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큼 밀당이 심한 계절이 있을까요? 이쯤하면 됐겠지 싶어 두툼한 옷을 싹 정리하고 나면 약 올리듯 찬바람이 불어요. 그러기를 반복하다 어느 날 오후, 따뜻한 햇살에 산책하러 나섰다가 문득 보도블록 틈에 피어난 작은 꽃을 보았을 때. 봄은 이미 우리를 앞질러 있다는 걸 알게 되고는 합니다.
독자 분들은 어떨 때 봄을 느끼시나요? 아니 아직 겨울 끄트머리에 머물고 계시는 건 아니죠?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이번 달 Talk에서 들려드립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고양하나로클럽 화훼공판장에서 만난 사람들
집안 환해지는 화분 들이러 왔지요
고양하나로클럽 화훼공판장은 다육식물 관엽화분 동·서양난 생화와 꽃바구니 까지 도매가격에 판매하는 곳이다. 사시사철 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봄이면 꽃 화분을 사기 위해 특히 사람들이 몰린다.
생화 매장에서 교하에 사는 송지영 씨를 만났다. 송 씨는 “병원에 입원한 지인에게 프리지아 바구니를 선물하려고 왔다. 평소에도 꽃 선물할 일이 있으면 화훼공판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직원 박소현 씨는 “요즘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꽃은 라넌큘러스다. 선물하기에는 카라도 좋다. 남자들은 파스텔톤보다 장미처럼 선명하고 화사한 꽃을 좋아한다”고 조언했다. 박 씨는 “진한 향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면 나리꽃 종류가 좋으며 달콤한 향의 스토크도 좋다. 병원에는 향이 진하지 않은 꽃이 좋은데 요즘은 꽃이 개량돼서 알이 굵고 큰 반면 향은 줄었다”고 말했다.
발길을 돌려 푸릇푸릇한 관엽화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봄에만 나온다는 수선화 종이꽃 랜디 프리지아 깜빠눌라 백일홍이 화사해 눈길을 끌었다.
아리화 직원인 문명옥 씨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봄꽃으로 랜디를 추천했다. 문 씨는 “랜디는 값이 저렴하면서 제라늄처럼 사계절 피고 지면서 꽃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문씨는 또 “작년 3월에는 화장실에도 뛰어서 다녀올 만큼 바빴는데 올해는 지난해의 반도 안 나간다. 엄청난 불경기라는 걸 느낀다”며 안타까워했다.
운정신도시에 사는 김은호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중년 여성은 “현관에 놓을 꽃을 보러 왔는데 다 갖다 놓고 싶을 만큼 너무 예쁘다”면서 “아무것도 없는 흙에서 노란 꽃 빨간 꽃이 나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웃었다. 꽃처럼 환하게.
>>>광양/구례로 봄꽃 여행 다녀온 이유미 씨
매화랑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어요
김포 한강신도시에 사는 주부 이유미 씨는 지난 3월 16일 남편 강대일 씨와 봄꽃 여행을 다녀왔다. 광양 매화축제와 화개장터를 거쳐 구례산수유축제를 하루 만에 돌아보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새벽 5시 50분에 마두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 광양에 도착. 하지만 너무 이른 여행이었을까. 봄꽃들은 아직 20%밖에 피지 않은 상태였다. 광양 청매실농원으로 가는 언덕에도 매화나무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매화가 피고 있는 언덕길에는 꽃구경 말고도 볼거리가 많았다. 봄나물과 농산물이며 매화나무 묘목도 부부의 눈길을 끌었다. 청매실농원의 돌담길을 걸으며 초가집 옆에 핀 매화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매실비빔밥에 매실막걸리로 배를 채운 후 매실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 하고 화개장터를 향해 떠났다.
화개장터는 광양매화축제 장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얼마 전 화재로 일부만 복구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리산에서 캐서 말린 곤드레나물과 취나물을 사고 아담한 화개장터를 돌아보며 주어진 시간 40분을 보낸 다음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구례로 향했다. 산수유축제는 3월 22일부터 열리는 지라 산수유도 피어난 꽃보다는 꽃망울이 더 많았다. 구례 산수유축제 장소에는 공원이 크게 조성되어 있어서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좋았다.
이 씨는 “꽃이 조금이라 아쉬웠지만 평소보다 빨리 봄이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류회사에서 일했던 이 씨는 2세를 갖기 위해 휴직 중이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캠핑부터 자연 체험까지 두루 다닐 계획이라고.
이들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을 떠난다. 사진 촬영이 취미인 부부는 여행지에 갈 때마다 발 사진을 남긴다. 그렇게 찍어둔 발 사진을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블로그 ‘말랑한 일상의 기록(http://blog.naver.com/yuum21)''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다.
>>>원마운트 쇼핑몰에서 만난 사람들
꽃무늬 원피스 하나면 나도 봄 처녀
양말을 한 짝씩만 훔쳐가는 요정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옷장 속에 옷을 훔쳐가는 요정이 살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원마운트 쇼핑몰에 봄 옷 구경을 하러 가던 날 떠오른 엉뚱한 생각이다.
원마운트 매직몰 1층에는 보세옷 매장이 모여 있는데 계절에 맞춘 옷들이 발 빠르게 진열되고 있다. 매장에서 만난 중산동 양향선 씨는 “봄이라 밝고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구경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양 씨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여성의류 매장 ‘JJ스튜디오’로 화사한 봄옷들이 가득했다. 지난겨울에는 체형보다 크게 입는 오버핏이 유행이었다. 올 봄에는 어떤 옷이 패션 피플을 사로잡을까.
직원 임혜경 씨는 “요즘은 화사한 컬러와 꽃무늬 패턴이 많다. 봄에는 황사도 있고 겨울에서 넘어가는 계절이라 스카프로 코디해주면 좋다”고 말했다. 임 씨는 또 “무난한 차림에는 작고 귀여운 크로스백이나 스카프로 화사하게 포인트를 주어도 좋다. 요즘은 연령을 떠나 백팩도 많이 매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바람에 날아갈 듯 얇고 가벼운 파스텔 톤의 스카프와 꽃무늬 원피스를 보니 마음 속 어딘가에서 봄 처녀가 살아나는 듯 했다. 망설이는 사이 봄은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때 이른 여름이 오기 전에 마음 속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봄 옷 한 벌 장만해보면 어떨까.
>>> 전원주택 텃밭 가꾸는 성석동 이정미 씨
마당에서 키우는 푸성귀로 봄의 생명력 느껴요
이정미 씨는 2년 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전원주택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마당 한 귀퉁이를 일궈 텃밭 농사도 처음으로 지어보게 됐다.
원래 소나무가 살던 땅에 지은 집이라 첫 해에는 농사가 잘 안됐다. 소나무가 자라는 땅은 산성이라 흙의 성질을 바꿔줘야 했다. 신희수(13), 현수(9) 남매와 함께 살게 된 강아지 백수가 많은 도움을 줬다. 개똥에 과일 껍질과 EM용액을 섞어 비료로 만들어 뿌려주니 지난 해에는 제법 농사가 잘됐다.
지난해 가을 김장 무와 배추를 거둬들이면서 남은 쌈채소들을 위해 이 씨는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씌워뒀다. 겨우내 한두 번 살핀 게 다였을 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황사와 봄비가 지나간 지난 3월 중순 무렵, 봄 햇살이 따스해 바람 한 번 씌워주겠다고 비닐을 열어 본 이 씨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작은 공간 안에서 쌈채소는 파릇파릇한 잎을 달고 싱싱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기대 이상의 성장을 보고 순간 뭉클하기까지 했어요. 어떤 녀석은 죽어 있었고, 잎은 죽었지만 뿌리가 살아남아 자식을 여럿 키워낸 녀석도 있었지요. 모질게 버텨서 오롯이 제 몸을 건사해 낸 녀석까지 참 다양했어요.”
깨끗하게 솎아주고 나니 그나마 죄책감이 사라졌다. 하우스 밖에 씨앗으로 살던 부추 쪽파 대파도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봄이 왔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겨우내 버텨내고 저에게 첫 수확을 허락해 준 채소들에게 감사하면서 최소한의 양념으로 푸성귀를 무쳐 소믈리에가 최고의 와인을 음미하듯 향과 맛, 식감까지 온전히 즐겨 주리라 다짐했어요.”
이처럼 이정미 씨에게 봄은 마당에 가꾼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선물처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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