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다보면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로 열림을 느낍니다”

희귀시집 콜렉터 김경식 시인

지역내일 2013-08-31

주엽동에 위치한 김경식 시인의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책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최소한의 생활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짜 넣은 서가에 잘 정리된 책들,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책장 뒤에 또 책장이 숨어 있고 바닥에 차곡차곡 싸놓은 책까지 이곳에 있는 것만 1만 5000여 권이란다. 이중에서 시집은 7~8천여 권, 그 중에서도 희귀시집은 600여 권 가량이다. 희귀시집 중에서도 시인이 더 애정을 갖는 것은 무명작가들의 시집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 심지어 가족들마저 버리는 시집을 누군가는 간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김경식 시인. 자신이 시를 쓰다 보니 특별히 시집에 애착이 가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잊고 지낸 무명작가들의 발자취가 곧 문학의 역사이며 생의 지침이 되기 때문”이라는 시인을 만나보았다. 


-생애 처음 산 시집은 김소월의 포켓 시집
김경식 시인이 생애 처음 산 시집은 김소월의 포켓 시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에 충주에 있는 서점에서 시집을 샀다.
“슬픔과 충격에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왜 시집을 샀는지 모르겠어요. 60리 길을 걸어오면서 그 시집의 시를 암송하다보니 슬픔이 정화가 되고 마음이 좀 진정이 되는 걸 느꼈어요. 그때 시에는 슬픔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고, 어린 마음에 아 나도 김소월처럼 감동을 주면서도 쉬운 시를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지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시인은 이태준, 홍명희 등에 관심이 많아 이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 다녔고, 군 제대 후 1988년에 고서연구회 회원이 됐다.
“고서연구회 회원이 되면서 필요에 의해 책들을 모으게 됐는데 처음에는 오래되고 값이 나가는 책들만 소중하고 귀한 것인 줄 알고 수집했지요. 그러다 누구나 관심을 갖는 것을 수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지만 꼭 필요한 무명시인들의 시집에 애정이 가더군요.”  일제와 6.25전쟁 등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먹고 사는 것이 급급했던 1940~50년대에도 시를 쓰고 시집을 낸 무명시인들.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 국문학사에 당당하게 기록되어야 작가들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1950년~1970년 대 이전의 시집에 애착이 가

“역사의 격랑기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고 시집을 냈던 작가들, 사실 그들의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1970년 대 이전에는 시를 발표할 지면도 거의 없었고 책을 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 평론가들과 친하지 않은(?) 시인들은 독자들에게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해 무명시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무명이라는 이유로 묻혀 있을 수밖에 없던 이들이 많습니다. 또 사후에도 유족들조차 시집을 갖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들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슬프죠.”
일본은 책이 출판되는 순간 자동 등록돼 누가 어떤 책을 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무명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는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체계가 없다보니 지금도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은 알려지지만 무명인들의 출판물은 국립도서관에조차 남아 있지 않는 실정이다.
김경식 시인이 희귀 시집과 시 관련 책에 천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시 관련 책들은 모두 2만 여 권, 1만 5000여 권은 시인의 집에 나머지 5천 권은 충북 괴산의 고향집에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소장하려면 경제적인 지출도 만만치 않았을 터. “다행히 아내도 책을 좋아하고 이해해줍니다. 경제적인 지출도 그렇지만 책을 보관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생활공간을 침해한 것(?)도 이해해주고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힘이 크지요.”


-시 관련 자료관을 마련해 시를 좋아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만 특별히 시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1927년 무명인이 동아일보 문예관련 기사를 손수 오리고 붙여 스크랩한 것이라고. 스크랩한 기사는 멀쩡하지만 오린 기사를 붙인 바탕 종이는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이 스크랩북은 한국 스크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꼼꼼하게 기사를 오려 줄 하나 어긋남 없이 붙여 자세히 보아야 스크랩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이걸 읽다보면 1927년에 있었던 국내 크고 작은 사건들이며 그 시대의 맞춤법, 또 문예관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역사서나 다름없지요.”
희귀시집을 모으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황금찬 시인의 사인이 있는 황 시인의 첫 시집은 시인 자신도 우여곡절로 인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반가워한 적도 있고요. 이용악 시인이 1949년에 낸 시집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이 시인이 됐는데 그분이 바로 신경림 시인입니다. 한하운 시인이 1953년에 낸 이 시집을 길에서 어떤 사람이 주워 읽고 감동받은 나머지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해 시인이 됐는데 그분이 고은 시인이에요. 언젠간 지인이 집에 들렀다 서가에 꽂힌 시집을 보고 돌아가신 외삼촌의 시집이라고. 정작 가족들은 갖고 있지 않은 시집을 여기서 본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감동한 적도 있어요.(웃음)”
김경식 시인의 꿈은 앞으로 책들을 충분히 모아 시 관련 자료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동안 모은 책들은 이제 제 개인의 소유물만은 아닙니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역사적 자료고 또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계획도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습니다.” 고향 괴산에 있는 고향집은 그의 계획대로 20년 넘게 진행해 온 ‘역사가 있는 문학기행’과 자료관을 위한 공간으로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혼자 걸으면 길이고, 여럿이 걸으면 역사다." 라고 합니다.
잊고 지내던 작가의 고향과 작품을 훑어보면서
때로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로 열림을 느끼곤 합니다.
그분들의 발자취가 곧 역사이며 생의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호젓하게, 혹은 여럿이 함께 머리를 맑게 비워 떠나는 기행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김경식 시인은

1960년 충북 괴산 출생으로 문학과 역사, 지리를 집중 탐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5년부터 역사가 있는 문학기행을 시작했으며, 학교 및 단체에서 수백 회의 문학기행을 진행했다.
김경식의 문학기행은 ‘움직이는 학교’로서의 진행방식으로 역사와 지리를 아우르며, 삶의 실천적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행으로 유명하다. 저서로 시집「논둑길 걸으며」외 다수가 있으며, 중학교 1학년 2학기 개정판 국어 교과서(지학사)에 문학기행「이병기 시인을 찾아서」가 게재됐다. 현재 한국시문학연구소 소장과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김경식의 역사문학기행 일정과 신청은 http://cafe.daum.net/khtrip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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