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행복한 마을 만들어요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풍산합창단’

지역내일 2013-01-26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전래동요를 편곡한 풍산합창단의 노래 소리가 노인요양병원에 울려 퍼졌다. 휠체어에 앉아 표정 없이 노래를 듣던 80대 할머니가 손등을 포개 두드리며 노래 가락을 따라 불렀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수십 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노래다. 어깨 걸고 부르는 노래, 혼자서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슬픔에 겨워 부르는 노래, 기쁨이 넘쳐 부르는 노래. 노래에는 희로애락을 풀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이번 주 내일신문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에서는 노래가 가진 치유의 힘에 주목하는 사람들,  노래로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풍산합창단’을 만났다.
 


노래로 만드는 마을공동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고양시에서는 주민자치아카데미가 열렸다. 기초, 역량강화, 심화과정으로 진행된 강좌에는 참여와 자치에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943명의 주민들 가운데는 최용석 지휘자도 있었다. 주민자치아카데미 수강 기간에 ‘4반 최반장’으로 불리던 최용석 지휘자가 제안한 것이 마을합창단 만들기였다. 최용석 지휘자는 마을합창단 프로젝트를 지역공동체 사업에 공모했다. ‘최반장’과 함께 했던 4반 수강생들은 ‘우리동네문화놀이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최용석, 김준홍, 민관준, 이상빈 지휘자와 최은화, 이정아, 이희경, 이지영 반주자가 결합한 ‘우리동네문화놀이터’는 풍산동, 일산3동, 탄현동, 행신1동, 송산동에 마을합창단을 꾸렸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동 단위의 마을 합창단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용석 지휘자는 마을합창단 프로젝트 이전에도 예술을 매개로 마을 공동체를 꾸려가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송산동에서 매년 가을에 열리는 백송문화축제다. 1시간 동안 축제 취지를 설명해 3만 원의 후원금을 받는 식으로 꾸려낸 마을 축제였다. 지금은 오페라 공연부터 윷놀이까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돼서 웃고 즐기는 화합의 장으로 발전했다.


유학시절 배운 유럽의 마을문화
최용석 지휘자는 “처음에는 다른 의도가 있지 않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음악가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외지인’이 마을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 오해한 이들도 많았다고.
그가 마을을 위해 나선 것은 이태리 유학 시절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지역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8년 동안 보고 배운 것은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지역문화였다.
“지역에서 태어나 예술을 배운 사람들이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활동을 하다 마을 축제 기간에 맞춰서 돌아와요. 음악가는 연주로, 미술가는 교육과 전시, 체육인은 코치로 동네 친구들을 가르쳐 주는 게 유럽의 동네 문화예요. 그래서 유럽 문화가 강한 거죠.”
고층 아파트에 밀집해 살고 소통이 어려운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서는 5층 이하의 집에 살면서 광장에 모여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며 교류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배운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함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합창단을 꾸리고 마을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어 3년 간 운영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나누면 클래식이 살아난다
우리나라 클래식인구는 매우 적은 편으로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에 이르러 중산계층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됐지만, 유학을 하고 와도 중산계층이 중앙 무대에 진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주회장에 표를 사서 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은 결국 클래식의 설 자리를 더 좁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클래식이 활성화 될 때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동네 사람들이 클래식을 접하고 좋다고 느끼면 표를 사서 보러 올 수가 있거든요.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지는 않아도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거죠.”
클래식이 살기 위해서라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최용석 지휘자의 생각이다.
풍산합창단을 비롯한 마을합창단은 가입 조건이 ‘동네 주민일 것’이다. 물론 다른 동네 주민들도 원한다면 참여할 수 있다. 마을합창단이기 때문에 실력으로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마을 사람이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환영한다. 


발성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중시하는 합창단
풍산합창단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풍동교회 지하실에서 연습한다. 유모차를 타고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부터 꼭 그만한 손자 손녀를 두었을 법한 어르신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노래하는 것이 풍산합창단의 연습 풍경이다. 연습 시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발성을 비롯한 음악의 기초다. 음악 이론을 기초 단계부터 차근차근 배우지 않으면 높은 단계로 올라갈 때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것이 최용석 지휘자의 생각이다.
김영숙 씨는 “풍산합창단에서는 발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을 해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예쁜 곡들을 함께 부르다 보면 정서적으로 좋고 복식 호흡을 해야 하니 폐 건강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김명현 씨는 지난해 7월 남편의 권유로 합창단에 들어왔다가 첫 연습 시간에 깜짝 놀랐다.
“편한 마음으로 갔는데 지휘자님이 하시는 것 보고 전문가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볍게 노래만 부르고 끝날 줄 알았는데 발성 연습부터 시켰어요.”
연습을 거듭할수록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넓어졌다. 어울림누리 극장에서 열린 고양마을페스티벌에서 가족들을 초대해 공연하고 봉사 연주를 하면서 자신감은 점점 커졌다.
“남편도 인정해주는 것 같고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해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엄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뿌듯했나 봐요. 아이들이 엄마 목소리 밖에 안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마을공동체 만드는 씨앗 되고파
단장 박정희 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합창단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라인에서 5층, 19층에 사는데 풍산합창단에서 알게 되고 사랑스런 동생이 됐어요. 음악을 통해서 사랑의 끈으로 하나가 되는 거죠.”
나이 차이가 서른 살 가까이 나는 회원들끼리 서로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고부 간 세대 간 고민과 갈등을 풀어간다. 연주회를 앞두면 잘 때도 녹음한 노래를 듣고, 남편과 온 가족이 음악을 알게 된다. 음악을 통해 가정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행복을 맛본다. 음악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연주하고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 내며 문화가 숨 쉬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 음악을 통한 행복을 마을로 퍼트리는 것이 풍산합창단 사람들의 바람이다.

가입 및 마을합창단 구성 문의 010-8337-0907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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