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고

국화가 가을에 핀다고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지역내일 2018-03-08

독서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꿀 수 있다. 독서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세종대왕, 이덕무, 김득신, 신속, 링컨, 처칠, 마가렛 대처 등이 그랬다. 그들은 비범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집안이 가난하다거나, 병약하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장자가 아니어서 왕이 될 수 없는 불운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농학자였던 신속(申洬)의 일화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신속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큰아버지댁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신속은 건강하게 잘 자랐으나 어찌된 일인지 배우는 속도는 자신의 이름처럼 신속하지 못했다. 신속은 무엇이든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느린 아이여서 걸음마도 늦고 두 돌이 지나서야 겨우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일곱 살이 되자 서당에 다니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책을 줄줄 외울 때, 그는 반도 외우지 못해 훈장님께 야단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신속의 큰어머니는 신속의 머리가 나빠 뭔가 이루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아이가 아닐까 싶어 신속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조카들 중 똑똑한 아이를 다시 데려와 양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그런 뜻을 내비친 아내에게 “민들레와 국화 모두 노란색이지만 민들레는 봄에 꽃을 피우고, 국화는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지 않소? 하지만 아무도 국화에게 봄에 꽃을 피우라고 억지 부리지 않습니다. 빠른 아이가 있으면 느린 아이도 있기 마련이니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어머니는 신속보다 두 살이나 나이가 어린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며 신속은 머리가 나빠 가문을 책임지지 못할 거라고 했다. 큰아버지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말이 씨가 되니 아이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내가 걱정하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오. 마음을 제대로 다듬지 못한 머리 좋은 자가 권력을 가질 때 나라가 얼마나 어지러웠는지 모르시오? 속이가 비록 배우는 속도는 느리지만 올바른 마음을 가진 아이라 나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속은 자신이 느림을 알고 있었으나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사람이었다. ‘남이 한 번 할 때 나는 백 번 한다’는 글을 써서 벽에 붙여놓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반복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흔다섯 살이 되었을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옥천 현감, 영천군수, 공주목사와 청주목사, 서원현감 등을 역임했다. 게다가 끼니를 걱정하며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위해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200년 전에 씌어진 『농사직설』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새로운 내용을 덧붙여 『농가집성』을 완성한다. 신속이 쓴 『농가집성』은 농법 백과사전인데 특용작물과 이앙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어 조선의 농업기술을 한층 끌어 올린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속의 아버지가 조급함 때문에 신속의 ‘느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려보냈거나 신속이 자신의 ‘느림’을 극복하기 위해 독서를 반복하지 않았더라면 『농가집성』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농가집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200년 전의 농법만을 고수한 조선은 이앙법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조선후기의 경제발전과 서민문화 발전이 더욱 더디지는 않았을까?

신속의 일화는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의 교육환경과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새학기가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지, 공부는 제대로 잘 할지 많은 걱정들을 한다. 그러한 걱정들은 다시 마음을 조급해지게 만들고 학교와 학원의 일정을 조정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데 필요한 시간을 주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제 다가올 봄, 길가에 피어날 민들레를 보며 가을에 필 국화를 기다려 볼 일이다.


박은경의 파워독서
박은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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