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북
양순자 할머니의 ‘어른 공부’
나이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나? 인생선배가 전하는 삶의 지혜들
30년간 교도소 교회위원으로 활동하며 얻은 삶의 지혜를 담은 『인생 9단』 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의 저자 양순자 할머니가 신작 『어른 공부』를 펴냈습니다.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 이후 4년 만에 낸 ‘어른공부’에는 시간의 연륜만큼 더 깊은 삶의 공식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 공부’가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이유 또 있습니다. 그동안 할머니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그해 1월과 11월 두 번의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 9개월, 아직 완치판정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모든 항암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할머니가 ‘지상에서 마지막 기도’처럼 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암을 안고 가는 나날이지만 처음 암을 선고받던 순간부터 그랬듯 죽음도 자연스럽게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할머니. 돌이켜보면 이별연습은 사형수들이 자신에게 가르쳐주고 간 인생 공부였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가 죽음의 경계선에서 돌아본 삶의 가치와 자세에 대해 쓴 이야기입니다. 몸은 어른인데 아이처럼 칭얼대며 내 것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듯 조곤조곤 일러주는 삶의 지침들. 이 책은 “나이만 먹지 말고 하루하루 나아지라”고 나이 듦의 미덕을 일깨워줍니다.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올해 73세의 양순자 할머니는 37세부터 교도소에서 교회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왔다. 처음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 담당을 자원했을 때 그는 삶이 너무 버거워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때였다고 고백한다. “스물다섯에 시집가 그것이 여자의 운명이려니 하고 사는 사람은 삶을 잘 살겠지만 나는 인생이 그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가슴앓이를 더 많이 했지. 그땐 꼭 이놈의 세상 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삶이 힘드니까 그 현장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지. 이것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고, 내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닌데 이런 소리를 하면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은 어쩌나 싶은거야. 그러니까 이것이 사치스러운 소리가 아닌가 싶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이란 것이 정말로 이렇게 함부로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의문을 갖고 그 현장으로 가고 싶어서 사형수 상담을 자원한거지”
삶의 많은 부분을 남이 쉽게 가지 못하는 길을 일부러 걸어가려고 했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왔다. 그런 그의 봉사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법무부 교정대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장관상 수상, 영암군청 사회복지가 특채 상담실장,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양순자 심리상당소장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공명심과는 거리가 멀다.
“책을 내고나서 상담요청도 밀려들고 여기저기 강연요청으로 정신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난 양순자야. 일흔 넘은 할머니가 이 정도면 요즘말로 떴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난 절대 들뜨지도 변하지도 않아. 인생이란 내일을 모르는 거거든. 오늘 화려하다고 내일도 화려하다고 할 수 없고 오늘이 진흙구덩이라고 내일도 영원한 진흙구덩이는 아니기 때문이야“
사람이 사는 동안 예고 없이 아니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건, 바로 죽음이다. 30년 동안 수많은 사형수들을 보냈던 그에게 ‘암 선고’는 어떤 의미였을까.
“죽음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죽음이란 단어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번 살아봐. 하루가 덤으로 오는 보너스 같아. 그래서 매일 고맙지.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 속에서 시들어가는 사형수들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수도 없이 생각해봤지. 그리고 그들과 이별하면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깨달았어. 한마디로 그들을 통해 어른이 된 거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에 의연할 뿐 아니라 이별도 잘해. 이번 책 ‘어른공부’는 꼭 써야할 이유가 있었어, 나는 수술대 위에서 마지막 마취가 되기 전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했지. 깨어나면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진리나 인생의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야. 또 인간인 내가 또 다른 인간에게 완벽한 조언자가 될 수는 없지. 다만 인생선배로서 힘겹게 인생의 퍼즐을 맞추고 있는 이에게 내가 퍼즐 한 한 조각을 놓아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해”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해
아이들은 몸과 마음의 크고 작은 병을 앓으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이들뿐이랴. 어른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삶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빛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들어도 늘 아이처럼 징징대는 사람이 있다. 남보다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숙제하는 거야. 하루하루가 숙제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면 돼요. 숙제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 해야 하잖아. 숙제를 잘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고서를 보기도 하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 물어보기도 하잖아. 어른도 마찬가지야. 살다가 힘들면, 숙제할 때 참고서 보듯이 내 인생의 멘토를 만나서 물어보는 거야. 어른이면 어른만큼 공부를 해야 해. 흔히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욕할 때 ‘나이는 어디로 먹었냐’고 하잖아.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단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그냥 늙은 거야.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식을 잘 버무려서 소화를 해야 자꾸 성숙해지는데 그걸 못하면 고집불통 욕심만 많은 늙은이가 돼버리는 거라. 그냥 나이 먹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 ‘나이 먹는 것도 괜찮을 만큼’ 잘 살아야하지 않겠어. 훗날 당신을 볼 때 ‘아! 저 사람처럼 늙고 싶다’는 말을 듣기 위해 어른도 공부가 필요해.”
이 책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판에 박힌 교과서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생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를 할머니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른 공부’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타인의 삶을 위로하고 함께 나누며 마음껏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어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고.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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