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이 길어야 70~80세요 강건하면 100세일 것이다. 그런데 800년 세월을 말없이 지켜오고 있는 생명이 있다면 그 연수만으로도 숙연해 진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반계리은행나무’는 원주 역사의 산실인 셈이다. 가을하늘이 높은 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자연의 위대함을 만나러 떠나보자.
●반계 유형원 선생의 실학사상 태동지인 반계리
반계리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것은 가을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하는 오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알려진 반계리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돼 있다. 천연기념물답게 반계리은행나무는 멀리서도 그 위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얕은 야산이 되었지만 치악산 줄기가 이어지는 산세와 함께 우뚝 선 은행나무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움을 갖도록 할 만큼 거대하고 웅장하다.
높이가 34.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6.9m, 밑동 둘레가 14.5m에 이르며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 정도로 넓게 퍼져 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대략 800년 정도로 추정된다는 글귀를 읽으면서 ‘시간 앞에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실학사상의 태동지였던 반계리는 반계 유형원 선생이 이곳에서 실학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는 그 태동의 역사 한가운데서 지켜보고 있었을 터이다. 그뿐이랴.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수없이 많은 역사의 질곡을 그대로 겪으며 견뎌왔을 것이다.
●생명을 낳은 은행나무의 전설을 따라서
은행나무는 예전에 이 마을에 많이 살았던 성주이씨 가문의 한 사람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더 관심이 가는 전설은 아주 오랜 옛날에 어떤 대사가 이곳을 지나가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생명이 없는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 웅장한 나무가 될 수 있었을까? 생명을 잉태하는 힘이라도 가졌다는 것인가? 자연의 위대함이 마음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얼마 전 인류가 멸망하고 난 뒤의 지구모습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많은 학자들이 체르노빌에 방사능이 터지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난 세월 동안 폐허가 되어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손이 사라진 도시에 자신의 생명력을 마음껏 펼쳐 놓았다. 아직도 나무와 동물들이 되살아난 장관이 생생하다.
마른 지팡이에 생명을 불어 넣은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자연의 힘일 것이다.
●은행나무와 함께한 마을 주민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속에 커다란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고 한다. 가을에 이 나무에 단풍이 일시에 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든다는 전설도 내려와 가을이면 마을 주민이 은행나무에 유독 관심을 모은다고 하니 이 은행나무는 정녕 마을의 추장인 셈이다.
원상일(63) 이장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은행나무는 늘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네를 매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누워 낮잠을 즐기기도 하는 동무였죠. 나무의 혹은 약재로 쓰인다고 해서 멀리 타 지역에서도 찾아와 잘라 가곤했어요”라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나라에 큰 나리가 날 때마다 은행나무는 마을이 떠나가도록 슬프게 울었다고 합니다. 6.25때 마을사람들이 다 두려워 할 만큼 구슬프게 울었답니다. 우우웅 우우웅 나무의 울음은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이 느껴졌습니다”라고 기억을 더듬는다.
강원?원주시?문막면 반계리 1495-1에 위치한 반계리 은행나무는 원주에서 문막 방면으로 20여 분만 가면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먼 곳의 유물을 찾아 떠날 것이 아니라 원주 내의 역사의 숨결을 찾아 800년의 세월을 느끼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도움말 : 문화재청,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원상일 이장
신효재 리포터 hoyj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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