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 뻗친 머리에 아무렇게나 꽂은 하트 모양 핀, 작은 키에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자존심만 센 악바리 소녀 ‘하니’. 80년대 후반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니를 기억할 것이다.
하니는 우리 지역에서 나온 인물이다. 바로 하니를 탄생시킨 이진주 만화가(59세)가 살고 있는 동네인 강동구 성내동 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현재 인덕대학 만화/영상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를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하니가 다닌 빛나리 중학교 육상부 코치였던 홍두깨 선생의 머리 스타일로 나타난 그는 외모에서부터 영원한 하니 아빠임이 느껴졌다.
하니는 영원히 13살짜리 나의 딸
“달려라 하니는 85년 1월부터 월간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했던 작품이에요. 그 당시 공주, 왕자가 나오는 외국 작품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한국적인 인물과 성격을 가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온 캐릭터가 하니였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꿋꿋한 한국인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족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지요.”
하니의 원래 이름은 당돌하고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에 맞게 지은 포니였다. 하지만 그 당시 시판되던 포니 자동차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간접광고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순간적으로 바꾼 이름이 하니다. 또한 청소년용 순정만화로 기획돼 지금의 하니와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하니의 영원한 라이벌인 ‘나예리’와 흡사한 모습으로 달리기하는 16살짜리 청소년 이야기를 그리려하다 도중에 연령을 낮춰 그리게 됐다.
사실 하니가 성공하기 전까지 만화계에는 ‘육상은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이 작가는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에 비해 육상은 그리기 쉽지만 재미요소를 찾는 것이 여간 힘들다. 별다른 포지션도 없고 100m달리기 같은 경우 순식간에 끝나니 반전의 묘미도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달리기를 소재로 작품구상을 하기 위해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오롯이 담았다. 현재의 강동구청 뒤편 성내동 골목 일대와 성내중학교, 슈퍼 등을 배경으로 했고 등장인물들 또한 이웃들이다.
여러 번 실패 경험이 발판이 돼
이 작가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참 좋아했다. 만화책에 빠져 살면서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는 “만화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혼나던 시절이었으니 만화가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님 반응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혼자서 만화를 습작하다 문하생으로 들어가 이것이 아니면 죽는다는 절박함으로 만화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사실 성공한 캐릭터 하니가 나오기 전까지 실패도 여러 번 했었다. 만화가로서 이름 석 자 알리기 위해 로봇, 개그, 순정물 등 유행을 쫓아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돈이 되지 않으니 어려움도 많았다. 이 작가는 “같은 일을 한 부인이 없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내 친구 깨몽’을 쓴 이보배 만화가가 배우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부인은 문하생 시절에 만났어요. 문하생들은 데뷔할 곳이 없으니 서로 습작한 것을 보여주고 조언해주고 하는데 제가 군에 입대 하면서 정이 깊어졌죠. 3년간 주고받은 편지가 1천여 통이나 됩니다.”
이 작가의 만화는 주로 가족이야기로, 현실에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 어린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직접 아이를 기르며 경험한 것과 이웃 아이들의 이야기다.
만화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이 작가는 전임교수로 10년째 대학 강단에 서서 자신이 습득한 전문성을 전수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열정을 강조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든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겠지만 특히 창작활동에서는 더욱 중요해요. 만화 콘텐츠는 영화, 게임, 광고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발전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인들이 빠르고 쉬운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으니 앞으로 21세기는 만화문화가 선도한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출판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만화가로서 인터넷 만화가 대세인 현재의 상황이 사실 달갑지만은 않다. 대중들에게 ‘만화는 공짜다’는 인식을 심어줘서 만화라는 장르가 천덕꾸러기로 치부되는 것이 싫어서다. 그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아동용 만화가 어느 순간 학습만화가 주류가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명랑/순정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소재를 얻기 위해 지금도 가끔 스토리수첩을 갖고 초등학교 주변을 서성이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문화가 너무 과격해졌고 욕이 일상 언어의 반 이상일 만큼 심각한 수준이더군요. 애들이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런 현실을 작품에 반영해야 하는데 제 소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기회가 되면 하니처럼 밝고 건강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서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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