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내 인생의 스승과 제자

지역내일 2011-05-10 (수정 2011-05-10 오후 2:07:53)

추억으로 빛나는 그 이름, 선생님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여고시절 감사의 마음을 칠판 가득 그림과 글로 적어놓고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폭죽과 환호로 맞이했던 기억. 초코파이를 쌓아놓고 초에 불을 붙인 후 스승의 날 노래를 뭉클하게 부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스승의 날은 여러 이유로 휴교령이 내려지고 더불어 그 의미도 조금씩 옅어 가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빛바랜 추억 속 오랜 그리움이 된 선생님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우리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성장해 아이 엄마와 아빠가 된 제자들, 그리고 그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part1: 분당ㆍ용인주부들이 들려주는 ‘내 인생의 선생님’


* 전희정 (50ㆍ분당 금곡동)
▷ 나를 울려버린 선생님


저희부부는 초등학교 6학년 동창이랍니다. 50살이 된 지금까지도 6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죠. 제 인생의 큰 모델이시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셨는데 그때 졸업한지 36년 된 우리 반 애들(?)이 13명이나 참석했고 무척 행복해하셨답니다. 언제나 열정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던 선생님.
도시락 못 싸온 친구에게 선생님 도시락 내어주시고 빵을 드셨는데 식중독에 걸려서 무척이나 고생하셨던 기억, 배에 종기가 나서 곪은 친구의 그 종기를 입으로 빨아 뱉어 내시던 선생님의 모습, 제가 첫 아이 낳았을 때는 미역국을 손수 끓여주셔서 끝내 저를 울리셨던 선생님. 전 언제나 선생님을 닮으려 노력합니다.



* 이수현 (41ㆍ용인 신봉동)
▷ 추억 속 앨범을 채워주신 선생님
제 어릴 적 앨범을 보면 교단 앞에서 친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습, 책 읽는 모습, 짝꿍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의 사진이 되네요. 그 당시 선생님이 아이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주시는 일은 흔히 볼 수 없었는데 운 좋게도 저는 그런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답니다.
당시에는 부모님들 모두가 살기가 바빠서 모두 일을 하시고 5학년이나 되었는데도 글을 잘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선생님은 소외된 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자신감 없어하는 아이들이 더듬더듬 책을 읽어도 정말 잘했다며 모든 아이들에게 박수를 쳐달라고 해서 그 친구의 사기를 돋아 주시기도 했어요. 정말로 한 명 한 명 인간적으로 대해주신 선생님이 그립네요. 제 평생의 스승님이라 여기고 있고 존경하고픈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큰딸이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데 어릴 적 엄마의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도 멋진 선생님, 인간적인 선생님이 되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이정신 선생님~!
부산에서 잘 계시지요? 늘 궁금했습니다. 제 인생에 선생님을 만난 게 정말로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신혜선(42ㆍ분당 서현동)
▷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희 학교에 처음 부임 오셔서 6학년을 맡으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하지만 남자선생님 답지 않게 아이들 일기장 하나하나에 댓글을 달아 주시던 그 자상함. 그때 제게 남겨주신 이 글 하나가 제 인생에 지표가 되었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그때 달아주신 그 한마디로 제가 더욱 자신감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까요.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지금 우리 집 가훈도 위의 내용과 동일하답니다. 제가 정했죠. 아이가 힘들어하면 항상 전해주셨던 그 말씀. 늘 잊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 장익숙(54ㆍ분당동)
▷ 두 분 교장선생님과의 10년 인연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 얼굴을 다쳐 여러 번 수술을 했지만 장애가 남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됐을 거예요. 이근정 교장선생님(전 수내중학교 초대교장)과 박만장(전 수내고 교장) 선생님께선 우리 아이와 제게 잊을 수 없는 은사로 남으셨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 때 서로 모르시던 분들이 오로지 저희 아이의 어려움을 전해주시다가 알게 되셨고 또 선뜻 도움을 주셨죠.
“내 제자의 일이라며, 당연히 힘이 돼주겠다” 하시며 많은 격려와 사랑을 실어주셨어요.
틈틈이 교실을 들여다보며 격려도 해주시고 아이에게 남들 안하는 역할도 오히려 맡겨주시고 졸업할 때는 제게 장한 어머니상도 주셨죠. 아이가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을 땐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고요. 특히 수술하고 힘들 때에는 전화로, 메일로 서신 등으로 많은 힘과 희망을 주신 것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 덕분으로 아이가 반듯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두 분 선생님들과 인연을 맺고 5월이면 항상 아이와 저희 부부는 두 선생님 내외분을 찾아뵙는 것을 기쁘게 해오고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졸업 후에 몇 번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10년을 이어오니 이제는 저희가 오는 것이 기다려질 정도라고 하시네요. 저희 가족과 아이에게 큰 스승이신 두 분 선생님, 늘 감사드립니다.



PART 2: 스승들이 전하는 ‘내 인생, 추억의 제자’


* 이금옥 (68ㆍ상현동ㆍ교직 30년)
▷ 도둑질, 그리고 할머니 금반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아이가 있었는데 워낙 형편이 어렵고 누구하나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엇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 아이 담임선생님이 외국에 나가는 바람에 잠시 임시 담임을 맡았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뻔질나게 오는 거죠. 아이가 시장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도벽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아이였던 거예요. 옷이며, 먹을 거 등 필요한 물건은 죄다 훔쳐서 해결하는 거야. 처음엔 몰랐다가 아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어려운 집안 사정과 크면서 제대로 훈육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뭔가가 필요하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어보도록 독려했죠. 후에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고 또 돈 모으는 재미에 도둑질을 안 하게 된거야.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할머니 금반지도 해드리고, 착실한 아이가 됐어요. 지금은 시집가서 잘 사는 제자인데 어렵던 그때를 그래도 잘 견뎌주었던 녀석이라 지금도 마음에 꼭 담고 있죠.


* 박만장 (70ㆍ성남 금광동ㆍ교직 40년)
▷ 학도호국단과 도의원
성남서고에 있을 때 제잔데 키는 작았지만 아주 똘똘한 아이였어요. 당시 학도 호국단 총단장을 맡겼는데 아주 잘 해냈어.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꿋꿋하게 견디고 나중에 경기도의원도 하고 지역에서 제 역할을 든든히 하는 걸 보면 아주 대견하지. 박사학위도 3개나 가질 만큼 학구열도 높았던 제자예요. 지금은 나이가 57세인 제자인데 교직에 부임하고 첫 제자라 더욱 기억에 남아요. 


* 방기정 (52ㆍ용인두창분교장)
▷ 엄친아는 있었다
울산 시골학교 6학년 담임을 하던 때인데 남자아이 하나가 힘도 아주 세고 성숙했어요.
운동도 공부도 뭐든지 잘하는 아이, 지금 말로 하면 ‘엄친아’의 대표 격이라고 할까.
4학년 때 도시 큰 학교에서 전학을 왔는데 거기서도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게 본인 자랑으로 삼을 만큼 영근 아이였어요. 그러다가 6학년 말에 아버지 회사일로 강원도로 전학을 가게 됐지요.
그런데 그 뒤에도 편지를 자주 보내왔어요. 그렇게 인연을 이어 가다가 방학 때가 되면 강원도에서 울산까지 10시간이 넘는 길을 기차타고, 버스 갈아타고 나를 찾아왔어요. 그 먼 길을 찾아올 정도로 정이 깊은 아이였던 거지요. 시험성적이 좋게 나오면 나를 만나러 가도 된다는 허락을 얻을 수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 목표(?)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중에 고등학교 진학할 때는 진학지도를 해달라고 하고, 읽을 만한 좋은 도서도 알려달라고 하고, 그렇게 연락을 자주 해오던 아이예요. 그런데 제가 이사를 하면서 연락처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인연이 끊어졌지. 아주 많이 아쉬워요. 지금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일 텐데 어떻게 지내나 궁금도 하고요. 


* 홍일태(56ㆍ상현동ㆍ교직 퇴직 후 현재 문해교육 강사)
▷ 이혼과 한글 공부
현재 비문해인들을 위한 한글교실에서 강사를 맡고 있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저보다 나이도 많고 또 굽이굽이 사연도 참 많은 분들이예요.
한번은 수강생 한분이 자신은 이혼하기 위해 한글 배우러 왔다고 소개하는 거예요.
남편이 외도를 했는데 자신은 글도 모르고, 이러다간 권리도 못 찾고 억울한 일을 당할까 싶어 배우러 오셨다는 거지요.
그 뒤로 한글 열심히 배워서 집과 재산을 부부 공동명의로 바꾸셨어요. 그렇게 하시더니 나중엔 부부가 화해도 하시고 다시 잘 살게 되시더라고요.
연세들은 많아도 순박한 이분들의 삶이 제게는 큰 배움이 된답니다. 가난한 시절을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오신 이분들이 제 인생의 스승이자 제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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