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언론인·번역가
한울/(사)음악사연구회 지음/민은기엮음/1만8000원
박정희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책의 출간을 거절 당했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한국사회가 독재 잔재의 청산 보다는 그 후계 세력에 신경을 더 쓰고 있는 불편한 상태임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저항가요란 장르(?)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불행하다. 우리의 경우처럼, 일단 험악한 독재를 경험한 국민이다. 억압과 수탈에 항거하는 싸움에서 전의를 돋우기 위해, 대동단결을 위해, 투쟁에 따르는 심한 궁핍과 고통을 위로받기 위해 일터에서 노동요를 만들듯, 씩씩하거나 애절한 노래를 만들어 부른 것이다.
그러나 '독재자의 노래'라면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음악사 연구자들이 모여 기획하고 역사상의 대표적 독재자를 한사람씩 맡아서 집필을 해놓은 이 책의 서문 제목 '독재자, 음악으로 독재를 완성하다'를 보면 감이 잡힐 것이다. '독재를 위한, 독재에 의한, 독재자의 음악'은 미학자 수잔 랭거가 말한 "모든 예술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본령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선동의 힘과 목적을 가진 점에서는 저항가요의 대척점에 서있지만, 위로나 희망은 없다.
'세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겁탈당하고 이용당한 음악이다.
독재의 통제 수단으로 전락한 음악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기를 지속시키거나 오히려 악화시킴으로써 독재를 더욱 공고하게하고 장기화 했다는 점이다. 위기상황을 극복해줄 것이라는 민중의 기대가 독재의 탄생에 한몫하지만, 대개의 경우 독재는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이유는 "독재는 본질적으로 그런 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음악사 연구회 회원인 필자들은 근대사에서 중요한 독재자들 중 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나폴레옹, 스타린, 무솔리니, 히틀러 ,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 카스트로등 8명을 선별해서 토론, 연구했고 논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그것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내용과 필자는 이렇다.
나폴레옹, 전쟁 영웅에 의한 음악적 독재(민은기), 스탈린, 철권시대의 음악 (양인용),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즘과 음악(박윤경), 히틀러, 독재의 최면에 걸린 음악(정주은), 마오쩌둥, 붉은 혁명의 음악 (이서현), 김일성, 붉은 독재의 노래(이재용), 박정희, 국가 근대화 프로젝트와 음악(송화숙), 카스트로, 혁명에 갇힌 음악 (이진경).
나폴레옹은 프로파간다를 전쟁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지배자였다. 그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나폴레옹의 영웅이미지의 열성적 숭배자였던 베토벤이 '영웅 교향곡'을 그에게 헌정하려고 썼다가 그가 황제에 즉위할 것이라는 소식에 너무도 실망하고 분노해서 악보 표지에 썼던 '보나파르트'란 이름을 지웠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베토벤만이 아니라 그 시대 수많은 음악가들이 나폴레옹을 숭배했고, 존경과 충성의 표현으로 그의 승전, 결혼, 즉위등 경사에 맞춰 작품을 앞다퉈 헌정했다. 가장 노골적으로 찬양에 나선것은 오페라 작품이었다.
그는 오페라가 '프랑스를 위한 전시용 작품'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강요했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상연금지였다. 적극적인 위촉도 해서 나폴레옹이 오페라작곡가들에게 지급한 하사금이 연간 75만 프랑에 달했다.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갔으니 '자발적'인 헌정곡이 범람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민들은 나폴레옹의 평생에 걸쳐 그를 찬양하는 내용의 노래를 지어 불렀고, 전쟁터에선 행진곡과 군가가 흘러넘쳤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도 혁명기에 애창된 군가인데, '그들의 불결한 피를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따위의 잔인한 어휘가 지금도 그대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히틀러의 '바그너 사랑'은 유명하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만 40회나 보았다는 건 광기를 짐작케한다. 특히 작품의 반유대주의에 크게 심취했고 그것이 나치의 '바그너 컬트'로 뿌리 박혔다.
20년 넘는 철권통치 동안 가장 잔인하게 창작의 자유를 유린하고 음악에까지 사회주의와 '위원회' 입김이 스며들게 했던 스탈린은 음악인들의 숙청과 추방의 피바람을 불게 한 독재자였다. 그의 새 강령이래 음악계는 '소비에트 작곡가 동맹'이란 관변 조직속에 흡수돼 스탈린의 철권 아래 들어갔다. 스탈린은 '형식은 민족주의, 내용은 사회주의'라는 자기 연설문중의 슬로건을 강요했다. 이처럼 독재자들은 머리에 떠오르거나 입에서 나간 개념어들을 문화예술에 덮어씌우기 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건 물론이고 예술가들의 창의력과 생명까지 지배한다. 혁명적이고 애국적인 '집단 가요'가 탄생, '스탈린의 영광이여, 영원하라' 따위가 널리 애창되었다.
같은 사회주의권인 중국이나 북한이 이런 형식을 따라하기에 분주했던 건 이념의 종주국 소련으로부터 배운 것이 독재자의 영웅화와 권력의 성역화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혁명적 예술작품'을 낳았고 그것은 마오 정권의 이념을 상징하는 유력한 도구였다.
북한 음악의 아버지가 김일성이라는 조선대백과사전 '음악'항목처럼, 그의 교시와 예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음악이고 결국'위대한 수령님' 송가로 낙착을 본 것이 북한 음악이다.
남쪽도 지지 않았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통해 진행돼온 '근대적' 규율의 강요를 위해 음악을 이용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고 새마을 노래를 비롯한 '건전가요'가 홍수를 이뤘다. 북은 강압적 사회주의 이론으로, 남은 희극적인 마구잡이 단속으로 음악을 지배했다.
박정희 시대의 '금지곡' 홍수
송창식의 '왜 불러'는 웬 반말이냐고, 이장희의'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긴대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감 조장으로 금지곡이 됐다. 한 대수의 '물좀 주소'는 물고문이 연상된대서, '행복의 나라'는 그럼 지금은 행복한 나라가 아니냐는 이유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우울감과 허무감 조장을 이유로 , '키다리 미스타 킴'은 단신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케 할 수 있다고 해서 금지됐다는 게 훗날 밝혀졌다.
결국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수록된 독재자 중 가장 '무식이 용감하게' 음악을 억압, 이용한 것은 남북한 독재자였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더구나 이 책의 '독재자'중 박정희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책의 출간을 거절 당했었다는 필자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한국사회가 독재 잔재의 청산 보다는 그 후계 세력에 신경을 더 쓰고 있는 불편한 상태임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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