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컬럼

기다림의 미학 - 부모에게도 롤 모델이 필요하다.

지역내일 2010-12-19

제법 바람이 겨울 흉내를 내고 있다. 아이들이 올 때를 맞춰 따뜻하게 강의실을 덥혀 놓는다.
며칠 전 상담으로 방문을 한 모자(母子)의 모습이 떠오른다. 들어올 때의 모습과 돌아갈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른 두 사람. 들어올 때 어두운 표정을 했던 사람은 이제 중3으로 올라간다는 현수(가명). 그러나 나갈 때 현수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웃는 표정 때문인지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이제 막 시험을 끝내고 정오표가 나온 후 한바탕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주요과목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국어, 영어, 과학, 논술, 그리고 수학은 학원과 과외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점수가 가장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어머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판이다. ''아들이니까 이공계 쪽이 낫겠다 싶어요. 대학가기도 쉬울 것 같고요. 그런데 얘가 수학 점수가 안 오르네요.'' 어머니의 짐작으로는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가 공부법을 잘 몰라서나, 시간 관리를 못 해서일거라며 목표가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들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답답하기도 하며 한심하기도 하신가보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어머니는 이미 진단의 결과를 족집게처럼 다 아시는 듯했다. 그 사이 진단 결과가 나왔고 어머니가 예상하신 결과와는  많은 차이가 났다.
현수는 공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안해하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공부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공부에 대한 흥미도는 바닥인 상태였고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과 성향이 강한 현수는 머리가 점점 멍해지고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아프고 더 졸렵다고 했다. 현수의 하루. 어른인 나에게 그렇게 3년을 더하라고 한다면...솔직히 자신이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4시. 6시부터 학원에 다녀오면 10시 어느 땐 과외로 이어진 수업이 12시가 넘어서 끝나기도 한다. 평균 가용시간 3시간. 현실은 현수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세운 현수의 로드맵은 일단 대학 입학에서 끝난다. 그러나 현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기만 하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당나라의 시인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극찬을 들었던 시인 중에 김득신이라는 문인이 있다. 그는 10세가 될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우둔했던 그는 100번 1000번 이해가 될 때까지 한 권의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비웃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를 믿어주셨던 분이 계셨다.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김치는 당대 부제학을 지낸 덕망 있는 사대부였다. 그는 김득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비아냥에  비록 느리긴 해도 책을 탐독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김득신은 50이 넘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후에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김득신의 훈훈한 일화를 접했을 때 심하게 부끄러웠다. 아이가 한글을 늦게 깨우친다고 조바심 쳤고 초등학교 때에서는 남들보다 잘 하지 못할까봐 숨죽이고 중`고등 시기엔 인정받는(?) 대학을 가지 못 할까봐 걱정했던 나와 우리 학부모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수 어머니께 어머니께서 바라시던 대로 이과에 가고 대학을 가면 현수가 행복할까요? 분명히 현수는 군중 속의 고독을 수시로 느낄 것이다. 물론 그게 삶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좀더 행복한 미래의 모습도 그리게 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어두워지셨다.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고개를 떨구셨다. 현수는 그저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것만으로도 후련했는지 센터 문을 나갈 때 깊게 인사를 했다.
자기 주도 학습의 바람이 훈훈하게 번지는 지금이다. 덩달아 우리 교육의 미래도 밝게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그 역시 성적결과주의로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감추기는 어렵다.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기뻐하고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소중하게 여겼던 김득신의 든든한 지지자인 김치의 모습을 롤 모델로 삼아야 됨을 가슴에 새긴다.
이제 곧 꽁꽁 얼어 들어올 주인공들에게 따스한 미소와 힘찬 격려로 추위를 녹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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