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라페스타에서 열린 제9회 선인장 페스티벌에서 눈길을 끄는 전시회가 열렸다. 고양시의 특산품인 선인장을 주제로 열린 ''보태니컬 아트 선인장 그림 전시회''가 바로 그것. 전시회를 기획하고 진행한 이는 식물화가(보태니컬 아티스트:Botanical Artist, 식물을 세밀하게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작가)안정언 씨다. 그는 한국식물화가협회 소속 식물화가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신항숙, 전병화 작가와 함께 15점의 선인장 그림을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이번에 처음 선인장 페스티벌에서 선인장 그림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사진 이상으로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사진이 주는 느낌보다 정감 있고 깊은 매력이 있다는 평을 들었거든요. 사실 전시회가 이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고 제가 그림 소재를 찾아 선인장 연구소를 찾았다가 이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고 요청을 하셔서 준비과정이 충분치 못했던 점도 있었어요.” 그래도 처음엔 선인장 사진이겠거니 무심히 지나치던 시민들에게 보태니컬 아트가 어떤 것인지 알릴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란 싯구가 떠오른다. 또 어릴 적 식물 표본을 두꺼운 책갈피 사이에 끼워 잘 말려서 식물 표본집을 만들던 유년의 기억도 그리워진다. 어린 마음에도 꽃을 채집하고 말리는 동안 꽃잎 하나 뜯겨져 나갈까 조심하는 동안 새삼 그 꽃이 예쁘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인장을 이렇듯 세밀하게 그리기 위해 수없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다보면 가시조차 예뻐 보입니다, 선인장 뿐 아니라 길가의 이름 모를 야생화 한 송이도 정말 하찮은 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다보면 모든 식물은 볼수록 모두 어여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라는 안정언 씨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렇게 세세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에 소질이 있거나 전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킨 ‘보태니컬 아트’는 초보자가 쉽게 접하기 힘든 작업처럼 느껴지지만, 꽃을 좋아하고 끈기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한다. “저도 예전엔 웹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직업상 밤샘 작업이 많고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일하다보니 어깨가 많이 나빠졌지요. 그래서 웹 작업을 그만두고 주부로 지내다 문득 꽃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워킹우먼에서 평범한 주부로 일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꽃이나 나무를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문화센터에 식물화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초과정을 배웠다. 한 작품을 마무리하기까지 수천 번의 손길이 가야하지만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너무나 컸다. 기초과정에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우리나라 보태니컬 아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권영애 교수가 있는 서울여대 플로라아카데미에서 보태니컬 아트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같이 공부를 했던 이들과 함께 창립한 한국식물화가협회 1기인 그는 매해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난, 허브, 다육식물 등을 주제로 회원 정기전을 열고 있다.
-나이 들어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작업, 꽃을 보는 혜안 깊어져 원숙미 더해
보태니컬 아트의 매력을 꼽으라면 사진처럼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사진에 담지 못하는 식물과의 교감, 그 따뜻한 정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정언 씨는 세상에 꽃과 나무 등 식물은 무궁무진해서 어디를 가도 색연필과 화지만 있으면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또 똑같은 식물을 그리더라도 그때의 감정에 따라, 또 그리는 사람의 선 하나 음영 하나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 똑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매력이라고 덧붙인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보통 일주일 정도 걸려요. 그동안 계속 그 식물을 들여다보면서 작업을 하죠. 그런 상태가 몰입, 무아지경이 아닐까요. 그림을 그리다보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일들도 치유가 되고 마음이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그림 작업처럼 넓은 공간도 필요하지 않고, 준비물도 초기에 72색 정도의 색연필과 화지만 있으면 가능하니 주부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처음에 준비물을 갖추면 나중에 필요한 색연필을 낱개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작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보태니컬 아트의 매력”이라고 추천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친해지게 되고 또 자연을 바라보는 혜안이 깊어져 그림에 원숙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란다.
사진처럼 정밀한 그림에 “할 수 있을까” 멈칫거리게 되지만,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보고 그대로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또 입문부터 강사과정, 전문가 과정까지 시간과 열정만 투자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도록 교육 커리큘럼도 잘 짜여져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내가 그린 식물화 도안으로 티셔츠나 가방, 다이어리 등 나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고, 또 타일 등에 도안을 해 집안 인테리어를 독특하게 꾸미는 등 활용도도 넓은 편”이라는 안정언 씨. 현재 그는 작품 활동 외에 서울 불광동 NC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그림 강의를 하고 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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