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계의 신화가 된 남자

강남사람들-‘박준뷰티랩’ 박준 회장

지역내일 2010-03-09 (수정 2010-03-09 오전 10:34:17)



우리나라 미용계에 브랜드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입증한 미용인 박준. 무엇을 하든 처음일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늘 외롭지만 새롭고 역동적인 그의 열정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돼 왔다. 이제는 미용인이기보다 성공한 사업가로 우뚝 선 그는 하루 24시간을 쪼개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25년 전 그가 명동에 ‘박준미용타운’을 처음 개업할 당시 인터뷰로 인연을 맺었고, 10년 전 청담동 그의 일터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적이 있다. 미용 아티스트의 소박한 꿈을 꾸었던 청년은 어느덧 미용계의 신화적 CEO로 성장했지만, 유난히 사람을 좋아했던 그의 인간적인 성품과 낙천적인 여유로움은 변하지 않은 채 오히려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금남의 영역에 도전한 끈기와 인내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험심이 강한 용기 있는 소년이었다. 가난했던 집안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자 과감히 서울행을 감행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막 스물한 살이 된 청년이 스스로의 운명을 찾아 종로의 어느 미용실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일을 거쳐야 했다. 그 당시엔 남자 미용사는커녕 남자가 미용실에 들어간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종로에 나갔던 청년은 우연히 미용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저런 일이라면 내 적성에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흘 동안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마침 김옥진 원장(전 YMCA 미용실)은 남성 헤어디자이너들의 활동이 자연스러운 외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박준 회장은 인생의 은인이자 스승인 김 원장을 만나면서 미용인으로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게 된다. 낮에는 미용실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주경야독의 고달픈 생활을 이어갔지만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남자미용사를 기피하는 손님들의 편견이었다. 박 회장은 “역경이야 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그 당시를 회고한다.


1할의 행운과 9할의 노력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미용계에 입문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는 8년 만에 뉴욕세계미용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3위에 입상한 후, 30대에 자신의 이름을 건 ‘박준미용타운’을 명동에 오픈하면서 전문미용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금남의 구역이나 다름없던 미용계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그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준 일터를 만난 1할의 행운이 있었다면 보란 듯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9할의 끈질긴 노력이 오늘의 박준 회장을 만든 원동력이다.

그 후 미스 유니버스, 각 방송사 슈퍼탤런트 대회 등을 협찬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1989년에는 강남구 청담동에 사옥을 지으면서 ‘박준미장’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5년에는 피엔제이(주) 법인을 설립하여 두발에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고 미용재료 등의 국산화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최근에는 친환경 창포 제품들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헤어 아티스트의 선구자였던 박 회장은 새로운 커트 기술의 구축, 헤어스타일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남성전용미용실, 유니섹스 살롱 오픈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세우면서 이 시대를 리드해 왔다.


살아있는 한 도전은 계속 된다
하지만 박 회장은 90년대 중반, 외국계 살롱 체인의 국내시장 진출이라는 위기와 도전에 맞서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게 된다. 미용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기술력이라는 취지아래 1998년 ‘박준 뷰티아카데미’를 개원해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등 각 분야에서 실력을 갖춘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배출된 박준 사단은 15년 전 ‘박준미장’ 상계점 첫 오픈을 시작으로 오늘날 미국 주요도시와 런던, 파리, 필리핀 등 국내외에 230여 곳의 프랜차이즈 점을 운영하는 밑받침이 되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안목과 미래의 트렌드를 습득하고자 2년 반 동안 영국 등 해외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수준 높은 고객 서비스와 전문미용인 양성교육 및 다양한 미용제품 개발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면서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온 그도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군 제대 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학업중인 아들, 프랑스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딸과 30여 년간 박 회장과 함께하며 소리 없이 동참해준 아내(임승애·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건강도 돌봐가면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쑥스러운 듯 말한다. 한때 건강에 적신호가 왔었다는 박 회장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술자리도 줄여야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한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사진 박경섭(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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