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실 - 천연염색 공방 ''곱게 빚은 행복'' 정지원 씨
볼수록 은은한 자연의 빛깔에 반하다!!
파주 산남동 심학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천연염색 공방 ''곱게 빚은 행복''. 그곳 앞마당에는 자연빛깔 머금은 천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제 빛깔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인공의 물감이 단박 시선을 끄는 색이라면 천연 염료는 두고두고 볼수록 아름다운 자연 색이죠. 요즘 같은 계절에는 문밖만 나서면 쑥이며 애기똥풀, 칡이파리 등 천연염색 재료들이 지천이예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염색을 끝낸 천을 널어놓고 파란 하늘에 흔들리는 색색의 천을 보면 그렇게 곱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어요." ''곱게 빚은 행복''의 주인장은 정지원 씨. 그는 볼수록 은은하고 깊은 자연빛깔에 반해 15년 째 심학산 자락에서 천연염색 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천연염색''에 빠져
정지원 씨는 천연염색을 시작하기 전까지 수학교사로 활동했다. 학창시절부터 수학은 거의 틀린 적이 없을 정도로 수학에 소질이 있었고 당연히 전공도 수학을 선택했다고. "수학은 잘은 할 수 있으나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잘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 하고 찾은 것이 천연염색이죠." 천연염색을 만난 것은 광고 쪽 일을 했고 지금은 미대교수로 있는 남편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남편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천연염색을 만나게 된 것.
"수학과 천연염색 하면 좀 상반된다고 느끼시겠지요. 처음엔 저도 수학과 천연염색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는데 하다 보니 천연염색이 수학과 무관하지 않더군요. 매염제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른 빛깔로 표현되는 천연염색은 화학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따른 결과잖아요. 매염제의 산도를 꼼꼼하게 측정하는 작업 등이 이과적인 것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또 그는 처음부터 취미가 아닌 ''제2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천연염색을 시작했다고 한다. 15~6년 전에는 천연염색을 가르쳐주는 곳이 드물어 인사동이나 지방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배웠고, 성북동에 있던 ''샘이 깊은 물'' 문화교실을 통해 천연염색을 익혔다. 그렇게 7~8년을 배우고 익히고 나니 조금씩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수나 한복을 짓는 이들에게서 주문도 늘었다.
-붉나무 벌레집에 기생하는 ‘오배자’ 염색에 끌려
시장에서 흔히 만나는 약초나 식탁에 오른 야채, 마당 한켠에서 자라고 있는 풀꽃 등 주변에 있는 자연재료들은 모두가 본연의 색을 가지고 있다. 쑥은 초록빛을, 감귤이나 양파껍질은 노란색, 포도는 붉은 빛을 띤 자주색 등등 자연재료가 가진 색깔대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빛깔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천연염색.
“제가 처음 천연염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국 각지로 찾아다니면서 배워야 했지만 지금은 간단한 염색 한 두 가지 정도는 집에서 하는 주부들도 늘어나고, 인터넷을 통해 배울 수도 있고...꼭 큰 작품이 아니라도 손수건 한 장, 스카프 한 장 정도 천연염색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죠.” 천연염색은 빨면 조금씩 색이 바래지기도 하지만 빠지면 빠진 채로 멋이 있고, 또 색이 너무 연해졌다 싶으면 재 염색해서 사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한다.
“매염제의 농도에 따라 색이 달리 나타나기도 하지만 물에 따라 색감이 다르게 표현되기도 해요. 파주 물과 서울시 물에 함유된 철분 양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똑같은 색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천연염색의 매력이지요.” 색을 얻기 위해 염료에 치대고 주무르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할때마다 다른 빛깔을 내는 재미와 묘미가 있다는 정지원 씨.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오배자로 물들이는 작업이다. 천연염색의 재료는 대부분 나무나 풀 꽃 등 식물이 많고 광물성 재료는 황토나 숯이 많이 쓰이는데 오배자는 몇 안 되는 동물성 재료의 하나라고.
“오배자는 붉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집으로 탄닌 성분이 많아요. 오배자는 백반매염을 하면 연베이지색이 나오고, 철 매염을 하면 회보라색이 나오는데 그 색감이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오묘해서 끌립니다.” 그는 지난 해 6월 아람누리 갤러리 누리에서 열린 ‘정지원 천연염색과 소품전’을 통해 오배자로 물들인 한복을 선보여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자연을 가까이 하고 천연염색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주고 싶어
정지원 씨는 자연의 재료에서 색을 얻는 천연염색이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은 물론 사물에 자꾸 궁리를 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는 좋은 교육아이템이라고 한다. “지금은 20살 청년이 된 막내아들이 6살 무렵 이곳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오지생활(?)에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젠 자연적인 색이 아니면 답답하다고 해요. 또 자연 속에 살다보니 사물을 보고 궁리를 하는 능력이 알게 모르게 키워진 것 같고요.”
그래서 정지원 씨는 개인작업 외에 청소년들이 천연염색을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파주 심학초 마정초 한가람중학교 학생들이 ‘곱게 빚은 행복’에서 강습을 받기도 했고, 파주환경연합회의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복이나 자수전문가들의 주문은 아무래도 한정된 수요자들을 위한 작업일 수밖에 없죠. 최근에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천연염색에 마음이 가요. 큰 작업에서 작은 작업으로 내려 왔다고 할까(웃음). 하지만 아이들 체험을 하다보면 우리 전통의 멋과 색에 확 끌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여요. 그런 아이들의 변화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그는 뜻있는 이들과 연대를 해서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체험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요즘 천연염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색을 내고 싶은 욕심만으로 중금속이 들어간 매염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매염제를 쓸 때는 최하의 양만 쓰도록 노력하고, 염색 후 물을 버릴 때도 꼭 활성탄 등을 사용해 걸러서 버렸으면 합니다. 웰빙 하자고 천연염색을 하면서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곱게 빚은 행복’에서는 현재 조각보 작가들의 연구반과 고양파주지역 주부들의 천연염색 클래스가 열리고 있으며, 수강문의는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http://www.gobge.com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tip
집에서 간단하게 천연염색 즐기기
쉽게 구할 수 있는 우리 농산물 껍질을 염료로 이용하면 간편하다. 포도껍질은 은은한 보라색, 양파껍질은 진 노란색, 밤 껍질은 회색빛이 도는 진한 갈색이 난다. 내 손으로 직접 스카프 한 장 곱게 물들여보자.
◆준비물
염색용 실크 스카프(길이 170㎝ 정도), 포도껍질 500g(또는 밤 껍질 500g, 양파껍질 200g), 백반 15g(밤 껍질은 철장액이나 황산철가루 5g).
◆염색법
① 각 분량의 껍질에 물 3ℓ씩을 붓고 강한 불에 끓인다. 색을 진하게 하려면 껍질 양을 늘린다.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30분쯤 끓이다 고은 체에 걸러 염액을 만든다.
밤은 색이 쉽게 우러나지 않는 만큼 염액을 두 번에 걸쳐 만든다. 물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끓인 뒤 고은 체에 거르고, 걸러낸 밤껍질에 다시 물 2ℓ를 붓고 끓여 걸러서 두 염액을 섞으면 된다.
② 찬물에 헹궜다 탈수한 실크 스카프를 70℃ 정도의 염액에 20분(밤은 30분) 담가 둔다. 색이 골고루 배도록 양 끝을 잡고 염액 안에서 잘 펴준다. 뜨거우므로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끼고 한다.
③ 염색한 스카프를 찬물에 두어 번 헹군다.
④ 60℃ 정도의 물 3ℓ에 백반 15g(반숟갈)을 잘 녹인 뒤 물들인 스카프를 20분쯤 담가 둔다. 백반은 염료가 섬유에 잘 배도록 돕는 매염제로, 색이 잘 나면서 덜 빠지게 해준다.
밤껍질 염색에는 철장액이나 황산철가루 5g을 녹여 쓰는데 이 과정을 ‘철매염’이라 한다. 황산철 가루는 천연염색 사이트나 업체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⑤ 매염한 스카프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헹군 뒤 탈수해 그늘에 말린다. 밤 스카프는 철 성분을 빼기 위해 울샴푸로 세탁한 후 탈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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