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풍신난 도시 농부’ 이근이 씨

지역내일 2011-04-18

나는 삶을 경작하는 농사꾼
 
 이근이 씨의 별명은 ‘명함 수집가’입니다. 1994년 창간한 대중문화평론잡지 ‘리뷰’의 편집장, 웹진 ‘컬티즌’의 대표, 웅진을 비롯한 출판사의 편집기획자, 인디음반 제작자, 문화 아카데미 ‘풀로 엮은 집’ 사무국장, 그 밖에도 그가 스쳐간 일터는 50군데가 넘는다고 합니다. 명함 수집가라고 부를 만하죠.
 또 생태순환농업을 지향하는 ‘풍신난 도시 농부’의 운영진이기도 합니다. ‘도시 속 농사짓기’를 보급하는 농사 공동체로 고양시 일대에 다섯 개의 공동체 농장과 주말농장 하나를 두고 이 있습니다. 공동체 농장을 모두 합하면 3천 5백평, 주말농장인 우보농장은 4천 5백평입니다. 멀고 큰 꿈보다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그는 평탄하게만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을 만나도 휩쓸리기 보다는 오히려 기류를 타고 노는 배짱 두둑한 사람입니다.
별명은 ‘어리석은 보배’
 ‘풍신난 도시 농부’에서 이근이 씨를 부르는 별명은 ‘우보’입니다. 그 별칭을 ‘우직한 걸음’으로 이해한 리포터는, 순박한 얼굴을 한 농부 아저씨를 떠올렸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벽제역 인근의 고양동 우보농장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첫눈에 제가 생각했던 그런 농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소리는 경쾌했고 행동은 재빨랐습니다.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우보라는 별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주역을 공부하는 지인이 ‘어리석은 보배’로 뜻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똑똑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심지어는 핸드폰까지도 똑똑해졌으니까요. 한겨울에 꽃이 피고 지진과 해일이 나는 지구의 엄청난 변화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리석은 것들’이 결국 세상을 지켜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근이 씨는 밥상에 오르는 식량을 스스로 짓고 싶어 합니다. ‘밥상자급’이라고 부르는 일입니다. 또 토종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과 나누어 심고 지키려고 애씁니다. 전통 농업 그대로 땅을 살리며 농사를 지으려고 합니다. 이를 ‘생태 순환 농업’이라고 부릅니다. 
농사를 지은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흙을 만지고 밟으며 달라진 점도 많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성격만큼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옳은 일이라 생각이 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앞으로만 쭉 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타고난 성정 같다고 합니다.
IT계열 회사 부도…나에게 힘 준 건 텃밭에서 만난 자연
 “1994년에 창간한 ‘리뷰’라는 대중문화평론 계간지에서 편집자로 일했어요. 리뷰는 내는 족족 적자였어요. IMF를 맞으면서 폐간할 뻔 한 것을 지인들하고 인수했어요. 인터넷 사업이 한창 붐을 이루던 2000년 즈음에 웹진으로 전환했어요. 투자를 받았지만 수익모델은 없고 여러 가지로 어려웠어요.”
일산에 살던 그는 회사와 가까운 과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마침 아내가 주말농장을 신청해 처음으로 농사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농장에 앉아 자연을 바라만 보고 있으면 편한 거예요. 회사가 문을 닫은 후, 도시에서 이렇게 힘겹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그때 귀농을 생각했어요.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강화도, 충청도,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정착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귀농의 뜻을 접고 다시 일산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다시 일을 했고 아내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근이 씨 부부는 2002년에 벽제동에 있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농장에 다섯 평의 텃밭을 얻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근이 씨는 직장 일을 하고 음반을 내고 공연 기획을 하며 주말에 밭에 들러 일을 했습니다. 그의 삶이 서서히 다른 바람을 타기 시작합니다.

농사 공동체의 맛을 보다
 “농사를 적극적으로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나 철학은 없었어요. 그냥 농사짓는 게 괜찮다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생태귀농학교 학생들을 만났어요.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농사를 배운 다음 귀농을 하거나 도시 속 귀농으로 농사지으려는 분들이었죠. 같이 원두막 짓고 친하게 지내던 중에 대자리 농장에 땅이 났다기에 결합했어요. 그게 첫 번째 농사 공동체를 이루게 된 거예요.”
 이근이 씨는 대자리 농장에서 농사 공동체의 원형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250평쯤 되는 땅을 같이 일구고 농사짓고 같이 나누며 살았습니다. 지금도 이근이 씨는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평일은 직장에 다니고 토·일요일은 모여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땅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화도, 민통선 안 장단콩 마을, 두포리에 밭을 얻었습니다. 강화도에는 취나물, 민통선에는 콩을 지었습니다. 두포리에는 고추를 심었습니다. 주말이면 네 남자가 새벽마다 만나 밭들을 돌아다니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소비와 생산의 공동체
 “주말에만 지어서는 작물을 올곧게 키우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소생공동체였어요. 소비와 생산을 함께 하면서 뭔가 소생시킨다는 뜻도 담았어요.”
대자리는 토마토, 선유동은 감자, 이렇게 주요 작물을 함께 기를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농사짓고 수확하고 빠지는 방법이 도시에서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는 1년 단위로 신청을 받는 실험을 처음으로 도전합니다. 고양동에 있는 ‘우보농장’입니다. 일반적인 주말농장 하고는 운영 방법이 다릅니다. 공동 텃밭에 참여해야 개인 텃밭을 분양해 줍니다. 대자리 농장의 농사 공동체정신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서울 지역 어린이집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농촌시범교육농장으로 우보농장이 지정 받아, 생명 순환 농업을 가르칩니다.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수업을 했어요. 상추모양을 보여주고 씨앗을 보여주면 굉장히 흥미로워 해요. 흙이라는 것이 어떤 마술을 보이는지 직접 체험을 하는 거죠.”
 천연 농약 만들기, 밭 토질 바꿔주는 목초액 만들기 등 교육을 하느라 당분간 귀농의 꿈은 뒤로 미루기로 했답니다.
 “둘째가 지금 고1인데 대학에 가는 순간 우리는 귀농할 거라고 했죠. 지금은 농장 일 하느라 5년 뒤로 미뤘어요. 내 성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잠시도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못 참아요. 힘 떨어질 때까지 한반도 전체를 돌면서 살아볼 거예요.”
 그는 명함에 한 가지를 더 넣고 싶어 합니다. 농사 교과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말릴 수 없습니다. 누가 있어 바람을 손에 쥘 수 있을까요? 그저 흐름을 함께 느낄 뿐이죠. 살면서 바람이 살랑 불거든 그냥 한번 웃어주세요. 우보처럼.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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