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6월의 적군묘지에서

지역내일 2012-06-15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북한은 과거 남측 인사들이 방북 때 했던 '친북발언'을 공개하겠다고 으르고 있다. 북한의 협박(?)은 결국 일과성 코미디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은 '6·15남북공동선언' 12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는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남북한이 요즘 같은 관계로 지속된다면, 통일은 진짜 백년하청이 될지 모르겠다.

높이 30cm, 지름 60cm의 야트막한 봉분 위에 누군가 담배를 꽂아놓았다. 흰 페인트칠을 한 비목의 앞면에는 '무명인'이, 옆면에는 '낙동강 전투'라고만 씌어 있다. 가뭄 탓인지 묘지의 풀들은 풀죽어 있었다. 묘지 한쪽에 핀 보라색 엉겅퀴 몇 포기가 적군묘지를 치장하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북한군 중국군 묘지'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야산 일대 6000여㎡에 조성된 묘지다. 적군이라도 묘지를 조성,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6·25 이후 전국에 산재한 유해를 모아 1996년부터 이곳에 매장했다. 북한군 727구, 중국군 329구 등 모두 1059구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이중에는 '1·21사태무장공비 소위 현수재' '남해안침투 반잠수정 사체 무명인' 등 6·25 이후 남파된 무장공비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지난달 25일엔 국군 유해 12구가 62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2004년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지에서 찾아낸 226구의 미군 유해가 송환될 때, 포함돼 하와이에 안치되었다. 이후 아시아계 유해에서 이갑수 일병, 김용수 일병이 확인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적군들은 '민족해방'을 위해, 국군과 유엔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 전사자만 해도 적군은 북한군 52만명 등 70만명, 아군은 국군 14만7000명을 포함 18만여명에 달했다. 여기에 부상자, 실종자, 민간인 손실까지 합하면 남북한 인명피해는 520만명에 이른다.

세계는 탈냉전시대, 한반도만 예외

민족상잔의 전란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민초들이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알기라도 했을까. 세계는 탈냉전시대라고 하는데, 한반도는 예외다. 1999년 제1차에 이어 2002년 제2차 서해해전,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이은 11월의 연평도 포격전 등 냉전이 아니라 수시로 열전으로 전환되었다.

지난 6일은 현충일이었고, 이달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한 분들을 추모하는 달이다. 지난달 적군묘지에서는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는 '천도재 108일 회향식'이 한 사찰 주관으로 열렸다. 6월 들어서도 개원도 못한 19대 국회의 의원들이 때 아닌 '종북 논쟁'을 벌여 정가가 시끌시끌하다. 주초에 이곳을 둘러보면서 '종북 논쟁'을 생각해봤다.

조선조 말기 천주교를 믿는 '사학죄인'을 색출하여 참수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가라'고 해 신념을 검증했듯이 '종북 의원'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 여당의원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북핵 인정, 3대 세습 용인, 주한미군 철수, 조건없는 북 지원,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에 무대응 등 5가지의 문답을 통해 색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가지의 질문에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국가관이 바로서지 않은 '종북의원'으로 낙인찍어 의사당에서 내쳐야 하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비록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상을 가졌다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정법을 위반할 때만 처벌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법치주의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종북 논쟁'이 일자 북한은 과거 남측 인사들이 방북 때 했던 '친북발언'을 공개하겠다고 으르고 있다. 북한의 단세포적인 협박(?)은 결국 일과성 코미디에 불과할 것이다. 대권도전자들은 이제부터라도 '종북 프레임'의 덧씌우기 공방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제대로 된 논쟁을 벌이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화해의 시작은 역지사지(易地思之)

개인끼리나 나라끼리도 화해의 시작은 역지사지(易地思之)부터다. 얼마 전 중국 관광객이 자신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면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임진강 너머 석양이 북쪽을 향한 적군묘지의 비목 그림자를 길게 하고 있다. 문득 낙동강 전투에서 부상당해 명예 제대한 선친과 무공훈장을 타서 대전현충현에 묻힌 이모부의 모습이 적군 비목의 '무명인' 위로 오버랩 된다.

지금 남북관계 개선에 필요한 것은 체제 대결이라는 총론보다는 화해의 단서를 찾는 '역지사지'의 각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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