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슬픔이 서려있는 낙화암
700년의 긴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으면서도 역사의 패자(敗者)라는 이유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왕국, 백제. 금동대향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에 전해준 문물을 보면 백제 문화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짐작할 수 있지만, 국내에는 백제를 알 수 있는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을 찾아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만나보았다.
●백제의 왕궁을 지키던 부소산
백제의 처음 도읍은 한강유역인 한성이었지만 고구려 장수왕에게 밀려 남쪽인 공주로 도읍을 옮긴다. 공주는 지형 상 전쟁의 방어에는 좋지만, 좁고 척박한 탓에 나라의 풍요로운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다. 풍부한 문물의 발달을 위해 성왕 때 평야와 강이 풍부한 부여로 천도하여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사비시대를 열었다.
부소산은 부여읍내에 위치한다. 시내에서 이정표를 보고 방향을 틀자마자 부소산 정문이다. 부소산 앞 인근 곳곳에는 백제 왕궁 터 발굴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부소산은 백제 왕궁의 뒷산으로 해발 10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천천히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아도 2시간이 걸리지 않아 가족나들이로 부담 없다. 남쪽인 앞쪽에는 부여시가지가 펼쳐지고, 뒤쪽인 북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백마강과 맞닿아 있다. 백제의 왕궁을 지키던 부소산성이 산 전체를 둘러싸고 낙화암과 고란사, 삼충사와 사자루 등 백제시대의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부소란 말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를 뜻한다. 부소산이란 명칭은 ‘소나무가 많은 산’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삼충사가 있다. 삼충사는 백제 말기 의자왕 때 충신인 성충과 흥수, 계백장군 세 충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충은 향응에 빠진 의자왕에게 충언을 고하다 투옥된다. 감옥에서도 백제의 안위를 걱정해 백제가 환란에 직면했을 때의 방책을 혈서로 써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굶어 죽었다. 매년 10월이면 백제문화제 행사 때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의자왕이 성충과 흥수의 충언을 들었다면 백제의 역사와 삼국의 통일, 우리나라의 영토와 문화 모든 것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삼충사에서 낙화암 방면으로 조금 오르면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창지를 만난다. 군창지는 군인들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사자루가 있다. 사자루에 오르면 부여시내는 물론 저 멀리 계룡산과 구룡평야 등 부여 일대가 한 눈에 펼쳐진다. 건립당시 터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백제의 슬픔, 낙화암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에 백마강을 마주한 바위 절벽이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을 피해 부소산성으로 피신했던 백제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려 정조를 지키고자 했던 비운의 장소이다. 꽃이 떨어지는 바위란 뜻의 처연한 이름을 담은 낙화암 아래에는 백제 여인들의 망국의 슬픔과 눈물이 맺힌 백마강이 유유히 흐른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낙화암의 절벽 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낙화암 아래 위치한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백제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다. 고란사란 절 이름은 뒤쪽 바위에서 자라는 풀인 고란초에서 유래하였다. 바위틈의 고란사 약수는 물맛이 특히 유명한데 사람을 회춘시키는 능력이 있어 할아버지가 약수를 먹고 아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백제왕궁에서도 이 약수를 길어다 식음하였다고 한다.
고란사에는 백마강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백마강은 부소산 인근 16km의 금강을 일컫는다. 백제의 황포돛대를 재현한 유람선을 타면 낙화암 절벽에 새겨진 우암 송시열의 낙화암 글자와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용을 잡았다는 바위를 볼 수 있다. 고란사에서 편도 티켓을 끊으면 부소산 정문 근처인 구드래공원에 내려준다. 역으로 구드래공원에서 먼저 배를 타고 부소산 산행을 해도 된다.
주변 꼭 들를 곳으로는 국립부여박물관, 능산리 국립왕릉원, 궁남지, 정림사지 5층석탑 등이 있다.
문의 : 부여군청 830-2114
홍순한 리포터 chahyang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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