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향토유적 ‘충효사’를 찾아서

하늘이 낸 효자, 황자룡 선생을 모신 사당

지역내일 2011-12-16 (수정 2011-12-16 오전 12:17:12)

내 자식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 목숨이라도 내어놓고 지키고 싶은 것이 바로 자식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자식에게 잊지 않고 가르쳐야 할 것 또한 ‘효’일 것이다.
‘효’라고 하면 부모를 섬기는 것만을 생각하겠지만 부모뿐만 아니라 크게는 나라에 대한 ‘효’이며 이웃과 형제에 대한 ‘효’이기도 하다. ‘효’사상을 기리며 지어진 문막 반계리의 문화재 충효사를 찾았다.




●‘효’ 사상 기린 충효사
충효사는 부사과 충효공 황무진(1568~1652)을 봉안한 곳이다.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9세손으로 원주시 봉산1동 무진고개 너머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빈곤하여 문막면 반계리에 있는 골무내기 마을로 옮겨서 평생을 살았다.
1634년(인조 12)에 그의 효성을 찬양하기 위해 나라에서 명하여 정문을 그의 집 앞에 세우게 하였다. 1650년 효종(孝宗)은 황효자의 이름을 자룡(子龍)이라 지어주고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龍?衛) 부사과(副司果) 벼슬을 하사하였다. 후에 사당을 건립하도록 하고 각판과 현판, 제기 등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충효사부조좌일에 의하면 사당은 그가 죽은 지 69년 후 경종 1년(1721)에 건립 되었으며 1965년 이후에 여러 차례 중수 하였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익공집이다.
최초에는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그 후에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현재는 충효공의 탄신일에 향교에서 다례를 지내고 있다. 2009년 11월 11일자로 원주시 향토유적 제2009-3호로 지정되었다.




●호랑이도 알아본 효자
충효사에 모셔진 황자룡(黃子龍, 1568-1652) 선생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 황징(黃澄)과 어머니 원주이씨 사이에서 1568년 음력 3월 23일 태어났다. 무진년(戊辰年)에 태어났다고 하여 초명(初名)을 무진(戊辰)이라고 하였다.
황자룡 선생은 타고난 품성이 어질었으며 기골이 장대하였다. 임진왜란 때 군문(軍門)에 들어가 왜적의 장수를 사로잡은 공이 있어 황장사(黃壯士)라 불려졌다. 이러한 공으로 원주목사(原州牧使) 한준겸 (韓浚謙)에 의해 병방(兵房)으로 발탁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황자룡 선생은 50리 길을 매일 달려가 어버이께 장국밥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100일째부터는 호랑이가 황자룡 선생을 태우고 다녔다는 사실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하였다.
1608년 선조(宣祖)가 승하하니 부모의 상사(喪事)와 같이 삼년상(三年喪)을 입은 거와 같이 여기니 이를 보고 이원익(李元翼)·임숙영(任叔英)·김세렴(金世濂) 등이 황자룡 선생의 충의(忠義)를 찬양했다고 하니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효’ 사상을 생각하러 ‘충효사’로 떠나봄직하다. 




●자신의 손가락 깨물어 가며 부모 봉양해
황자룡 선생은 1610년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드렸다. 아버지는 덕분에 5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생을 마쳤다. 이에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겼다고 한다.
한준겸이 크게 감탄하여 시를 지어 읊으니 김상용 (金尙容)·김창일(金昌一)·이식(李植)이 차례로 선생의 효행을 화답 하였다. 이로부터 명현(名賢)들이 지위의 고하(高下)를 가리지 않고 교유 하였다.
1627년 이인거(李仁居)의 난이 일어나자 역적과 친하다 하여 원주목사 홍보에게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간 의병장 김창일과 참모 허후(許厚)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나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그 후 1652년 음력 4월 22일 황자룡 선생은 자녀와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니 향년 85세였다. 시호(諡號)를 충효(忠孝)라 내리고 1653년 나라에서 다시 홍색 (紅色)의 정문(旌門)을 세우니 세상 사람들이 ‘살아서는 청정문(靑旌門)이고, 죽어서는 홍정문(紅旌門)이다’라고 하여 ‘생청사홍(生靑死紅)’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하니 ‘생청사홍’을 둘러보며 진정한 ‘효’사상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도움말 : 김충력 박사 ‘충효공 황자룡정려비문’, 전석만 ‘충효공 황무진의 행적고’
신효재 리포터 hoyj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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