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존
피터 글루크먼, 마크 핸슨 지음
김명주 옮김/2만원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의과대학의 젊은 수련생이었던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아프리카로, 다른 한 사람은 히말라야 산맥의 산기슭으로 의학탐사를 떠났다. 이들은 이곳에서 질병에 취약한 몸과 질병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환경이 불행하게도 맞물렸을 때 한 집단에서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의학탐사를 계기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의학연구를 통해 인류의 건강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됐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책을 펴냈다.
당시 히말라야로 갔던 수련의는 지금 뉴질랜드 오클랜드 의대 교수로 있는 피터 글루크먼이고, 아프리카로 갔던 사람은 영국 사우샘프턴대 의대 교수인 마크 핸슨이다.
이 책은 히말라야 셰르파족 이야기로 시작된다. 40년 전인 1972년 글루크먼이 찾아간 히말라야 쿰부 계곡을 아는 사람은 히말라야 등반집단과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반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몇몇 대원들뿐이었다. 셰르파족은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계곡에서 살아가면서 이 험난한 장소에 놀랍도록 잘 적응한 집단이다. 그리고 높은 고도까지 엄청난 짐을 나를 수 있다. 30킬로그램을 나르는 일반 짐꾼의 두 배를 나를 수 있다.
똑같은 조건에도 증상·징후 달라
하지만 셰르파들은 당시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심각한 건강문제를 안고 있었다. 의학탐사대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구릉들은 세계에서 요오드가 가장 부족한 지역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고립돼 살던 셰르파족은 요오드 보충 식품들을 접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셰르파 집단의 90퍼센트 이상이 갑상샘종에 걸려 있었다. 여덟 중 한 명이 갑상샘호르몬 결핍 때문에 비극을 겪고 있었다.
이 비극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됐다. 몇몇의 경우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요오드 결핍이 뇌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자궁 내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지적장애를 앓는 크레틴병 환자로 태어났다.
그런데 당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요오드 섭취가 매우 부족했는데도 모든 셰르파가 요오드 결핍의 징후를 보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실상 모든 어머니가 요오드 결핍이었음에도 모든 아기가 크레틴병 환자로 태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의학탐사팀이 요오드 주사로 가임기 여성들을 치료하자 크레틴병은 사라졌다.
이들은 똑같은 조건에 놓여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증상과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는 교훈을 탐사에서 얻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한 집단의 환경은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 미묘한 방식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런 변화도 그 집단의 질병 패턴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체질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모두가 특정한 환경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적응능력 무한한 것 아냐
이들이 얻은 두 번째 교훈은 인간은 다양한 범위의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지만 그렇다고 적응능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범위에 들어가면 적어도 한동안은 대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일 이런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살려면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계'와 잘 맞물리는 환경에 있을 때 종은 번성한다. 환경과 생물학적 설계가 어긋날수록 비용도 커진다. 저자는 생물의 삶을 어긋남의 틀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를 '미스매치(Mismatch,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며 우리말로 어긋남)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어긋남의 대가는 대개 질병이다.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 즉 요오드가 극도로 결핍된 토양 환경 속에서 살아온 셰르파들이 오랫동안 요오드결핍증과 크레틴병을 앓아왔다면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넘쳐나고 풍요 속에서 사는 현대인, 생식능력을 잃었는데도 30~40년을 더 사는 고령화 사회의 현대인들은 과연 오랜 진화의 설계와 어긋나지는 않는 것일까?
이 책은 먼저 발생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저자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요오드 결핍이 셰르파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했듯이 일본 미나마타 만에 살던 어머니들의 뱃속 태아들이 유기수은에 노출돼 기형아로 태어난 것이나 베트남 참전용사와 베트남 주민들의 아이들에게서 심각한 장애가 발생한 것 등을 꼽으며 발생중인 태아나 아기에게 환경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극적인 결과가 생긴다고 강조한다. 수정란에서 태아, 아기에 이르기까지 초기발생 과정에서 노출되는 환경이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잘 맞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긋남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 환경 속에서도 일어난다. 어긋남은 사회구조, 건강,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문제 극복할 수 있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아이들이 점점 건강해지면서 성 조숙이 일어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육체적, 심리사회적 성숙이 사춘기에 동시에 일어났는데 지금은 불일치가 생겼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이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음식이 넘쳐 비만을 걱정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뇨병이나 대사질환, 심혈관질환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궁핍으로 저체중, 영양실조와 감염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령화 사회도 어긋남의 대표적 보기이다. 더 길어진 수명은 행복이 아니라 어긋남을 유발할 수 있고 노화 문제, 폐경 등이 우리에게 또 다른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저자들은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점점 어긋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환경과 가능한 한 생물학적으로 잘 맞물려야 한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어긋남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지구 상 많은 종의 역사가 진화, 개체군 성장, 쇠퇴와 멸종의 역사였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독창성과 미래를 내다보고 조작하는 독특한 능력을 통해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낙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태아에서부터 유아기에 이르기까지 생애 초기에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보태 어긋남의 패러다임은 유전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발생과 우리 스스로 만든 환경과 관련이 있고 이 둘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므로 인간 세계에서 나타나는 많은 어긋남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종주 환경보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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