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댄스 음악이 고양종합운동장 지층 복도를 울렸다. 고양시청 여자태권도부(함준 감독)의 연습시간이었다. 쩌렁쩌렁한 기합 넣는 소리가 간간히 섞여 들렸다.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 듯 음악과 기합 소리만 여전했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소용 없었다. 하필 휴대 전화도 방전이 된 상황. 다급한 마음에 발로 쾅쾅 문을 찼다. 음악 소리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연습 삼매경에 빠진 태권도 선수들을 만나려면 힘찬 발차기는 기본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발랄 씩씩한 이 시대의 아라치
인터뷰는 유쾌했다. 김수양, 김새롬, 하지연, 황경선, 남진아, 한영미, 임소라 선수와 함준 감독까지 여덟 명.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선수들이 한자리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수들은 만화 속에 나오는 태권소녀 아라치처럼, 발랄하고 씩씩하게 때로 진지하게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다.
실업팀 선수들에게 한 팀은 가족 못지않게 친밀한 사이다. 일산서구 대화마을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어찌 보면 일곱 자매라고 할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 보였다.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몸에 배인 모습들 이었다.
선수들은 팀의 장점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꼽았다. 동네에서 만나는 ‘태권 동자’들의 구령 소리 쩌렁쩌렁한 인사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편안하고 자율적인 분위기의 팀 분위기로 고양시청 여자태권도부는 국내 정상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목표 의식 뚜렷하지만 공간 문제는 아쉬워
함준 감독은 “다른 팀과 달리 선수들이 애착이 많고 의욕도 넘친다”고 자랑했다. 선수들은 오전에 2시간 동안 훈련 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5시까지 훈련을 한다. 공식 일정이 끝나는 야간에도 연습장에 나와 자발적으로 개인 훈련을 계속하는 선수들이 많다.
선수들의 학구열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선수들은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며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남진아 선수는 현재 석사 3학기를 다니고 있다. 남 선수는 “운동도 재밌고 공부도 재미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늦게 왔다갔다 다녀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는 운동생리 등 태권도와 관련된 분야를 배우기 때문에 경기력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함 감독은 “선수들에게 목표가 없으면 운동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데, 우리 팀은 선수들의 목표가 뚜렷해서 좋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것은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연습실이 딱 자체 연습을 할 수 있는 규모라는 점이다. 외부 팀들과 합동 훈련을 할 수 없어 종종 다른 지역으로 가서 훈련을 해야 한다. 주로 서울과 인천 등 경기 권으로 가는데 이동시간이 길어 선수들의 피로감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체급에서 정상의 위치에 있다. 실업팀 전국대회에서 지난 해 종합 우승, 종합 2등을 2회 차지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이래 시청 팀으로는 드물게 출전 선수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나오는 팀워크
실력만큼 중시하는 것은 팀워크다. 좋은 분위기의 팀인 만큼 그것을 유지하는데도 공을 들인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서먹해지는 일이 생기면 회식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가거나 삼겹살, 치킨과 맥주, 짜장면을 함께 먹고 나면 더 돈독한 사이가 되곤 한다.
함께 살다보니 각자의 캐릭터도 생겼다. 팀의 맏언니 김수양 선수는 6년차 선수 생활에 변기 뚫는 법, 가스레인지 때 벗기는 법, 막힌 수도 뚫는 법을 터득했다. 선수들에게는 엄마로 불린다. 하지연 선수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재롱둥이, 황경선 선수는 잔소리 많은 할머니 역할이다. 한영미 선수는 축구를 잘해 메시, 임소라 선수는 행동이 느려 나무늘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태권도에 대한 애정 깊은 선수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배우게 되는 무예가 태권도다.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태권도 종주국이지만 의외로 프로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적은 편이다. 실업팀 경기가 있어도 중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스타급 선수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고양시청 여자태권도부 선수들은 자신이 선택한 종목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김새롬 선수는 “지금껏 살아오며 태권도와 희로애락을 함께 느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양 선수는 지도자가 되어 훌륭한 선수들을 길러내는 꿈을 키우고 있다. 가슴을 두드린 것은 팀의 막내 임소라 선수의 말이었다.
“태권도는 저의 20대를 전부 걸 만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전부인 것이 부끄럽지 않게 잘 하고 싶어요.”
국내최초 올림픽 3회 연속 출전 황경선 선수황경선 선수는 지난 16일 경남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태권도 올림픽대표 2차 선발전 여자 67kg 결승전에서 라이벌 김미경 선수를 6대 1로 꺾으며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황경선 선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올림픽까지 포함해 한국 태권도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황경선 선수는 베이징올림픽 이후 수술과 회복기를 거치며 뜻한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세 번째 출전, 좋은 성적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올림픽에 나가는 일은 여전히 설렌다.
“런던올림픽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저한테 시스템을 맞춰서 운동하고 응원해 준 고양시청 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상의 성적을 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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