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봉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 조선 인조 24년(1646) 춘천 부사 엄황이 관청 옆에 문소각을 지으면서 함께 세우고, 고종 27년(1890) 이궁(離宮)의 내삼문으로 사용했다.
조양루.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호. 춘천부사 엄황이 문소각을 세울 때 위봉문과 함께 지은 문루. 방형초석 위에 높은 원주를 세운 간결한 구조다.
조선시대 고종이 변란 등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궁궐인 춘천이궁이 건물 중 조양루와 위봉문이 100년만에 제자리를 찾는다.
최두영 강원도 행정부지사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 후기 왕실 건물인 춘천이궁의 건물이었던 현존하는 조양루(문루)와 위봉문(내삼문)을 춘천이궁 1단계 복원사업으로 도청 내로 이전공사를 착수한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춘천지역은 지형이 뛰어난 군사적 요충지로써 임진왜란?병자호란을 비롯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변란을 겪었던 중요한 지역이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발생 이후에는 서울의 동쪽에 위치한 춘천이 서울 남쪽의 남한산성?충주, 서쪽의 강화도와 함께 방어상의 요지임을 인식하여 2~3백여 명의 친위군을 배치하고 유사시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춘천유수부 관아에 춘천이궁을 건립했다.
춘천이궁은 국가 변란 등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건립한 행궁(行宮)으로, 1888년(고종 25) 초대 춘천유수 김기석이 공사를 시작하여 1890년(고종 27) 2대 춘천유수 민두호가 완공했다. 당시 춘천유수부 관아를 기반으로 새롭게 건축되거나 증축된 이궁건물은 문소각(임금의 침실), 조양루(문소각의 문루), 위봉문(문소각의 내삼문), 조양문(문소각 후문), 묘천문(문소각 서문), 귀창문(내아로 출입하는 문) 등 이었다.
춘천이궁의 건물들은 별다른 손상 없이 승계되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는 등의 변화를 겪어 결국 춘천이궁의 건물로는 우두산으로 이전된 조양루와 공영빌딩 앞으로 이전된 위봉문 만이 남게 됐다.
춘천이궁의 건축물인 조양루, 위봉문의 이전복원을 위해 문화재위원 등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위치를 고증하고, 실시설계가 마무리됨에 따라 사업비 9억원을 들여 오는 7월 중 이전복원 공사에 착수하여 12월까지 건축물 이전복원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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