점은 많다. 엄마들이 내용을 갖추고 아이에게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기본. 감돌역사교실에서 어머니 역사논술을 수강하는 박영숙(41?불당동)씨는 “아이들이 수시로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수업을 듣는 정지은(37?탕정면)씨는 “가까운 독립기념관이나 박물관에 갔을 때 선사시대부터 재밌게 풀어서 설명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달라지는 점은 또 있다. 바로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 그 자체가 아이에게 교육이라는 것, 그리고 엄마들이 직접 공부를 하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돌역사교실에서 어머니 역사논술과 한자를 수강하는 장윤미(38?신부동)씨는 “수업을 들으며 나 자신의 실력을 다질 수 있는 동시에 아이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감돌역사교실 허진숙 원장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엄마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엄마가 먼저 책을 잡고 공부에 열심인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본받게 되어 있다”며 “엄마가 공부를 하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는지 이해하는 계기도 마련된다”고 이야기한다.

공부를 하다 보니 새로운 길이 열리네

이를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 마련되기 때문.

천안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는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박물관활용지도자 과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 과정은 청당초등학교와 함께 한 과정으로 아이들과 직접 박물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과정을 들은 엄마들은 이후 심화과정으로 ‘역사체험학습지도가 과정’까지 마친 상태. 이들은 내년 청당초의 현장학습 등에서 활동하게 될 예정이다. 천안지역사회교육협의회 김경란 간사는 “부모자녀대화법, 학습지도, 진로지도 등의 강좌들이 마련되어 아이 진로에 도움을 받기 위한 분들이 수강한다”면서 “이들 과정은 이후 직업으로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감돌역사교실 허진숙 원장 역시 같은 의견. 허 원장은 “어머니역사논술교실을 들은 후 활동을 원하는 분이 있는데 아이 교육을 위해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충분히 직업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역사 교육은 아이의 세계관 형성에도 중요한 만큼 앞으로 더 넓어질 부분이다”라고 덧붙인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혹은 미래를 위해서 시작하는 공부. 하지만 시작이 무엇이었든 엄마에게 남는 것도 크다. 점점 자라 엄마의 품을 떠나는 아이, 바쁜 회사일로 얼굴 대하기 힘든 남편으로 인한 헛헛함을 공부로 채울 수 있기 때문. 허 원장은 “전업주부로 있다 보면 아무리 학력이 높아도 남편과 아이는 자꾸 커나가는데 나만 퇴보되고 위축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며 “운동, 봉사활동, 친구 모임 등도 좋겠지만 공부를 통해 자신의 내용을 쌓으며 헛헛함을 채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오히려 학창시절에는 그 말뜻을 깨닫지 못했다. 입시에 쫓겨 즐거움은 모른 체 공부했을 지도 모를 일. 어쩌면 이제야 제대로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아이의 미래를 함께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기에, 게다가 나 자신도 꽉 채울 수 있기에, 그 즐거움을 찾아 엄마들은 오늘도 책을 편다.

도움말 : 감돌역사논술 허진숙 원장. 하이토크어학원 이명규 원장. 천안시민사회협의회 김경란 간사. 램넌트어학원 심대근 원장.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무료 어머니 역사논술교실 진행하는 감돌역사교실 허진숙 원장

역사를 엄마가 가르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지요

“혼자 인터넷 찾고 책을 보면서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하면 한계에 부딪치고 힘들 때 쉽게 포기하게 되지요. 그래서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멘토를 만들고 교류하다 보면 공유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엄마들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요.”

공부에 빠진 엄마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강좌?있다. 감돌역사교실에서 진행하는 어머니역사논술교실. 수준 높은 내용을 무료로 들을 수 있어 더욱 인기다. 어머니역사논술교실을 처음 개설한 것은 지난해 7월. 그리고 지난 15일 제5기 교실 수료식을 마쳤다.

“역사는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이가 세계관을 형성하는데도 영향을 주지요. 그래서 엄마들이 내용을 쌓고 아이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기에는 13명이 수강했는데 16주 과정 동안 모두 열심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대로여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결석이 거의 없다. 엄마들의 반응은 입소문으로도 확인된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대기자로 인원이 다 찰 정도다. 교육에 대해 엄마들이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특히 개정된 교과서에 의하면 내년, 6학년에서 배웠던 역사가 5학년 과정으로 내려온다. 현 5학년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채 중학교에 가게 된다는 것. 이에 아이들에게 내용을 알게 하려는 엄마들의 욕구도 크다.

“내년에는 학부모교실도 운영하고 부모자녀대화법 등도 마련해 볼까 합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역사여행 프로그램도 만들 생각이고요.”

허진숙 원장은 “어머니역사교실은 지금까지 해온 일 중 가장 보람 있고 효과도 큰 일”이라며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엄마들을 통해 아이에게 역사를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고 그를 통해 사례와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 어머니역사논술교실은 계속 진행된다. 현재 감돌역사교실에서는 어머니를 위한 한자교실도 진행 중이다.

위치 및 문의 : 천안시 쌍용동 라이프 아파트 사거리. 041-573-7747

■ 엄마들에게 필요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

? 천안지역사회교육협의회 : 부모자녀대화법, 자녀의 학습 도와주기, 자녀의 진로지도 등(유료). 578-4448. http://cafe.daum.net/chbumosarang

? 하이토크어학원 : 어머니영어교실 운영(유료). 매주 월, 수, 금 진행. 556-0511

? 천안시여성인력개발센터 : 역사논술지도사(한국사, 세계사), 어린이한자지도자 등(유료). 576-3060~1. www.chwoman.or.kr

? 감돌역사교실 : 무료 어머니역사논술교실. 무료 어머니한자교실. 573-7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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