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소음이 끊이지 않는 대로에서 불과 몇 십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오릉 입구. 600년 조선왕조의 역사가 서려있는 이곳은 방금 지나쳐온 대로변의 번잡함과는 사뭇 다르다.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왕릉 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울창한 가로수 길을 얼마쯤 달리다보면 또 하나의 별천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고려분재연구원, 지난 1979년부터 이곳에서 분재를 키우고 있는 정한원 원장의 작업 공간이다. 정한원 원장은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원예학과 연구과정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 원예학과 분재학 강사, 국방대학원 최고 경영자과정(장성반) 분재학강사, 국방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장성반)분재학강사, 농촌진흥청 분재반 전임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암 원예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30여 년 분재를 키우고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분재문화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집집마다 분재를 즐기던
일본 오오미야 현 분재촌에서 감명 받아
정한원 원장은 원예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분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공을 살려 원예연구 관련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부직포를 이용한 재배방법의 연구 성과가 좋아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지요. 그곳에서 오오미야 현이라는 집성촌을 가게 됐는데 이곳이 일본의 유명한 분재촌이었어요. 일본의 집들이 다 공간이 작잖아요. 그런데 집집마다 그 작은 공간에 분재를 가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70대 노부부가 클래식을 틀어놓고 함께 분재를 가꾸고 있는 모습에 나도 노후에 분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분재와의 인연은 1979년 지금의 자리에 분재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우연히 서삼릉 앞에 왔다가 도심과 멀지 않은 곳임에도 자연친화적인 분위기가 맘에 들어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았다는 정 원장. 처음엔 임대로 땅을 빌려 분재를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작정 좋아서 하나 둘 가꾸고 모은 분재들이 제법 늘어나고 분재원이 모양을 잡아가면서 한참 재미를 느낄 무렵,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수해로 아끼고 아끼던 분재들이 떠내려 가버린 것. 정 원장은 오히려 그 때 그 일이 더 심기일전, 자리를 잡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 차례 홍역을 앓고 나선 더 열심히 분재를 가꾸고 연구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분재를 배우겠다는 사람도 하나둘 늘어나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터를 늘려 지금의 고려분재연구원이 됐습니다.”
34년 전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접을 정도로 젊은 청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분재,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우리가 사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계절 자연을 마음껏 들이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분재지요. 작은 분 안에 나무를 키워 자기가 바라는 자연의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은 어느 것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예요. 무엇보다 끈기의 결정체라고 할까. 그래서 더 애착이 가고 하루하루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소자연의 모습을 갖춰져 갈 때 감상의 재미가 대단합니다.”
정 원장은 그래서 분재가 인고의 작업이지만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힐링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4계절 小자연을 감상할 수 있어
고려분재연구원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다양한 분재에 감탄을 한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분부터 꽤 큰 지름을 자랑하는 분까지 진경산수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소자연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분재의 대표주자는 역시 송백류,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와 향나무는 분재의 영원한 인기 소재로 꼽힌다. 최근에는 분재인구가 젊은 세대로 확대대면서 집안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상화분재(꽃을 피우는 분재)와 상과분재(열매를 맺는 분재)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그중에서도 수종이 1500여 종이나 되는 철쭉이 단연 인기라고 한다.
정한원 원장은 “작은 공간에 소우주를 담은 모습에 매료되어 우선 보기 좋고 큰 작품부터 시작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분재 하면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도 있어요. 욕심을 내는 사람은 우선 가격이 저렴한 소품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고, 또 분재 가치에 따라 억대가 넘은 작품들이 많다보니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싼 것이라고 자신이 가꾸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덧붙여 분재 초보자들은 우선 자연 수목에 대한 관찰력을 길러보라고 조언한다. 가로수, 공원, 산야에서 늘 접하는 나무들에 대한 관찰력을 가지고 이를 분재형으로 대입시켜 보는 것이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장노년층의 취미라고 많이 인식되어왔지만 요즘은 가족단위의 수강생도 많고 점차 젊은 층에서 분재를 배우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정 원장. “분재를 키우다보면 자연과 가까이 하게 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이 분재를 가까이 하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요. 수강생들 중에는 주부들도 많은데 자신이 정성을 쏟은 만큼 보답하는 분재에 마음이 치유된다고 해요.”
정 원장은 특히 소재의 선택, 번식법 분재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면서도 확실한 정보를 제시하는 강의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정 원장의 분재의 월별관리에 따른 수종별 관리와 분재 기술의 체계적인 학문과 기술개발은 자격검정을 통해 상호연구 보완하여 정립할 기회를 갖게 됐으며, 취미반부터 국가공인 분재전문관리사 과정까지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또 자연과 분재 (오성출판사), 자연과 난 (오성출판사), 동양란 도감 (오성출판사), 분재 전문 관리사 (예가), 자연과 산야초 등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내는 바쁜 와중에도 정 원장은 전국각지에서 콜렉션을 감상하러 오는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www.고려원예.com 수강문의 02-385-2937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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