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 시각장애인 안마사 이창환 씨

손끝 감각으로 살아가는 제2의 인생

지역내일 2010-08-22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 힘들다. 더구나 정상인으로 살아오다 불의의 사고 혹은 병으로 인해 찾아든 신체장애는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 특히,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의 빛과 모습을 담지 못하는 것만큼 암담한 현실은 없을 것이다.


  신천역 인근에서 지압원을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이창환 씨는 10년 전부터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차츰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상태는 코앞에 있는 사물만 흐릿하게 판별할 수 있는 정도.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2년여의 노력 끝에 국가공인 안마사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차츰 시력을 잃을 것입니다


  이창환 씨(잠실동․51)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청과도매업을 하며 왕성한 경제활동을 했다. 이미 10년 전에 ‘망막세포가 서서히 죽어가서 차츰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병원의 판정을 받았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동안 더욱 열심히 일했다.


  “병명을 알았을 때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죠. 창피하기도 했고 믿겨지지 않아서 눈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자꾸 혼자서 주문을 외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진짜 시야가 좁아지는 거예요. 급기야 5년 전부터는 급격하게 나빠졌고요.”


  좋은 과일을 확보하기위해 매일 참여하는 경매장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할 수 없으니 손해 보기 십상이었다.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물건을 비싸게 사게 되고, 좋은 물건은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난처한 일도 생겼고 부딪치거나 넘어져서 다치는 일도 자꾸 생겼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안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면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인소개로 안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안마사로 나선 길


  대한안마사협회에서 2년의 시간을 투자해 안마기술을 배웠다. 단순히 안마, 지압 등의 기술 뿐 아니라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한방, 물리치료, 침, 경혈 등의 전문 과목을 접했다. 몸을 주무르는 기술이 안마라고 생각했지만 인체의 기혈, 경락 등과 연관시켜 전문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안마였다. 늘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전신을 주무르고 쓸고, 누르고, 떨고, 두드리고, 잡아당기고, 운동을 시켜주는 여러 손기술을 습득했다. 물론 처음 배울 때는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의 고통이 뒤따랐다. 이 씨는 “지금이야 손가락이 단단해져서 단련됐다. 기술, 요령이 생기니까 힘들지 않다”고 웃음 지었다.


  사실 안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이 씨처럼 정통 안마사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크다.


  “안마하면 우선 퇴폐적인 이미지가 많아서 생각처럼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요. 중국이나 태국에서는 안마가 전통 마사지로 인식되어 있어서 우리 한국 사람들도 관광을 가면 꼭 들리는 코스지요. 우리 국가공인 안마사들도 그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췄지만 사회적 인식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간혹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들에게 거리감을 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안마를 받아보면 이런 생각은 달아난다. 이 씨는 “시각장애인들은 촉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근육이 작게 뭉친 것들도 세세하게 잡아낼 수 있어서 효과가 크다”면서 “안마는 피의 흐름을 빠르게 해줘 근육에 있는 노폐물을 없애 몸의 기운을 좋게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민들의 건강에 일조하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꿈꾸는 마라토너


  이 씨는 시력을 잃으면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마라톤이다.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5년 전부터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1년에 풀코스 2회, 하프코스 15회 정도 참가한다. 그동안 받은 완주메달도 상당하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출전하게 되요. 긴 끈을 서로의 팔에 한쪽씩 묶어서 달리는데 둔턱이나 장애물들이 보이면 끈으로 신호를 줘요.”


  물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감수하며 기나긴 코스를 달리는 과정은 힘들다. 하지만 뛰면서 과거의 시간을 추억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는 “완주한 후 느끼는 성취감이 힘든 과정을 잊게 한다. 또한 완주한 후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컵과 빵 1개의 맛은 꿀맛이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는 11월에 있을 중앙마라톤대회에 풀코스 출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매일 새벽이면 1시간 남짓 대학 캠퍼스를 달린다. 비록 눈이 불편하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날갯짓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