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7

고양시 첫 중국어 통·번역사 원유문씨

동병상련의 고충, 마음까지 헤아리는 통·번역사 될 터

지역내일 2009-04-24

익숙하고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만나는 것, 그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도 해도 기대와 걱정이 교차되기 마련이다.
지난 3월 16일 보건복지가족부 다문화가족 취업지원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다문화연구센터의 면접을 거쳐 고양시 첫 통·번역사로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취업한 조선족 원유문(37)씨.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적극적인 도전정신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당찬 ‘我줌마’다.
하지만 늘 붙어 다니는 ‘조선족 이주여성’이란 꼬리표는 중국에서 잘나가던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득보다는 걸림돌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스스로를 위해, 또 그동안 도와준 한국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던 바람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그를 고양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났다.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한국에 정착하다
원유문씨는 1972년 중국 하얼빈시 도리구에서 태어났다.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와 탄탄한 직장을 가진 어머니 덕분에 그는 중국에서 방 5개짜리 아파트에서 풍족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그런 생활도 그가 다섯 살 무렵 끝이 났다.
딸만 일곱이던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이 온 몸에 혹과 고름이 들어차는 병을 안고 태어나는 바람에 그의 부모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을 전전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닥친 시련 앞에 속이 상할 때마다 수학문제를 풀며 마음을 달랬다는 원유문씨.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영하 30도의 강추위에도 마당에 나가 수학문제를 풀 정도로 오기와 근성 강한 아이였던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여러 번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1996년 산동성 연태사범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하북성 천진시에서 중국업체와 한국무역상들을 연계하는 가이드로 매월 3만~4만원(한화 500만~600만원)을 버는 전문직 여성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고소득자로 중국에서 얼마든지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원유문씨가 1999년 중국을 떠나 한국에서 정착한 이유는 뭘까?
“4년여 열심히 성심성의껏 가이드 생활을 했더니 한국무역상들이 성실하다고 생각했나봅니다. 한국에 초청하기에 고민은 잠시 한국에서 정착하고 싶었어요.”
중국에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그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의 능력만큼 발전하고 인정받는”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가이드 시절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도 여러 번 다녀봤지만 같은 동족이라는 끌림, 편안함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이 더 자유롭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정착한 후 2001년 신림동에 작은 양꼬치구이 식당을 냈다. 가게는 다행히 번창했고 한국에 와서야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에게 주변 한국인들은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다. 모로코인 남편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2005년 결혼하면서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 해 여름 강릉으로 여름휴가를 가던 중 자동차 사고로 수 천만 원의 합의금을 물어주어야 했기 때문. 그 때문에 그가 운영하던 가게도 헐값에 넘겼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일산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전업주부로 지냈다.

언젠가는 내 일을 갖겠다는 꿈 포기한 적 없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늘 잊은 적 없지만 나고 자란 중국보다 낯선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을 때 두려움이 왜 없었겠느냐는 원씨는 “두려움보다 내 삶을 의지대로 개척해나가고 싶은 포부”가 더 강했던 만큼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언젠가 하게 될 일을 위해 자기계발을 늦추지 않았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호수공원에서 열린 센터 행사에 참여하게 된 원씨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를 눈여겨본 김희진 고양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팀장에게 중국어 통·번역사 제의를 받고 고양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른 조선족 여성들에 비해 한국에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지만 완전한 한국인으로 정착하는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꼈던 적이 많습니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모로코인 남편과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크고 작은 오해와 불신으로 고민했던 적도 많고요. 그런 경험들이 이주여성들과 가족 간의 간극을 좁히고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원유문씨는 이주여성들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센터 등을 찾아 빨리 정착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도 피곤한 줄 모를 정도로 즐겁고 행복합니다.” 한국에서 얻은 첫 직장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원유문씨. 한국에 정착하면서 그가 가졌던 꿈은 이제야 첫 포문을 연 셈이지만 아직도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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