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불곡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조교자

지역내일 2011-05-16 (수정 2011-05-16 오후 12:01:24)

열일곱 살, 문학에게 길을 묻다


                                               


질풍노도(疾風怒濤), 이 바람을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막막한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흔들리는지...지금 이 순간 인생의 토네이도에 휘청거리고 있는 아름다운 청춘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다 괜.찮.다’


Q.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꿈도 없어요. 잠만 자고 싶어요....
A. 수영아, 선생님은 사춘기가 없었어. 그냥 살짝 짜증이 나는 정도? 20대엔 사춘기를 앓지 않고 지난 온 나의 10대를 자랑하고 다녔지. 무난하고 원만한 인성을 가진 덕분라고 자부하면서. 그런데 나중에 알았단다. 일생의 어떤 시기에 성취해야 하는 과업은 뒤늦게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다른 친구들은 성숙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데 뒤늦게 혼자 마구 흔들리는 것이 너무 무섭고 막막하더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잠만 자고 싶고 세상 끝까지 도망가고만 싶었어. 그런데 날 정말 힘들게 했던 것은 ‘힘내, 널 믿어, 넌 할 수 있어’ 주변 사람들이 해 주는 격려의 말이었단다. 더 낼 힘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데 힘내라고 하는 그 사람들이 너무 야속하더라.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질렀어. ‘날 좀 내버려둬’ (물론, 속으로만^^)


그 해 여름, 내 마음속의 회오리바람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무작정 국도 걷기를 시작했단다. 3일째 되던 날 강릉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산간국도를 지나는데 가지고 있던 물도 떨어지고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국도라 휴게실도 없고 정말 딱 죽을 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 순간에 큰 고무대야에 얼음물을 담아서 팔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이는 거야. 500ml 물 한 통을 1초 만에 마시고 이제 살았구나 하면서 두 번째 물통의 뚜껑을 따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명확해지더라. ‘아! 내가 살아있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선생님은 그때 몸으로 깨달았단다.


수영아, 애써 힘 낼 필요 없어. 흔들리지 않으려고 힘주고 서 있을 필요도 없어. 그냥 다 괜찮아. 네가 존재한다는 그것 하나면 정말 충분해. 어떤 소설가가 그러더구나. ‘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온 우주가 협력했으니 네가 사라지면 우주는 균형을 찾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겠느냐.’ 복사본이 없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원본. 그게 너란다.
더 많이 흔들려도 돼. 그리고 모든 것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둬. 가야할 것은 다 가게 되어 있단다. 혼란스럽고 고단했던 그 시절, 선생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던 시를 오늘은 너에게 선물하고 싶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Q. 성은이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데, 나는 다 못났어요...
A.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만족하되
민들레꽃을 부러워하지도
닮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손톱만한 냉이꽃이
함박꽃이 크다고 하여
기죽어서 피어나지 않은 일이 있던가
싸리꽃은 싸리꽃대로 모여서 피어 아름답고
산유화는 산유화대로 저만큼 
떨어져 피어있어 아름답다
사람이 각기 품성대로 자기 능력을
피우며 사는 것
이것도 한 송이의 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다운 자기 꽃을 지닐 때
비로소 그 향기가, 그 열매가
남을 것이 아닌가
-정채봉 <꽃과 침묵>


작년에 선생님 반에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여학생이 있어서 주의 깊게 관찰을 한 적이 있었어. 왜 그럴까. 나중에 보니까 약간 통통한 자기 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습관처럼 웅크리고 다녔던 거야. 정말 안타까웠단다. 키도 크고 피부도 뽀얗고 공부도 곧잘 하고 무엇보다 눈매가 참 선하게 생긴 매력이 정말 많은 친구였거든. 그런 친구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한 부분 때문에 항상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속상했어. 그 친구한테서 내 모습을 보게 되니까 더 마음이 아팠어.


연주야, 선생님은 지금도 열등감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산단다. 나보다 키 크고 날씬하고 예쁜 사람들을 보면서 내 몸을 미워하고, 나보다 수업을 재미있게 하고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의 부족한 능력을 부끄러워 해.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이 쭈삣쭈삣 올라올 때마다 이 글을 읽는단다. 그리고 생각하지. 동네마다 장미꽃만 있다면, 동네 뒤에는 다 알프스산만 있다면, 에펠탑이 동네 곳곳에 있다면...어때? 웃기지?


나뭇잎 하나도 모래알 하나도 심지어 눈송이조차도 똑같이 생긴 것은 없대. 그러니까 우리,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쓰지 말자.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에게는 왜 저 사람이 가진 저것이 없을까? 더 이상 이런 생각하지 말자.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 모양이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운 연주야, 너라서 너이기 때문에 너뿐이라서 참 예쁘구나.


Q.  너무 내성적이어서 자신감도 없고, 외향적인 친구들의 들러리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A. 내성적인 학생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서 좋습니다.
   사교성이 적은 학생은 정직하고 과장되지 않아 좋습니다.
   소심한 학생은 실수가 적고 정확해서 좋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학생은 겸손해서 좋습니다.   
- 김인중 <안산 동산고 이야기 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주도를 하고 있지. 학교는 발표를 잘 하고 적극적인 아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회사 면접에서도 자신을 PR할 수 있는 장기자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어. 더 튀고 눈에 띄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하게 되어있는 게 사실이란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의 들러리''라고 생각하지 마. 오히려 내성적인 사람에게 장점이 많을 수 있어.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있고, 말수가 적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줄 수 있고, 차분한 성격 덕분에 실수가 적고 꼼꼼하고...이것 봐. 정말 장점이 많지? 


진석아, 넌 절대 약자가 아니야. 내성적인 것은 나쁜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니란다. 그저 너의 성향이고 기질일 뿐이야. 시대의 코드에 맞춰서 억지로 널 바꾸려고 하지 말고, 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너의 숨은 재능을 찾는데 그 힘을 써 보면 어떨까? 내성적인 성격의 장점을 살리되, 외향적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어. 쉽진 않을 거야. 그런데 생각해 봐. 우리 자전거 처음 탈 때 정말 열심히 연습하잖아. 그러니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
진석! 우선 이것부터 연습해볼까. 하루에 세 번 이상 자기 칭찬 해 주기. 선생님은 진석이가 어느 드라마에나 나오는 밋밋한 주인공보다 미친 존재감을 가진 멋진 조연이었으면 좋겠어. 네 모습 그대로,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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