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문화인물 _ 백창우 씨

지역내일 2010-10-18
“동요를 만들고 부를 때, 가장 착해지는 순간이지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아이들이 끼적거린 글이나 내뱉은 말을 노래로 만든다는 생각 말이다. 백창우 씨는 되묻고 있다. 삶이 노래가 되고 아이들의 말이 음악이랑 친구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고. 지난 7일, 주인을 닮은 풍산개가 느릿느릿 마루를 걸어 다니는 출판단지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외롭던 어린 시절 흥얼거리던 가락이 노래로
 작은 도서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책이 많은 작업실 한쪽에는 개와 관련된 책, 영화 테이프, 사진 따위가 가득 꽂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에도 강아지 스누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개와 책을 아주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의 부모님은 이북이 고향이다. 6.25 무렵 잠시 내려왔다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양평, 상계동, 성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한 곳을 빼고는 1년 넘게 산 곳이 없을 만큼 이사가 잦았다. 늘 낯선 마을에서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을 만나야 했다.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했죠. 사람을 새로 사귀고 적응할 때 까지는 책을 읽고 개랑 같이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흥얼거린 것들이 노래가 됐죠.”
어린 시절에는 늘 노래를 불렀다. 재미있는 일을 따라 살다보니 노래 만드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여러 노래를 만들었는데 동요가 가장 재밌어요. 동요를 만들 때 제가 제일 착해져요.”
착해진다는 건 순해진다는 뜻일까. 그가 ‘가장 착해질 때’ 만든 노래들은 몸과 마음에도 순하게 와서 안긴다. 

소는 들어도 못들은 척 하고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소는 가슴속에 하늘을, 하늘을 담고 다닌다
「권정생 노래상자」에 실린 ‘소는 가슴속에 하늘을 담고 다닌다’ 가운데서.

슬픈 노래에는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 깃들어 있다
그는 어린이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요를 ‘어린이들만의 노래’로 만들지 않았다. 얼마 전 내놓은 노래집 「이오덕 노래상자」, 「권정생 노래상자」, 「임길택 노래상자」 (보리출판사)에 ‘동요집’이 아닌 ‘노래상자’라는 이름을 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는 ‘따오기’, ‘오빠생각’ 같은 노래를 어머니한테 들었어요. 동요는 삶이 팍팍한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노래예요. 어떤 어른도 동요를 부를 때 표정이 악해지는 경우가 없었어요. 어린 시절 살던 우물이 있는 집, 뛰어 놀던 골목으로 마음이 달려가는 거예요.”
그의 노래에는 ‘외로웠던 어린 백창우’의 감성이 깃들어 있다. 1999년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집을 만들었을 때도 출판사 관계자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이렇게 슬픈 노래를 누가 듣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음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노래집「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에 실린 15분짜리 긴 노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3주년을 맞는 행사에서 불렀을 때 한 아이가 와서 “이 노래 너무 슬프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긴 노래, 어려운 노래, 슬픈 노래는 아이들은 안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른들의 편견이라고 말했다.
“감성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기쁜 결, 슬픈 결, 외로운 결이 다 있어요. 슬픔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는 슬픔을 이겨낼 힘도 없어요. 밝고 환한 곳에만 있는 아이가 어두운 곳에 가면 길을 잃게 돼요.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큰 벽 앞에 서게 될 때 어떻겠어요? 우리 교육에서는 (삶의) 어두운 면을 너무 안 보여주고 있어요.”

22일부터 아시아출판센터에서 ‘이태수 백창우의 조금 별난 전시회’ 열어
 그는 앞으로도 어린이들 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의 글과 말로 노래를 만드는 일이다.「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에 실린 ‘비오는 날’이라는 노래 가사는 두 줄이다. 여섯 살 난 어린이가 한 말을 유치원 선생님이 받아 적은 것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인 것이다.
“‘오늘은 해님 안 떠요. 비 오는 날이에요’ 두 줄이어도 노래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아이들 말이나 글에 노래를 붙이는 일을 더 하고 싶어요.”
하고픈 일은 또 있다. 그가 ‘어린이 음악 놀이터’라 이름 붙인 박물관 겸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다. 자연 가까운 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와서 놀고 산책하며 노래를 바탕으로 쉴 수 있는 곳으로 구상하고 있다.
놀이터를 만들 꿈으로 한 발짝 내딛는 연습일까. 오는 22일부터 2011년 4월 말까지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아시아 출판센터에서 생태세밀화가 이태수 씨와 함께 전시회를 연다. <이태수 백창우의 조금 별난 전시회>로 ‘노래편지와 자연그림’을 선보이는 자리다. 두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 악보 스케치한 초고와 원고에 손 글씨로 쓴 편지들, 지금껏 모아온 캐릭터들을 전시한다.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음악방, 어린이 놀이방도 마련한다. 이태수 작가와 함께 작업한 노래집 「우리 반 여름이」의 그림과 악보 전시, 두 작가의 사진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가 구상하는 ‘어린이 음악 놀이터’와 이번 전시회를 설명하는 내내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신나는 일을 앞두고 있는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고 할까. 만나보니 그가 아이 마음속에 들어가 있는 듯 노래를 만드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어린이를 위해서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어린아이가 노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백창우는...
1980년대 중반 포크그룹 「노래마을」을 이끌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등의 곡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하다. 어린이음반사 「삽살개」,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 어린이」를 이끌고 있다. 1995년부터 전래동요를 비롯해 이원수, 이문구, 백창우 등의 시에 노래를 붙였다. 태교 노래, 자장노래, 놀이노래 등 그의 노래들은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폭넓게 사랑받았다. 2005년에는 윤동주, 한용운, 김소월 같은 근현대 대표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든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우리교육)를 음반을 냈다. 얼마전 노래 112곡을 담은「이오덕 노래상자」, 「권정생 노래상자」, 「임길택 노래상자」 (보리출판사)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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